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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가상현실로 준비하는 미래 직업 

메타버스는 아직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 또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교육, 의료, 관광, e-커머스 등 각 분야에서 색다른 메타버스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데, 각기 다르게 정의하는 메타버스의 모습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런 다양성(diversity)이 모인 곳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메타버스 기술을 소개한다.

▎Transfr의 VR 경력 탐색 및 기술 훈련 시뮬레이션. / 사진:Transfr
작년에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날아온 뉴스레터에서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7~8학년(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이 가상현실 (VR)을 이용해서 수학과 과학 과목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 대면수업과 비대면수업을 병행하던 코로나 기간 동안 미국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학업성취도가 크게 떨어져 교육계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어 다양한 솔루션이 제시되었는데, 그 일환으로 이런 실험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통상적으로 게임 기기로 인식되는 VR이 교육적으로 활용된다는 걸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이 학교에서 수학 수업에 이용하는 VR 콘텐트는 프리즘스 VR사에서 2021년에 론칭한 제품이다. 프리즘스 VR은 올 초에 한화로 160억원(약 1200만 달러)이 넘는 투자 금액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스타트업으로, 수학과 과학에 관련된 VR 앱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미국 26개 주, 110개가 넘는 학군에서 프리즘스 VR 프로그램을 사용해 10만 명이 넘는 학생이 수학과 과학을 배우고 있으며, 학생이 아닌 일반 유저들도 메타 퀘스트 앱스토어에서 24달러를 지불하면 앱을 내려받을 수 있다.

지루한 수학과 과학 교육을 가상현실에서?

그렇다면 게임으로 주로 활용되는 VR이 과연 수학 공부에 효과적일 수 있을까? 수학 학습의 방향이 공식으로 익히는 암기형 수학에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문제 해결형·서술형 수학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수학을 더 어려워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암기 위주였던 수학이 지루했다면 스토리텔링으로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수학적인 추리와 사고방식을 응용해야 하는 수학은 심오하다는 문제가 있다. 프리즘스 VR의 콘텐트는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제 상황을 주고, 수학적 추론을 이용해 문제해결을 유도하는 체험학습형 수학이다. 가령, 닭장 하나에 닭이 5마리씩 들어가는데, 닭장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철망은 20m라고 치자. 그럼 닭 25마리를 닭장에 모두 넣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철망 길이를 알아내야 하는 문제이다. 기존에는 이런 문제를 공식을 사용해서 풀어냈다면, VR에서는 학생들이 가상 농장에 투입되어 직접 철망을 쥐고 닭장을 하나씩 만들어 닭 25마리를 모두 넣도록 해서 철망의 총 사용량을 알아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체험형 학습을 한다고 모르던 공식을 갑자기 깨우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수학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커뮤니케이션학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이슈에 대한 개인의 관심을 높이려면 그 이슈에 관여도 (involvement)가 높아야 하는데, 닭장에 닭을 가두는 일이 중학생들에게 얼마나 관여도가 높은 일인지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학 교육을 VR 앱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이 속출하는 학년 즈음에 체험형 학습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유저의 나이대와 놀이 문화에 맞춰 관여도가 높은 콘텐트(예: 아이돌, 게임)를 제공할 수 있다면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 적어도 수학을 포기하지는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온라인쇼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요즘 미국의 백화점들은 쇼핑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학원이나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내가 이끌고 있는 CACHE센터가 자리한 아덴스 조지아에도 제법 큰 백화점이 있는데, 최근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물건을 살 수 있는 매장의 수만큼이나 태권도 학원, 펜싱 클럽, 군입대 상담소, 아덴스 경찰서 등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백화점 한쪽에는 YMCA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큰 청소년단체인 Boys and Girls Club에서 운영하는 YouthForce Innovation Hub이라는 이름의 방과 후 프로그램이 자리잡고 있다. 660㎡(약 200평)쯤 되는 공간에서 6~ 24세 청소년들이 학교를 마치면 이 공간에 모여 링크드인 같은 온라인 프로필 만들기, 대중 앞에서 발표하기, 로보틱스 등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다. 그중 가장 내 눈에 띈 것은 VR을 통한 미래 직업훈련 코너였는데, 이곳에서 TransfrVR의 직업훈련 앱을 선보이고 있었다.

TransfrVR은 직업훈련을 위한 가상현실 콘텐트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2017년에 설립된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는 미국 36개 주에서 1만 명이 넘는 유저에게 VR을 통한 직업훈련을 제공한다. 앱에서 받을 수 있는 직업훈련의 카테고리는 굉장히 다양한 편이다. 아직 직업이 없는 학생들이 키즈토피아에서처럼 VR을 통해 건설, 의료 서비스, 호텔 서비스, 비행기 정비, 자동차 정비 등 많은 직업에 도전해보고 그에 필요한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 VR을 통한 직업훈련의 장점은 헤드셋 하나만으로 다른 가상의 직업 장소로 이동할 수 있어 작은 실내 공간 안에서도 손쉽게 다양한 현장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바로 전에 소개했던 VR 교육 앱과 마찬가지로, VR을 통한 직업훈련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직업훈련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특히 손으로 섬세하게 기계를 다뤄야 하는 작업을 컨트롤러로 재현해내는 것은 VR 환경 내에서 아직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으며, 이런 앱들은 대부분 싱글 유저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 생활에서 개인의 기술이나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조직심리와 조직행동 등은 다루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직업별로 알고 있어야 할 기초 매뉴얼 교육이나 비교적 단순한 기계의 조작 방법 등을 교육하는 등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 내용 등을 전달하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다. 또 생생한 현장감이 필요한 여러 가지 비상 시나리오(예: 백화점 오픈런 상황, 은행에 무장괴한이 침입한 상황)에 대한 안전 훈련에도 VR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월마트, 뱅크오브아메리카, LA어린이병원 등 굴지의 기업들에서 VR을 활용한 직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메타버스의 한 단면은 실제상황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상황이 닥치기 전에 대비해 연습하고 준비하는 훈련 공간이다. 살면서 준비가 미흡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메타버스가 제공하는 무한한 연습 기회를 활용하면 사람들은 좀 더 준비된 자세로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수많은 사이버교육 프로그램처럼 VR을 통한 교육과 훈련도 쉽게 우회하거나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까?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 (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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