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밀란 쿤데라와 음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의 저자 밀란 쿤데라가 2023년 7월 12일 94세 나이로 타계했다. 한국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팔렸던 이 소설은 같은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고, 영화로서도 인기를 누렸다. 쿤데라는 이 소설을 포함한 여러 작품을 통해 흥미로운 음악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1980년의 밀란 쿤데라. / 사진:위키피디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하 『가벼움』으로 표기)에서 작가는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베토벤은 이 현악 4중주의 마지막 악장(4악장) 시작 부분에서 ‘그래야만 하나?’와 ‘그래야만 한다’라는 이상야릇한 문구들을 이례적으로 적어놓았는데, 쿤데라는 이 문구들과 그것들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 후 『가벼움』의 나머지 부분에서 주인공들의 신중하거나 가벼운 결정들과 관련해 이 문구들을 여러 번 인용했다. “베토벤에 대한 암시를 통해 토마시는 벌써 테레자 곁에 가 있었다. 베토벤의 4중주와 소나타의 레코드를 사라고 그를 억지로 몰아붙인 이가 그녀였기 때문이다. […] 원장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베토벤의 멜로디를 흉내 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야만 하는가?’”(1부 15장)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쿤데라는 수필도 좀 썼다. 『소설의 기술』(1986)은 소설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적은 수필인데, 꽤 진지하고 학문적이기까지 하다. 쿤데라의 진지함은 음악이나 조형예술에 관해서도 드러난다. 음악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그것이 소설 속의 것이든 수필 속의 것이든 ‘말이 되는’ 느낌이다. 『가벼움』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5부 8장의 다음 구절은 진지한 음악철학 혹은 음악미학 분야의 주장으로도 말이 된다. “이렇듯 베토벤은 희극적 영감을 진지한 4중주로, 농담을 형이상학적 진리로 환골탈태했다. 이것은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의 전이(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긍정적인 것이 부정적으로 변화한 것)라는 흥미로운 예다. 이 환골탈태가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 반대로, 베토벤이 4중주의 진지함으로부터 […] 가벼운 농담으로 변했다면 우리는 분개했을 것이다. […. 베토벤의 사례에서] 우리는 더는 파르메니데스처럼 사고할 수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그리스 철학자로서 기원전 6세기에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라는 질문을 제기하고는 자신의 철학을 이끌어갔다. 쿤데라는 『가벼움』에서 이 철학자의 문제의식과 베토벤의 현악 4중주,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소개하며 이 소재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혹은 이 소재들이 알려주는 바에 따라 소설을 썼다. 그러니까, 이 소설가는 “나는 파르메니데스와 베토벤, 니체를 아는 사람이야!”라고 잘난 척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이 인물들의 이야기는 소재주의적 수준을 넘어서, 소설 전개의 동력으로 사용됐다. 특히 상기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문구들과 관련 이야기들은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 중 하나일 수도 있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 혹은 허무주의(?)를 소설 안에서 설명하고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밀란 쿤데라가 이렇게 음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피아노를 배웠고, 대학에서 문학과 작곡, 영화 등을 심도 있게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1929년,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난 그는 체코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체코 공산당으로부터 축출당했고, 대학에서도 쫓겨났다. 이후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는 프랑스에서 활동해왔다.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커튼』(2005)에서도 이 지식인이 음악에 관해 피상적 지식을 넘어선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부의 두 번째 장인 ‘역사와 가치’ 중 한 부분을 길게 인용해본다. “형식이나 화성 그리고 선율이 베토벤의 것과 비슷한 소나타를 쓴 어떤 현대 작곡가를 상상해보자. 훌륭하게 작곡된 이 소나타는 만약 그 곡이 베토벤의 것이었다면 걸작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며, 그 현대 작곡가는 잘해야 모방의 달인으로 찬사를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베토벤의 소나타 앞에서만 미적 쾌락을 느낄 뿐, 같은 스타일과 같은 매력을 지녔다 해도 현대 작곡가가 만든 소나타 앞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미적 감각은 본능적이며 감수성에 의해 자극되는 게 아니라 날짜를 인지함으로써 결정되는 두뇌 활동인가? […] 역사적 의식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내재한 것이어서 이러한 시대착오는 우스꽝스럽거나 거짓되고 엉뚱한 것, 심지어는 흉측한 거로 느껴질 것이다. 연속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너무나 강해서 이는 각 예술 작품을 지각할 때마다 작용한다.” 오늘날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미학자들이나 예술가들, 예술 소비자들이 좀 있을 것이다. 작가 쿤데라는 자신의 이러한 (모더니스트로서의) 미학적 관점을 개진했고, 그의 진지한 소설들은 어쩌면 이런 관점에서 읽히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지식인 쿤데라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주변 국가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독특한 관점을 피력했다. 쿤데라는 유럽 문화권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와 같은 나라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이 나라들은 슬라브권이 아니라 중부유럽의 문화권에 속한다(김규진, 『밀란 쿤데라』, 북이십일, 2013). 하지만 이 나라들은 그의 청장년 시절에는 사회주의 진영, 즉 슬라브권에 속해 있었다.

목가적 전원곡에 대한 향수

그의 작품에 많이 소개된 음악가들이 베토벤과 같은 정통 중부유럽 문화권 작곡가이거나 체코 지역 음악가들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상술한 관점이 그의 마음속에서 작용했을 것이다. 첫 장편소설인 『농담』(1967)의 4부 4장 등에서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모라비아 지역의 민요와 전통음악을 상세히 묘사했다. “[서유럽] 바로크 시대의 귀족 음악은 장조와 단조로 쓰였다. 우리들의 음악은 바로크의 귀족 음악이 꿈도 꾸지 못한 음계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리디아풍의 애창곡은 어떤가. […] 이는 언제나 나에게서 고풍스러운 목가적 전원곡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나는 고대 그리스의 목양신인 판과 그의 피리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지역의 음악이 서유럽 음악과 다른 음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꽤 분석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를 악보를 동원해가면서까지 자세하게 제시했다. 쿤데라에 따르면 체코, 특히 모라비아 지역의 음계는 서유럽풍도 아니고 러시아권으로서의 슬라브풍도 아닌, 고대 그리스풍이다! 이것을 설명해줄 가설도 적었다. “[서유럽 음악 이론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없는 모라비아 지역의 이 노래들을] 설명해줄 하나의 가능성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였다. […] 우리들의 가장 오래된 민속 노래들의 음악적 구조는 사실상 고대 그리스 노래들의 그것과 일치한다.”

환상과 악몽에 대해 토로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공식 포스터. 한국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 영국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출연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소설에서 왜 난데없이 음악 이론이 나왔을까? 이 소설에는 네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러시아뿐 아니라 프랑스 등에서 유래했던 네 유형의 공산주의 세계가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스탈린주의가 팽배해 있던 1950년대의 체코슬로바키아다. 이 소설이 출판된 1967년은 ‘프라하의 봄’이라는 체코식 반공산주의 운동이 사회적으로 지지받던 때였다. ‘프라하의 봄’ 사건은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듯이, 소련군의 개입으로 좌절됐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자신이 싫어했던 것들, 그런데도 그것들에 대해 한때 헌신하면서 가졌고 느꼈던 환상과 악몽에 대해 토로하는 것 같다.

환상과 악몽을 걷어버리면 진실한 무엇이 바로 드러날까? 그런데 그 환상과 악몽은 잠시 스쳐 지나갔던 것이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그것들은 체코라는 나라의 짧지 않은 역사 자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 역사는, 작가가 보기에, 한편으로는 나치 독일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에 의한 지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통한 구소련의 지배다. 체코적이지 않은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분명 그런 지향이 있었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 신성로마제국까지 포함한다면 천 년이 넘는 동안 - 체코의 땅에서 체코적이지 않았던 것들을 배제한다면 앞으로의 체코는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할까. 헬레니즘적 그리스 문명이 하나의 모델이 아니었을까. 체코인들의 문화적 뿌리가 그리스에 있다는 이야기와 체코 사회를 위한 헬레니즘 모델을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설파한 건 아니었을까.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차원을 넘는 민족적 비전은 특히 음악을 통해서 많이 구체화했다. 대표적인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에 대해 이 작가가 소개하고 해석하는 많은 문장이 그런 수단이 아닐까 싶다. 야나체크에 대해 쿤데라가 썼던 문장들은 다음 호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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