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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41) 세계 최강 전투력을 지닌 몽골 기마군단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25년 동안에 불과 10만~20만 군대로 로마군이 400년 동안 정복한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땅과 많은 사람을 정복했다. 맥아더 장군은 “인류 역사에서 모든 전쟁 기록을 없애고 칭기즈칸의 전쟁사만 남겨 놓는다면 그 속에서 모든 군사적 교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를 꼽으라고 투표를 하면 몽골군이 1등으로 뽑힐 것이다.

몽골제국의 장군 영기는 몽골인이 섬기는 ‘영원한 푸른하늘’ 밑의 광대한 공간에서 늘 나부꼈다. 초원에는 거의 언제나 바람이 불었고, 말총은 끊임없이 나부끼면서 바람과 하늘과 해의 힘을 붙들어 이 힘을 자연으로부터 전사에게 옮겨주었다. 말총에 부는 바람은 전사에게 꿈의 영감이 되었으며, 전사가 자신의 운명을 따르도록 격려했다. 칭기즈칸은 평화로울 때는 백마 말총으로 만든 영기를 이용했고 전시에는 흑마 말총으로 만든 영기를 안내자로 삼았다. 백마 영기는 일찍 사라졌지만 흑마 영기는 그의 영혼을 간직한 채 오래 살아남았다.

몽골 기마군단은 나폴레옹, 히틀러도 실패했던 러시아 정복에 성공했다. 1237~1238년 겨울, 1240~1241년 겨울 두 차례 러시아에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역사상 유일하게 러시아를 정복한 군대가 되었다. 1241년 초 헝가리를 정복할 때는 하루 평균 100㎞를 주파했다. 이 속도는 2차 세계대전 때 전격적으로 유명했던 독일 기갑군단보다 빨랐다. 중무장한 유럽 기사들과 맞선 몽골 기마군단은 200~300m 거리를 두고 활로 집중사격을 하여 혼란에 빠뜨린 다음 돌격해서 격멸했다. 영국 군사학자 리델 하트는 몽골 기마군단의 전원 기병제를 참고하여 영국도 보병에서 독립된 순수한 기갑군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기갑군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데리안은 리델하트가 주장한 대로 독립된 기갑군단을 만들어 2차 대전 초기에 연전연승했다. 몽골시대 유럽의 중장기병은 100kg이 넘는 갑옷으로 중무장했지만 몽골 기마군단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빨리 달리는 말이 철갑 중무장보다 더 안전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들은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투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몽골 국립역사박물관에 있는 몽골제국 장군의 모형, 장군의 좌측에 영기가 세워져 있다.
칭기즈칸은 말을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존중했다. 몽골인들도 말을 귀하게 여겼다. 대칙령(대자사크)에는 “말의 머리와 눈 부위를 때리는 경우, 사형에 처한다”(제57조)는 규정을 둘 정도로 말을 아꼈다. 왜냐하면 말은 기동성을 제공하고, 말의 기동력이 곧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몽골 군대는 전쟁터를 누비던 말들은 늙어도 도살하지 않고 자연에 방생했다. 몽골 기병의 말은 역사상 유일하게 인간처럼 매복 작전이 가능한 말이었다. 매복 작전은 사람들에게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데, 몽골의 말들은 인간처럼 소리를 죽이고 움직임을 참으면서 몽골 기병들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어 매복 작전을 했다. 행군 시에 물을 찾으면 몽골의 말들은 우르르 몰려가는 게 아니라 한 줄로 서서 한 마리씩 물을 마시며 차례를 기다렸다고 한다. 몽골의 적들은 장창 보병으로 몽골 기병에 맞섰다. 장창 보병은 진용을 짜는 데 일정한 시간이 걸렸다. 전방 몇 킬로미터 앞에 있는 몽골 기병을 발견한 장창 보병들이 몽골 기병의 속도를 감안해서 진용을 짜는데, 몽골 기병은 몇 킬로미터를 말 서너마리를 바꿔 타면서 전속력으로 달려, 장창 보병들이 미처 진용을 짜기 전에 무너뜨리고 쓸어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칭기즈칸은 배반을 밥 먹듯이 하는 유목민들에게만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몽골제국의 말들조차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몽골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몽골 가이드 중 한 명은 시력이 5.0이었다. 실제 몽골의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시력검사판에 5.0까지 측정할 수 있게 돼 있다고 한다. 초원과 사막에서 좋은 시력은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능력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몽골 유목민들의 오감은 도시에 적응된 현대인에게는 초능력으로 느껴질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몽골의 말치기들은 밤새 말을 초원에 풀어놓고 아침에 데려오는데 만약 말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땅에 대고 땅의 진동 소리로 자기 말이 어디쯤 있는지 안다고 한다. 몽골의 기사는 길이 없는 몽골초원을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밤새워 달려도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몽골 유목민의 척박한 삶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강인한 몽골 군인을 길러냈다. 몽골 아이들은 세 살이 되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말 타는 법을 배운다. 다섯 살이 된 아이에게는 활이 주어진다. 극심한 기온차, 거센 바람, 부족한 물, 부족한 목초지, 부족한 사냥감 등 혹독한 몽골 초원의 환경은 몽골 기병들을 고난으로 단련했다. 시력이 좋고 특히 시각 기억력이 뛰어난 몽골 유목민은 태생적으로 강한 사람들이었다. 13세기 몽골을 여행했던 사람들은 몽골 군인이 초원에서 6㎞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과 동물을 구분할 수 있다고 기록했다.

이런 유목민들의 전투 능력이 어떻게 조직화되느냐에 따라 유라시아의 역사는 격변해왔다. 몽골제국의 싸움 방식은 수천 년 동안 몽골 초원에서 발전해온 전통적인 초원 전투 체계를 칭기즈칸이 몽골고원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정교한 시스템으로 다듬은 것이었다. 몽골군의 승리는 우월한 무기 때문이 아니라 유목생활에서 다져온 기술, 단결과 규율, 지도자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유목민의 방목기술과 사냥기술은 전투에 그대로 적용되어 농민들은 가축같이 대하고, 적군은 사냥하듯이 죽였다. 몽골군은 전투에서 명예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서 명예를 찾았다.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전술을 쓰든 상관없었다. 교묘한 기만책으로 이기든 잔인한 책략으로 이기든 개의치 않았으며, 전사들의 용맹에는 아무런 오점이 남지 않았다.


▎몽골제국 시대 장군의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유라시아 전역에서 몽골의 적들은 무수히 많은 전쟁으로 단련된 몽골 전사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가졌다. 몽골 군인이 어떤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머리를 땅에 대게 하고 목을 치다가, 칼이 부러져 칼을 바꾸러 간 사이에 살아남았던 주민들 중 아무도 도망가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몽골 군대의 선발대가 본진보다 몇 시간 먼저 냇가에 도착해서 불을 피우고, 돌덩이들을 불에 바짝 달군 다음 본진이 도착하면 헬멧에 물과 육포(보르츠), 달궈진 돌덩이를 넣어서 고깃국을 끓여 먹는데, 불과 몇십분 만에 수만 명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 군대의 장비, 무기, 식량 하나하나가 겉보기에는 보잘것없어도 몽골 기병의 속도전에 어울리는 최고의 효율을 자랑했다. 그들은 싸움터에 나가면서 소의 방광이나 위장에 육포를 담아 식량으로 사용했다. 역사상 최고의 전투식량인 보르츠는 원래 몽골인들이 겨울에 대비하는 식량이었다. 보관과 휴대가 간편하여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휩쓸었던 몽골 기병의 중요한 식량 보급원이 되었다. 보르츠는 소고기나 양고기를 말린 후 절구에 넣어 빻아 가루를 낸 것이다. 보통 소나 양의 방광(오줌보) 안에 넣어 보관했는데, 소 한 마리 분량의 고기가 들어가서 병사 1인의 1년 치 식량으로 사용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군량미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달리면서 먹었고, 그들의 주둔지엔 연기가 없었다.

쓸데없는 군더더기는 다 버리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했다. 농경민들은 달아나는 것이 패배였고 추적하는 것이 승리였다. 농부들은 적들을 어떤 장소에서 몰아내려고 한 반면 유목민은 적을 죽이는게 목표였다. 공격하다 죽이건 달아나다 죽이건 상관없었다. 고려와 몽골제국의 30년 여몽전쟁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 중에 가장 참혹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군대, 몽골 기마군단


▎14~15세기 몽골 군대의 헬멧. 몽골국립역사박물관 소장.
칭기즈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하고 몽골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속도이다. 서방 원정대에 대한 칭기즈칸의 명령은 단순했다. “몸을 가볍게 하라.” 불필요한 것은 버리라는 뜻이다. 12~13세기 유럽 기사들의 군장은 70㎏을 넘었지만 몽골 기마병의 군장은 7㎏ 남짓했다. 전광석화처럼 적군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몽골군은 적국의 군대를 스폰지처럼 흡수해버렸다. 누가 보충되더라도 전투기술을 충분히 발휘하는 호환조직이었다. 적의 사령부를 제거하고, 적군을 몽골의 지휘체계에 편입하면 바로 몽골군의 즉시전력이 되었다. 베트콩식의 노획물 획득, 포로와 물자의 현지조달은 현대의 아웃소싱(outsourcing) 경영, 바로 그 자체였다. 몽골군에는 독특한 특징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보병이 없는 기병으로만 이루어진 군대라는 것이다. 둘째, 병사들과 함께 다니는 예비의 말들 외에는 따로 병참이나 보급대열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이 야영한 곳에서는 연기 한 오라기 피어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조리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몽골군은 고기, 우유, 요구르트 등 단백질이 풍부한 식사를 꾸준히 해 건강했지만, 몽골의 적들은 곡물 위주의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를 해서 이도 썩었고, 몸에 힘이 없었고, 병에 잘 걸렸다. 전통적인 군대는 긴 열을 이루어 똑같은 길을 가고, 식량 보급선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몽골군은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서 이동했다. 그래야 말이 풀을 충분히 뜯을 수 있고, 병사들이 사냥할 기회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몽골군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이 특정한 전투에서 싸우는 대규모 보병전이 아니라 영토 전체에서 전쟁을 치렀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요와 혼란을 이용하여 온갖 교묘한 책략을 구사했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경기병이 주력이었다. 자신들의 장점인 기동성과 활쏘기 실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면전도 있었지만, 주로 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치렀다. 적의 무기가 도달하지 못할 거리에서 강한 활로 적에게 집중사격을 하면서 동시에 전열을 형성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을 이용했다. 원정에서 합류한 다국적 군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상인들과 손잡고 심리전, 정보전, 위장기만술을 펼쳐 농경정주민들을 제압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몽골 군대는 기병, 포병, 보병을 배합한 입체적 전술로 발전시켰다. 여기에다 스파이를 이용한 정보 수집, 몽골 군대가 가기 전에 적지에 공포를 먼저 퍼뜨리는 심리전, 연막을 이용한 교란 작전, 위장과 매복, 회피와 반격의 되풀이, 포로를 화살받이로 이용하는 기상천외하고 변화무쌍한 전략과 전술로 유라시아의 제국들을 초토화했다.


▎칭기즈칸 시기의 몽골 기병을 재현한 모습.


※ 김정웅 -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311호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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