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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메디사피엔스 대표 

신생아 희귀질환 파수꾼 

여경미 기자
우리나라의 2023년 출산율은 0.72명으로, 사상 유례없이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다. 그런 만큼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신생아가 한 명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메디사피엔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신생아 희귀질환을 진단한다. 신생아가 희귀질환에 걸렸는데도 질환의 종류나 병명을 몰라서 사망하는 것을 막고자 빠른 진단과 처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강상구 메디사피엔스 대표를 만나 희귀질환 조기진단을 위한 여정을 들여다봤다.

▎AI 희귀유전질환 진단 솔루션을 제공하는 메디사피엔스는 국내 병원들과 협력해 희귀질환 220여 종과 희귀질환을 유발하는 유전변이 등 265개 유전자를 분석해, 희귀질환 조기 진단과 함께 다수의 신생아를 살린 사례를 확보한 바 있다.
태어나자마자 따뜻한 엄마의 품이 아닌 신생아집중치료실(Neonatal Intensive Care Unit)에서 전문의에게 케어를 받는 신생아 수가 점차 늘고 있다. 집중치료실에서 삶을 시작하는 신생아가 늘어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대표적인 원인은 환경오염 노출, 호르몬 변화, 취업난, 집값 상승 등 사회문제로 결혼과 출산이 늦어져 유전질환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강상구 메디사피엔스 대표는 “대륙이나 국가별로 희귀질환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희귀질환 또는 유전질환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 5000만 명 중 2만 명 이하가 걸린 질환들을 통칭한다”고 설명한다. 윌슨병(Wilson Disease), 파브리병(Fabry Disease), 무코다당류증(Mucopolysaccharidosis) 등 1만여 가지가 넘는 희귀질환의 종류 중 가장 흔한 질환도 발병할 확률은 0.04%에 불과하다. 강 대표는 “밝혀진 희귀질환만 1만여 종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희귀질환은 계속 생기고 있다”며 “만일 1만여 종을 인공지능에 넣고 돌리면 이 희귀질환들을 일으키는 유전변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희귀질환을 재빨리 탐지해내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야말로 희귀질환 정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부모는 ‘우리 아이가 희귀질환은 아닐까?’라는 걱정과 ‘혹시나 때문인가?’란 자책으로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우리 회사는 희귀질환 확진자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지닌 플랫폼을 구축해 신생아들의 유전질환 검사에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메디사피엔스는 서울대병원 등 국내 병원들과 협력해 희귀질환 220여 종과 희귀질환을 유발하는 유전변이 등 265개 유전자를 분석해 양성, 병원성, 불확실성 변이형 등으로 구분하고 질병 연관성을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한 번 채혈로 일주일이면 희귀질환 관련 진단 정보를 제시할 수 있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7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강 대표에 따르면, 숙달된 유전학 전문가가 1건당 10시간 걸리던 변이 해석을 메디사피엔스에서는 머신러닝, 자연어처리, 생성형 AI 등 세 가지 모듈을 구현해 1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다. 또 경쟁사가 6주에 걸쳐 실시하던 분석을 3일 이내로 줄였고, 채혈량을 10㎖에서 한 방울로 줄이는 성과도 냈다. 그는 “기존 방식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렵고, 여러 병원을 방문해 확진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지만 AI와 IT 기술을 적용하니 시간 싸움에서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소량의 혈액만으로도 검사가 가능한 키트(kit)를 개발하거나 차세대 염기서열분석 장비(Next Generation Sequencing) 시스템을 통한 분석 등도 메디사피엔스만의 경쟁력 중 하나다. 메디사피엔스가 검사 결과를 토대로 맞춤형 분석 리포트를 발송하면 병원에서는 유전변이를 분석·진단한다.

마케팅 전문가, 바이오 분야 진출

강 대표는 의학이나 바이오 전공자가 아닌 IT 마케팅 전공자다.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가 듀크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고 JP모간과 도시바(TOSHIBA), 3M 등 글로벌기업에서 일했다. 이후 국내 유전체분석 기업 디엔에이링크(DNA Link)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경영을 총괄했다.

2017년 메디사피엔스를 창업한 강 대표는 수많은 바이오 회사가 상업성 등을 이유로 항암제, 치매, 당뇨 등에만 집중할 때, 희귀질환에 대한 병명조차 몰라서 조치나 치료를 못 하는 신생아들에게 집중했다. 그는 MP3 플레이어의 등장을 예로 들며 ‘생애 처음이란 경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MZ세대들은 가장 먼저 사용해본 전자기기가 MP3 플레이어였고 애플(Apple)이 스마트폰 등으로 전 세계 전자기기 시장을 호령하게 된 것도 MP3 분야를 휩쓸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숙아와 같은 신생아는 성장 과정에서 예후를 살펴보기 위해서 출산한 대학병원을 꾸준히 방문할 수밖에 없다. ‘무덤에서 요람까지’란 말처럼 한 번 인연을 맺은 병원과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AI), 생물정보학(BI), 레드 바이오(Red Bio) 담당자가 한 사무실에 있어 뜻이 맞지 않아 부딪칠 때도 있지만, 서로 의견을 공유하며 메디사피엔스가 점점 발전해나가는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부산대병원, 차병원, 아주대병원과 같은 여러 대학병원에서 발주한 유전질환 샘플 분석 등 다양한 사업에도 참여해 2022~2023년 모두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작년에는 희귀유전질환 조기진단 기술 개발 및 디지털·바이오산업의 리더로서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23 융복합기술교류촉진 국내기술교류 성과공유회’에서 강 대표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고,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아기유니콘’에 선정되는 겹경사도 있었다.

해외시장 공략으로 성장 가능성 키워

임신 중 다운증후군 선별검사에서 고위험군에 한해서만 추가 검사를 실시하듯이 신생아 희귀질환 검사도 모든 신생아에게 실시하지는 않는다. 신생아집중치료시설이 잘 갖춰진 미국, 중동,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타이완, 싱가포르, 일본 등이 이 검사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 4월 정부의 방미 경제사절단에 참여해 1년에 90만 명이 방문하는 미국 서부지역 최대 병원인 샤프병원그룹과 조인트벤처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MOU로 메디사피엔스는 ▷희귀질환 진단 패널 및 인공지능 기반 유전변이분석기술 ▷환자 평생 관리 정밀의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운용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메디사피엔스는 작년 11월 샌디에이고에 미주 법인을 설립했다. 이 외에도 메디사피엔스만의 데이터베이스와 플랫폼 등을 바탕으로 중동, 타이완, 일본 등지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 AI와 빅데이터(Big Data)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고 해도 실제 현실에서 쌓은 정보가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환자와 그 가족들까지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면 희귀질환의 사회적 비용이 큽니다. 희귀질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는 향후 유전질환 진단뿐 아니라 치료에도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여경미 기자 yeo.kyeongmi@joongang.co.kr _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404호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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