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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병원’살리러 왔소 _ 암박사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의 240일 혁명 

'쓰레기·낙후시설·대충근무·年200억 적자·경쟁력 빵점'
'그동안 많이 놀았죠? 이제 일 좀 합시다'…
정부기관 묵은 병폐 138가지 뜯어고쳐 

글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사진 오상민 월간중앙 사진기자 [osang@joongang.co.kr]
연 수백억이 넘는 적자로 애물단지였던 국립의료원. 올 4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하면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기를 꿈꾸고 있다.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 원장이 중심에 있다. 그는 2010년 4월 1일 첫 취임 이후부터 240여 일 동안 총 138개의 개혁을 진행 중이다. ‘박재갑 개혁’ 풀 스토리를 취재했다.

▎국립중앙의료원 본관 앞에 서 있는 박재갑 원장.

천지개벽. 국립중앙의료원이 변하고 있다.

연간 200억원이 넘는 적자로 재정 악화에 시달리던 병원, 해마다 국정감사 때면 ‘병원 곳곳의 쓰레기와 낙후된 시설, 리베이트 문제’가 도마에 올라 포탄을 맞던 의료원이 바뀌고 있다. 너저분한 광고 플래카드가 층층이 걸려 있던 담장은 아예 허물어졌다. 담장 경계선에는 나무가 심어졌다. 정문 앞 수위들은 산뜻한 유니폼을 입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목례를 한다. 주로 행려병자들이

찾는 병원으로 알려진 1층 진료실이 일반인 접수로 북적인다.

본관 게시판에는 오늘의 강좌가 붙어 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운동화를 신고 뛰어 다닌다. 박재갑(62) 서울대 의대 교수가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으로 입성한 지 8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다. 대장암 치료 분야의 권위자이면서 금연운동을 주도해온 그는 새로 출

발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박 교수의 경영혁신 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10년 전 국립암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그 초대원장을 맡아 3년 안에 재정자립을 시킨 주인공이다. 당시 의료계의 반대 목소리를 물리치고 국립암센터를 밀어붙여 조기에 경영을 안정시킨 인물로 의료원을 회생시킬 적임자로 손꼽혔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보이는 벽과 보이지 않는 벽을 모두 부수고 3년 안에 재정자립, 국가대표 병원으로서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의료원에 입성하자마자 원장실부터 바꿨다. 원장실인 301호의 크기는 13.2㎡(약 4평). 99㎡(약 30평) 크기이던 기존 원장실은 새로 영입한 한대희 뇌심혈관센터장(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과 안면기형 성형으로 유명한 박철규 성형외과장(전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연구실로 내줬다. 301호에는 벽에 붙은 책상 4개가 빠듯하게 들어차 있다. 책상은 박 원장, 전임의, 비서가 각각 사용한다. 의자를 조금만 움직여도 옆 사람과 부딪칠 정도다. 원장실 입구에는 명패도 없다. 수술실이 같은 층에 있어 기동성이 좋다는 이유로 이쪽으로 옮겨왔다. 2000년 이미 암수술 4000여 회를 넘긴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10건 이상의 대장암 수술을 도맡아 한다. “가수는 노래를 불러야 가수고, 외과 의사는 수술방에 들어가야 의사”라는 신념 때문에 그는 수술을 게을리 하지 않는

다. 그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또 다른 이유는 ‘병원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였다.

국립중앙의료원 수술방에 처음 들어가 본 그는 아연실색했다. 소독 거즈는 청결하지 않았고 세면대에도 불순물이 묻어 있었다. 수술복과 수건은 뒤엉켜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수술실 한 곳만 들어가봐도 병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취임하고 병원의 담장을 없앤 것은 환경 정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기본부터 손을 대야 했다. 모든 경영을 투명하게 하면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 보이는 벽을 없앤 다음 할 일은 조직 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당신네들 한 명도 못 내보냅니다. 단, 그동안 많이 놀았으니 이제 일 좀 합시다.”

박 원장이 취임 첫주 전 직원을 대강당에 불러 놓고 한 말이다.


▎서울 을지로6가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야경.

국립의료원 시절, 한 병상당 1억5000만원의 유지비가 나가고 버는 돈은 1억원이었다. 500개 병상이니 대략 250억 원 적자가 나는 셈이다. 같은 특수법인인 국립암센터와 서울대 병상 수익은 대략 4억원 벌고 4억원 비용이 나간다. 병원이 자구책을 구하지 않는 이상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1958년 11월 28일 개원한 국립의료원이 전신이다. 6·25전쟁으로 인한 전상병과 의료요원의 훈련양성을 위해 문을 열었다. 전쟁 당시 의료지원을 수행하던 한국 정부와 운크라(UNKRA:국제연합 한국재단), 스칸디나비아 3국이 의료원 설치에 합의해 10년간 공동운영했다. 당시 서양의 최신식 의료기기를 갖춘 서울의 대표 종합병원으로 우수한 의료진과 첨단 기술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병원이 재정난을 겪기 시작한 것은 1968년 10월 1일 정부에서 운영권을 인수한 이후부터다. 국립병원의 성격을 띠고 의료자 교육·양성, 공공의료 전파 등 국가 대표 병원의 역할에 충실하려 했지만 막대한 투자를 받는 민간 병원이 생기면서 경쟁력이 추락, 심각한 적자난에 시달렸다. 3차 진료기관에서 2차 진료기관으로 추락하는 수모까지 당해야 했다. 해마다 국정감사 때는 국립의료원의 존폐가 도마에 올랐고, 특수법인으로 바뀌기까지 8년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공무원 신분이 박탈된다니 직원들의 반발도 거셌다. 정부에서도 운영 주체를 정부에서 특수법인으로 할 경우 수익성에 치중할 우려가 있고 공공의료기관의 제 기능이 이전보다 약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이런 진통을 거쳐 올해 4월 2일 특수법인으로 탄생했다. 운영 주체가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국립중앙의료원장에게로 넘어왔다. 병원 개혁의 칼자루를 쥔 박 원장. 주인의식 부재, 순환보직, 경직된 예산, 융통성 없는 경영 등 그동안 공무원 조직이 가지고 있던 모든 폐단이 그의 개혁 대상이 됐다. 이런 원칙하에 11월 15일 현재 의료원 개혁 항목 138개가 만들어졌다.

138개 개혁의 내용과 원칙 ‘보는 것이 믿는 것’


▎사람들이 1층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병원의 변화는 이 개혁안에 기초해 바뀌었거나 바뀌고 있다. 개혁 항목들은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병원 측에 개혁안 내용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자 깨알만한 글씨로 프린트 된 A4 용지 두 쪽 분량의 종이를 내밀었다. ▶경영 ▶교육 ▶연구 ▶진료 ▶우수 의료진 영입▶인사 ▶홍보 ▶병원 시설 ▶기록물 관리 등의 큰 카테고리 안에 138개의 세부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의료원 개혁의 가장 큰 줄기는 ‘투명성’이다. ‘일일 수입·지출 현황 보고할 것’ ‘구매·회계 등 사고예방을 위한 내부감사팀 준비할 것’ ‘모든 업무를 볼 때 PC 모니터 화면을 출입구를 향하게 해놓을 것’ 이라는 항목이 눈에 띈다. 박 원장은 “편법으로 지원했던 부서 운영비를 간호사 2만원, 레지던트 10만원, 전문의 20만원씩으로 책정했다”며 “흑자가 날 때까지 병원이 쓰는 돈을 10원 단위까지 일일이 직접 챙길 작정”이라고 말했다.

의료원으로 들어오는 모든 돈은 한 통장으로 입금된다. 직원을 거치지 않고 입금도 은행에서 바로 받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돈이 흐르는 통로를 정확히 알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비좁은 원장실은 전임의와 비서들이 같이 쓰고 있다.

박 원장은 차 기름 넣을 때와 꼭 필요할 때 빼고는 법인카드를 쓰지 않는다. 쓸데 없는 판공비를 줄여서라도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각오다. 병원을 찾는 손님에게는 자체 제작한 4000원짜리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고 있다.

매월 넷째 주 월요일 전 직원이 참석하는 ‘직장발전전략회의’도 있다. 박 원장이 오자마자 실시한 ‘직장발전전략회의’에서 전 직원이 매월 한 차례 공개토론을 갖는다. 이 회의에 참석하면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박 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한 사항도 이 회의에서 100% 공개한다. 비밀 없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원장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원장실 문에 달린 불투명 유리창도 투명창으로 교체해 안쪽이 훤히 보이게 했다. 부인과 하는 통화 내용을 제외한 원장의 모든 통화 내용을 비서가 기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박 원장이 국립암센터 원장을 한 6년 동안도 지켜진 원칙이다. PC 모니터 방향까지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조직을 경직시키지 않을까? 이에 대해 박 원장은 “지금은 꼭 필요한 규정들이다. 당장은 직원들도 힘들겠지만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병원은 재기할 수 없다”는 단호함을 보였다.그가 의료원장으로 온 이후 여러 의료업체들이 의료기기를 유치하기 위해 물밑 교섭을 벌였지만 그는 꿈쩍도 안했다. 공개입찰 원칙을 지키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간호사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병원 전체가 학습장

의료원 식당 입찰 과정을 사례로 보자. 박 원장은 병원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던 식당을 공개입찰했고 총 6개 외부업체가 입찰에 참가했다.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된 입찰을 통해 한 업체가 최종 선정됐다. 박 원장조차 어느 업체가 됐는지 몰랐던 어느 날 한 모임에 나갔더니 아는 사람이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저희가 최종 입찰됐습니다. 사실 저희로서는 좀 적자인데 원장님을 돕기로 했습니다.” 어느 업체가 입찰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발표가 나고도 굳이 업체를 조사하지 않았다.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정됐기 때문에 결과를 재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박 원장은 식당을 의료원에서 직영할 때 드는 돈을 줄이고도 오히려 투자유치를 한 셈이다. 박 원장의 투명경영은 국립암센터 원장 시절부터 유명했다. 암센터의 여러 건물공사를 진행했던 당시 현장 소장이 “여기는 공사 내용을 100% 공개해도 걸리는 게 없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시스템이 바뀐 다음 할 일은 ‘사람’ 바꾸기였다. 박 원장이 택한 방법은 ‘교육’이다. 국외 168편, 국내 206편의 논문을 쓰고 초청 강의만 국내외 합산 768회 기록을 세운 그였다. 연구와 공부는 의료진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무기이자 자산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취임 첫주부터 전 직원 대상 특강을 시작했다. 첫 강사는 박 원장 자신이었다. ‘첨단의학’을 주제로 특강을 한 그는 이후에 전문강사를 초빙해 ‘품질관리’ 특강을 연달아 열었다. 박 원장 입성 8개월 만에 병원은 거대한 학습장으로 변했다. 회의실, 강당 곳곳마다 세미나가 열리고 특강이 개최됐다. 공부하는 시간도 밤낮이 따로 없다. 진료 시간을 제외하고 모두 ‘열공’ 분위기다.


▎간호사들의 운동화.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아침 명사 특강, 매월 둘째 주 월요일 아침 첨단의학 특강, 매월 둘째·넷째 주 심포지엄 개최, 매월 첫째 주 수요일 아침에는 연구소 및 전문의 회의를 진행한다. 5월에는 KAIST 안철수 교수, 6월에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 7월에는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등이 명사 특강 강사로 나왔다. 직원들의 도전정신을 고취시키고 서비스 교육을 통해 최고의 서비스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이 특강의 목적이다.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따로 2시간 분량으로 세 개의 고위과정도 개설했다. 박 원장도 이 중 두 개 강좌를 듣는다. 점심 시간에는 짬을 내 12시30분부터 10분짜리 건강 관련 강좌도 연다. 퇴근 시간 이후에는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직원을 위한 무료 어학강좌도 개설했다.

개혁의 기본 ‘청결 엄수’

낮은 보수와 열악한 환경으로 그동안 의료원을 지원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병원의 변화가 입소문이 나면서 우수한 지원자들이 몰려 들고 있다. 의료원에서만 30년을 일했다는 정영숙 간호부장의 말을 들어보자.

“공무원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는 게 가장 불만이었다. 시설이나 보수가 너무 작아 큰 대기업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후배도 많았다. 이젠 공공간호 지도자 과정도 생겼고, 어학 공부도 무료로 할 수 있으니 딴 세상을 만난 것 같다. 간호사들이 지금 대학원 간다고 난리다. 예전에는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 모집공고를 하면 30여 명이 지원하던 곳이 이번에는 무려 400명이나 왔다.”


▎본관 로비 앞에서 보안요원이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10월 국정감사 때 보건복지위 소속 최경희 의원은 의료원의 낙후된 시설을 지적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시찰했더니 1982년에 지어진 수술실은 한 번도 수리가 안 됐고 정상인까지 화장실 드나들기가 힘들 정도로 시설이 낙후돼 있다.” 박 원장이 온 이후로 외형은 정비됐지만 아직 내부적 시설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이런 낡은 시설에 지금껏 청소마저 제대로 안 돼 있었으니 더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현관 청소 출근 전 완료할 것’ ‘청소용역업체 직원배치도 및 비상연락망 제작, 청소 수시 점검.’ 개혁 안에는 청소 항목까지 꼼꼼히 체크돼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병원 계단 구석에 널려 있던 담배꽁초는 흔적도 없어졌고, 악취를 풍기던 1층 로비의 화장실에서는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는다. 병원이 깨끗해지자 인근 주민의 발걸음도 늘었다. 최근 병원을 찾은 인근 주민이 “내 평생 이 병원에 와서 줄 서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다.

박 원장을 아연실색하게 한 수술실도 깔끔하게 정돈됐다. 수술복과 수건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던 수술실에는 의사와 간호사를 위한 개인 사물함을 비치했다. 불결했던 화장실은 천장 도색, 조명 교체, 바닥 보수를 했다. 박 원장은 요즘도 주말 새벽 불시에 순찰을 돌며 청소 상태까지 점검한다. 만약 제대로 청소가 돼 있지 않은 곳에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담당 배치표까지 체크하며 청결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10월 국감 때 국립중앙의료원은 특수법인이 된 후 오히려 ‘진료 수익’이 감소하고 ‘행려병자 거부’를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병원 측은 해명 자료를 냈다.

진료수익 감소는 3분기를 비교한 것인데 모든 병원을 봐도 그 시기는 마찬가지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3분기에는 신종플루 환자가 줄면서 환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행려병자 거부 사건은 특수법인이 되기 전인 지난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박 원장이 온 후 취약계층 진료는 지난해에 비해 2.6% 늘었다. 의료원은 취약계층의 의료 혜택 강화를 위해 다문화가정진료센터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 공공보건 의료지원팀이 의료원에 입주해 있다.

시스템 다음은 ‘사람’ ‘복지’

개혁의 주체는 ‘직원’이다. 직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리더의 강요와 독선으로 진행되는 개혁은 모래알에 쌓은 성과 같다는 게 박 원장의 생각이다. ‘간호사 기숙사 시설’ 대보수도 그런 원칙하에 진행된 복지 개혁안 중 하나였다.

처음 병원이 생길 때 지어져 수십 년간 공사를 하지 않았던 간호사 기숙사는 220V 전압도 없는 110V 전용이었다. 화장실은 좌변식도 아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종합병원의 기숙사 시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해마다 정부 시찰이 나왔지만 보고도 고치지 못했다. 정해진 정부 예산으로 간호사 기숙사를 고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던 것.


박 원장은 간호사 기숙사 전면 공사를 지시했다. 직원 행복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년 만에 혁신이 일어났다. 방 안의 옷장부터 침대, 화장실까지 전부 새로 교체했다. 전 직원 생일 축하, 친절 직원 매월 포상과 출산 예정 직원 출산 전 격려 및 식사, 출산 여직원 유급휴가 4개월도 모두 박 원장이 만든 복지정책이다.

병원이 변하는 모습을 보이자 노조도 반색하고 있다. 한 노조 관계자는 박 원장을 찾아와 간곡하게 말했다.“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원장님 계시는 동안 병원 못 살리면 우리는 죽습니다.” “노동조합이 요구할 게 아무것도 없게 만들라”는 것이 박 원장의 원칙이다. 노조보다 먼저 직원의 복리를 생각하고 만들어주면 아무 잡음이 없다는 논리다. 특수법인으로 바뀔 때 반대했던 노조원은 벽에서 대자보를 떼고박 원장의 개혁을 지켜보고 있다. 병원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노사가 함께 뛰고 있는 것이다.

병원의 명성은 의료진이 결정한다. 의료원이 역점을 두고 있는 개혁 안 중 하나는 진료의 질 향상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스타 의사 모시기다.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한대희 교수와 전 서울대 의대 성형외과 박철규 교수 외에 올해 새로 뽑는 사람의 70~80%가 서울대 의대 출신이다. 그동안 서울대 의대 출신이 의료원을 외면했던 전례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라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시선이다.

국립암센터 시절부터 박 원장은 자신보다 연봉이 높은 사람을 대거 유입해 인재 풀을 탄탄히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능력 있는 의사들에겐 원장 연봉의 두 배를 주더라도 데려오겠다”고 선언했다. 국립중앙의료원장은 다른 특수법인 병원장과 달리 이사회 의장이란 직함을 동시에 갖는다. 보건복지부·교육기술부·행정자치부·기획재정부 차관 4명의 이사를 거느리고 있다. 같은 특수법인인 서울대와 국립암센터는 원장이 이사장을 겸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의사 지위로는 가장 높은 셈이다. 국가 병원의 수장으로 사명감이 따르는 자리다.

그가 의료원장으로 내정된 후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다 쓰러져 가는 병원 문 닫게 놔두지 그곳에 왜 가냐” “박 원장이 가면 조만간 살아나겠다” 등등.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 원장이 의료원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국가대표 병원으로서 명성을 되찾으려는 뚝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병원이 정상화되면 당연히 적자는 탈피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의료원 적자는 인력과 병상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인력과 병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 내년 말까지 만회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의료원이 법인화됐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500병상의 수입·지출에 연연하지 말고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게 박 원장의 생각이다. 공공의료 개선과 예방에 대비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것, 연구시설을 늘리고 의료보건에 관한 한 의료원이 국내 병원의 맏형 역할을 할 정도의 수준이 돼야 한다는 것, 전국에 전염병이 창궐할 때 그 환자들을 책임지는 국가대표 병원의 면모를 갖추겠다는 의지다.

‘공공의학연구소 설치’ ‘국립뇌혈관센터 개설’ ‘국제진료센터 개설’이 138개 병원 개혁 항목에 들어 있는 이유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내년에 JCI(의료기관인증제) 인증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계획이었다.

박 원장의 개혁에 기대를 거는 것은 그가 국립암센터를 정착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5년부터 2년간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일했다. 1989년 우리 국민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이라는 보도를 접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책을 세우라”고 당시 보사부에 지시했고 그는 대안으로 “국립암센터를 지어야 한다”고 강력히 말했다. 보사부는 1990년 1월 청와대 업무보고 때 “1992년까지 일산에 500병상 규모의 국립암센터를 짓겠다”고 보고했고 박 원장은 처음부터 암센터 건립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암센터는 운영 주체를 놓고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공무원이 운영하는 국가기관으로 하자, 특수법인으로 하자, 민간에 위탁하자는 세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지루한 부처 간 힘겨루기, 소모적인 논쟁 끝에 ‘특수법인’으로 법적 지위를 획득했고, 2000년 3월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장이던 박 원장이 초대 원장에 임명됐다.


▎전 직원 ‘운동화 신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재갑 원장. 그도 운동화를 신었다.

암센터 설립 주역에 거는 기대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박 원장의 열정이 없었다면 국립암센터 설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개 추진력과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박 원장은 달랐다. 국립암센터를 특수법인으로 만들고, 예산을 따낸 게 박 원장”이라고 말한다. 당시 박 원장은 일류 암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의사들을 애국심에 호소해 국립암센터로 불러 모으는 일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85년부터 2년간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일할 당시 매일 도시락 두 개를 싸 들고 출근해 밤새워 연구한 일은 지금도 서울대 후배 의사들에게 전해진다. 유전성 암에 대한 유전자 진단 체계를 국내 최초로 확립한 업적이나 1991년 서울대병원에 유전성 대장암 등록소, 1993년 유전성 종양 등록소, 1997년 암 유전자 클리닉을 개설한 것 역시 이런 열정과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서울대 교수를 겸직하고 있는 그는 분 단위로 바쁘게 뛰고 있다. 일주일 중 월·수·금요일은 국립중앙의료원에, 화·목요일은 서울대병원에 출근하고 짬을 내 각종 세미나·강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박재갑’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국민건강 캠페인이다. 국립암센터 시절 금연운동을 벌인 것처럼 의료원에 와서는 운출생운(運出生運:운동화 출근, 생활 속 운동)을 벌이고 있다.

10월 25일 전 직원에게 운동화를 나눠주고 ‘운동화 신고 출퇴근하기 운동’에 나섰다. ‘운동화 신고 출근하기’ 도 77번째 개혁 항목에 적혀 있다. 몸이 건강해야 새로운 변화에 긍정적이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더 밝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의료원에 가면 사무직이나 의료진이나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의료원은 2014년 서울 강남구 원지동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발표됐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취약계층이 찾는 강북의 대표 병원이 강남으로 이전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의료원의 미래 비전을 그리고 있는 박 원장은 새롭게 국립 외상센터(확인 필요)나 지원센터를 짓고, 의료원은 지금 그대로 두면서 신종플루 같은 국가 전염병이 생겼을 때 주민들의 진료기관으로 남겨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국가 지원 예산은 의료원 시설에 투자하고 진료 수익은 연구·개발에 투자해 100년을 내다보는 그림을 그리겠다. 의료원의 회생을 지켜봐 달라.” 박 원장의 야심 찬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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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호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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