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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의 용인술] 용인술로 지도자의 미래를 읽는다 

리더와 참모의 관계가 상명하복에서 상호보완으로 변화
유력 대선주자들의 조직 관리, 주변 관리 비법 

시오노 나나미의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 4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로마의 영웅이자 갈리아 총독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총사령관은 자신을 소환한 로마 원로원 결정에 반발, 군사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다 루비콘 강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군사들 입장에서는 그 강을 건너면 국법을 어기고, 반란군에 가담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로마에 소환되면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다. 카이사르는 국법과 자신 중에 택일이 불가피함을 그렇게 역설했다. 카이사르는 이어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된다. 이에 병사들은 국법을 어기더라도 총사령관을 파멸에서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고 “장군의 뒤를 따르자!”는 우렁찬 함성으로 응답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적었다. 카이사르의 뛰어난 용병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에게는 추종자의 마음을 휘어잡는 리더십과 용인술은 필수다. 특히 내년 대통령선거에 나설 예비 주자들은 국가경영 전략과 정책 수립도 중요하거니와 이를 실행에 옮기고 관리·감독하게 될 쓸 만한 참모들을 확보하는 일도 시급하다. 차기 주자라면 거창한 청사진 제시에 앞서 어떤 이들과 미래 비전을 공유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가장 가까이 두는 측근인사들이 누구인가를 보면 그 정치인의 면모를 유추할 수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국가 지도자가 참모를 잘 둬 위기를 극복하고 업적을 남기는가 하면, 임기 말에 참모 때문에 망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대선 예비 주자 서면 인터뷰를 토대로 참모진, 주변인사들을 취재해 작성했다. 대선 예비 주자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인간관계에서 중요시하는 덕목 △좋은 참모의 조건 △인사의 원칙 △설득 방식 △리더십의 특징 등 8개 항목이다.



▎지난해 12월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발족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와 자문교수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친이계라도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OK

“보수도 얼마든지 진취적일 수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들어설 때면 어김없이 “안녕하세요”라고 보좌진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다. 퇴근할 때도 늘 “안녕히 계세요” 내지는 “수고하세요”라고 말한다. 박 전 대표는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고락을 같이해온 국회 참모들에게 말을 놓지 않고 깍듯이 예의를 갖춘다.

그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는 비교적 간명하다. 신뢰할 수 있는지, 최선을 다하는지, 진취적인지를 따진다. 신뢰와 최선 같은 덕목은 도덕률에 속하지만 ‘진취’라는 항목은 다소 의외로 들린다. 박 전 대표의 한 참모는 “진취와 진보는 다르다. 보수도 얼마든지 진취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처음으로 거대정당의 공조직 인사권을 행사한 바 있다. 전임 최병렬 대표 시절 비서실에 근무하던 7, 8명의 직원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이들은 박 전 대표 임기가 다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조직을 활용할 때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을 쓸 때는 평소 눈여겨봤다가 전격적으로 발탁하기도 한다.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이학재 의원이 그런 경우다. 친박계에서는 박 전 대표와 외부세계 간 가교 역할을 할 비서실장이라면 적어도 재선의 관록과 상당한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봤기에 초선인 이 의원 낙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초선이지만 신중하고 겸손한 이학재 의원의 면모가 박 전 대표 눈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이들 사례는 앞으로 박 전 대표의 용인술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그가 당의 대선후보 내지 대통령이 될 경우, 친이진영의 껄끄럽지만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발탁한다고 박 전 대표 측근은 말했다. 박 전 대표 본인의 시각으로 정치인들을 분석하고 점수를 매긴 뒤 그들을 확실히 밀어줄 가능성도 높다. 박 전 대표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롤모델이다. 독신인 데다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은 점이 박 전 대표의 인생역정과 닮아 있다.

정치권 측근 인사로는 서병수 한나라당 최고위원, 이정현 의원(대변인역할), 유정복 의원(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유승민·이한구·최경환 의원 등이 있다. 또 학계에서는 김광두 서강대 교수(국가미래연구원장)와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최외출 영남대 교수,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가 각별하다. 이재만·이춘상·정호성·안봉근 씨와 같은 국회의원실 보좌진은 박 전 대표의 복심(腹心)으로 10년 이상 동고동락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손학규 대표는 지난 2009년 수원 장안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측근인 이찬열 후보를 당선시켰다.
챙길 사람은 반드시 챙기는 보스 기질

“사람은 진정성과 인간미로 대해야”

“진짜 화가 날 때면 참모들의 눈물이 쏙 나올 정도로 꾸짖는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측근인 이제학 서울 양천구청장은 대학교수 출신인 손 대표가 참모들을 어떻게 혼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손 대표는 참모의 잘못으로 문제가 확대되면 일단 본인이 나서 조용히 수습한다. 그러곤 해당 참모를 따로 불러 사안에 따라서는 매섭게 질책한다.

손 대표가 가장 용납하지 않는 참모들의 악덕은 뭘까? 그가 서강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조교를 했던 이남재 민주당 대표비서실 부실장은 “과장하고 잘난 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사람을 진정성과 인간미로 대하라고 주문한다고 이 부실장은 덧붙였다.

언젠가 손 대표는 “내게는 참모라는 용어보다 동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믿음을 기반으로 한길을 걸으며 “새로운 생각으로 서로 자극하는 사이”가 바로 리더와 참모라는 설명이다.

그는 손에 쥔 게 없을 때도 자신이 꼭 챙겨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보살피는 보스의 기질도 발휘한다. 한 측근 인사는 손 대표가 뚜렷한 수입원 없이 야인으로 있을 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참모들에게는 작은 돈이라도 보태줬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대표에 취임한 뒤로는 당내 인사를 ‘소통’과 ‘통합’의 기조에서 단행했다. 적지적수(適地適樹: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심는다)의 원칙에 따라 능력 중심으로 배치하면 소통도 되고, 신뢰로 쌓인다고 믿는다. 그는 세종대왕을 정치인의 표상으로 떠받든다. 그 이유로 “항상 백성의 마음을 살피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은 말을 글로 옮기지 못하는 백성의 답답한 마음을 헤아려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1년 농사를 수해로 망치는 농민의 안타까움을 달래고자 측우기를 만들었다고 풀이했다.

김부겸·양승조·신학용·이춘석·서종표·송민순·전혜숙·이찬열 의원과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측근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최장집 고려대 교수, 장달중 서울대 교수, 김태승 인하대 교수, 손광현 청주대 교수, 박호성 서강대 교수 등이 자문그룹을 이룬다. 이제학 양천구청장,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 장관, 이수영 전 경기영어문화원장, 이남재 부실장 등도 오랫동안 한길을 걸었다.


▎2008년 미국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대담을 나누는 정몽준 전 대표. 전여옥·홍정욱 의원 등이 함께했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원탁 회의와 수평적 소통을 선호하는 6선 의원

“평범한 사람끼리도 팀워크를 이루면 성공”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원탁(둥근 탁자) 사랑은 유별나다. 개인 정책연구소인 ‘해밀을 찾는 소망’, 싱크탱크라 할 ‘아산정책연구원’, 또 자신의 지역구(서울 동작을) 사무실에는 예외 없이 원탁이 놓여 있다. 심지어 대한축구협회장 재직 시 회장실에도, 한나라당 대표실에도 원형탁자를 놓았다. 그는 위아래 구분 없이 편하게 말하는 원탁회의를 좋아한다. 의전을 철저하게 따지는 그이지만 대화의 장에서는 격식을 허물고 수평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는 조직 내 협업과 팀워크를 강조한다. “어떤 목표를 이루는 데 천재가 있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고 그는 믿는다. 오히려 “인간의 능력은 비슷하므로 성실성과 팀워크로 열성적으로 일하면 성공한다”는 철학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재선된 뒤 참모들과 첫 출근하는 오세훈 시장.
그가 좋아하는 참모는 혼자서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 앓기보다는 상식적으로 따져서 문제를 적절하게 제기하고, 공유하는 유형이다. 사람을 고를 때도 능력에 앞서 조직의 역량에 보탬이 되는가를 먼저 따진다.

1988년 국회 입문 이래 근 20년을 군소정당과 무소속의 길을 걷다 2007년 12월 한나라당 입당 후 21개월 만인 2009년 9월 당대표직에 올랐다. 단기간에 당의 최고점에 오르기까지 동료들과 스킨십에 몰입하는 악착같은 근성을 보여줬다고 한 참모가 전했다.

소주 2~3병은 거뜬히 소화해내는 그가 2008년 7월 전당대회에 출마해서는 의원·대의원들과의 잇단 술자리에 만취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3월에 전남·광주지역을 당일치기 방문하면서 잡은 약속이 거의 10개에 달했고, 점심은 승용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때울 만큼 분초를 아껴 사람을 만난다.

정 전 대표는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 특히 일제 재판정에서도 자신이 일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광복군 대한의병 참모중장이라고 말하는 안 의사의 당당한 면모를 흠모한다.

정치권에서는 이사철 의원, 전여옥 의원, 신영수 의원, 울산동구 지구당 사무국장 출신으로 지역구를 물려받은 안효대 의원 등과 교분이 두텁다. 학계에서는 김경환 서강대 교수, 김용호 인하대 교수, 박종두 목포대 교수, 박태호 서울대 교수 등이 자문단으로 활동한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2002년 대선 당시 정몽준 후보 공동대변인을 지낸 홍윤오 전 홍보특보, 같은 <한국일보> 출신으로 국회 보좌진을 이끄는 정광철 보좌관, 1992년 국민당 시절부터 정 전 대표를 보좌한 이달희 울산대 교수 등이 측근 참모 역할을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

아이디어 경쟁에 불 지피는 현장 행정가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자리를 공석으로 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좋은 참모의 조건으로는 창의성·열정·전문성·신의·청렴 등 5개의 덕목을 들었다. 그중에서 창의성과 열정을 가장 중시한다. 서울시장 취임 이후 ‘창의시정’이라는 패러다임을 도입하고, 공무원들에게는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의 자세로 일해달라고 촉구해왔다.

그는 지도자와 참모를 상하관계가 아닌 상호보완관계로 파악한다. 참모라면 각기 자기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해 리더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문성을 요하는 요직은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상당 기간 공석으로 두기도 했다. 그 예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이다. 2008년 5월 청와대 문화관광비서관과 <우먼타임스> 편집국장을 지낸 조은희 씨를 영입할 때까지 그 자리는 5개월 넘게 비어 있었다. 오 시장은 일면식도 없던 조씨를 전문가들의 추천과 평판만으로 발탁했다. 2년 뒤 여성가족정책관실에서 주관한 ‘여행프로젝트(여성이 행복한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가 유엔 공공행정상 대상을 받아 오 시장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그 뒤 오 시장은 조씨에게 서울시 정무부시장직을 제안, 서울시 사상 첫 여성 부시장이 탄생했다.

오 시장은 ‘현장 행정’을 강조한다. 어떤 문제가 터지면 일성이 “현장에 가봤느냐”며, 현장을 도외시한 부서에 일이 터지면 엄히 책임을 묻는다고 알려졌다.

그는 세종대왕을 지도자의 표상으로 삼는다. 세종은 서자 출신으로 자신의 등극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황희에게 18년간 영의정으로 국정을 통할하도록 했고, 수많은 업적을 양반사대부가 정점을 이룬 신분사회에서 일궈냈다. 오 시장은 세종을 일러 “시대의 관습에 굴하지 않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리더십을 실천에 옮긴 분”이라고 평가한다.

오 시장은 좌우에 두 사람의 핵심 참모를 두었다. 강철원 서울시 정무조정실장, 황정일 서울시 시민소통특보가 그들이다. 2000년 16대 국회에서 오 시장의 보좌진으로 만나 지금까지 오 시장의 캠프의 중추 역할을 한다. 김태완 서울시 시민불편개선단장도 국회 시절부터 오 시장을 보좌한 가신그룹에 속한다. 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이상철·서장은 전 정무부시장 등도 ‘오세훈 사단’의 핵심 인사로 분류된다. 민노총 건설연맹 정책국장 출신으로 행정안전부 장관 보좌관을 역임한 이종현 대변인도 서울시와 언론의 가교 역할을 한다. 또 최창식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 제타룡 전 서울시도시철도공사 사장, 이성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등은 오 시장의 대표적인 정책라인이다.

김문수 경기지사

평시보다는 위기상황에 더 어울리는 지도자


▎2007년 1월 경기지사 공관에 모인 김문수 지사와 측근 인사들.
“공무원이 일하다 죽으면 가문의 영광”

측근들에 따르면 김문수 경기지사는 가신그룹이나 참모들의 마음을 다정하게 다독거리거나 어루만져주는 일이 드물다. 목표점을 제시하고 격려하면서 손을 잡고 이끄는 스타일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이 앞장서 희생하고 솔선수범함으로써 지지자들이 스스로 따라오게 하는 유형이다.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신뢰와 배려, 인화를 중시하지만 그와 손발을 맞춰 일하자면 애국심이나 헌신성, 판단력 없이는 곤란하다.

그는 지사가 된 요즘이나 노동운동을 할 때나 리더십의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고 노동운동을 같이했던 차명진 의원은 주장한다. 차 의원에게 각인된 김 지사의 강렬한 모습은 1986년 인천 5·3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야당이 주최한 직선제 개헌 현판식은 전국의 노동자·학생·시민이 가세하면서 장외폭력시위로 번졌다. 판이 커져 시위가 현장 지도부의 통제를 벗어날 즈음 당시 수배 중이던 김문수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이 곱슬머리에 안경을 쓰고 변복 차림으로 나타나 현장을 지휘했다.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모습이 바로 지금의 김 지사가 보여주는 솔선수범의 행정과 일맥상통한다”고 차 의원은 강조했다. 김 지사는 민중당 시절에도 노동쟁의조정법상의 ‘제3자 개입 금지’ 위반 혐의로 철창행을 밥 먹듯 했다.

국회의원이 돼서는 1년에 쉬는 날이 3, 4일에 그쳤다. 김 지사는 평소 “국회 공무원이 일요일이라고 쉬는 게 어디 있나, 일하다 죽으면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김 지사 본인이 앞장서 본을 보이기 때문에 보좌진이 힘들다는 내색을 못 했다”고 차 의원이 말했다.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는 참모진 의견을 묻는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9명의 대선주자들이 각축했다. 김 지사는 지지후보 결정에 앞서 참모진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았다고 한다.

또 실수에는 너그러운 편이다. 한 측근은 “김 지사는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결과를 놓고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김 지사와 참모진 간에는 형과 아우 같은 정서가 흐른다고 주변에서 전한다.

그는 평소 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한 미국 링컨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 막상 정치하는 스타일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군주에게도 할 말을 하는 정암 조광조와 닮았다는 평이다. 그래서 “일상적 지도자라기보다는 위기상황에 어울리는 지도자”라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좌승희 전 경기개발연구원장,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 등과 친분이 두텁다. 국회에서는 차명진·임해규·원유철 의원 등이 가깝다. 측근 참모로는 허숭 경기도시공사 상임감사, 이한준 경기도시공사 사장, 노용수 전 경기지사 비서실장, 최우영 전 경기도 대변인 등이 손에 꼽힌다. 황장엽 망명을 특종 보도한 기자 출신 김용삼 대변인은 최근 합류한 아이디어맨이다. 김 지사가 방송 노출이 잦아지면서 영입한 방송작가 출신 이성지 씨도 김 지사를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참모 중의 한 명이다.


▎국회의원회관에서 보좌진과 함께한 정동영 최고위원.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코드가 다른 사람도 끌어들이는 인재 욕심

“그레이트 리스너(작은 소리도 크게 듣는 경청자)가 되고 싶다”

요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부유세’ 도입을 역설한다. 부자 감세를 철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자는 아주 진보적인 제안이다. 그는 얼마 전 서울 신촌의 한 짬뽕 전문 중국집을 찾았다. 이 중국집은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진보적인 조세정책에 일가견이 있는 윤종훈 공인회계사가 생계 차원에서 운영한다. 정 최고위원은 부유세 관련 조언을 구하고자 여러 차례 윤 회계사를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채울 인재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삼고초려한다”고 정 최고위원 측은 강조한다.

실제로 정 최고위원은 정계 입문 12년 만에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또 대선 패배 후에도 사람 관리에 아주 철저하다는 평가다.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조차 “사람 욕심을 너무 낸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그 역시 “정치는 사람이 하고, 역사도 사람이 만든다”는 말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참모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인재를 모두 끌어안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러자면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정 최고위원은 평소 ‘그레이트 리스너(Great Listener)’라 해서 “작은 소리도 크게 듣는 경청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치에서 잠시 손을 떼는 순간에도 인맥 관리에는 손을 떼지 않는다.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패하자 정 최고위원은 당의장직을 내놓고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에 도착한 그는 지방선거를 도와줬던 국회의원과 지인 등 약 2000명에게 자필로 쓴 엽서를 보내 안부를 묻고 감사의 뜻을 표했을 정도다.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참모들과 회의 중인 정세균 최고위원.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를 지낸 그답게 그는 전국에 참모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참모를 기용할 때도 지연·학연을 따지지 않는다. 그는 젊고 유능한 개혁적 지식인을 중용했던 세종과 정조의 용인술을 높이 평가한다.

정치권 측근으로는 박영선·이종걸·최규식·문학진·신건·주승용 민주당 의원과 이용희 자유선진당 의원이 있다. 정 최고위원은 올 상반기에 복지와 평화를 주로 연구하는 정책연구소를 개설한다. 학계에서는 정책자문단 연락 간사 역할을 맡은 김관옥 계명대 교수를 비롯해 박명광 전 경희대 부총장,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조성일 중앙대 교수 등이 브레인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이성재 변호사도 외곽 지원그룹에 속한다. 측근 참모들로는 이재경 전 대선후보비서실 부실장, 이상호 민주당 청년위원장, 이학노 민주당 사무부총장, 장현철 보좌관 등이 활동한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저돌적인 변신을 모색하는 정치 모범생

“지역구민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열라”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책장 위에서 그를 내려다본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정치에 입문시켜준 은인이고, 노 전 대통령은 정 최고위원을 원내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당 의장으로 키워준 후견인이다. 그는 비교적 순탄하게 당 대표와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랐고, 모범생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늘 마음에 담아두는 경구도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세 사람이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공자님 말씀이다. 사람을 대할 때 선입견을 안 가지려고 노력한다. 특정 참모가 일을 크게 그르쳐도 그 사람을 지목해서 비판하는 일이 없다. 질책을 하더라도 “자네들 왜 그러나”는 식으로 전체에게 경각심을 불어넣는다. 흔히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출신지역 한계를 벗고자 캠프를 구성할 때 지역안배를 하기도 한다. 정 최고위원은 전북 출신이면서도 그런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정 최고위원은 사람을 정치적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졌기에 인재등용 시 지역안배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지역구민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열어두라고 참모진에게 요구한다. 민원인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오더라도 일단 성실히 듣고 따져보는 게 지역구 출신 의원의 도리라고 가르쳐왔다. 참여정부 시절 입각하기 전까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지역구민에게 공개했다. 시골의 할머니도 “세균이에게 전화해야지”라며 다이얼을 돌리면 비서를 통하지 않고도 그와 직접 연결됐다. 진안·무주·장수·임실 지역구에서 4번 연속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동안 득표율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린 것도 이처럼 몸을 낮추는 자세가 한몫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랫사람들이 역량을 마음껏 펼치도록 재량을 부여한 한고조 유방을 좋아한다. 요즘 그의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모범생의 길보다는 안 가본 길, 더욱 저돌적인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건의가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정 최고위원은 2월 대선 싱크탱크인 ‘국민시대’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 윤성식 고려대 교수, 고형일 전남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박인환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등 개혁 성향의 교수와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경·박병석·강기정·최재성·김유정 민주당 의원과 윤호중 전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내 486그룹이 지지기반을 형성한다. 국회의원 회관 보좌진으로는 쌍용종합상사 시절 부하직원으로 인연을 맺은 강귀섭 보좌관을 비롯해 7급 수행비서와 9급 여비서는 정 최고위원 국회 입문 이후 14년간 한솥밥을 먹은 식구다.


▎2007년 대선 직후 해체된 ‘국가발전전략연구회’에는 안경률(앞줄 맨 왼쪽)·이군현 의원(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이재오 특임장관

몸을 던져서라도 자기편을 만드는 흡인력

“진정성과 성실함이 최고의 전략”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군현 의원은 이재오 특임장관과 함께 ‘개헌론 쌍끌이’ 의원으로 분류될 만큼 이 장관과 가깝다. 그는 이 장관의 중앙대 후배이자 2000년대 초반 교총회장을 지내면서 한나라당 원내총무였던 이 장관과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정작 이 의원을 이 장관 사람으로 만든 흡인력은 다른 데 있었다.

이 의원은 초선의원 시절이던 2005년 7월 부친상을 당했다. 유체가 안치된 중앙대 병원에는 상주인 이 의원보다 이 장관이 먼저 도착해 화환 배치며, 문상객 접대 등 사실상 상가의 호상(護喪) 구실을 했다. 이 장관은 “이 사람아! 상주는 제일 먼저 오는 조문객들부터 챙겨야 하는 법일세”라며 황망해하던 이 의원을 다독거렸다고 한다.

더 놀라운 일은 사흘 뒤 장지에서 벌어졌다. 아침 일찍 유가족을 태운 운구차가 장지인 고양시 벽제추모공원에 들어섰을 때 멀리 공원 정상 언저리에 자리한 묘소 예정지에 이 장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고 한다. 이 의원은 그때를 돌이키며 “그런 상황에서 누구라도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온갖 어려움이 닥쳐도 그를 등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장관은 매사 이런 식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라도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정치인이다. 출판기념회든 선거든 문상이든 일이 생기면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일일이 다 둘러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동료의원들도 그가 정치인 중에 가장 부지런한 의원에 속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게다가 한 번 옳다는 판단이 서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고 나간다. 부지런한데다 저돌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측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한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처럼 인간적인 정을 쏟으며 끈끈한 관계를 맺기에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이 장관은 “진정성과 성실함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김구 선생을 롤모델로 삼는다. “조국의 독립에 몸과 마음을 바쳤고, 생각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고 포용해내는 소박한 인품을 존경한다”고 이 장관은 밝혔다.

그는 한나라당 최대 계파인 친이계의 수장으로 막강 인맥을 자랑한다. 정치권에서는 안경률·이군현·진수희·권택기·김용태 의원 등 친이계 다수가 이 장관 라인으로 분류되며, 학계에서는 이현복 한양대 교수, 윤건영 연세대 교수, 전영섭 서울대 교수, 주용식 중앙대 교수가 대표적 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경향신문> 정치부장 출신의 김해진 특임차관은 이 장관을 취재원으로 만나 20년 이상 인연을 맺어왔다.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천호선 최고위원(앞줄 맨 오른쪽) 등과 자리를 함께 한 유시민 원장.
공적인 문제의식으로 교감하는 리버럴리스트

“국민에게 호감을 얻고 사랑받도록 노력”

야권의 지지율 1위 정치인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3월 1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혁정신을 잇는 국민참여당의 대표가 된다. 그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미니 정당인 개혁국민정당의 공동 대표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정당을 제대로 이끌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그가 앞으로 당 대표로서 어떻게 조직을 운용하고, 용인술을 보여줄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대선이 1년 반 이상 남은 현시점에서 대선주자 중심의 보도를 반기지 않는다며 논평을 사양했다.

주변의 전언에 따르면 유 원장은 사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캠프’라는 개념도 수긍하지 않는다. 아마 본인도 대선에 출마하면 선거대책본부 같은 기구를 만들겠지만 전적으로 당이라는 공조직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한다. 철저히 공조직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비전을 실현하겠다는 설명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혈연·지연·학연과 같은 사적인 관계가 아닌 공적인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깊게 교감한다. 가치와 일을 중심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말이다. 생각이 같은 이들과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긴밀한 의사소통을 하지만 경험이나 생각이 다른 이들과의 관계 폭은 좁은 편이다.

그는 피라미드처럼 계층화된 권력구조보다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노항래 참여정책연구원 부원장이 전했다. 유 원장의 사고나 행위는 또 리버럴하고 독립적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소명의식이나 책임의식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경향도 없지 않았다고 노 부원장은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당 대표에 취임하면 당의 요구와 시대의 요구에 책임 있는 자세로 충실하게 응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호감을 얻고 사랑을 받는 게 기본인데 지금까지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면 제가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등 광범위한 소통과 수용적 자세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기성정치에 신물이 난 20·30대 젊은 층은 연고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탈권위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유 원장의 면모에 열광한다.

유 원장은 얼마 전 작고한 이영희 선생을 사표(師表)로 받든다고 주변에서 말한다. 역사의식과 책임의식이 투철하고 삶은 매우 리버럴했던 이 선생의 삶을 존중한단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천호선·이광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도 든든한 우군이다. 학계에서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김수현 세종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정책연구원에 몸을 담았다. 민주노총 공공연맹정책국장과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을 지낸 노항래 부원장도 1980년대 노동운동 시절부터 연을 맺었다.

201104호 (201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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