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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가 불안하다>> KTX, 맘 놓고 타지 못할 세 가지 이유 

‘괜찮다’만 되풀이하는 코레일… 모터블록·배터리 등 핵심부품 이상 가능성 제기돼
1명의 중상자 발생 전에 경상자 29명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 가슴에 새겨야 

한두 번이 아니다. KTX가 심상치 않다. 사고는 계속되고 승차감도 마뜩잖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큰일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몇몇 직원은 승객의 불안함을 공감한다고 말하고, 전문가들도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한다.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KTX 사고를 집중 추적했다.

▎잦은 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KTX가 4월 1일 개통 7주년을 맞았다.

평범한 어느 날, 미국 풀러 조차장에 폭발성 화물이 실린 777호 기관차를 다른 선로로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하지만 정비공의 부주의로 777호 기관차는 승무원 하나 없이 시동이 걸려 굉음과 함께 통제불능의 폭주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시속 100km로 달리는 거대한 괴물 폭탄이 돼 도심을 관통한다. 영화 <언스토퍼블(Unstoppable)>의 내용이다. 다행히 두 기관사의 기지와 희생으로 열차는 멈춰 서지만 그 위험성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실제 미국에서 일어난 열차사고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열차의 가장 큰 매력은 안전성이다. 사고율이 낮기 때문인데 그 덕에 열차는 200년 가까이 가장 매력적인 교통수단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고 마냥 안전한가? 아니다. 1998년 6월 독일 고속열차 이체(ICE)는 뮌헨을 출발해 시속 200km로 함부르크로 향하던 중 승용차와 충돌하면서 탈선했다. 101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다쳤는데 조사 결과 차바퀴를 고정하는 링 하나가 파손되면서 일어난 사고였다. 사전 정비만 충분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인재인 셈이다.

2005년 일본 효고(兵庫)현에서도 승객 106명이 사망하고 562명이 다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정시보다 지연되자 기관사가 급커브 구간에서 속도를 내다 열차가 전복돼 인근 아파트에 부딪혔다. 독일이나 일본이나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 ‘괜찮겠지’ 하는 방심이 사고를 키웠다.

연이은 KTX의 사고 소식에 국민의 불안이 커졌다. 최근 서너 달 사이 20건이 넘는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은 터널 안에 멈춰 선 KTX 안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고 열차 운행이 지연되면서 다음 승객도 불편을 겪었다.

2월 11일 광명역 인근 일직터널에서 첫 탈선사고가 일어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우송대 철도차량시스템학과 장대성 교수는 KTX의 구조상 다른 나라의 고속열차와 달리 전복 위험은 낮다고 설명했다. “다른 고속열차의 경우 1량당 2개의 대차(열차의 바퀴에 해당하는 부분)가 달려 있지만 KTX는 동력차(열차의 제일 앞 칸)를 제외한 나머지 객차를 관절형 대차(그림 1)로 연결해 탈선하더라도 전복할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객차와 객차 사이를 대차로 연결함으로써 한 량이 탈선하더라도 앞뒤 객차가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에 위험성이 낮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덜 위험하다는 뜻이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최근 들어 발생한 KTX 사고의 경우 원인이 다양하고 탈선까지 발생한 만큼 총체적인 안전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TX의 운행을 책임지는 한국철도공사 측은 작은 고장이 발견됐을 때 운행을 멈추고 점검했을 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전문가들은 잔 고장이 계속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해 열차 품질 재점검과 관리체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최근 발생한 KTX 사고와 관련한 의문점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1) ‘한두 번도 아니고’

모터블록 이상징후


최근 발생한 KTX 사고는 대부분 모터블록·배터리·신호체계 등 열차 운행의 핵심적인 부분이 고장을 일으켜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모터블록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총 10여 차례 모터블록의 이상으로 KTX가 멈춰 섰기 때문이다.

모터블록은 KTX 내의 전력변환장치로 견인전동기에 전원을 공급하고 제어하는 장치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전기량을 조절해 바퀴를 굴리는 열차의 핵심적인 장치다.

2월 25일 화성 매송역 인근에서 KTX가 정차한 이유는 모터블록 안에 있는 동력접촉기의 불량으로 열 감지장치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틀 뒤인 27일에도 서울을 출발한 KTX 열차가 신경주역에서 모터블록 이상으로 정차했다.

3월 20일에는 더욱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 승객 500명을 태우고 부산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TX 130호 열차가 금정터널에 3km가량 진입한 후 멈춰 섰다. 모터블록 고장으로 출력이 모자라 정상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고 당시 철도노조 측은 “앞부분에 장착된 3개의 모터블록 중 2개 이상에서 고장이 발생해 정상 출력을 내지 못했고 응급상황 시 전력을 공급해주는 보조장치도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3개의 모터블록 중 1개가 고장 나도 정상 출력을 낼 수 있다.

KTX-산천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13일 시운전 중이던 KTX-산천 열차는 모터블록 오작동으로 금정터널 안에 멈춰 서 5시간 넘게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2주 뒤인 27일에도 천안아산역에서 모터블록 고장으로 정차했다. 공사 측은 “일시적인 문제며 기준에 맞게 검수하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몇몇 전문가는 이쯤 되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KTX 제작에 참여한 A교수는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을 보면 부품 자체의 결함이 의심된다”며 “모터블록 고장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수조사 등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학회 등에 발표된 논문을 살펴보면 KTX 모터블록의 접촉기·계전기·각종 제어카드 등에 생긴 문제로 실제 성능부족은 물론 통신장애에 따른 거짓 성능부족까지 빈번히 발생했다. 철도공사는 하자보증기간(2004년 4월~2006년 3월)이 끝난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KTX 제작사인 알스톰의 모터블록 전문가로부터 1년 동안 추가 자문을 받기도 했다. 2004년 KTX 개통 이후 꾸준히 모터블록의 성능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검사받고 이틀 뒤 사고 났다

KTX에 장착된 모터블록의 제조사는 두 곳이다. 알스톰과 현대중공업. 이 중 어떤 모터블록에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철도공사 측에 물었다. 철도공사 측은 “두 제품 모두에서 고장이 발생했다”면서도 “주기적으로 검수하고 있으니 큰 걱정 말라”고 답변해왔다. 하지만 철도공사 측이 그렇게 잘한다고 강조하는 정기적인 검수도 믿기 힘들다.

2월 26일 동대구역을 출발한 KTX-산천 열차는 김천구미역 인근에서 출력 이상으로 정상 속도를 내지 못하고 160km/h로 감속 운행해 대전역으로 들어왔다. 예정시각보다 26분 지연됐다. 승객은 예비열차로 갈아탔다. 결국 열차는 목적지인 서울역에 39분 늦게 도착했다.

사고 차량은 KTX-산천 6호와 7호로 두 차량을 붙여 운행하는 복합편성(20량) 차량이었다. 문제는 이 6호와 7호 모두 불과 이틀 전인 2월 24일 주행거리 3500km마다 받는 ‘일상검수(ES)’를 받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6호는 사흘 전인 2월 23일 5만km에서 5만5000km 주행 시 받아야 하는 ‘체계검수(SWT)’까지 받았다. 엄격한 검수와 정비를 거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던 철도공사 측의 주장을 믿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2) 첫 개발한 KTX-산천

제작기간 충분했나?


KTX-산천은 우리나라가 독자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첫 번째 고속열차다. 프랑스 기술을 바탕으로 한 KTX에 이어 등장한 모델이다. 현재 철도공사는 기존의 KTX와 KTX-산천 두 가지 모델을 모두 운행한다.

KTX-산천은 2006년 사업을 수주한 현대로템이 독점 제작했다. 1996년부터 시작된 ‘G7고속철도기술개발사업’의 결과물로 탄생한 ‘HSR-350x’의 제작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 2008년 11월. 첫 양산차가 출고됐고 2009년 2월 고양차량사업소로 회송돼 시운전을 거쳐 지난해 3월 2일 운행을 시작했다. 2004년 개통한 KTX는 그해 81건의 고장 사고가 발생했으나 점차 줄어 2007년부터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운행을 시작한 KTX-산천은 10개월 동안 총 28건의 사건이 발생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표)

올해도 김천구미역에서 기관 고장으로 운행이 지연되고 광명역에서 탈선사고를 일으키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KTX가 46편성(대)을 운영하는 동안 25건의 사고가 발생한 데 비해 KTX-산천은 아직 19편성(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고율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진다.

장대성 교수는 ‘고장률 그래프’를 예로 들면서 “차 안에 있는 모든 부품이 개별적으로 성능검사를 마쳤더라도 완성품이 됐을 때는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시스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그림 2) 지금은 개발 후 안정화 단계에 접근하는 중이기 때문에 KTX처럼 곧 안정을 찾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A교수는 “설계와 부품을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가 있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칸센을 만드는 JR나 TGV를 생산하는 알스톰 등은 모두 30년 이상 노하우를 축적해온 기업이지만 현대로템은 그렇지 않다”면서 “그런데도 제작을 독점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물론 1996년부터 ‘G7고속철도기술개발사업’을 주도하면서 빠르게 고속철도 제작기술을 습득했지만 고급 기술분야인 만큼 노하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승객 불안 증폭시키는 승차감도 문제

한 철도 관계자는 “KTX-산천 개발 당시 철도공사가 지나치게 개발을 독촉한 일도 문제”라며 “개발이 늦어지면 벌금을 물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 만큼 빠른 제작을 요구했다고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 새마을호나 무궁화를 발주할 때처럼 금방 만들어내길 원해서는 안 된다”며 “독일 지멘스의 ICE는 두 번째 모델에서 세 번째 모델로 넘어가는 동안 설계에만 30개월을 투자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최고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해외 기업들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개발할 만큼 안전이 중시되는 분야라는 뜻이다. 몇몇 전문가들이 첫 개발이니 좀 더 체계적인 검증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이어 터지는 사고와 함께 KTX-산천의 불편한 승차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불안감에 불편함까지 더해지자 승객의 불만도 늘었다. 취재 중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KTX-산천 열차를 타고 체험해봤다. 차량 뒤쪽 부분에서 떨리는 현상이 심하다는 지적이 많아 제일 뒤 객차인 자유석에 자리 잡았다. 실제로 300km/h 전후로 고속주행할 때 객차가 흔들리는 현상이 느껴졌다. 또 바닥에 부드럽게 밀착돼 주행한다는 느낌이 없었고, KTX에 비해 약간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의자의 재질이 딱딱해 강하게 전달되는 바닥의 진동도 거슬렸다. 함께 탑승한 회사원 박지환(43) 씨는 “차를 타도 마찬가지인데 속도를 낼수록 바닥에 가라앉는 듯한 승차감을 가진 차가 있고 그렇지 않은 차가 있다”며 “KTX-산천을 세 번째 이용하는데 여전히 고속에서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모든 고속열차에서 뒤쪽 객차 부분에 진동이 발생하는 스웨이(sway) 현상이 약간 나타나지만 KTX-산천에서 조금 더 크게 느껴지기는 한다”며 “붕 뜨는 느낌도 KTX보다 동체가 조금 높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올라가 생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3) 국익 앞세워 입 막는 철도공사

국민은 불안을 느끼는데 당사자인 철도공사 측은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사장부터 문제다. 허준영 사장은 2월 KTX-산천 열차가 김천구미역 인근에서 기관 고장으로 멈춰 선 직후 가진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사고는 무슨! 사람이 다쳤습니까? 좀 이상신호가 들어오니까 그걸 점검하고 다시 출발한 건데, 그걸 가지고 무슨 큰일 난 것같이. 그냥 어디까지나 작은 고장인데”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논란이 커지자 다음날 “안전점검을 강화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나흘 후 국회 업무보고에서 여야 의원들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뿐. 허 사장은 그 후에도 문제점을 개선하기보다 조용히 넘어가려는 태도였다. 그러면서 국회를 돌며 여야 의원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브라질 고속철 사업 수주를 앞두고 있으니 국익 차원에서 비판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인지 3월 4일 업무보고 이후 부산 금정터널에서만 두 차례나 열차가 정지해 부산역으로 회차하는 일까지 발생했지만 국회 국토해양위원회는 잠잠했다.

철도공사 직원들도 몸을 사리는 눈치다. 국회 모 보좌관은 “자체조사보고서 등 자료를 요구했더니 ‘파일이 없다’ ‘책이 한 권밖에 없어서 드릴 수 없다’ 등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더니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제출했다”며 철도공사 직원들의 지나친 자기방어 행태를 비판했다.

철도노조 역시 인력감축이 사고의 근본원인이라며 문제제기를 했지만 정작 자체적으로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은 없다. 결국 노사 모두 제 식구 감싸기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정부와 철도공사가 브라질 고속철 사업에 열을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브라질 고속철 사업을 수주한 후 성공적인 수행 실적을 쌓을 경우 향후 미국과 인도 등 해외 고속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속철 분야는 ‘제2의 원전’이라 불릴 만큼 큰 시장이다. 브라질 고속철 사업은 리우데자네이루와 캄피나스를 잇는 511km 구간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사업비만 200억 달러(약 22조원)로 추산된다. 하지만 운영적자를 보전해주는 대책이 없는 등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가 제기돼 일본과 프랑스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단 한 관계자는 “당장의 이익보다 해외 고속철 건설 실적을 남기는 일이 더 중요한 우리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익이 없는 곳에 기업이 갈 리가 없다. 처음 책정한 액수보다 사업비가 크게 늘어 민간기업이 부담하기에는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는 판단으로 현대엠코·코오롱건설 등 4곳은 컨소시엄에서 빠졌다. 사업 참여를 검토해온 롯데건설과 삼성물산 등도 계획을 백지화했다고 알려졌다. 4월 11일로 예정됐던 입찰은 또다시 7월로 연기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생각만큼 수주가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한 식구 ‘조사위원회’ 믿을 수 있나

4월 5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2월 발생한 광명역 KTX 열차 탈선사고의 사고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위원회는 터널 내 밀착감지기 케이블 교체 공사 당시 7mm짜리 고정너트가 없어져 선로전환기에 장애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작업을 했던 외부업체 직원이 나사를 조이는 과정에서 이를 빠뜨렸다는 것. 장애가 발생하자 신호시설 담당직원이 무단으로 신호기를 조작해 탈선이 발생했다는 결론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신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조사위원회가 국토해양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철도공사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철도사고가 발생하면 철도공사 측에서 자체조사를 실시하고 일정 기준 이상의 사고만 위원회가 조사를 실시하는데 자체조사 결과를 용인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철도공사나 조사위원회나 국토부 소속 기관이다 보니 엄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2월 11일 광명역 인근 일직터널에서 탈선한 KTX-산천 열차.

B교수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항공과 철도 분야의 조사위원회가 한데 묶여 있는 것도 문제”라며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유럽 국가들처럼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대책 발표한 정부 실천은 ‘글쎄’

1930년대 보험사의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던 하인리히는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하면서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한다.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명, 부상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발생한다는 법칙이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부른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뜻. 즉 큰 사고는 갑작스럽게 발생하지 않고 반드시 작은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는 의미다.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나 재난과 관련해 널리 활용되는 법칙이다.

4월 4일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 주요 도시를 KTX 고속철도망으로 연결한다는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경부고속철도 368.5km에 불과한 고속화 철도(230km/h 이상)를 2362km로 확대해 전국 주요 거점을 1시간 30분대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KTX의 혜택에서 소외돼온 호남권 등 주요 지역을 균형 있게 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정부의 야심 찬 계획 앞에서 ‘하인리히 법칙’이 떠오르는 이유다. 20년 넘게 철도 현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한 직원의 말이 마음을 울렸다.

“안전하지 않다면, 혹은 약간의 위험이라도 있다면 KTX에 국민을 태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해외에 팔 수도 없다. 국익도 중요하고 수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교통수단의 기본 목적은 타는 곳부터 내리는 곳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

4월 13일 철도공사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기술인력을 확대하고 안전조직을 독립화하는 안전강화대책을 발표했다. 괜찮다더니, 사고가 아니라더니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허 사장은 “안전을 보장하는 전사적인 노력을 하겠다”며 “항공기 수준으로 부품을 이력관리하며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KTX의 경우 고장이 우려되는 부품을 예방 차원에서 전량 교체하고 주요 부품의 교체주기를 단축하기로 했다.

KTX-산천은 공기배관과 고압회로 등 고장이 반복되는 10종의 부품을 교환하거나 기술적 보완을 추진키로 했다. 제작사인 현대로템에는 현재 73명인 하자·품질관리 조직을 93명으로 증원해 상주토록 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그동안 ‘걱정 말라’며 터무니없는 위로만 반복한 셈이다. 계획을 전해 들은 한 시민은 “진작 했어야 할 일을 선심 쓰듯 발표한다”며 “그대로 실행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어찌 됐건 계획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불안을 신뢰로 바꾸는 건 철도공사의 몫이다.

201105호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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