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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수교 20주년 한·중관계의 오늘과 내일 

전 주중대사 4인(황병태·정종욱·권병현·신정승)에게 듣는다 

“활발한 소통과 이해로 서로 득이 되는 이웃 돼야” 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두 나라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필수적 동반자로 거듭났다. 한·중 관계의 발전적인 도약을 위해 전 주중대사 4명으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1992년 8월 24일 수교 이래 한·중관계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이뤄냈다. 이제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처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두 나라가 됐다. 수교 당시 64억 달러에 그쳤던 교역량만 하더라도 2011년 말 기준으로 35배 이상 늘어난 2천139억 달러를 기록했다. 양국간의 인적 교류도 크게 늘어 1992년 13만 명 수준에서 2011년 말 6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한편 양국 사이에 당장 해결해야 할 불편한 현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당장 제주도 남쪽 이어도(중국명 쑤옌자오·蘇巖礁) 관할권 문제로 벌어지고 있는 한·중 외교 갈등이 대표적이다. 서로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해안선에서 370㎞ 이내의 경제 주권이 인정되는 수역) 안에 있다”는 주장에서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중 간에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 조업’ 문제에 이어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까지 겹쳐 있는 상황이다.

“싫든 좋든 곁에 있는 숙명적 이웃”

그런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신정승 전 대사는 “중국은 우리와 붙어있는 큰 나라다. 싫든 좋든 곁에 두고 살아야 할 숙명적 이웃”이라고 교과서적 정답을 먼저 내놓았다. 권병현 전 대사는 “중국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에겐 가장 가까운 나라,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가 되었다”고 말했다. 권 전 대사는 “우리 입장에서 전통적인 동맹국가인 미국과 함께 지금은 중국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두 축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정종욱 전 대사는 “수교 이후 지금까지 한·중관계는 경제 위주로 밀월기라고 할 만큼 순항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런 좋은 시기는 지나갔다. 앞으로는 헤쳐나가야 할 도전의 벽이 굉장히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정 전 대사는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李光耀)의 말을 인용해 “중국은 우리로서는 활용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국가”라면서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국가의 국격, 운명이 결정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앞에서 일부 살폈듯 한·중 수교 20년의 성과는 한마디로 “눈부셨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교 초창기에는 이 정도로 한·중 관계가 발전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잘 아는 대로 1992년 한·중 수교 당시는 동서냉전이 끝난 직후였다.

그 이후 국가 간에는 이데올로기보다는 경제적 실익을 앞세우는 실용주의가 더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중 수교는 1978년부터 추진된 등소평 시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이 맞물려 낳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수교 초창기 한·중관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전 주중대사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권병현 전 대사는 당시 한·중 수교는 “우리 외교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힐 만큼 매우 어렵고, 중요한 교섭이었다”면서 그 이후는 “단절되고 막혔던 양국 관계의 급속한 복원과정이었다”고 한·중 수교 20주년의 의미를 부여했다.

황병태 전 대사는 “당시 한·중 관계는 반쪽외교였다.”면서 “중국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정치 문제는 북한과, 경제 문제는 한국과 교섭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황 전 대사는 “수교 초기 북한을 한반도 문제 상수에서 변수로 바꾸는 것이 외교적으로 1차 난제였다”며 “6자회담이 열리면서 한·중 외교가 정상화됐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해 남북한과 동시에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회복한 한·중 간의 정상적 외교관계가 크게 뒤틀리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3월로 2주기를 맞은 ‘천안함 사건’, 같은 해(2010년) 10월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 그것이다. 이 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협력해왔다. 반면 중국과는 상의는 물론 통보하는 절차 또한 소홀히 다뤘다.

황 전 대사는 그 이후 지금까지 “중국과 외교적으로 서먹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정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편향 외교정책’을 우려했다. 이어 그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 지금까지는 주로 미국과 상의했는데 이제는 미·중에 대한 등거리 외교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전 대사도 두 사건 때 “중국이 북한 편을 든다는 국민의 불만이 폭발적이었다”면서 북한과 관련된 이런 문제가 “한·중관계의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중관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런 전략적인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실질적 성과를 낳는 단계까지 발전해야 한다”면서 양국에 ‘남다른 결단’을 촉구했다.

북·중관계 염두에 두고 대북정책 펴야

북·중은 익히 알려진 대로 가장 가까운 우방관계다. 2011년 양국 간 우호친선조약을 맺은 지 50주년을 맞았을 정도로 그 역사도 오래됐다. 특히 북한은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대중국 의존 강도가 시일이 갈수록 높아진다. 이런 북·중관계는 우리에게는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권 전 대사는 “북한이 남한보다는 중국에 기울어져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나쁘지 않지만, 좋지 않을 때는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북·중관계의 변화를 염두에 둔 대중·대북정책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런 중국의 대북정책이 남북 간 대결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냐는 물음이 국민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한반도 통일을 중국이 바라지 않거나 또는 적극적으로 방해하지 않느냐고 의심하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신 전 대사는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바란다”고 말했다. 신 전 대사는 “중국은 북한이 장기적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군(先軍)’ 정치를 내세우기보다는 당 중심으로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고, 이를 은근히 유도하는 부분이 있다”고 특별히 언급했다. 중국은 자국의 경험에 바탕해 “당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전 대사는 김정은 시대의 북·중관계는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전 대사의 분석에 따르면 김일성 전 주석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호감 반, 반감 반’ 정도였다. 김 전 주석은 항일투쟁 때부터 중국과 특별한 인연으로 호감의 시기가 꽤 길었지만, 1992년 한·중 수교 후 중국을 향해 배반, 실망, 좌절감 등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했던 17년 동안 중 북·중관계가 “대단히 안 좋았다”고 정 전 대사는 평가한다. “결정적으로 북·중관계가 불편한 사이가 된 것은 김 전 위원장이 주도한 북핵 프로그램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 전 대사 분석이다. “중국은 전반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핵 만큼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북·중관계가 껄끄러워졌고, 알력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를 맞아 “중국은 북한을 끌어안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중국의 기본 발상은 북한을 도와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찾게 해 자국의 부담도 줄이고 북·중관계를 좀 더 정상적으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정 전 대사는 또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중국의 진짜 의도는 북한을 속방화 내지 동북 제 4성화’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는 보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북·중관계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에 일어났다. 미국이 한미연합훈련 명분으로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상에 진입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대북압박 목적이 분명해 보였지만, 당시 중국은 한사코 북한을 두둔하며 미 항모의 서해 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중국 일부 언론에서는 ‘북·미 전쟁’ 발발 가능성을 언급하며 격렬한 반응을 나타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단순한 ‘북한 편들기’로만 비칠 법했다.


그러나 중국의 속내는 이와 달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실 서해는 중국 앞바다 격이다. 그리고 해안선을 중심으로 중국의 핵심 전력이 배치돼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중국이 “해안 미사일 기지와 해군의 배치 등 핵심 전력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일을 우려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중국이 말한 대로 “10분 내로 중국 본토가 미사일 사정권에 들어가고, 전투기로 수분 내에 수도 베이징까지 타격할 수 있는 거리”라는 점에서 중국이 느꼈던 위협적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 때문에 미·중 간의 일전 가능성까지 제기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만큼 미·중 간의 군사적 대결은 한반도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군사력을 전 주중대사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막강해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1990년 중반 이후 군사력 증강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최근에는 ‘대양 해군’을 지향하며 첨단 구축함, 잠수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항공모함까지 실전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고 알려진다.

중국의 2012년 국방비는 약 6천700억 위안(약 118조원)에 이른다. 미국의 2013년 회계연도 기준 국방비 약 6천130억 달러(약 545조원)의 약 22% 수준이다. 중국은 2011년보다 11.2% 증가했고, 미국은 전년보다 약 9% 줄었다. 중국의 국방비는 2000년대 이후 2010년을 제외하고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비율은 중국이 1.3% 수준으로 2%를 넘는 미국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신 전 대사의 말처럼 “미국에 대응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는 큰 부담”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미·중 관계 전망과 우리의 대응

이에 대한 정 전 대사의 분석은 이렇다.

“최근 중국은 매년 10% 이상씩 국방비를 늘리고 있는 반면 미국은 재정적자로 오히려 국방비를 줄이는 실정이다. 그래도 양국 국방비의 절대 액수를 비교하면 미국이 중국의 거의 5배에 가깝다. 또 군사력은 국방비를 투입한다 해서 곧바로 증강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중국의 제 5세대 지도부 임기가 끝나는 10년 안에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불균형이 결정적으로 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군사력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의 더 결정적인 차이는 ‘국방 전략·전술’이다. 미국이 현재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경찰’ 임무를 수행하는 반면, 중국은 본토 방위와 타이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 전 대사는 ‘미·중관계 전망과 우리의 대응전략’을 묻는 질문에 “우리 하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19세기 조선시대처럼 양쪽에서 휘둘리면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목표와 외교원칙을 분명히 정하고 이를 실행할 능력을 갖춘다면 관련국도 우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미동맹 강화를 추구하는 미국이나, 한반도에 영향력을 높이려고 하는 중국·러시아가 우리 뜻을 존중할 수 있도록 정말 지혜로운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중국 역시 세계무대에서든, 일정한 지역 내에서든 패권국가화를 추구할지 여부다. 실제로 중국은 지금은 조어도(釣魚島, 다오위다오: 일본명 센가쿠열도), 남사군도(南沙群島, 난샤췬다오) 등 영토 문제에 국한돼 있지만 때로는 무력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황 전 대사는 “군사력으로만 보면 이미 패권국가로서 잠재력을 갖췄다”고 보았다. 하지만 “군사적인 패권국가가 된다는 것과 무력을 실제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때는 미국에 대항한다고 해서 군비 확장을 꾀했지만 지금은 후퇴하는 모습이다. 미국이 무인폭격기(드론)와 같은 첨단무기로 안방에 앉아서 전쟁을 벌이는 시대에 중국 또한 대항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 중국의 가장 큰 힘은 군사력보다는 경제력에서 나온다.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2011년 GDP 규모는 약 47조1천500억 위안에 달했다. 2011년 중국 GDP 성장률은 연간 9.2%를 기록했다. 중국은 경제력으로는 2010년에 이미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G2 반열에 올라섰다. 2020년께는 미국마저 제치고 GDP로 따져 세계 1위가 되리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신 전 대사는 “중국이 앞으로 연간 경제성장률이 과거 30년 동안처럼 연간 9%가 넘는 고도성장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중국이 금년도 경제성장률 목표를 7.5%로 잡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보다 1%가량은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5년, 10년 뒤에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가 너무 성장해도, 너무 주저앉아도 우리에게 애로사항이 생기긴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도 필수불가결한 파트너”

그렇지만 한·중 양국의 경제협력은 날이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는 게 전 주중 대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 예로 한·중 교역량이 “미국과 유럽연합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거나 “중국에서 얻는 무역 흑자가 전 세계 나머지 국가에서 얻는 것보다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권 전 대사는 “우리에게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필수불가결한 파트너”라면서 “서로 호혜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는 데 우리는 부단히 지혜를 짜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주중 대사들은 똑같이 “중국이 몇 년 전부터 경제 정책의 기조를 바꾸고 있다”는 데 주목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중국은 주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생산 거점형, 수출 위주의 대외 교역형 경제구조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제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무역 중심에서 내수 진작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정 전 대사는 “앞으로 경제 측면에서 기술 개발 등 경쟁 측면이 더 빠르게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를 예상한다면 “한·중 간 경제협력 방향도 상생에 바탕한 새로운 전략, 새로운 논리로 다시 짜야 한다”고 그는 주문했다.

중국의 경제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기에 한·중 FTA 문제가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한·중 FTA가 체결되면 발효 후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이 최대 3%가량 늘어난다는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연구원(KEIP)의 분석이 최근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농업 분야에서 한·미 FTA나 한·EU FTA보다 광범위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됐다. 앞의 분석에 따르면 한·중 간 농업분야 생산 규모의 차이가 25배에 이르고, 중국 농산물 값이 싸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렇다.

신 전 대사는 한·중 FTA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특히 강조했다. “우리가 방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개척하는 데 다른 나라보다 유리한 점이 많은 편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면 한·중 FTA를 잘 활용해야 하고, 그 결과는 교섭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한·중 FTA 문제에 대해 황 전 대사는 “문제는 농산물이다. 지금도 중국 농산물이 밀려 들어와 농민들이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다. 농산물 문제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두 교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기다 올해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강국의 지도자가 한꺼번에 교체되는 정치적 격변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부터 12월 대선에서 누가 될지는 안갯속이지만 어떻든 대통령이 바뀔 예정이다. 중국도 올가을 후진타오(胡錦濤)에서 시진핑(習近平)으로 권력 이양이 확실시된다. 북한 역시 지난해 12월 김정일의 사망으로 김정은 체제가 열렸다. 러시아는 이미 ‘강한 러시아’를 외치는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도 올해 11월 대선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결정짓는다.

중국 지도부 교체 후, 외교정책에 이변 없다

다만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제 5세대 지도부가 예정대로 등장하면 중국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변화할 지가 초미 관심사다. 전직 주중 대사들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의 체제 특성상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지도부가 바뀌어도 국가 정책은 기본적으로 당이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서다. 특히 전반기 임기 5년 동안은 대체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리라는 예상이다.

신 전 대사는 “중국의 지도부 교체는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기존의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25명 중 몇 명이 상무위원으로 뽑히고, 그중에서 차세대 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식”이어서 “중국이 대외정책 기조를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운 체제이고, 또 중국 내에서 그럴 사정이나 필요성이 특별히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제 5세대 지도부가) 빈부격차, 은행 부실, 지역불균형 발전 등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중국의 국내문제 해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공산이 크다”고 그는 예상했다.

다만 정 전 대사는 “접근법에서 제 4세대 지도부는 기술공학적 측면이 강했지만, 제 5세대 지도부는 정치공학적인 측면이 강화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제 4세대 지도부에는 이공계 출신이 많지만, 제 5세대 지도부 핵심인 시진핑(칭와대 법학박사), 리커창(李克强·베이징대 경제학 박사) 예에서 보듯 인문사회계 출신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날이 갈수록 “힘이 세지고 있다”는 데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국민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국을 ‘공포의 대상’이나, ‘두려움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전직 대사들은 입을 모은다. 권 전 대사는 “우리가 의연한 자세로 중국을 대한다면 지금처럼 호혜평등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며 “점점 커지는 중국의 힘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면 우리에게 오히려 큰 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204호 (201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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