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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급진전! 아베 북일수교 쇼크 - 치고 나가는 일본, 쳐다만 보는 한국 

남북관계 물꼬 트는 획기적 협상카드 찾아라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북일수교 아직 멀었다는 판단은 안이한 것, 5·24 조치 뛰어넘는 해법 능동적으로 모색해야

▎4월 25일 청와대 공식 환영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사열을 마친 후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도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외교 이니셔티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일합의가 남북관계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세는 지나치게 여유로운 것이다. 북일관계의 진전이 한반도 정세에 가져오는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내야 한다.

‘아베 외교’가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5월 29일 전격 발표된 북일합의 때문이다. 아무리 보아도 해법이 없을 것만 같던 납치문제에 관해 북한이 재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했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일본은 대북 제재조치의 일부를 해제하기로 약속했다.

납치문제는 2002년 김정일의 사과와 생존자 5명의 일본 귀국, 사망자 8명에 관한 정보제공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북한의 변화도 뜻밖이지만,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에 추가하여 독자적인 제재조치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북한을 압박하던 일본의 변신이 더 놀라웠다.

북한에 관해서는 핵·미사일 문제나 납치문제와 같은 갑갑한 뉴스 이외에는 별로 나올 게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이나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완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이번 북일합의는 일본 사회에 꽤나 후련함을 안겨준 낭보였던 모양이다.

주간지를 포함한 일본 언론들은 이미 사망했다고 하던 납치피해자나 행방불명자 가운데 일부가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정보가 이미 일본 정부에 전달됐다며, 3명·4명·8명·13명 등 제각각의 수를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아베 총리가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생존자를 데리고 귀국할 것이란 관측을 내세우며, 금년 가을이나 11월쯤으로 방북 시기를 예측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는 아베 총리가 8월 중순의 명절연휴(‘오봉’연휴)를 이용하여 중앙아시아 2∼3개국을 순방할 예정인데, 순방 후 귀국하는 항공노선이 자연스럽게 북한 상공을 통과하게 되므로 이 기회에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선데이 마이니치> 6월 22일 자) 이 기사는 8월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북한이 반발하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베가 방북한다면 한미훈련 이전에 할 수밖에 없다는 나름대로의 근거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일부 언론이 북일관계에 관하여 과열보도 양상을 보이는 데 대해, 납치문제의 진전이나 아베의 방북 가능성은 냉정하고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도쿄신문> 6월 7일 자) 2002년에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적 방북을 앞두고 실명까지 거론한 납치피해자의 동반귀국설 보도가 난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했다.


▎5월 15일 집단적 자위권의 헌법해석 변경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외교의 키워드는 ‘능동적 치고 나가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필자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이번에는 다르다”든지, “실제로는 바깥으로 보도되는 것보다 상당히 더 진전되어 있다”든지, “아베 방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사회에 북일관계의 진전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부풀어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듯하다.

일본 사회에 팽배한 북일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

이번 북일합의는 납치피해자 등 ‘일본인에 관한 문제’와 ‘재일조선인의 지위에 관한 문제’로 합의 대상을 한정한 데 특징이 있다. 과거 1991∼92년의 북일 수교교섭 당시에는 기본관계(의제1), 경제관계(의제2: 보상, 청구권), 국제문제(의제3: 핵문제), 기타문제(의제4: 납치·일본인처·조총련교포)로 나눠 협상이 진행됐다. 이번에는 그 가운데 ‘의제4’에 한정하여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북일합의의 또 하나의 특징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점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합의 대상이 ‘모든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에 관한 문제’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겠지만, 이제까지 일본이 북한과의 모든 협의나 합의에서 빠짐없이 핵·미사일 문제를 거론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일본이 비핵화 문제와 납치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주장하던 종래의 입장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두 가지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입장으로 전환한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과거 6자회담의 중요한 고비마다 비핵화 이슈에 덧붙여 납치문제까지 들고 나와 발목을 잡았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 대한 비핵화 조치 실시에 맞추어 중유 등 경제지원을 약속한 2007년 2·13합의 직후가 좋은 사례다. 일본은 납치문제의 해결 없이는 대북지원이 불가능하다면서 중유지원에 불참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이러한 결정을 주도했던 사람이 바로 아베 총리였는데, 이제 와서는 납치문제만 분리해서 먼저 다루고 제재조치도 일부 해제하겠다고 완전히 입장을 바꾼 셈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과 일본은 무엇보다 중국과의 관계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데 대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일치했을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으로 권력이 넘어가고 2년 반이 되도록 중국과 정상회담도 못하고 있다. 일본 역시 최악의 중일관계 속에서 잘못하면 아베의 임기 내내 중국과 정상회담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북한과 일본이 관계 정상화 노력을 통해 국면전환을 시도할 만한 동기는 충분하다. 게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월초 북한이나 일본에 앞서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점도 북일 양측을 자극했을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는 미국의 동의 아래 이뤄지고 있는 북일 수교협상에 대해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이 언제 한미일 공조체제 신경 썼나?”

또한 북일관계가 진전되면 한국에 대한 외교적 입지도 유리해질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을 테고, 각자 국내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아베 정권은 6월 22일 정기국회 회기가 종료되기 이전에 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허용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담화의 검증결과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높은 지지율과 확고한 정권기반을 자랑하는 아베 총리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이나 고노담화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납치문제의 진전이라는 호재를 만들어서 국내적 지지율에 든든한 버팀목을 추가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사실 이번 북일합의의 기본틀은 6년 전인 2008년 6월과 8월의 북일합의에서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당시 북한은 납치 피해자에 대한 재조사 실시를, 일본은 3가지 대북 제재조치의 해제를 약속했다. 그런데 현재 일본 외교의 핵심인물로 평가받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NSC 사무국장에 해당)은 당시 제재조치 해제 결정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이었다. 그러한 야치가 이번에 발표된 북일합의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 북한 측으로부터 납치피해자나 행방불명자 문제의 진전에 관한 분명한 언질이 있었고, 따라서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의 분리대응을 결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번에 납치문제가 진전되고 혹시 아베 총리의 방북까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북일 국교정상화나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으로 바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일수교는 불가능하고,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대규모 경제지원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기 때문이다.

핵·미사일 문제는 사안의 성질상 북일 양자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고, 6자 회담의 진전과 미국-북한 양측의 결단에 의해서 비로소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일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북일합의는 전략적 차원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전술적, 방편적 효용을 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북일합의에 대해 일본의 돌출행보 때문에 한미일 공조체제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특히 한국에서 많이 나왔다. 이를 두고 일본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1년 반이 가깝도록 한일 정상회담도 외면한 채 중국과의 관계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한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한미일 협조를 중시했느냐고 까칠한 반응을 보인다. 한일관계 개선에 열의가 없는 한국에 대해 일본에는 북한카드가 있다는 것을 보란 듯이 알려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차원의 공방은 접어두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납치문제를 분리해서 다루더라도 비핵화 문제는 6자회담의 틀에서 해결을 모색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하면서 한미일 공조에 부정적 영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독자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제재조치를 해제하는 것일 뿐,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 조치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독자적 행보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 이러한 논리를 활용할 것이다.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는 러시아와의 남쿠릴(일본 명 북방영토) 문제 해결과 함께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외교가 안고 있는 대표적인 미결사안이다. 따라서 일본의 야망 있는 정치지도자라면 누구든 한번쯤 북일수교를 실현시키겠다는 꿈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과거에도 북일수교의 움직임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은 ‘미국 요인’에 의해 좌절된 적이 많다.


▎조선소년단 창립 기념일(6·6절)을 맞아 평양 만경대혁명학원 방문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그는 일본인 납치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기존의 원칙을 뒤엎고 재조사 실시에 동의했다.
1991∼92년에 8차례나 계속됐던 북일 수교교섭은 표면상으로는 납치문제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비핵화 문제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었다. 2002년의 고이즈미 방북은 그 직후에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문제 때문에 제대로 된 수교교섭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 북한 체재 합의

따라서 이번 북일합의 발표 직후에도 미국과의 사전협의 여부, 일본의 돌출행동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아마도 일본이 미국의 이해를 얻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6자회담과 한미일 공조를 통한 해결을 견지하며, 납치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핵·미사일 문제도 설득해나갈 수 있다는 일본의 설명을 미국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특히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유용한 설득 재료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헌법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은 냉전이 본격화 된 이후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일본에 대해 강하게 요망해온 사안이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등 여러 명의 총리가 이 문제를 실현시켜보려는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아베 총리가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미국이 쌍수를 들어 아베의 결단을 환영하는 입장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미국은 이례적으로 ‘실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때 미국 국방성의 고위관계자들이 걱정한 것은 한일관계나 중일관계의 악화가 아니라,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해금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미국에 중요하고도 절실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이용하여 일본은 아베 총리가 늦어도 6월 22일까지는 집단적 자위권 해금을 결정한다는 목표로 여야 정당과 국내여론을 상대로 어렵게 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을 것이다. 좀 더 확고한 국내적 지지를 환기하기 위해 납치문제에 한정하여 북일관계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미국에 설명했을 것이고, 미국도 이를 충분히 납득했을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시아 회귀’ 전략의 충실한 협조자로서 일본이 안보적 역할을 확대해나가는 것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북일관계 진전을 통해 일본이 북한에 대한 비핵화 설득 노력에 힘을 보태고, 나아가 한반도 문제에 관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필자가 이번 북일합의에서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납치문제 등에 관한 재조사의 진척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 정부 관계자가 북한에 체재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가 평양에 주재하면서 공식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비록 상주가 아닌 일시적인 체재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연락 사무소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북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장차 영사사무소나 대표부로 격상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일본 정부는 빠르면 7월 중에라도 외무성과 경찰, 납치문제대책본부의 관계자를 북한에 파견할 방침이다. 주된 업무는 납치문제 등의 조사결과에 관한 협의가 되겠지만, 자연스럽게 정보수집 업무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북한 당국자들에 대해 4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자제하도록 설득하는 창구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서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미국 정부는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에 부정적이지만 집단적 자위권 천명 등 아베 이니셔티브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아베의 야망은 역사적 업적 성취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이러한 설득은 주로 중국의 역할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일본도 북한에 주재하는 자국 채널을 통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독점적 입지는 조금씩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중요한 변수로 취급되지 못하던 일본의 존재감이 점차 확대되어갈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일본은 장차 북일수교가 실현되면 1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경제협력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므로 북한에 대한 협상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참고로 북일수교에 따른 경제적 보상 문제는 총액 규모가 아직 미정일 뿐, 처리의 기본원칙은 사실상 이미 정리되어 있다. 1991∼92년의 수교교섭에서 과거청산을 위한 보상 또는 배상을 두고 줄다리기가 있었으나, 2002년 평양선언에서 ‘무상자금협력, 저금리의 장기차관공여 및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경제협력을 실시’한다고 합의하는 동시에, ‘양국 및 양국국민의 모든 재산 및 청구권을 상호 방기한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구체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이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방식과 동일하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06년 2월과 2007년 3월의 북일협의 결과를 보면 위와 같은 처리방식의 세부사항에 관해 양측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대목이 나타난 것 같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따르면 일본이 평양선언에서 확인된 ‘일괄해결, 경제협력 방식’이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이라고 설명했으나 이에 대해 북한 측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발언을 했다고 되어 있다.

향후 수교교섭 과정에서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은 위와 같은 ‘일괄 해결’ 속에 모두 포함됐다고 주장하고, 북한은 위안부 문제는 이와는 별도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추이를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베 외교의 키워드는 ‘능동적, 주도적 외교의 추구’가 아닐까 한다. “상대방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올라가서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아베 총리의 말처럼 최근의 일본 외교는 끊임없이 새로운 포석을 던지면서 한발 앞서 치고 나가는 외교를 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한국·중국과의 관계악화와 같은 중대한 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해에 신설한 국가안전보장국(NSC사무국)을 중심으로 야무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의 책정, 무기수출 금지원칙의 대폭 완화, TPP교섭 참가, 중국의 대두에 대응하기 위한 주변국 외교의 강화와 집단적 자위권 해금이 대표적이다. 이번 북일합의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아베가 국내정치 기반 강화를 통해 장기집권하기 위하여 보수강경 색채의 외교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2006년 9월에 처음으로 총리가 됐지만 불과 366일 만에 스스로 총리직을 내놓았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어 다시 총리에 오른 만큼, 단순한 장기집권의 정치적 욕망을 넘어서 뭔가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겨보려는 남다른 각오가 있을 것이다.


▎5월 15일 도쿄에서 집단적 자위권 헌법 해석 변경에 반대하는 시위대. 아베 총리 얼굴에 ‘독재자’라고 쓰인 포스터를 들고 있다.
사실 아베의 정치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는 2001년부터 5년 반이나 장기집권을 하면서 카리스마를 가진 제왕적 총리로 군림했다. 그러나 우정(郵政) 민영화 말고는 정작 역사에 남을 만한 중요한 국가과제를 실현시킨 것이 별로 없었다. 이에 비해 아베는 취임한지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굵직한 과제들을 계속 처리해 내고 있다.

한반도 구상, 구체적 실천이 필요할 때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도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숨가쁜 전략환경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역할은 점점 더 주변화되어갈 수밖에 없다.

북일합의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북일수교가 이루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한반도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판단은 그런 맥락에서 안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국의 대북정책은 다른 많은 변수가 있으므로 북일합의가 남북관계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세도 지나치게 여유로운 것이다. 물론 북한의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북일합의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납치문제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다고 해도 일본의 국내여론을 납득시킬만한 수준에 미달하면 북일관계는 또다시 벽에 부딪힐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북일 양측의 움직임 자체가 한반도 정세에 가져오는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내야 한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등 한국도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 관한 많은 구상을 밝혔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하루속히 구체적인 움직임을 가시화시켜서 여러 가지 포석을 두면서 주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다. 외교협상의 요체는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고, 협상력을 키우려면 카드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카드가 없다면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이번 북일합의는 납치문제뿐만 아니라 행방불명자, 유골봉환, 일본인 배우자 등 ‘모든 일본인에 관한 문제’로 합의 대상을 넓혀서 잡았다. 납치문제에만 집중하면 양측 모두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난점을 극복할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베 총리가 “무슨 기회든 활용해서 북한과 실질적인 협의를 추진하고 납치문제를 진전시키라”는 특명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지도자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침을 내리면 실무진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디어를 짜내는 법이다. 한국도 우선 5·24 조치를 넘어설 수 있는 해법부터 궁리해내고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야 한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소식이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 일본의 한 언론은 “전후 일본외교에서 드물게 보는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한 일본의 외교적 움직임을 당시의 한국은 느긋하고 여유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2001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시킨 뒤였기 때문이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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