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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 ‘진정한 승자’ 릴레이 인터뷰 | ‘소장파 리더’에서 ‘행정가’로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 

“대들고, 들이미는 공무원을 곁에 두겠다”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지미연 기자
■ “경기도의 숱한 권한부터 시·군으로 내려보낼 터” ■ “야당 추천 부지사와 인사·정책 논의하겠다” ■ “이제 할 말이 있으면 대통령 만나 직접 한다” ■ “정치인이 대권에 뜻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 ■ “미·중·일 차세대 정치인 참여 ‘차세대 지도자 포럼’ 구상 중”

▎‘승패는 하늘의 뜻’이라는 마음으로 지방선거에 임했다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




▎1998년 7월 수원 팔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남경필 후보를 축하하는 당시 한나라당 서청원 사무총장(맨 왼쪽), 이한동 부총재(오른쪽에서 둘째) 등 당지도부.
은 주요 광역자치단체장 연쇄 인터뷰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진로와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살펴본다. 그 첫 회는 인구 최다 자치단체인 경기도의 남경필 당선인이다.

“당신은 국회의원이 되는 데 얼마나 걸렸소?” “3개월 걸렸습니다.” “나는 15년 걸렸소. 하지만 아무런 불만이 없소. 어쨌든 자기가 원하는 길을 이루는 게 중요한 거지.”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49)이 올 2월 펴낸 저서 <시작된 미래>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1998년 7월 21일 수원 팔달보궐선거를 통해 최연소 국회의원(당시 33세)으로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천신만고 끝에 금배지를 달았을 것으로 보이는 동료 국회의원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실로 남 당선인은 3개월 만에 국회의원이 됐다. 수원 팔달 국회의원이던 아버지(남평우 전 국회의원)가 그해 3월 지병으로 갑자기 작고하면서 실시된 보궐선거에 당선됐으니 초고속인 셈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인생행로를 바꿨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복 많은’ 정치인이다. 30대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내리 5선을 기록하고, 40대가 저물기 직전에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남들은 평생을 쏟아도 이룰까 말까 한 공직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그 스스로 인정하듯이 유복한 가정환경의 덕을 봤다.

그래서인지 그는 <시작된 미래>에서 “내 인생에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드라마가 없다”고 썼다. 가난을 딛고 자수성가한 것도 아니고,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일도 없거니와, 하다못해 병마와 싸워 인간승리를 일군 적도 없다. 정치인에게는 이런 드라마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자가진단이다.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 5일 경기도 안산의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는 남경필 당선인 (가운데)과 김문수 현 경기지사(왼쪽), 엄기영 경기문화재단 이사장.
지금은 그 드라마 한 편이 거의 완성된 듯하다. 6월 4일 치러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피말리는 접전 끝에 0.87%포인트차의 신승을 거뒀다. 17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 가장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참사 속에 일군 승리여서 그런지 대선 잠룡 중의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선거가 열흘 가까이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수원 차세대융합기술원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선거 승리의 흥분을 조금은 가라앉힌 듯했다. 남 당선인은 “일자리 넘치고, 안전하고, 따뜻한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기지사 임기 모두 채울 것”

그러고 보니 도지사가 되는 데도 3개월밖에 안 걸린 것 같다. 당초 원내대표를 준비하다가 중앙당의 강권에 급작스레 도지사 쪽으로 선회했으니 말이다.(남 당선인은 3월 9일 경기지사 선거 출마선언을 했다)

“정치인은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고픈 일과 해야 할 일이 충돌하기도 한다.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정치인은 성장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want to do(하고픈 일)’가 아니라 ‘have to do(해야할 일)’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당에 등 떠밀려 선거에 나섰다. 사전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출마했다는 말인데.

“승패는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특별히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거운동 방법도 좀 독특했다. 박빙의 상황에서 상대방이 인신공격을 해와도 응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방의 개인적인 약점은 우리도 알았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비우고 선거에 임했다.”

출마를 결심하면서 진다는 생각도 해봤나? 패배 후의 인생이 걱정될 법한데?

“밖에서 보여지는 것과 좀 다르다. 당락은 ‘선거의 승패’일 뿐 ‘정치의 승패’라곤 생각지 않았다. 선거에서 진다고 인생이 끝장나진 않는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보라. 선거에서 졌다고 (정치생명이) 끝나던가? 중요한 건 어떻게 이기느냐, 어떻게 지느냐에 달려 있다.”

선거판에 아름다운 패배가 있던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기는 게 최상이다. 구태로 얼룩진 선거전을 펼치고도 지는 게 최악이고. 모범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보여주면서 진다면 최악은 아니지 않겠나?”

남 당선인은 경기도정 업무 파악에 분주한 가운데서도 매일 2~3건의 언론 인터뷰를 소화하는 등 선거 당시와 다를 바 없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는 차기 대선 도전의사를 묻는 질문에 “경기도가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가 돼서 생각해보겠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이 하산하고 중원으로 나가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2017년 대선 도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야기다.

여권의 대선후보감이라고도 불린다. 어떤 기분이 드나?

“나도 사람인데 기분이 좋다.(웃음) 그러나 황송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좋긴 하지만 지금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황송한 옷을 입은 느낌이다.”

다음 대선에 도전할 수도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인이 대권에 뜻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50대 50의 싸움이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들이 나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분들이 ‘남경필 찍지 않았는데 괜찮은 친구네, 다음에 도전하면 도와줘야겠네’ 하고 바뀐다면 그때 가서나 생각할 일이지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다.”

경기지사의 임기는 다 채운다는 말인가?

“내 임기는 채워야지.”

대한민국에 대한 역사인식을 듣고 싶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으로 지난 60년을 풀이한다면?

“건국이래 우리나라는 다양한 위기와 성공을 경험해왔다.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민주주의 발전이나 경제성장 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남경필 당선인은 선거기간 동안 네거티브 공세를 펴지 않은 점을 가장 뿌듯하게 생각한다.



종북좌파를 제외하곤 누구와도 협력”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밖에서는 나더러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스펙트럼은 그보다 넓다고 생각한다. 종북좌파를 제외하면 그 누구와도 얘기하고 협력할 수 있다. 이념을 떠나 국민행복, 국민만족을 최고의 지향점으로 둔다.”

인터뷰가 이뤄진 6월 13일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 과거사 발언으로 정치권이 하루 종일 어수선했다. 여야간에 거친 공방이 오가고, 여권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 당선인도 선거운동기간 중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사퇴하자 “또 실패하면 걷잡을 수 없는 리더십 손상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시절 소장파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던 그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수뇌부를 향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 총리 후보자의 발언과 여권의 대응을 어떻게 보는가?

“예전에는 나도 중앙정치의 문제점을 앞장서 비판했다. 국회의원의 역할은 종국적으로 국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도지사가 됐다. 이 자리는 비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판을 받는 자리다. 예산과 정책, 인사를 집행하는 자리에 왔으므로 이제 나는 누구를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정을 잘 이끄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사회, 한국정치를 바꾸는 데 일조하도록 노력하겠다. 꼭 필요하다면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직접 말씀드리겠다.”

남 당선인과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국회에 진출했다. 박 대통령은 그해 4월 보선, 남 당선인은 그해 7월 보선에서 승리했다. 남 당선인은 그 후 16년의 대부분을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당내 개혁 아이콘인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일원으로 ‘수요모임’, ‘미래연대’를 만들어 참여했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당 지도부와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대선을 5개월가량 앞둔 2012년 7월 새누리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던 정두언 의원의 국회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출당을 추진했다. 이때는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박근혜 의원이 당권을 사실상 장악, 당 운영을 주도하던 시절이다. 당시 남경필 의원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대선 승리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라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당 쇄신의 기본은 민주적인 당 운영과 의사결정”이라며 “새누리당이 특정 대선후보의 뜻대로 움직인다면 공당으로서의 존재가치는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나아가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대선승리를 통한 집권은 어려울 것”이라며 “집권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국정운영과 당청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치를 하다 보면 중대 결정을 앞두고 잠 못 이루는 밤도 더러 있었을 법하다. 그때가 언제였나?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할 때 고민 많이 했다. 가장 가까운 일이라서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을 찾아 포항으로 내려가기 전날도 그랬다. 이명박 정부가 갓 출범한 2008년 3월 이 전 부의장을 찾아가 총선 불출마를 요청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개혁 공천을 위해 그해 4월 총선 출마를 포기해달라고 말이다. 그 전날도 고민 많이 했다. 이 전 부의장과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각별했고, 이 행동이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등의 생각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더라도 불출마를 요청해야 한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살아있는 권력이었으니까. 그것도 갓 시작한 따끈따끈한 권력 말이다.”

“새누리당 대표되려면 혁신 프로그램 제시해야”

당시 남 당선인은 출불마 설득이 실패하자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전 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 전 부의장이 18대 국회에 입성한다면 당내 모든 현안을 그와 상의하게 되며 그의 말은 결국 대통령의 말로 해석돼 당이 거수기 정당으로 전락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자 정두언 의원 등 당 동료 국회의원 55명이 ‘이상득 의원 불출마’에 동조하고 나섰다. 끝내 이 전 부의장은 출마를 강행, 6선의 고지에 올랐고, 남 당선인 부부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사찰을 당했다. 남 당선인은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상처로 기억된다”고 저서 <시작된 미래>에서 돌이켰다.

7월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열린다. 새누리당에 필요한 대표는 어떤 유형인가?

“결국 혁신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혁신을 당하게 된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혁신 대표가 뽑혀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혁신에 합당한 분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이 당장 당 대표로 선출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당 대표 경선에 나서는 분들이 자신과 당, 나라를 변화시킬 정책과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 분명한 각오와 그를 뒷받침할 혁신 프로그램 말이다. 그런 경쟁을 기대한다.”

전당대회가 자칫 과열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은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처럼은 안 했으면 좋겠다. 비전 경쟁보다는 서로 흠집을 내는 데 급급하다 보니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도 한때 조기과열 조짐을 보이더니 지금은 잠잠해진 듯하다. 경쟁을 하다 보면 후보들은 별로인데 정작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격렬하게 맞붙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가 선거를 해보니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 과거에 하던 관성대로 일단 지르고 또 맞받아치다 보면 큰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이런 점들을 잘 제어해야 한다.”

수직적 당청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그런 얘기는 과거 신물 날 정도로 했다. 이제는 내가 그런 비판을 받을 위치다. 내가 그동안 해온 얘기를 나 자신에게 적용할 것이다. 도정을 펼치고, 인사를 단행하고, 대야 관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보여줄 참이다.”

국회의원 시절 청와대에 주로 어떤 의견을 피력했나?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바라는 얘기를 대통령에게 많이 전달했다. 왜 야당을 포용하지 않느냐, 왜 충언하는 참모들을 곁에 두지 않느냐고 진언했다. 나는 경기도정에서 이를 구현해 보이겠다. 야당인사를 사회통합부지사에 임명키로 하는 등 야당과의 연정(聯政)을 추진 중이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인사권과 같은 기득권을 포기, 분산하는 데서 경기도의 변화는 시작된다.”


1 남경필 당선인은 오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쟁취한 독일에서 한반도 통일의 교훈을 찾고자 한다. 2 올해 3월 중국을 방문,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꼽히는 후춘화 광둥성 서기와 대화를 나누는 남경필 당선인.



“현장 등한시하는 관료는 공직자 자격 없어”

야당과의 연정은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인과 더불어 광역지자체에서 처음 시도하는 정치실험이라고 하겠다.

“국민들이 과거에도 그랬지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서 정치권에게 더 이상 서로 싸우지 말고 힘을 합해서 어려운 일들을 처리하라고 요구한다. 비단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지금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참 많다. 특히 북핵 문제가 그렇고 일본의 도발적 행위에 대해서도 여야가 싸우지 말고 힘을 합해서 극복하라는 거다. 야당 출신 부지사와 같이 일하면 경기도의 이런 변화가 대한민국 전체의 변화로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선거 때부터 제안했다. 이는 진정성을 가진 내 정치철학이다. 지금 야당 지도자들도 열린 자세로 답을 주고 있어 잘되리라 믿는다.”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과 함께 정책 협의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경기도발 연정은 ‘인사’와 ‘정책’ 이렇게 투 트랙으로 진행되나?

“정책과 인사는 별도의 사안으로 분리하기보다는 동일선상에 있다. 야당과의 정책 협의를 진행한다. 또 야당이 부지사를 추천하면 그분과 실질적인 정책과 인사를 논의해 결정할 것이다.”

국회의원 5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그가 행정조직의 장을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임인 김문수 경기지사는 2006년 경기지사에 처음 취임하고선 “고독하다”고 말했다. 국회가 회의체라면 도지사는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독임제’라는 이유에서였다. 혼자 결정해야 하는 외로운 자리가 지방자치단체장이라고 했다. 더욱이 인구 1천만이 넘는 경기 도정을 이끌자면 그만큼 다부진 각오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당선 뒤 인수위원회가 아닌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어떤 경기도를 만들고자 하나?

“지난 3월 9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시장에서 가진 출마선언식에서 ‘따뜻한 행정, 좋은 정치로 강한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사각지대 없는 따뜻한 복지체계를 구축하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Great Train eXpress) 조기 착공과 추가 건설, 방과 후 교실 확대, 지역별 특화 개발 등의 정책을 편다고 했다.”

연일 공직 사회 개혁을 강조하는데, 경기도 공무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뭔가?

“나는 통합과 소통, 현장을 중시하는 도지사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시장통을 오가는 주부들, 포장마차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는 직장인들이 하는 얘기가 민심이고 상식이다. 지금의 행정서비스는 고객 중심이 아닌 관료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이는 개선돼야 한다. 현장에 안 나가고 현장을 모르는 공무원,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공무원, 어깨에 힘주고 고객 위에 군림하는 공무원과는 함께 갈 수 없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관료들과 머리를 맞대고자 한다. 이른바 ‘들이미는’ 관료, ‘대드는’ 관료를 중용할 계획이다.”

‘관피아’라 해서 공무원들의 재취업이 비난의 표적이 된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 작정인가?

“사정을 살펴 보니 공무원들의 재취업 자체를 완전 차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무원 인사 시스템이 정년을 완전히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정년을 한 2년 정도 앞두고 옷을 벗는 공무원이 많다. 이들은 못 다 채운 2년간 산하 공공기관 같은 데서 근무한다. 조기정년시스템은 그대로 둔채 무조건 재취업을 막는다면 공무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된다.

기본적으로 공무원들이 임기를 다 마치는 쪽으로 시스템을 고치도록 하겠지만, 이는 시간을 요하는 작업인데다 한꺼번에 손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놔둘거냐? 그래서 여야 연정 협상팀에다 공무원 재취업이 허용되는 공공기관과 불허하는 공공기관을 나누는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해뒀다.”

남 당선인은 선거 공약으로 일자리 70만개 창출을 제시했다. 그러자면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하고,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분산해야 가능해진다. 하지만 김문수 지사는 재임기간(8년) 내내 중앙정부가 지방분권에 관심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권한과 재정의 분산은 애당초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경기도 기득권부터 내려놓겠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해법을 강구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규제는 완화가 아닌 합리화의 차원에서 접근하겠다. 일단 경기도부터 규제를 풀고, 31개 시·군에도 규제완화를 요청할 계획이다. 그런 다음 중앙정부에다 수도권 규제완화를 촉구해야 설득력이 배가된다. 물론 안전이나 환경에 대한 규제는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할 것이다.”

분야별, 지역별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은 마련했나?

“지식기반 일자리, 문화 콘텐트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 경기 북부지역에는 개성공단에 대응하는 공단을 짓겠다. 개성공단에서 가공된 제품을 북부 공단에서 완제품으로 생산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면 좋겠다.”

중앙정부가 지역분권에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박근혜 정부는 지방재정 확충과 건전성 강화를 위해 지방세 등의 자주재원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또 국세·지방세 비율을 2017년까지 현재의 8대 2에서 7대 3으로 가져간다는 계획도 밝혔다. 계획대로 된다면 지방재정 운용에 상당한 숨통이 트인다. 중앙정부에만 권한과 예산 이양을 요구할 게 아니라 경기도가 갖고 있는 숱한 권한을 시·군으로 내려 보내는 작업도 병행할 것이다. 우리 도가 너무 과대한 권한을 독점하는 건 아닌지 현황 파악부터 하겠다. 경기도는 권한을 꽉 틀어쥐면서 중앙정부에다 손을 내밀기만 하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전임 지사의 역점 시책 중 중점적으로 계승하고 추진할 사업을 꼽는다면 뭐가 있나?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과 공공육아를 들 수 있다. 그 밖에도 발전적으로 계승할 사업이 많을 것이다.”

교통난 해소 차원에서 2분마다 출발하는 굿모닝버스를 제안했다. 멀티환승 버스터미널을 만들어 출퇴근 시간대에 타자마자 앉아서 가도록 하겠다는 공약으로 기억되는데.

“서울로 출퇴근 하는 경기도민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고, 또 타서도 서서 가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걸 해결하는 게 굿모닝 버스다. 서울로 가려는 경기도민은 터미널까지만 오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버스를 탈 수 있게 된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좌석예약도 가능하다. 이는 최우선적으로 펼쳐야 할 도정의 하나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 예고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오는 7월부터 광역버스의 입석운행이 금지된다. 원활한 출퇴근을 보장하자면 버스 증편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텐데 구체적인 계획은 나왔나?

“일단 버스 대수를 늘려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국토부와 경기도가 협의를 통해서 버스를 한 200대 정도 증편하기로 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얘기한 대로 굿모닝버스 같은 것을 도입해야 한다. 버스 운행에 적자가 불가피한데 도민의 세금을 투여하는 준공영제 실시 방안 등을 차차 협의해나갈 계획이다.”

남 당선인에 따르면 ‘굿모닝 버스’ 공약을 이행하는 데는 연평균 790억 원씩 4년간 총 316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노선체계 개편, 서비스 향상, 버스기사 처우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가칭)버스정책상생위원회’도 구성된다. 그는 “경기도민이 원하는 버스정책은 무상이 아니라, 바로 타고 앉아가는 버스”라고 강조했다.

남북협력 사업은 경기도정의 핵심사업이기도 하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접경지역을 가진 경기도가 혜택을 볼 수도 있다. 남 당선인의 남북관계 구상을 얘기해달라.

“가능하면 경기도판 남북협력기금을 만들어 도 차원에서 남북협력에 나서고자 한다. 그리고 탈북자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이들에 대한 직업교육과 취업 알선에 내실을 기할 것이다. 통일 대비는 별다른 게 아니다. 북한주민들의 의사가 핵심이다. 북한 주민들이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남경필 당선인은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차세대 주자 후춘화는 내 친구”

경기도는 땅이 넓은 듯해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묶인 곳이 많다. 면적의 23%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육·해·공·해병대의 70%, 주한미군의 90%가 경기도에 주둔하기 때문이다. 대대급 이상의 군부대만 600곳을 넘는데다 공군비행장만 수원·오산·성남·양주·포천·고양 등 30곳을 헤아린다. 2함대사령부, 해병대사령부도 경기도에 있다. 경기도 전역이 중앙정부의 규제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라는 게 경기도의 하소연이다.

18대 국회에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지내는 등 외교·안보·통일 분야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을 텐데.

“201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자격으로 독일을 방문한 일이 있다. 서독과 동독이 오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한 저력을 목격할 수 있어 좋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숙한 독일인의 자세였다. 서독은 동독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동독 주민들도 체체 유지보다 서독과의 통일을 원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통일의 문은 어느 날 갑자기 빼꼼히 열릴 수 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문을 확 열어젖혀야 통일이 온다. 독일의 경우 외세라 할 미국과 소련이 그 문을 닫고자 했다. 동독 주민들이 그 문을 활짝 열었고 장벽도 부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이 과연 통일을 열망할까?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원할까? 우리 정부의 굉장한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국제사회의 인맥도 탄탄하다고 들었다.

“나 스스로도 ‘중국통’을 자처한다. 중국의 차세대 대권 주자로 꼽히는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서기를 비롯해 2022년 중국의 지휘부를 구성할 제6세대 지도부와 친분을 다져왔다. 특히 후 서기는 내 친구다. 내 휴대전화에는 후 서기와 찍은 셀카 사진이 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막역하단 말인가?

“지난해 12월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이 중국 공식순방 중에 후 서기와 만나 담소를 나눴다고 한다. 후 서기가 ‘한국에 내 친구가 있다’고 말하자 강 의장이 말을 받아 ‘그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후 서기는 ‘국회의원 남경필’이라고 답했다고 들었다. 후 서기는 편하게 지내는 벗과 같은 관계다.”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

“후 서기는 10년 된 친구다. 나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의 차세대 지도자들과도 교류를 지속해왔다. 러시아 차세대 지도자와는 얼마 전부터 만난다. 중국과 미국, 일본 등의 차세대 정치인이 참여하는 가칭 ‘차세대 지도자 포럼’을 구상 중이다.”

북한과 일본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지렛대로 급속히 가까워지는 양상이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이니셔티브를 상실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인권 및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 분명하다.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는 항상 역동적이므로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경기도의 경쟁상대라 할까, 롤모델로는 어디를 염두에 두나?

“상하이와 도쿄와 같은 국제 메가시티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서울이나 충청권 광역자치단체들과 손잡고 국제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방안도 생각해봄 직하다.”

“이제 이미지로 정치하는 단계는 지났다”

방대한 도정을 소화하자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겠다.

“운동을 좋아하고 많이 한다.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운동을 제일 좋아한다. 시간 날 때마다 등산도 하고, 요즘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푹 빠져 산다.”

단정한 외모가 이번 선거에서도 득표에 도움이 됐을 법하다. 평소 말하거나 행동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하나?

“말은 굉장히 쉽게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인터뷰에서도 내가 어려운 용어를 거의 안 쓰는 걸 느낄 거다. 가급적이면 단문으로 얘기하려고 한다.”

경기지사 선거를 도운 여권 관계자는 도민들에게 각인돼 있는 남 당선인의 이미지는 크게 3가지로 대별된다고 했다. ‘오렌지족’, ‘개혁 소장파’, ‘경제민주화’가 그것이다. 아버지의 지역구에서 편하게 정치를 시작했다는 뜻에서 ‘오렌지족’ 이미지가 초창기 부정적 상징이라면, ‘개혁 소장파’, ‘경제민주화’이미지는 의정활동을 통해 획득한 긍정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소년등과(少年登科: 예전에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던 일)’에도 불구하고 개혁적 이미지를 획득하고 정치 진로 또한 무난히 개척해왔다고 하겠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단순한 이미지로 정치를 하는 단계는 지났으며 이제는 실천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통해 시대에 걸맞은 리더라는 점을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기지사 임기가 끝나는 4년 후 그의 좌표가 궁금해진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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