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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기대반 우려반’ 이병기號 국정원의 미래 

 

이영종 중앙일보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베테랑 요원들 제자리 찾고 업무영역도 재조정될 전망… 남북관계 정상화에 돌파구 마련할 수도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주일본대사(왼쪽)를 발탁했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서울공항. 장갑차와 군 병력까지 동원돼 외곽을 지키고 있는 특급 보안시설인 이곳에 민항기 한 대가 내려앉았다. 대통령 전용기 운항이나 국빈 방문하는 외국 VIP 등에게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서울공항에 민간 여객기의 등장은 이례적인 일이다.

봄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활주로를 질주해 모습을 보인 건 에어필리핀 소속 보잉 737 특별기. 보안요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고 무전기 통신음이 높아졌다. 트랩이 닿자 동체 앞부분 문이 열렸다. 필리핀 군부의 리바르네스 장군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바로 양복차림의 두 명의 노신사가 얼굴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만세!”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삼창을 외친 두 사람은 활주로에 내려섰다. 리바르네스 장군은 이들을 한국 측에 인계한 뒤 비로소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현장에 나온 우리 책임자는 국가안전기획부 해외담당(당시 직책)인 제2차장 이병기였다. 그해 2월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이 한국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황장엽 비서는 필리핀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망명 요청 67일 만인 1997년 4월 20일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난 6월 10일 이병기 전 차장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 수장(首長) 자리를 낙점받았다. 김대중 정부 출범에 따라 1998년 봄에 국정원 옷을 벗었던 그의 화려한 귀환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국가개조 추진을 표방한 개각 인선엔 미처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인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2기 국가정보원장 이병기의 내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놀라는 이가 없었다. 국가 정보기관의 생리에 누구보다 밝고,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정부 출범 때부터 국정원장감으로 지목돼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이병기 외에 다른 카드를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세훈 전 원장이 업무상 비리 등으로 사법처리되는 상황에 이어 박근혜 정부 첫 국정원장으로 조직개혁과 정보기관 본연의 위상 확립이란 임무를 부여받은 남재준 원장도 불명예 퇴진했다. 기피대상이 된 군 출신이나 법관 출신을 배제하고, 강경노선이 아닌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는 인물로 인선기준을 좁히다 보니 이병기 후보자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국정원장 임명이 예상된 수순이었다고 하지만 그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진 않는다. 이병기호(號)의 국정원이 넘어야 할 파고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발탁 배경이나 인사청문회 과정 같은 사안보다 향후 그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무엇보다 국가정보원은 지금 혼돈과 위기다. 2012년 대선 때부터 박근혜 정부 출범을 거쳐 지난 1년 6개월여의 기간 동안 국정원은 메가톤급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국정원의 대선 관련 댓글사건으로 박근혜 정부는 일부 세력에 의해 선거조작 시비까지 받았고, 정통성 문제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처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화록 공개를 둘러싸고도 국정원은 정쟁의 한복판에 서야 했다. 여야 정치권의 논란이 격화된 상황 속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은 대화록 공개라는 초강수로 대응했고, 이를 놓고 정치 중립성 훼손 문제가 불거졌다. 두 사안이 다소 수그러지는 듯한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결정타가 터졌다.


▎새 국정원장을 맞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은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예상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시비는 정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의 위상에 치명상을 입혔다. 간첩 혐의자의 공소유지를 위해 국정원 일부 조직이 북중 국경 관리당국 간 출입확인서를 위변조해 검찰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결국 여론압박에 밀린 남재준 원장은 지난 4월 15일 “원장으로서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행정 관료, 군 출신이 보여준 시행착오

남 원장의 대국민사과 이튿날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났다. 모든 시선이 진도 팽목항에 쏠렸고, 정치권과 국민 모두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대선 댓글과 간첩증거 조작 같은 국정원 관련 이슈도 완전히 묻혀버릴 분위기였다.

남 원장의 사과문 발표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란 언급을 했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남 원장을 조건부 재신임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일부에선 3분간의 짤막한 사과로 얼버무리는 건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6·4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도 여권 내부에서 나왔다. 결국 사과발표 한 달여 만인 5월 22일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남재준 원장의 사표수리 사실을 발표했다.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국정원 이슈가 세월호 참사의 충격파로도 덮이지 않는 중차대한 문제라는 인식이 배경에 깔린 교체였다. 뼈를 깎는 변신의 노력과 국민 신뢰회복이란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이제 고스란히 새로운 수장 이병기의 몫이 됐다.

새 사령탑 이병기 후보자를 바라보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본부 안팎의 분위기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정보기관의 생리에도 밝은 그가 균형감 있게 국정원을 이끌어가지 않겠느냐는 긍정적 평가는 주로 간부층과 산하 외곽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특히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 국정원 손질에 나섬으로써 정보기관 위상정립에 탄력이 붙게 됐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지부장 출신의 한 국장급 인사는 “행정 관료나 군 출신 인사들이 보여준 시행 착오나 한계를 이병기 원장 체제에서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년 간 장기재직하며 국정원 조직을 망가트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원장, 다소 경직된 리더십을 보인 남재준 전 원장의 부족했던 점을 새로운 수장이 채워주리란 기대다.

산하기관 연구소의 한 박사는 “정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무기력하고 과거 관행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정원이 당면한 ‘신뢰의 위기’를 타파하기엔 이병기 원장 체제로는 역부족일 것이란 전망이다.

입사 10년차 미만인 한 국내파트 실무요원은 “고참 선배들로부터 이병기 차장 때인 안기부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탁월한 정무감각으로 능란하게 업무를 수행했다지만 결국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옛날 방식이란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부와 국정원은 간판이 다르다는 것 못지않게 조직 내부의 문화도 격변했고, 국민들이 정보 당국에 대한 갖는 기대와 요구치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얘기다.

외교관 출신 인사의 국정원 기용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과거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한 인사는 “의전과 협상에 익숙한 외교관과 치열한 정보전쟁의 현장을 누벼야 하는 정보맨은 문화부터가 다르다”고 말했다. 과거 외교관 출신 인사들이 정보기관 정무직위에 임명된 후 업무방식이나 해외에서의 활동 매뉴얼을 외교부 식으로 무리하게 바꾸려다 마찰을 빚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북파트 요원으로 일한 한 전직 국정원 직원은 “해외공작이나 대북정보 활동은 ‘악마와의 속삭임’이라 할 정도로 상식을 뛰어 넘는다”고 말했다. 결국 ‘약속대련’ 수준일 수밖에 없는 외교와 정보당국의 활동은 태생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1 1997년 4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 담당비서와 측근인 김덕홍 조선여광무역총회사 총사장이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병기 안기부 제2차장(앞줄 왼쪽에서 둘째)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청사로 향하고 있다. 2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사무실에 모인 친박계 인사들. 맨 왼쪽이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이며, 그 옆으로 구상찬 상하이 총영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인 등 현 여권의 핵심 인사들이 보인다.



6공 시절 맺은 박 대통령과의 첫 인연

이처럼 이병기 원장 체제의 국정원에 대한 엇갈린 인식은 그의 인생역정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와 맥이 닿아있다. 서울 출신인 그는 경복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74년 외무고시(8회)에 합격한다. 촉망받는 외교관이던 그는 1981년 노신영 당시 외무부 장관의 눈에 들어 노태우 정무장관의 보좌역을 맡게 됐다. 보안사령관 예편 뒤 장관직을 맡은 노태우의 천거 요청에 노신영 장관이 케냐 주재 한국대사관 1등서기관 이병기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이후 노 정무장관이 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위원 등 요직을 거치는 동안 이병기 후보자는 최측근 보좌역을 도맡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의전수석비서관을 맡는 등 지근거리에 있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민간인이던 박근혜 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하는 자리에 배석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편치 않고 어려웠을 면담자리에서 이병기 당시 비서관이 세심하게 배려해줬던 게 박 대통령의 인상에 깊게 남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87년 ‘6·29 선언’ 입안과정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정·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만들어진 민자당에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이 후보자는 더 이상 외교관출신이 맡아온 청와대 의전수석에 머무는 행정 관료가 아니었다. 1992년 대선후보 결정 당시에는 청와대 내부의 기류를 YS쪽으로 몰아가는 데 힘쓰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은 이 후보자는 96년 말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에 임명됐다.

YS 정부 말기인 이 시기 안기부에서 이 후보자의 행적은 정보기관 수장으로 임명된 그에게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보수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넘어가는 전환기에서 불거진 이른바 ‘안기부 북풍공작’의 지휘선상에 있었다는 점에서다. 북풍공작은 1997년 대선에서 안기부가 여당 이회창 후보에 유리한 쪽으로 선거 국면을 몰고 가기 위해 야당 측 김대중 후보에 대한 음해에 조직적으로 나선 사건이다.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이 재미교포 윤홍준 씨에게 김대중 후보 비방 기자회견 대가로 25만 달러를 건네주도록 지시하는 등 기자회견 전 과정에 개입한 것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권영해 전 부장이 사법처리됐고, 이대성 전 해외조사실장 등 책임간부가 구속되는 등 파문이 일었다.

검찰은 당시 권 전 부장 외에 박일룡 전 1차장과 이병기 전 2차장 등이 북풍조작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이 전 차장을 소환조사 하는 등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 전 차장의 경우 윤씨 기자회견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판단과 별개로 논란과 의혹에 휩싸였던 이 전 차장의 당시 행적은 ‘국정원장 이병기’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야당 측에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차떼기 스캔들’에 연루된 사실도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6월 15일 귀국한 이병기 후보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유와 경위가 어쨌든 지난 시절 불미스러웠던 일에 관해 늘 국민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사과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DJ정부 출범과 함께 2차장 직을 내놓고 공직생활도 접은 이 후보자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로 머물렀다. 그러다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정치특보로 정계에 뛰어들어 핵심 측근으로 자리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의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나선 박근혜 대통령의 곁에는 다시 이 후보자가 있었다. 2004년께 ‘친박’의 중심에 진입한 그는 2007년 대선 당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아 외교·안보 분야는 물론 정무 등에 관한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 5월 한 시민단체가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국정원의 선거 중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그 앞을 지나고 있다.



노태우·김영삼·박근혜의 최측근 출신

지난 대선 때는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고문을 맡아 박 대통령 당선에 힘썼다.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5월엔 주일대사로 부임해 일해 왔다. 외교 당국자는 “외교관 출신으로 노태우 대통령부터 YS와 박근혜 대통령까지 3명의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는 건 그의 정무감각이 탁월하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런 능력을 토대로 국정원 리모델링을 위한 안팎의 작업을 진두지휘하게 되리란 얘기다.

국정원의 새 컨트롤타워를 맡은 이병기 원장 체제에서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올라야 할 부분으로는 조직개편과 인사가 꼽힌다. 이는 원세훈 원장 시기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를 푸는 것과도 맥이 닿아있다. 한 국정원 퇴직간부는 “전문성과 직능을 무시한 무분별한 인사이동으로 업무수행 능력과 팀워크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MB시기 발생한 이런 문제점을 지난 1년여 동안 바로잡아야 했지만 군 출신인 남재준 원장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는 얘기다. 국내와 해외, 대북 파트 등의 베테랑 요원들을 제자리에 앉히고 업무영역도 효율적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오랜 기간 국정원을 떠나있었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장 후보 1순위’로 거명되면서 몸풀기를 해왔기 때문에 곧바로 착수할 수 있으리란 게 이병기 원장 체제에 거는 기대다.

둘째는 조직·인사 혁신을 바탕으로 한 국정원 개혁이다.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고 외면받아온 문제점을 모두 바꾸는 체질 개선을 의미한다. 대공수사의 관행뿐 아니라 정치개입 논란을 완전 종식시킬 수 있는 제도마련도 뒤따라야 한다. 남재준 원장 경질과 최측근 이 후보자의 기용은 국정원 개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란 평가다. 그만큼 신임 원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셋째는 대북파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초부터 한반도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대북접근을 추진했다. 올해 들어서는 통일대박이란 화두를 통해 과감한 대북지원과 북한의 태도변화를 맞바꾸는 정책구상을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의 반발과 세월호 여파로 모멘텀을 잃은 상황이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나서 통일준비위원회나 대북 접근책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기에는 아직 여론이 무르익지 않았다.

대북 물밑접촉의 노하우가 축적된 국정원이 돌파구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7·4 남북공동성명 기념일이나 8·15 경축사 등을 계기로 탄력이 붙지 않으면 하반기 남북관계 기상도에 먹구름이 걷히지 않을 수 있다”며 “이럴 경우 박근혜 정부의 2년차 대북정책 추진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대비 기금마련책인 ‘통일항아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집권 3년차를 넘어서게 되면 정책에 뒷심이 제대로 붙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대북 막후접촉 등에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고, 원칙 있는 대북접근을 강조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필요할 경우 이를 설득해 정책적 성과를 거두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역할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대북문제와 관련해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일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언론에 노출될 정도로 공공연히 ‘흡수통일’을 언급했던 전임 남재준 원장과 비교해보면 대북인식이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하다는 평가도 있다. 외교관 출신답게 그는 북한에 대해 군사적 접근보다는 외교를 통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소련 및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북방 외교’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서울·평양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 공약을 만드는 데도 입장을 피력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국가정보기관 개조의 기대감

넷째는 국내외 분야를 막론하고 안전과 안보 위해요인을 사전에 탐지해 제거토록 하는 예방정보 활동이다. 전통적인 대공·방첩 활동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쪽으로 활동 폭을 넓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보기관의 역할과 위상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해 국정원은 침묵했고, 책임문제와 관련해 불똥이 튀지도 않았다.

하지만 안전 전문가들은 인천 등 항만시설이나 기관을 담당하는 국정원 요원들이 연안여객선 운항에서 드러난 폐해나 관련 종사사들의 비리·안전 불감 등을 사전에 면밀히 살펴 대응책을 건의했으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구원파나 유병언 관련 사안도 과거 같으면 국정원의 주시대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 체제의 국정원 출범을 바라보는 전현직 요원과 전문가들 상당수는 대한민국 국가 정보기관의 현주소를 세월호 침몰참사에 비유했다. 과거 관행에 사로잡힌 낡은 운항 시스템과 미숙하고 소명의식 없는 선원들이 무리수를 두다 좌초당한 모양새가 댓글논란과 간첩 증거조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신뢰를 잃은 국정원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국정원 간부출신 한 교수는 “좌우 균형을 맞추지 못한 부실한 평형수에 고박장치조차 없어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조직·인사 시스템은 결국 창설 53년을 맞는 국정원에게 참담한 시련을 안겼다”고 말했다.

지금 국민들은 이 원장 체제를 맞이한 내곡동 국정원 청사를 숨죽이며 주시 중이다. 그곳 본부 건물 앞 마당에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란 원훈(院訓)을 새긴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더 이상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과거 구호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이제 국민여론은 음험함에서 벗어나 통제 가능한 활동을 벌이는 투명한 정보기관을 원하고 있다. 댓글·증거조작 이전과 완전히 다른 국가정보기관의 개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 개혁이란 날 선 메스를 들고 돌아온 수술 집도의(執刀醫) 이병기 후보자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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