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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도한 ‘나쁜’ 규제철폐 20選 - 안전규제 풀면서 ‘ 참사 도미노’ 잉태됐다! 

 

규제비용 200억 줄이려다 수조 원 재난비용 폭탄 맞은 세월호 참사 교훈삼아야…기본이 ‘정해져’ 있어야 기본을 ‘지킬 수’ 있다

▎잇따르는 대형 사고는 규제완화가 부추긴 안전의식의 약화에서 비롯된다. 왼쪽부터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와 대학 신입생 등 10명이 숨진 2월 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5월 18일 붕괴된 충남 아산의 신축 오피스텔의 붕괴사고 현장.



사고는 꼬리를 문다고 한다. 이를 심리적 효과로 치부하기도 한다. 큰 사고가 일어나면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작은 사고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거다. 반만 맞는 얘기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건 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안전 규제를 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긴장감이 떨어지는데 ‘참사 도미노’가 시작되는 건 바로 그 시점이다.

1998년에 시작한 규제완화 정책은 지난 정부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명박 정부 때 안전과 직접 관련 있는 규제를 완화한 것만 20건이 넘는다.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를 참사 도미노의 전조로 보는 건 그 때문이다. 전·현 정부가 시도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규제완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니 수많은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잉태되고 있었다.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 덩어리” 지난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쏟아낸 말이다. 대상은 ‘규제’다. 규제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이 두 마디에 녹아 있다. 이처럼 강도 높은 대통령의 주문을 받은 정부 각 부처는 ‘손톱 밑 가시’를 찾아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국무총리실은 규제정비 계획을 담은 ‘규제개혁방안 시행지침’을 만들어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하달했다.

전체 규제의 10~20%를 일괄로 감축하는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규제를 새로 만들려면 새 규제에 들어가는 비용에 상응하는 기존 규제를 폐지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7월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내년에 전면 시행된다. 2004년에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한 적이 있다. 규제총량제였다. 규제 한 건을 신설하면 다른 한 건을 폐지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건수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작은 규제를 빼면서 덩어리가 큰 규제를 새로 만드는 식의 불합리한 문제가 생겼다. 결국 2년 만에 이 제도가 폐지됐다.

안전 규제도 예외 없다? 경제우선 논리의 함정

규제개혁포털에 등록된 규제는 1만5200여 건이다. 이 중 경제규제 1만1000여 건이 개혁 대상이다. 각각의 규제마다 비용이 정해진다. 산출이 불가능한 규제는 등급을 매겨 관리한다. 올해 정부의 규제 감축 목표는 10%다. 2016년까지 20%, 2200여 개의 규제를 철폐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또 새로 만드는 규제에 일몰제를 적용해 일정 기간 후 자동으로 소멸되도록 했다. 박 대통령 임기 안에 전체 규제의 절반에 일몰기간을 적용할 계획이다.

규제 철폐의 가장 큰 명분은 ‘경제 살리기’에 있다.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되는 규제는 나쁜 규제’란 인식이 이명박 정부 때에 절정을 이뤘다. 안전을 담보하는 규제가 경제를 망치는 규제로 지목돼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대표적인 게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선박연령 제한 완화조치다.

선령 제한 완화조치는 해운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2006년 한국해운조합이 규제완화를 건의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2009년 국토해양부는 해운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다. 이는 2008년에 국토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행정규칙 주요 개선과제 17개 중 하나였다. 당시 정부는 이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연간 약 200억 원의 경제적 이익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시행규칙이 개정되자 외국에서 수명을 다한 중고 선박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에 따르면 선령 완화 시행 전 15년 이상 노후 선박의 수입 비중은 29.4%였으나 시행규칙 개정 이후 63.2%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퇴역 직전이었던 세월호를 들여온 것도 규제완화 덕분이었다. 2012년 수입 당시 세월호의 선령은 18년이었다. 현재 국내의 연안 여객선 173척 중 선령 20년을 넘긴 배가 42척(24.3%)이나 된다.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2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국토부에 제출한 ‘연안여객운송산업 장기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노후선박은 각종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제 우선 논리를 앞세운 정부가 이를 귀담아들을 리 없었다. 세월호 참사를 예견된 인재로 보는 이유다.

전방위로 벌어진 규제 철폐는 현 정부 들어서도 계속됐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하루 전날(4월 15일)에도 선박안전에 관한 규제완화가 이뤄졌다. 해양수산부는 선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선박검사원과 선박수리를 위해 승선하는 기술자를 선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선원은 파견근로자를 쓸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시행령을 개정함으로써 선박검사원을 정규직 선원이 아닌 파견근로자로 고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해수부의 한 중간 관리자급 공무원은 “파견직 근로자로 신분이 불안정한 선박검사원은 고용자인 선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선박검사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거란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규제완화가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해양·항공·철도·산업 분야에서 수십 건의 규제완화가 이어지고 있다.

<월간중앙>은 그중에서도 규제를 풀면 사고 위험이 큰 ‘나쁜 규제철폐’ 사례를 모아봤다. 규제를 철폐하는 이유는 한결 같았다. ‘기업 활동을 방해’해서, 혹은 ‘기업의 불필요한 비용부담을 줄여주기 위해’라는 논리였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김민기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의 어법을 빌리자면 ‘참 나쁜 규제철폐’”라고 말했다.


▎4월 21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선박건조장 내 액화석유가스 운반선에서 불이 나 근로자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해양·항공·철도·산업 분야 규제완화 실태

지난 2월, 정부는 화학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를 계기로 화학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자 화학물질 취급사업자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당초 정부안은 화학사고 발생 사업장에 대해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재계가 반발했다.

처벌이 너무 강하다는 의견이었다. 박 대통령은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는 말 한마디로 재계의 손을 들어줬다. 이전까지 강경한 입장이었던 환경부는 태도를 바꿔 과징금 부과 기준을 전체 사업장 매출이 아닌 사고 발생 현장의 매출로 완화했다. 또 영업정지 처분 기준도 2년 동안 3회 이상 규정 위반 사업장으로 조건을 풀었다.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가 터진 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통과 여부가 불투명해졌지만 다시 규제를 강화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화학사고는 대참사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사업자의 자율적인 안전관리 의식에 기대기엔 사고 발생 시 피해가 너무 커서 규제를 통해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1984년 인도 보팔시의 농약공장에서 맹독성 가스가 누출돼 2만 명이 죽거나 실명하는 등 80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화학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1970~80년대에 집중 육성한 중화학공단의 시설 노후화로 사고 위험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규제까지 풀어주면 큰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현 정부의 화학분야 규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도 대표적인 퇴행 규제다. 화평법은 연간 1톤 이상 화학물질을 생산·수입하거나 700여 종의 화학물질 취급업체에 화학물질 유해심사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 등 화학물질에 의한 사고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됐다. 그런데 애초 등록대상이었던 연구개발 목적의 화학물질은 등록절차를 면제하기로 했다. 또 안전관리정보 공개대상에서 화학물질의 성분과 함량은 제외됐다.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화학물질 등록 유예기간을 3년으로 정하고 연간 1톤 미만 제조·수입업자에게는 제출자료를 4가지로 간소화했다.

산업시설을 설치할 때 사업장 밖에 끼치는 악영향을 평가해 대책을 마련토록 규정한 장외영향평가제도도 시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구미 불산 누출과 같은 화학사고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겠다며 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제도다. 역시 박 대통령의 공약인 환경오염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도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 정부가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 들여 단서조항을 달아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 유무의 입증 주체를 기업에서 피해 주민으로 뒤바꿨다. 뒤늦게 국회 환경 노동위에서 이 조항을 빼 원안대로 법사위에 넘겼지만 제정을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공산품 안전관리 책임을 기업에 강제하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도 지난해 규제를 완화해 개정됐다. 당초 법령에는 공산품 안전관리를 위반한 업체에 대해 위반 내용을 언론에 공표하도록 정부가 명령할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러나 개정 법률은 공표명령의 범위를 ‘위해(危害) 공산품의 개선·수거·파기명령 등을 받은 사실’로 제한했다. 어떤 제품이 얼마나 유해하고 위험한지 소비자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피명령자의 자유와 명예를 과잉 침해할 소지가 있어서”라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2012년 10월 8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한 주민이 불산(불화수소) 누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포도재배 비닐하우스를 살펴보고 있다.
제품의 리콜 기준도 완화될 전망이다. 산업부가 3월 25일 입법예고한 제품안전기본법 개정안에 따르면 제조사의 제품 리콜 기준이 기존의 ‘중대한 결함’에서 ‘결함으로 인한 중대한 사고’로 변경됐다. 예전에는 사고 위험이 있는 결함이 발견되면 업체가 관계 부처에 즉시 신고하고 제품을 회수하도록 의무화했는데 이를 풀어준 것이다. 법이 개정되면 업체는 제품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한 뒤에 리콜을 해도 된다. 리콜 보고 등 의무사항을 불이행해도 과태료는 고작 500만 원이다. 이 개정안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은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권고 의견만 낼 수 있을 뿐 개선을 강제할 수 없다.


▎4월 20일에는 경기 과천시 별양동 삼성SDS 과천센터에서 불이 나 1주일간 삼성카드 주요 서비스가 중단됐다.
생활 속 안전 규제도 ‘잠금 해제’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규제들도 곳곳에서 없어지거나 완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국토부는 건축법 시행령을 고쳐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을 축소했다. 건축물을 대수선할 때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던 당초 규정을 경미한 대수선의 경우 생략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이 규제는 2010년 1월 12일 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대지진을 계기로 만들어졌는데 4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소방방재청도 국가지진위험지도를 개정해 서울 등 전국 주요 도시의 내진설계 기준을 진도6에서 5.5로 낮췄다. 이 역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한층 강화했던 것을 풀어준 것이다.

소방검사 때 건물주 등에게 주는 사전예고기간을 기존 24시간 전에서 7일 전으로 늘린 것도 편의주의 발상에서 비롯된 규제완화에 속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3월 개정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그동안 전체를 점검하는 방식(전수조사)으로 이뤄졌던 소방검사를 샘플조사 형태인 ‘소방특별조사’로 바꾼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조사방법을 바꾼 뒤 지난해 전체 관리대상 건물 12만3600개 중 실제 조사한 곳은 3만6천여 개에 불과했다. 또 서울시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서울지역 23개 소방서의 검사업무 인력은 최고 절반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박창근 시민환경연구소장(관동대 교수)은 “기업 규제를 풀면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논리”라며 “대형사고를 일으킨 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수단을 마련해 사고를 사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도 안전관련 규제는 유지하거나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4월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에 출석해 “안전과 관련된 규제는 완화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후속조치로 항공부문에 적용되는 안전점검 이력제와 실명제를 철도 등 다른 부문에도 확대 적용하도록 했다.

국토부 감독관이 항공사의 안전규정 준수 여부를 점검할 때 자신의 이름을 적는 제도를 철도와 도로 안전점검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형식상의 조치일 뿐 실제 운영되고 있는 철도의 안전을 근본적으로 보장할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는 철도 분야의 규제완화 조치로 인한 사고 위험이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사고가 난 열차는 올해로 25년째 운행 중인 노후 차량이었다. 2012년 8월 철도안전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퇴역했거나 정비창에서 정밀점검을 받고 있을 수령이다.

법 개정 이전의 열차 내구연한은 고속철도 30년, 일반철도 20년이었다. 정밀진단을 거쳐 5년 단위로 연장하도록 했다. 그런데 법을 개정하면서 내구연한을 폐지했다. 통합진보당에 따르면 서울메트로가 운행 중인 열차 800대(41%)가 내구연한 21년을 넘긴 노후차량이다.

철도운영자의 안전업무 이행실태를 평가하는 종합안전심사제도도 없앴다. 철도종사자의 안전교육 의무조항도 사라졌다. 차량 정비·점검에 있어 의무화되어 있던 조항들이 임의조항으로 완화됐다.


▎3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환경회의 주최로 열린 ‘개발제한구역 용도변경 허용·환경규제완화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환경규제를 완화하는 정부의 정책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안전 투자의 경제효과가 훨씬 더 크다

철도 분야의 규제완화는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철도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열차 무인 운전 시 아예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아도 되도록 풀어준 것은 2010년부터다.

상왕십리역 사고처럼 자동화장치에 이상이 생겼을 때 무인운행열차를 긴급 조작할 수 있는 운전자가 없는 것이다. 신분당선과 의정부경전철, 부산지하철 4호선, 부산김해 경전철, 대구지하철 3호선이 무인운행 중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지하철 8호선을 무인 운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철도·항공분야에서 이뤄진 안전규제 완화 건수가 25건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철도분야만 10건이나 된다. 박 의원은 “규제는 풀어주고 경비절감 명목으로 정비인력을 비정규직화하거나 구조조정을 통해 2000년 이후 10년 간 무려 600여 명을 감축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노후 열차가 늘어나면 정비를 더 자주, 꼼꼼히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비 주기는 늘리고 인력은 줄여 사고 위험만 가중시켰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규제완화 실적 높이기에 골몰하는 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14일 전남 여수산단 대림산업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6명이 숨지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같은 달 충북 청주 하이닉스 공장에서 가스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6월에는 강릉 옥계의 포스코 마그네슘 제련공장에서 최대 250t(강원도 추산)의 페놀이 유출되는 사고도 일어났다.

철도관련 사고는 최근 2개월 사이 12건이나 발생했다. 5월 2일 지하철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 원인은 지하철 특별점검에서 신호기 오작동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8일에는 동인천행 전철이 300m가량 후진하는 역주행 사고가 벌어져 정밀점검을 벌이고 있다.

19일에는 지하철 4호선 금정역에서 전동차 지붕 위에 부착된 전기절연장치가 폭발해 11명이 다쳤다. 안전점검을 소홀히 해 벌어진 사고였다. 이 밖에 부산도시철도 1호선 전동차가 원인 모를 폭발로 선로에 멈춰서 30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운행 중인 지하철 4호선 열차의 출입문이 열리는 아찔한 사고도 발생했다.

안전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한 번 풀어놓은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데 드는 비용 또한 막대하긴 마찬가지다. 따져보면 규제 철폐로 얻는 경제적 이익은 전혀 ‘경제적’이지 않다.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까지 더하면 사회적 손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안전 관련 규제를 푸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사례만 봐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적으로 취소되거나 축소된 행사와 단체여행 등 관광산업 관련 직접 손실액은 570억 원에 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6월 10일 발표한 수치다. 5월 소비심리지수는 8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올해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1382조 원)를 적용하면 1조5천억 원에 이른다.

침몰한 세월호와 배에 실려있던 컨테이너·차량 등 화물 피해비용도 37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선박 인양비용이 최대 4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사고로 파산이 불가피한 청해진해운의 은행 대출잔액은 3740억원이 넘는다. 청해진해운이 파산하면 고스란히 금융권의 손실로 돌아간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명피해는 제쳐두더라도 보험 등 보상액 규모만 1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험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정부가 집계한 전체 손실 비용은 2조원에서 최대 3조원에 이른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에도 직접적인 재산피해만 3753억 원이었다.

선박연령 규제를 다시 강화하기도 쉽지 않은 문제다. 해양수산개발원의 조사 결과, 노후 선박의 교체 비용은 2011년 기준 4383억 원이었다. 2022년에는 1조3028억 원에 이른다. 연간 200억 원의 이익을 얻으려다 수십 배의 비용을 떠안게 된 셈이다.


▎5월 2일 서울 성동구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정차해 있던 전동차를 뒤따르던 전동차가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해 승객 23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사고는 오류가 발생한 신호기를 제때 점검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관성 없는 규제정책 “약탈의 도구로 전락”

열차사고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노후 열차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메트로가 운행 중인 내구연한 21년 이상 노후 차량은 800여 대로 보유차량의 절반에 가깝다. 차량 1대를 교체하는 데 약 130억 원이 든다. 전체 노후 차량을 교체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약 10조 원이 소요된다.

서울시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는 “눈앞의 이익이 되지 않는 규제를 무조건 낭비로 보는 사회적 시각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미국 예산당국은 안전에 대한 투자가 10년 후 16배의 경제적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안전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한 전 정권부터 이어져온 규제완화 정책의 기조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그동안 규제완화의 명분으로 경제 활성화를 내세웠지만 앞으로는 경제영역에 속하는 규제라 해도 안전문제와 조금만 관련성이 있어도 국회와 여론을 설득하기 어렵게 됐다”며 “오히려 규제가 이전보다 더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들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규제정책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걱정한다. 지난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규제개혁이 실패하는 5대 요인’ 보고서는 기업의 이런 시각을 대변한다. 보고서는 “사회적 관심이 쏠린 사건사고에 대한 대안이 사고 원인과 무관한 규제 도입으로 결론 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를 ‘규제 도입식 사건해결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김도훈 한국규제학회 회장은 최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규제 집행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규제만 만드는 것은 더 무책임한 일”이라며 “사회적 흥분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규제들은 반드시 다른 부작용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의 말대로 규제만능주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규제는 대상자의 자율적 통제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사용하는 마지막 처방이어야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중견기업 이사는 “규제정책이 기업을 재물로 삼는 약탈의 도구로 쓰일 때가 많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기업을 길들이기 위해 규제 정책을 활용한다. 규제를 풀어주는 대가로 투자나 고용 확대를 요구하는 식이다. 심지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거래 조건으로 내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비용이 드는 규제를 벗어나려고 정치권력과 거래하는 기업의 모습도 문제지만 이런 자본의 속성을 알면서 규제 정책을 거래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권력도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고가 터지고 여론이 나빠지면 정부와 정치권은 비난의 화살을 기업으로 돌려버린다. 그러곤 규제를 앞세워 기업에 책임을 떠넘긴다. 법치의 탈을 쓴 약탈의 도구가 아니고 뭔가?”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규제가 자본의 도덕성을 지키는 최후 보루가 될 수 있을까?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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