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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포커스 - 실패로 끝난 ‘박영선의 난’ 막전막후 

‘콩가루당’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탈당설로 홍역 치러… 강경파가 당권 장악하면 집단탈당으로 정계개편 가능성도 

새누리당의 집권에 기여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제 1야당을 혁신해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외연 확장을 기도했던 ‘박영선의 우클릭 봉기’가 결국 실패로 끝났다. ‘40일 천하’로 끝난 박영선의 정치실험 실패 스토리를 되짚어봤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세월호정국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결국 국민공감혁신위원장 자리를 내놓기로 했다.

‘벼락스타’는 몰락도 빠른 것일까? 박영선(54)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세월호정국의 높은 파도를 넘지 못하고 비대위원장인 국민공감혁신위원장 자리를 내놓기로 했다. 원내대표는 9월 14일 언론을 통해 “떠나가라고 하는 것 같고 나를 죽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쫓겨나는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퇴진을 기정사실화했다.

박영선 원내대표의 몰락은 이상돈(63) 중앙대 명예 교수 영입 파동이 결정타가 됐다. 두 차례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뒤 의원총회를 통해 강경노선으로 선회해 실낱 같은 명줄을 이어가던 박 원내대표는 9월 11일 ‘이상돈 영입’ 카드로 대반전을 노렸다. 하지만 “적장의 참모 출신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할 수는 없다”라는 당내 초·재선 의원 그룹의 거센 반대와 고질적인 계파주의를 극복하지 못해 개혁의 동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말았다.

두 차례의 세월호법 협상 실패 이후 3번째 실책으로 ‘삼진아웃’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박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체의원130명 가운데 80여 명이 이상돈 교수의 영입에 반대하고, 박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소장파 의원들의 연판장이 돌면서 박 위원장 본인의 말대로 ‘내쫓기듯’ 물러나게 됐다. 8월 5일 비대위원장직을 받아들이면서 “독배를 마시라니 마시고 죽겠다”고 한 말이 불과 40일 만에 현실로 닥친 셈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 논란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박영선 탈당 부도수표 아니다?

하지만 박영선은 역시 박영선이었다. 본래 ‘파이터’ 체질인 그는 자신을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혀 놓고는 ‘부하직원 부리듯 해온’ 몇몇 계파 수장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는지 탈당설로 당을 발칵 뒤집어놓은 뒤 3일간이나 잠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현재 과도기 비상체제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원톱’이다. 당 대표격인 비대위원장의 ‘탈당’이 현실화되면 새정치민주연합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초유의 사태다.

박 원내대표를 파트너로 삼아 대화를 해온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대화의 맞상대가 언질도 없이 사라지는 황당한 상황이다. 제1야당의 존립을 뒤흔드는 핵폭탄이 터지자 새정치민주연합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이번 사태는 박 원내대표의 멘토 역할을 해온 박지원 의원조차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가히 민주당의 60년 역사에서 ‘박영선의 난(亂)’으로 불릴 만하다.

박 원내대표의 ‘탈당설’과 칩거에 대해 당내 분위기는 두 가지로 갈린다.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나온 말”이라는 시각, 또하나는 “오래전부터 탈당을 결심했다”는 시각이다.

사태 초기에 박 원내대표의 이상돈 교수 영입제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정동영 상임고문은 언론을 통해 “지금 박 대표가 몰려 있는 상황이 감정적으로는 억울할 것이고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와 친분이 깊은 박지원 의원도 같은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 중진들은 조정식 사무총장, 박범계 원내대변인을 통해 박 원내대표의 탈당을 만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의 측근들은 한번 결심하면 여간해서는 고집을 꺾지 않는 박 원내대표의 정치 성향에 비춰볼 때 그의 사퇴와 ‘탈당’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다른 중진들의 견해와는 다른 해석을 하기도 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탈당을 실제로 감행할 경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야당발 정계개편을 촉발시키는 뇌관이 될 것으로 본다. 박 원내대표는 “살아남기는커녕 쫓겨나는 상황에서 정치적 장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조경태·황주홍 의원 등 ‘민주당 집권을 준비하는 의원 모임’ 등 중도파 의원 10여 명은 최근 당내 주류인사들 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왔다.

야당발(發) 정계개편 신호탄 가능성도

특히 이들 중도파와 몇몇 중진의원은 당의 대주주격인 친노계와 486세력 등 강경파 의원들과 국회 등원을 놓고 의원총회장에서 한바탕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중진의원과 초·재선 의원들 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계파별로 이해관계를 달리할 경우 ‘도로 민주당’과 ‘중도정당’으로 갈라서는 분당(分黨)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이른바 야당발 정계개편의 시작이다. 이상돈 교수는 이와관련해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태동해 저를 필요로 한다면 힘을 보탤 수 있다”며 “(분당하면) 야당에서 20여 명 의원은 충분히 나설 것으로 본다”고 예견한 바 있다.

정치권에 이렇게 대격변이 일게 되면 강경파에 장악된 제1야당 때문에 그동안 정국경색을 감수하며 속을 끓여온 새누리당이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각 계파 수장이 공멸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바지사장’격인 비대위원장을 다시 선출해 사태를 ‘봉합’하는 선에서 시간벌기에 나설 가능성이더 높다. 개혁과 혁신은 사라지고 각 계파끼리 내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당권 다툼이 시작되는 셈이다. 비대위 체제가 12월에 끝나면 1월에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2016년 총선의 공천권을 쥐게 될 당 대표를 선출하게 된다. 벌써부터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박지원 의원, 정세균 의원, 추미애 의원 등이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중진들은 당 초유의 ‘박영선 파동’과 관련해 우선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새 비대위원장을 추천받고 이를 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자격으로 임명한 후 사퇴하는 방식의 수습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야 당헌당규상 정통성 시비가 없게 된다고 한다. 박 대표의 원내대표직 사퇴는 세월호특별법과 관련된 협상 문제를 마무리지은뒤 사퇴하도록 권유한다는 방침이다. 정동영 고문도 “박 원내대표가 이미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나 박 대표가 정치를 그만두지 않는 것 이라면 마지막까지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 원내대표는 언론을 통해 “지금 탈당하면 당이 공중에 떠버리는 것이니 내 책임은 다하려고 한다. 내가 탈당을 언급했으니 중진들이든, 나를 내쫓으려 하는 초·재선의원들이든 그들이 비대위원장 후보를 물색하면 그때 그분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나갈까 한다”고 말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왜 지난 10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동료 의원들과 결별까지 생각했을까? 박 원내대표는 8월 5일 국민혁신공감위회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투쟁정당에서 탈피해 생활정치로 전환하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보였다. 하지만 혁신비대위로 출발한 그의 정치실험은 시작조차 못해본 채 ‘40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표면적으로는 뿌리깊은 당의 계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의 개혁안이 좌절되자 당의 미래에 근본적인 회의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는 게 당내 사정에 밝은 이들의 해석이다. 박 원내대표와 자주 속내를 이야기해온 몇몇 의원은 “끊임없이 자신을 흔들어대는 몇몇 계파 중진, 그리고 자신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의원들과는 더 이상 정치활동을 같이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에 환멸을 느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에서 계파 수장들이 얼마나 지도부를 흔드는 지를 경험한 박 원내대표가 ‘도와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계파 수장들의 그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정치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계파 장악력 부실 드러나

또 다른 이들은 박 원내대표가 강성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온건 타협을 지향하는 중도성향이 강해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경파 세력과 섞이기 어려웠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 원내대표는 9월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강하게 싸우는 이미지만 알려졌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의회주의자이며 협상론자다. 지난 10년간 경제정의와 사법정의 등 대한민국의 정의와 관련된 법안을 많이 통과시켰다”며 자신을 강경 이미지로만 보는 시각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는 9월 14일 밤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도부 흔들기를 마치 부하직원 다루듯이 하는 당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정치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없어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고 말해 오래전부터 당내 계파정치에 크게 실망해 왔다는 것을 내비쳤다. 박 원내대표는 또 “안경환-이상돈 명예교수만큼 정당과 정치개혁에 대한 식견과 소신을 갖고 있는 분이 없는데, 그런 분들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얼마나 폐쇄적이냐”며 “문재인 의원이 말한 것처럼 새정치연합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는 중도적이거나 보수 개혁적인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그들로 하여금 당과 정치를 혁신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우리 당의 문을 두드리겠느냐?”는 비관적인말을 했다.


박영선 원내대표(가운데)는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마무리 지은 뒤 퇴진할 결심을 굳혔다.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이상돈 교수 영입을 둘러싼 내막도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갈 공산이 커 보인다. 우선, 박 원내대표가 이 교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당내 최대주주로서 친노계 수장인 문재인 의원과 상의해 동의를 구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문 의원이 “안경환-이상돈 두 교수님께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라며 트위터를 통해 공식 사과할 정도로 문 의원 본인이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다.

박 원내대표 의견수렴·소통부족 지적도

하지만 문 의원 측 친노계 인사들은 “이 교수를 비대위원장이 아닌 비대위원 가운데 한 명으로 영입하는 줄 알았다”라며 발을 빼는 듯한 말로 박 원내대표 측을 자극했다. 박 원내대표 측 인사들에 따르면, 평소 박 원내대표와 가까웠던 김한길 전 대표나 박지원 의원 등에게도 사전에 이 교수 영입에 대한 언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노계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이 광화문에서 단식하다 국회 기자실로 달려와 이상돈 교수 영입반대를 주장하고 초·재선의원 그룹과 소장파 의원들이 벌떼처럼 나서 반대하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사전 논의가 없었다’, ‘박영선 원내대표의 일방적 결정이었다’는 식으로 모든 비난의 화살이 박 원내대표에게 쏠렸다. 박 원내대표가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런 상황에 대해 크게 상처받았다는 것이 박범계 원내대변인 등 박 원내대표 측근인사들의 전언이다.


친노계의 수장 문재인 의원은 이상돈 교수 영입과 관련한 진실게임 논란으로 타격을 입게 됐다.
박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제안을 수락했던 이상돈 교수도 박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자신의 영입을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제안을 수락한 9월 10일 상황에 대해 “문재인 의원의 의사가 어떤지 직접 전화통화로 확인도 했고, 또 다른 중진의원하고도 제가 통화해서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박 원내대표가 ‘교수님, 이건 운명으로 아세요’ 이렇게까지 말했다”며 문재인 의원 등 중진들과 사전협의가 있었다고 했다.

이상돈 교수는 그런데도 자신의 영입이 불발된 데 대해 “문재인 의원도 자기 생각을 자신을 따르는 초·재선 의원에게 충분히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본인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짐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가 문재인 의원 등 몇몇 계파 수장과 합의를 거쳤던 ‘이상돈 영입’의 상세한 내막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 측이 만약 그 진상을 100% 공개하면 문재인 의원도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원내대표의 측근 인사들은 “세월호 특별법 2차 여야합의안 도출 과정에서도 몇몇 계파 수장과 사전협의가 있었다”는 입장이어서 이들에 의해 당시의 진상이 폭로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더 커질 수 있다. 실제 박 원내대표 측한 인사는 일부 언론에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을 공개하는게 좋을지를 고민 중이다. 모두 공개할 경우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당내 중진들이 어떻게 비겁한 모습을 보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박 원내대표가 혼자 물러나는 선에서 봉합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박 원내대표가 강경파 세력의 끊임없는 흔들기에 자신이 당했다고 원망할 수 있지만 박 원내대표 또한 당내 여러 계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소통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이상돈 교수의 영입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의원이나 중도파 의원 쪽에서는 혁신과 외연 확장에 상당한 공감대가 있었지만 초·재선 그룹에 대한 사전 설득이 부족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렇게 계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며 헛발질을 하는 사이에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당내 보수혁신특별위원장으로 내정하는 등 혁신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리멸렬한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김 대표가 당내 유력한 대선후보 경쟁자인 김 전 지사를 전격 발탁한 것은 “무대(무성대장)다운 통 큰 행보”라는 지지지자들의 박수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라는 정치권의 빅 이벤트를 향해 경주가 시작된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번 내홍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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