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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 ‘한류’에 기죽지 않는 일본 걸그룹의 별난 세계 

빼어난 외모·춤·노래보다는 개개인의 감동적 스토리와 친근한 이미지로 인기몰이… ‘집단 내 치열한 경쟁’ 작동하는 걸그룹 AKB48은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집단 논리의 상징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2년 6월에 치러진 AKB48 총선거 현장. 팬들의 투표에 의해 순위가 결정되는 AKB48 총선거는 멤버 간 상하우열을 분명히 가리는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 사진·뉴시스

‘검은 고양이 네로’. 유년기를 생각할 때 반드시 떠오르는 노래 중 하나다. 1970년, 여섯 살의 박혜령이 나와 부른 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곡이다. 당시 여덟 살이던 필자는 두 살 어린 박혜령의 노래를 들으며 묘한 경쟁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막 구입한 금성 텔레비전에서 울려퍼지는 앙증맞은 목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나도 박혜령처럼 ‘스타’가 되겠다는 전의(戰意)를 불태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박혜령의 노래는 이웃 일본에서 1년 전에 히트한 곡을 편곡한 것이었다. 1969년 당시 6세 남아인 미나카와 오사무(皆川おさむ)가 부른 ‘검은 고양이 탱고(黒ネコのタンゴ)’를 들여와 손을 봤다.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 상륙한다. 한·일 두 나라에서 빅히트를 쳤지만, 사실 검은 고양이의 원조는 아시아와 무관하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1969년 볼로냐에서 열린 유럽 동요 콘테스트에서 3위를 차지한 곡이다. 1964년생으로, 당시 5세의 여자 어린이 크리스티나 다베나(Cristina D’Avena)가 불렀다. 원래 제목은 ‘검은 고양이가 갖고 싶었어(Volevo un gatto nero)’다. 친구가 검은 고양이를 준다고 해서 악어를 선물로 줬는데 흰고양이를 받아 화가 난다면서, 다시는 친구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주된 내용이다. 멜로디는 똑같다.

유튜브에 들어가 45년 전 당시 동요 콘테스트를 살펴봤다. 한국·일본 두 어린이 모두 원조에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린 목소리에서부터 어린이 특유의 진지한 표정, 무대 위에 똑바로 선 채 별다른 동작 없이 노래에 집중하는 모습까지도 크리스티나와 똑같다. 일본과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국동맹 관계에 있던 나라다. 이탈리아 사정에 밝았기에 동요 대회의 3위 곡을 찾아내 일본에 데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은 외국 대중문화의 거의 대부분을 일본을 통해 알아냈다. 바다 건너 부산에서 볼 수 있는 일본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고양이 네로를 접했을 듯하다. 나중에 박혜령은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미나카와와 함께 검은 고양이를 부르기도 했다. 고양이 네로는 이탈리아·일본·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히트곡으로 불려졌다. 핀란드·프랑스·덴마크는 일본을 원조라 착각해 이탈리아 원곡에는 없는 ‘탱고’라는 말을 넣은 가사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1 1969년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검은 고양이 탱고’를 부르는 당시 6세의 미나카와 오사무. 2 한국에서는 ‘검은 고양이 네로’로 편곡돼 큰 인기를 누렸다. ‘검은 고양이 네로’를 부른 박혜령(왼쪽)은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 미나카와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검은 고양이 네로’와 1970년 일본의 번영

일본 역사가들은 ‘검은 고양이 탱고’가 인기 정상에 오른 1970년을 특별한 연대로 규정한다. 패전의식에서 해방된 원년(元年)이다. 300만에 이르는 태평양전쟁 전사자, 그 가족들과 주변의 모든 일본인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검은고양이와 함께 전부 사라졌다고 해석한다. 애완동물을 주제로 한 어린이 노래를 통해 시대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검은 고양이 탱고와 함께 도래한 것이다.

발표 1년 뒤인 1970년 ‘검은 고양이 탱고’는 그해 최고의 곡으로 선정된다. 같은 시기 맥도날드 1호점이 도쿄(東京) 긴자(銀座)에 들어서고 일본인 등산가가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선다. 6500만 명이 참관한 오사카(大阪)만국박람회가 열리고 일본 독자기술에 의한 인공위성이 떠오른다.

미국이 월남전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던 시기, 일본은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선다. 탱고 리듬의 멜로디와 네로 고양이의 간지러운 비명과 함께,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이른바 고도성장기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어제의 국가적 위신을 되찾은 데 이어, 1970년부터는 태평양전쟁 이전의 국력을 회복한 나라로 변해간다. 고양이 네로는 바로 그 같은 전환기를 상징하는 희망의 팡파르다.

6세 어린이를 내세운 고양이 네로가 1970년 일본의 얼굴이라고 할 때 2014년 일본을 상징하는 가수와 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AKB48이다. 일본 최고의 흥행가수·연기자·방송인·모델, 심지어 사회평론가에 이르는 전천후 엔터테이너로 활동하는 AKB48과 노래들이 2014년 일본의 얼굴, 아니 가슴에 해당된다.

2014년 현재 AKB48은 일본의 국민적 아이돌이다. 이름에서 보듯 48명이 한꺼번에 등장해 노래와 춤을 제공한다. 10대 말과 20대 초반으로 이뤄진 여성 아이돌 그룹이다. 한국에도 간헐적으로 알려졌지만, 2005년 전자기기의 메카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 전자상가에서 탄생된 이래, 무려 9년간 부동의 인기를 유지한다. 음악·비디오·드라마 등 AKB48과 관련된 제품이나 작품은 시장에 나오는 즉시 밀리언셀러로 떠오른다. 팬은 10대·20대만이 아니라 어린이·장년·노년 등 남녀노소 구분 없이 광범위하다. 명실상부한 일본의 국민아이돌이다.

AKB48이 2014년 일본을 대표하는 연예계의 아이콘인 이유는 인기 측면에 그치는 게 아니다. AKB48을 둘러싼 모든 스토리가 일본의 현황을 알려주는 증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970년 검은 고양이 탱고는 태평양전쟁과 무관한 전후(戰後) 출생 어린이를 통해 이뤄졌다. 노래 자체가 동요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희망을 앞세운다. 미래의 주역 어린이와 함께 고도성장기로 접어든다. 6세 어린이가 1970년의 일본이고, 고도성장기에 접어드는 일본의 모습이 검은 고양이 노래 가락에 투영돼 있다.

마찬가지로 2014년 가을의 일본은 AKB48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아베노믹스와 집단적 자위권을 앞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본을 바로 AKB48을 통해 분석해낼 수 있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나타난 일본의 새로운 결의가 AKB48노래 가사 속에 배어 있다. 부연하자면, ‘AKB48=2014년 일본’이란 의미이다.




AKB48 문화는 다른 비즈니스에도 많이 통용된다. 대형 브로마이드 모델로 등장한 AKB48 멤버들. / 사진·유민호
군대 조직원처럼 일사불란한 AKB48

‘AKB48=2014년 일본’이 되는 근거는 먼저 집단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48명을 앞세운 그룹은 없다. 대형 음악회나 그랜드 오페라의 합창단을 제외할 경우 48명 여성을 앞세운 엔터테인먼트는 전무하다. 48명 여성을 한군데에 모아서 춤추고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연예프로덕션 자체가 없을 듯하다.

48명을 관리할 사람과 그들의 스케줄을 분 단위로 쪼개면서 활동시켜 나갈 발빠른 흥행사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노래와 춤만이 아니다. 헤어스타일을 다듬고, 의상을 맞추고, 화보도 만들어내야 한다. IT시대를 맞아 블로그와 트위터도 팬들에게 선보여야만 한다. 그같은 모든 결과와 과정을 총체적으로 지휘하고 평가할 프로덕션이 과연 있을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곳은 역시 AKB48 멤버 개개인이다. AKB48에 들어가는 순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로 움직인다. 예외가 없다. 48명 멤버는 군인도 아닌,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고등학생·대학생들이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나 피치 못할 이유로 연습이나 공연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늦잠을 자거나, 몸이 아프다고 말하면서 48명 스케줄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할 수도 있다.

필자가 아는 한 그 같은 잡음은 거의 없다. 항상 꿈에 부풀어 있을 젊은 여성들이지만, 마치 군대조직원처럼 빈틈없이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다른 나라가 따라잡기 어려운 일본만의 행동이자, 2014년 현재 일본의 마음상태를 증명하는 본보기다.

집단적 자위권은 아베가 추진하는 군사팽창의 근간이다. 자위권이란 명분 하에,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전 세계 어떤 전쟁에도 참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집단을 통한 문제 해결은 일본이 자랑하고 미덕으로 여기는 가치관이다. 엔터테이너 아이돌까지 48명으로 만들어내고, 무리 없이 돌아가는 나라가 일본이다.

20세기 말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내 소장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미덕인 종신고용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잃어버린 20년’은 바로 그 같은 종신고용제의 비능률적인 부분이 만들어낸, ‘이미 예상된 결과’라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당시 유행한, 이른바 신자유주의 개념의 시장논리가 일본의 새로운 경영가치로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 약육강식에 근거한, 승자승(勝者勝)원칙에 의한 고용제도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우편업무가 급감하면서 우편 관련 조직과 인원을 대폭 삭감한다. 이른바 우정성(郵政省) 개혁이다. 종신고용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고이즈미를 비난한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철밥통에 매달릴수록 그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된다. 승자승 원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득권 파괴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근간으로 한, 생존을 전제로 한집단의식에 찬성한다. 아예 집단을 박차고 나가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가치관도 나타난다. 분명한 것은, 전체적으로 볼때 종신고용제는 더 이상 대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돌그룹 AKB48이 종신고용제 논란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 듯하다. 하지만 아주 깊다. 이유는 AKB48 자체가 종신고용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AKB48 총선거를 통한 순위결정이 바로 주인공이다. 일본 정치판의 총선거보다 한층 더 국민적 관심이 높다는 AKB48 총선거가 바로 종신고용제에 반대하는 승자승,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나고야(名古屋)의 SKE48, 후쿠오카(福岡) HKT48을 비롯해, 일본 내에 5개 AKB 사무소가 있다. 도쿄의 AKB48 멤버 가운데 일부가 현지에 가서 함께 공연하거나, 반대로 지방의 아이돌이 도쿄 AKB48에 픽업되기도 한다. 2011년부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JKT48, 중국 상하이(上海)에 SNH48, 타이완(臺灣)에 TPE48을 결성해 현지인 아이돌을 통한 범아시아 AKB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최소한 300명 이상이 활동하는, 탈국적 AKB48 그룹이 일본 최고 인기 아이돌의 현주소다. 총선거는 이들 300여 명의 멤버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진다.

총선거는 300명의 등수를 매기는 이벤트다. 매년 다르지만, 올해는 1위부터 80위까지 발표됐다. 총선거 방법은 300여 AKB48 멤버 각각에 대한 팬들의 성원을 기초로 이뤄진다. AKB48 그룹이 발매한 1천 엔짜리 카드를 구입한 뒤 좋아하는 아이돌을 인터넷을 통해 알리면 한 표로 계산된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카드 수백 장씩 구입하는 팬도 있다. 총선거 현장에 직접 참석한 사람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AKB48 총선은 매년 초여름에 치러진다. 2009년 처음으로 열린 이래 매년 가 생중계로 전국에 방송하는 국민 이벤트다. AKB48은 지방에 분점을 두는 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AKB48 총선거 생중계 장면. 소감을 발표하는 도중 대부분의 아이돌은 눈물을 흘린다. / 사진·유민호
국회의원 선거 능가하는 AKB48 총선거 열풍

전후 일본은 이른바 유도리(ゆとり) 교육을 배움의 왕도(王道)로 받아들였다. 1945년 이전까지 이뤄졌던, 천황의 신민으로서의 파시즘 교육을 전면 부정한 것이 전후 일본교육의 골격이다. 최대 규모의 강성노조인 일본교직원노동조합(日敎組)은 국가·국민 개념을 죄악시하는 유도리 교육의 총사령탑이다.

제국주의를 대신해, 반미·반핵·평화운동과 같은 사회주의적 이념이 유도리 교육을 파고 든다. 인성교육이란 명목 하에 학습시간을 줄이고, 학습내용도 단순화한다. 시험과목과 시간을 줄이고, 시험내용도 간단하게 만들며, 시험결과도 절대평가제를 채택한다. 한국에서 3.14로 가르치는 원주률은 일본에서는 3으로 고정된다. 어린이들을 수학으로 골치 아프게 하기보다, 간단히 3으로 처리해서 알기 쉽게 가르치자는 방안이다. ‘수우미양가’를 일정 비율로 나누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누구라도 수를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 상하우열이 없는 ‘평등한’ 교육을 넘어서 모두가 1등인 꿈같은 현실이 일본전역에 퍼져나간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다. 모두 1등이기는 한데 바닥을 기는 하향평준화이기 때문이다. 일본 학생들의 학력저하가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교조의 파워가 정점에 달했던 1980년대 말 구구단도 못 외우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 70% 정도에 달한다. 1980년대 말 한국에 들어온 참교육은 바로 일교조의 재판(再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한국에 들어온 공산주의·사회주의 운동의 원류가 일본이듯, 1980년대 이래 지금까지 풍미한 참교육 이념의 원조도 바로 일본에 있다.

생방송으로 전해지는 AKB48 총선거는 상하우열을 분명히 가려 일본인 모두에게 보여주는, 약육강식의 ‘롤모델’에 해당된다. 1등과 80등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1등으로 선발된 아이돌은 이후 항상 무대의 중간에 선다. 인터뷰도 독차지하고,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 역할을 맡는다. 광고 출연료도 순위가 높을수록 올라간다. 순위가 낮으면 자진 사퇴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오직 순위에 오른 아이돌만이 1년 내내 살아남을 수 있다. 총선거는 1등에게는 박수를, 패자에게는 내일의 설욕을 요구하는 이벤트다. 모두 1등으로 인정하는 일교조 스타일의 주관적 평가가 아닌, 팬들의 투표에 의한 디지털 결과가 순위를 결정한다. 패자 입장에서 뭐라고 핑계를 댈 수가 없다.

올해 총선거 결과, 1위는 15만 9854표를 얻은 20세의 와타나베 마유(渡辺麻友)다. 지난해 1위였던 사시하라 리노(指原莉乃)의 14만 1954표보다 1만7천 표 가까운 표차로 1위에 올랐다. 두 사람을 본 한국인이라면 왜 저런 정도의 아이돌이 최고 정상에 오르는지 궁금해 할 듯하다. 한국에 알려진 스타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일단 신장을 보자. 와타나베가 154㎝, 사시하라가 159㎝에 불과하다. AKB48가운데 신장이 160㎝ 이상인 인물은 극히 드물다.


AKB48은 에도시대의 유곽에서 착안됐다는 평가도 있다. 절대 개인적인 얘기를 하지 않고, 오직 손님의 취향에 맞춰 생활하는 인간형을 떠올리게 한다. / 사진·유민호
세계 아이돌 가운데 가장 키가 작다. 외모를 보면, 귀엽기는 하지만 미인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의 눈에 ‘확’ 드러나는 휘황찬란한 외모와 무관하다.

현재 AKB48 출신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인물은 오시마 유코(大島優子)다. 총선거 2회와 4회에서 1위를 차지한 아이돌로, 올해 AKB48을 졸업했다. 신장 151㎝로 한국 중학생 정도의 신장에다, 얼굴도 고만고만하다. 워낙 작기 때문에 몸매를 따지고 할 것도 없다. 노래 실력은 어떨까? 고음은 불안하고 저음은 아예 없다. 민낯으로 반주 없이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를 경우, 전국노래자랑에서라면 10초 만에 땡 소리가 울릴 수준이다. 춤도 마찬가지다. 한국 걸그룹에 비하면 중학생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체구·외모·노래·춤 모두가 한국에 비해 절대열세다.

필자는 3시간 이상 이뤄진 올해 총선거를 끝까지 지켜봤다. 아이돌의 발랄한 모습이나, 재미 때문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으로서의 깊은 감동이 총선거 전체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형식으로 이뤄지는 80명 당선자를 둘러싼 얘기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모든 아이돌 하나하나에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감동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최선과 노력’ 그리고 선‘ 후배’로 압축된다.

총선거에서 몇 위를 했다는 얘기도 중요하지만 ‘과연 스스로에게 최선과 노력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자문하는 것이 총선거의 하이라이트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정도 순위밖에 못 지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라는 것이 이들 맴버의 반응이다. 앞으로 한층 더 노력해서 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는 얘기가 계속된다. ‘선후배’에 관한 얘기는 최선·노력에 이어 등장하는 얘기다.

무대에 오른 80명 아이돌이 빼놓지 않고 전하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2년 차 선배가 여러모로 도와줬다. 선배보다 내가 상위에 올라간 것이 미안하다. 그렇지만, 선배도 내가 더 높은 순위에 올라가기를 바랄 것이다.”, “후배들에게 더 좋은 본보기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높은 순위에 올라가야만 한다고 믿어왔다. AKB48은 과거에 매달리는 정체된 조직이 아니다. 새롭고 알찬 곳이 아니라면 후배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을 지향

AKB48은 한국의 걸그룹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앞서 살펴봤듯이 재능과 외모로 볼 때, AKB48은 한국 아이돌의 상대가 못 된다. 그러나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결의,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 대한 자세는 한국과 크게 다르다. AKB48을 만든 인물은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다. 1958년생으로 작사가·극작가·영화감독·만화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현재 일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경영자다.

AKB48을 둘러싼 아이디어·운영방식·방향 심지어 노래·작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다.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이란 새로운 개념의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개척한 것도 아키모토다. 1960년대 방송작가로 이름을 떨친 아쿠유우(阿久悠)가 남긴 ‘명언’은 AKB48 탄생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스타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손에 잡을 수 있는 높은 산의 꽃이 되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옆집의 여동생 같은 존재가 되거나다.” 아키모토는 손에 잡히지 않는 옆집 여동생을 손에 잡히도록 만든 연출가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스타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여동생을 아이돌로 만들어 AKB48에 집어넣는다. 아이돌 면접 때 1등이 아닌, 2등을 우선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옆집의 여동생이란 말은 누가 봐도 평범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만한 존재란 의미다.

아키모토는 최근까지 일본을 강타한, 걸그룹 중심의 한류(韓流)를 AKB48과 비교해 설명한 적이 있다. “한류 걸그룹들이 무대에 서기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높게 평가한다. 미인에다 팬들에게 최고의 상품을 선사하겠다는 엔터테이너로서의 프로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AKB48은 한류와 다른 식으로 접근한다. 여리고 어리지만, 성장하고 매일 발전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 AKB48은 완제품은 아니다. 그러나 팬들의 관심과 성원 하에 정지하지 않고 매일 변해가는 것이 AKB48의 매력이다.”

필자는 아키모토가 말하는 한류와 AKB48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봤다. 유튜브 속에서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카라 등을 찾아내 AKB48 공연과 비교해봤다.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의 걸그룹은 휘황찬란한 북극성이나 북두칠성 같은 스타들이다. 박력이 넘치고 뭔가 강렬한 느낌이 온몸에 와 닿는다.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허리케인 엔터테인먼트다. 멤버들의 강렬한 눈빛에 압도될 정도다. 팬은 그냥 앉아서 최상품의 노래와 춤을 받아들이면 된다. 거꾸로 말하자면, 팬이 직접 나서서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에 비해 AKB48은 박력이나 대박과 무관하다. 목숨은커녕, 사랑한다는 표현도 하지 않는 밋밋한 연애다. 클라이맥스는 물론 하이라이트도 없다. 앞서 강조했듯이,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과는 상대가 안 된다. 그러나 AKB48은 한국에 없는 다른 요소가 시종일관 드리워져 있다. 잔잔한 스토리다. 한류 걸그룹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미모·춤·노래로 승부를 본다.

AKB48은 다르다. 미모·춤·노래는 엔터테인먼트 가운데 일부일 뿐, 다른 부분도 팬들에게 보여주면서 인기를 유지해나간다. 개개인의 소소한 얘기와 삶을 대하는 자세, 미래에 대한 꿈같은 것을 팬들과 나누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AKB48 멤버의 공통분모에 해당된다. 못생기고 키가 작기 때문에 아예 무시되고 탈락하는 것이 아니라, 불리한 배경과 환경 속에서도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AKB48은 9년간 활동을 통해 전부 450여 곡을 발표했다(2014년 1월 기준). 1년 평균 50곡 정도로 발표한 셈이다. 이가운데 싱글 밀리언셀러는 약 30곡에 이른다. 곡이나 춤도 중요하지만, 아키모토가 직접 만드는 시의 적절하고 가슴을 움직이는 가사가 밀리언셀러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AKB48의 노래를 듣는 것 하나만으로도 현재의 일본인의 마음가짐은 물론, 곧 닥칠 일본의 모습을 감지해낼 수 있다.




일본 주점의 도우미들도 AKB48을 모방한 경쟁시스템을 도입·운영한다. 손님이 많이 찾는 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 / 사진·유민호
너무 완벽하기에 다가서기 어려운 한류

아키모토는 아베의 정치성향에 호감을 보이는 인물이다. 직접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지만, 일본이 근본적으로 변해야만 한다는 점에 찬성한다. 아베는 아키모토를 통해 AKB48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2013년 10월에는 아베가 직접 아키모토 집에 들어 함께 식사를 하며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문화심의회의 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은 물론, 2020년 도쿄올림픽 위원회 이사로도 발탁된다.

일본인들은 아키모토의 친(親)아베 성향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AKB48이 일본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베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상승하는 한, 아베노믹스가 실패로 끝나지 않는 한, 그 같은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베에 대한 지지율=AKB48의 인기=아키모토의 성공’이라 볼 수 있다.

빨리빨리와 대박, 나아가 ‘올인(All in)’에 열광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이런 세계관으로 보면, AKB48는 아무런 화젯거리가 못 된다. 한국인이 보면 AKB48은 볼거리가 별로 없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일본은 어떨까? 소녀시대·카라를 통해 한국인의 내면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 된다. 한류 걸그룹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나름대로 내린 상태다.

놀랍지 않은가? 아이돌 그룹을 대하는 한일 양국의 입장차는 상대 나라를 보는 두 나라의 상이한 자세나 입장과 너무도 닮았다. 아베를 이해하려면, 3·11 대지진 이후 3년 만에 벌떡 일어선 일본을 살펴보려면, 중국의 위협이 강해질수록 한층 더 하나로 결속하는 일본인을 관찰하려면? AKB48 아이돌에 빠져 보는 것도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듯하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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