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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 ‘가정연합’ 한일해저터널 쓰시마에서 첫삽 - “한일해저터널은 세계평화 출발점이자 아시아 통합의 상징” 

한국 쪽 첫 사갱기지 쓰시마 기공식 열려… 가정연합, 문선명 총재의 유업으로 ‘공사재개’ 선언 

일본 나고야·쓰시마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문선명·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제안한 ‘한일 해저터널’ 사업 추진이 재개된다.
가정연합은 일본 규슈 사가현의 가라쓰(唐津)에 이어 쓰시마(對馬島)에서 해저터널공사를 위한 조사사갱 착공식을 가졌다. 쓰시마의 조사사갱은 한국 쪽으로 향하는 한일해저터널의 출발점이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한·일 양국에서 찬반논리에 부딪혀 지지부진했던 한일해저터널 사업은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제안한 ‘한일해저터널’ 사업 추진이 재개된다. 한·일 양국의 이해를 이끌어내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은 공사가 진행 중인 일본 사가현 가라쓰에 있는 나고야 조사사갱 내부.

일본 쓰시마의 아레(阿連) 마을은 쓰시마 공항에서 자동차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1시간 남짓 달려야 도착하는 벽촌이다. 이곳은 일본 본토보다 오히려 한국이 가까워 맑은날에는 부산이 선명히 보일 정도다. 9월 11일 오전 9시 이 마을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가정연합)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한일해저터널 공사의 재개를 알리는 ‘쓰시마 조사사갱(調査斜坑) 기공식’이다.

이 행사에는 국제하이웨이재단 도쿠노 에이지 회장과 오오에 마스오 이사장, 윤정로 한국 UPF 회장, 김동욱 전 국회의원, 조정화 부산시의회 의원, 김진환 대구 수성구의회 의장 등 한·일 양국의 정치인과 불교·신도 종단 등 종교지도자와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기공식은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졌다. 한·일 두 나라에서 아직 논란이 있는 터라 큰 행사를 삼가고 있다는 국제하이웨이재단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곳에서 불과 1㎞ 떨어진 곳에 폭 5.4m, 높이 5m의 터널입구 공사가 마무리된 상태다. 아직 지질조사를 위한 전문 장비와 굴착공사를 위한 자재나 시설은 설치되지 않았다. 하루전에 찾아갔던 규슈의 사가현 가라쓰시의 나고야 조사사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쓰시마 조사사갱 기공식은 한일해저터널 조사사갱 공사의안전을 기원하는 행사로 열렸다. 하지만 단순한 기원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본 측에서 한국을 향해 착공되는 첫 번째 조사사갱이기 때문이다. 조사사갱은 본 터널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각종 조사·시험 등을 위한 탐사용 터널로, 나중에는 본 터널과 연결돼 통로로 사용하게 된다. 실제적인 터널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본 터널은 사갱에서 10㎞쯤 떨어진 곳에서 향후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 추진하게 한다는 게 재단 측의 구상이다.

세이칸 터널공사 현장소장을 지낸 다케우치 한일해저터널기술위원장은 “이 사갱은 향후 쓰시마 서수도(西水道) 해저에 분포되는 미고결층 조사용이면서 한일해저터널 파일럿터널(선진도갱)으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쪽으로 뚫는 첫 조사사갱 착공식


한일해저터널은 철도와 자동차도로, 전선·유류 등의 보조터널을 함께 건설한다는 게 기본 구상이다. 한일해저터널의 조감도. / 사진·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일해저터널을 추진하는 국제하이웨이재단은 문선명·한학자 가정연합 총재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세계평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국제하이웨이’ 건설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다. 문 총재는 1981년 11월 서울 제10회 국제과학 통일회의(ICUS)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각 분야 학자 72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전 세계로 통하는 자유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자. 중국에서 한반도를 종단해 터널이나 철교로 일본열도에 연결하고 일본을 종단하는 자유를 보장받는 국제평화고속도로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건설된다면 아시아 3국은 문자 그대로 평화고속도로로 연결돼 일체화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국제하이웨이 프로젝트는 일본에서 유라시아대륙을 지나 영국까지 무려 2만여㎞를 자동차도로로 연결한다는 초대형 개발계획이다. 한일해저터널은 그 출발점으로, 부산(또는 거제도)-쓰시마(대마도)-이키섬-규슈를 해저터널로 이어 철도·고속도로를 놓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다. 총연장거리가 235㎞에 달한다.

한일해저터널이 연결될 경우 ‘홋카이도-도쿄-후쿠오카 -쓰시마-부산-서울-평양’을 논스톱으로 잇는 동아시아 철도가 탄생하게 된다. ‘신칸센-KTX-경의선’을 연결하는 셈이다.

해저터널은 두 개의 터널에 왕복 철도를 건설하고, 중앙 터널에는 전선·유류파이프를 위한 보조터널을 만든다는 게 기본구상이다.


조사사갱의 굴착은 드릴점보가 터널 막장에 뚫은 깊이 50㎝ 안팎의 구멍에 다이너마이트를 넣고 폭파하면 굴착기들이 동원돼 너비 10m 정도로 터널을 파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나고야 조사사갱은 현재 540m까지 파 들어간 상태다. / 사진·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이 같은 문 총재의 제안이 공개된 후 한일해저터널은 큰 반응을 몰고 왔다. 한때 일본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하고 싶은 열망 때문인지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가정연합은 1982년 4월 일본에서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을 발족했고, 1983년 5월 일본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인 사사 야스오 씨를 중심으로 ‘일한터널연구회’를 설립했다. 그해 7월에는 규슈 사가현 가라쓰와 이키섬·쓰시마의 육상부와 해역부 조사가 시작되기도 했다. 3년 뒤인 1986년에는 사가현 진제이초 나고야에서 1차조사를 위한 파일럿 터널공사가 시작됐다. 일본 측은 지상과 해양, 항공지형 조사를 했으며 터널구간을 따라 환경역학조사도 병행했다. 그리고 가라쓰에서 한일터널 탐사를 위한 굴착공사를 진행했다. 현재 바다 밑 547m까지 굴착한 상태이며 지질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1986년 선문대 총장인 윤세원 박사를 중심으로 ‘한일해저터널연구회’를 창립한 이래, 1988년 10월 거제도 일대 5개 지역에서 시추 및 지질조사를 벌였다. 2008년 1월에는 재단법인 세계평화터널재단을 국토해양부에 등록하고, 그해 2월 부산발전연구원 주최로 한일해저터널 국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사업은 답보상태를 보여왔다. 무엇보다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해저터널 건설 재원을 민간 차원에서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도쿠노 회장의 설명. “이번쓰시마 사갱기지 건설은 온전히 재단의 비용으로 충당했다.

쓰시마 사갱지기 건설을 위해 3년 전부터 쓰시마 아소만 인근에 약 100만㎡ 토지를 매입했다. 여기에 폭 8m, 길이 2㎞의 반입로 건설, 1만5천㎡ 사갱용지 정비, 조사사갱 갱구 입구공사 등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가라쓰와 쓰시마 등 조사사갱 건설에 투입한 비용이 500억 원에 달한다. 민간단체에서 더 이상의 투자는 무리다.” 양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 한 재원 조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일본 쓰시마에서 열린 ‘한일터널 쓰시마 조사사갱 기공식’에는 한·일 정치인과 종교인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한일해저터널 추진을 다짐했다. / 사진·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연장 240㎞의 대역사, 찬반의견 엇갈려

전문가들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에 총 100조 원의 비용에 10∼15년의 공사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한국보다 해저터널 건설에 적극적인 일본에서도 경제성 평가에서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 측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한일해저터널과 관련해 연구를 벌였으나 부정적인 결론이 나왔다. 한·일 양국 간에 수차례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한일터널의 경제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건설업과 기타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해저터널 자체의 비용과 편익만을 계산한 결과라는 반론도 나왔다.

재단 측 관계자의 설명. “터널 개통 전후의 여객과 화물량을 기초로 시간과 비용 절약에 따른 비용편익분석을 하면 경제성이 낮게 나타나지만 고용창출, 건설경기 진작 등의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한일해저터널을 건설하면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조 원, 18조 원의 건설업 GDP 증가가 예상되고, 산업 파급효과까지 따지면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54조 원, 88조 원 등 모두 142조 원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0년 부산발전연구원에서도 한일해저터널이 54조5287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19조8033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 44만 9900여 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른 사업 투자액(한국 부담분)은 19조8천억 원으로 추정됐다.

정계와 재계, 지자체에서도 한일 해저터널 사업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돼왔다.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최초로 언급한 이래 김대중(1999년 9월),노무현(2003년 2월)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도 해저터널에 관해 긍정적 의사를 표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기대감이 증폭된 적이 있다. 김 비서실장이 오래전부터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찬성론자인 까닭이다. 그는 2009년부터 비서실장 임명 전까지 한일터널포럼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었다. 한일터널포럼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지지하는 한국과 일본의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 2009년 결성 이후 양국의 경제협력과 평화를 위해 부산과 일본의 쓰시마·후쿠오카를 잇는 240㎞ 규모의 해저터널을 건설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김 실장은 당시 “대한민국이 규슈와 혼슈를 넘어 훗카이도까지 진출하려면 한일해저터널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해저터널 노선은 확정적, 한국은 미정


한일해저터널 노선안 / 자료·국제하이웨이재단

지자체 차원에서는 2003년 김혁규 당시 경남지사가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위한 공동연구회 설립을 제안한 데 이어 2007년 4월엔 허남식 부산시장이 터널 건설문제를 공론화했다.

1980년대 초 터널 개발안이 나온 뒤 학계를 중심으로 찬반논쟁이 일었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관심을 표명한 것은 그만큼 사업성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재계에서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한일해저터널건설에 적극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박 회장은 8월 29일 한 심포지엄에서 “한일해저터널이 한국과 일본, 중국 등 3국 간 단일 생활권을 형성할 수 있어 문화 교류와 교역 등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해저터널 건설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회장은 2008년 10월 일본 경제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해저터널 건설을 제안한 데 이어 2009년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는 한중해저터널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일 양국의 정부가 소극적인 상황에서 가정연합이 이 사업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이 사업이 설립자인 문선명 총재의 유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평생 화두인 ‘평화세계’ 실천을 위한 방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 총재는 생전에 국가 간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마음의 길’을 뚫는 작업은 ‘가장 가까우면서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일해저터널 사업이 단순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것은 아니라고 가정연합 측은 설명한다. “문 총재는 한일해저터널이 단순히 한일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북한 개방, 협력도 앞당길수 있다는 의미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하는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평화고속도로의 일환인 한일해저터널은 한·일간에 도로 교통망 건설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남북통일과 동북아 시대의 새로운 질서 개편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주목한 사업이다.”

구체적으로 한일해저터널의 노선은 아직 검토 단계에 있지만 일본 측 시발점은 일본 규슈 서북부의 사가현 가라쓰시가 거의 확정적이다. 바다 건너 한국과 연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형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쓰시마를 바라보고 있는 가라쓰시는 해저터널의 중간 기착지가 될 이키섬과 불과 42㎞ 거리에 있다. 때문에 가라쓰와 이키섬 구간은 해저터널에 비해 공사비가 3분의 1밖에 들지 않는 해상교량으로 잇는 방안도 검토된다. 가라쓰와 이키섬 사이에는 가베시마(加部島), 가카라시마(加唐島) 등 작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져 있어 교량건설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가라쓰에서 가베시마까지는 이미 요부코(呼子)대교라는 연륙교가 연결돼 있다.

한국 측의 시발점은 거제도와 부산이 유력하게 꼽힌다. 일본 측에서는 기술적 이유로 쓰시마에서 거제로 향하는 노선을 최적으로 보고 있다. 부산으로 직행하는 노선의 경우 해저 단층대를 지나야 하고 최대 수심도 거제구간에 비해 70m가량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측 조사결과는 차이가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최적 노선으로 부산 강서구 국제물류 산업도시-가덕도-남형제도-대마도-이키섬-후쿠오카를 잇는 222.6㎞(해저 146.8㎞+육상부 75.8㎞, 최대수심 190m,교통수단 고속철도+카 트레인)를 제안했다.

이 구간 해저터널을 짓는 데 약 10년이 소요되고 건설비는 1㎞에 4130억 원씩 총 92조 원가량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일본 일한 터널연구회 측이 제안한 부산-가덕도-거제도-대마도-이키섬-가라쓰 220㎞(해저 128㎞+육상부 92㎞, 최대수심160m, 교통수단 신칸센+카 트레인) 구간보다 건설 기간은 5∼10년, 비용은 최대 40조 원가량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부산은 신공항 건설이 가시화되고 해저터널까지 놓일 경우 육(한일해저터널)·해(부산신항)·공(동남권 신공항) 물류가 한데 모이는 동북아 최대 물류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있다.

기술적으로는 문제 없다는 것이 양국 기술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일본의 해저터널 건설 기술은 1964년 세이칸 해저터널을 뚫을 때부터 확보돼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86년 영·불해저터널 착공 때도 일본 측이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한일해저터널은 해저구간만 150㎞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최대 220m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개발된 해저터널 굴착공법이 모두 동원될 예정이다.

지반이 약한 부산과 거제도 일대 해저에서는 지상에서 구조물을 만든 뒤 바다 밑에 가라앉히는 침매(沈埋) 공법이 거론된다. 거가대교 건설에 사용됐던 공법이다. 오오쿠마 현장소장은 “초대형 드릴을 사용해 기계식으로 파내는 공법을 비롯해 발파식 공법, 연약지반에서 사용하는 침매터널 공법 등을 지질과 지반에 따라 병행해서 사용할 수 있다”며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홋카이도(北海道)와 혼슈(本州) 간 53.83㎞의 쓰가루 해협을 연결한 세이칸 터널의 기술진 여러 명도 기술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양국 국민 사이 감정의 골이 걸림돌

하지만 한일해저터널을 뚫는데 선결돼야 할 양국 국민의 심리적 거리감은 대한해협의 거리보다 더 멀어 보인다. 최근 들어 양국 간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한·일 과거사에 따른 역사적 앙금도 더욱 두꺼워진 탓이다.

도쿠노 회장은 자신의 바람을 이렇게 전했다. “국제하이웨이는 동북아 국가 간 사람·물건·자본·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시대를 열어 경제공동체를구축, 평화와 안전을 이루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야 한다. 한·일 양국의 국민의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두 나라 정상이 노력해야 한다. 내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일터널 프로젝트에 대해 양국 정상과 국민이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러면서 그는 “가정연합은 문선명 총재의 유업을 한학자 총재가 이어가며 평화세계 건설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한 총재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국가·인종갈등, 종교분쟁 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평화회의·국제합동결혼·초종교 활동 등 다양한 교류사업을 펼쳐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며 “이번 한일해저터널 쓰시마 기공식은 양국이 민족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실현해 동북아 평화와 세계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고 강조했다.

한일해저터널은 꿈의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한다. 기술이나 돈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치와 문화의 문제가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쓰시마의 기공식에 참석한 한·일 관계자들도 한 목소리로 “마음의 벽을 허물자”고 다짐했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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