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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 이슈 | ‘치명적 질병’의 사회학 - 에이즈보다 결핵이 더 무섭다! 

29년 전 발병한 한국 최초의 HIV 감염자 여전히 생존… 진단 후 사망 가능성 결핵이 에이즈보다 높게 나타나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의학교육학과 교수
결핵은 결코 정복된 그 시절의 질병이 아니다. 끊임없이 출몰하는 내성결핵균은 오늘날까지 인류를 끈질기게 괴롭힌다. 에이즈는 여전히 위험하지만 더 이상 불치의 병은 아니다. 위험성이 과대평가된 에이즈,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된 결핵. 질병 치유에는 은유적 이해보다 과학적인 지식이 더 요긴하다.




캄보디아 시엠리아프주 병원에 입원 중인 결핵 환자. 결핵은 오래전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변종내성균이 계속 출현하는 등 아직도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나는 그동안 의료보험료를 꼬박꼬박 냈지만 지난 2년간 병원에 간 적이 없으니 완전히 손해만 봤다.”이런 말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필자는 “그게 바로 감사한 일입니다. 병원에 자주 가시는 건 납입한 보험료에 대해 본전은 뽑을지는 몰라도 건강하게 사시는 게 아니니까 말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수입이 많아 의료보험료를 많이 내는 사람과 수입이 적어 의료보험료를 적게 내는 사람 중 누가 더 이익일까? 정답은 일반적으로 보험료를 많이 내는 이들이다. 이유는 아무리 보험제도가 잘돼 있다 해도 자비부담이 있으므로 그 적은 비용조차 내기 힘들어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보험료를 많이 내는 사람은 몸에 이상을 느낄 때마다 병원을 찾게 되므로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더 많이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의료보험 제도가 사뭇 다른 미국이나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개선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이 보다 큰 관점에서 의료제도를 보고자 하는 것이 의료사회학이 다루는 분야다. 좁게 정의하면 의학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학문이고,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인류는 사회적 존재로 의료와 질병 모두 사회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사회관계 속에서 질병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갖게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거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우연히 자신의 몸에서 질병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몸에서 결핵균이 발견된 경우와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가 발견된 경우 어느 쪽이 더 나쁜 예후를 가질까? 또 이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바로잡아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중국 안후이성 푸양의 HIV 감염 아동 치료보호소.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해 고아가 된 감염 아동을 격리 치료하는 시설이다. / 사진·중앙포토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질병 ‘결핵’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은 결핵에 대한 지식이 과거보다 훨씬 적을지 모른다. 중년 이상의 국민이라면 초등학교 시절 결핵검사를 하느라 팔 위쪽에 검사용 주사를 맞은 후 피부에 생겨난 발갛고 둥그런 모양의 지름을 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는 결핵 진단용 투베르쿨린 검사의 과정이다.

결핵은 원래 동물에게서 발생한 질병이 사람에게 전파된 인수(人獸) 공통전염병의 하나다. 기원전 수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에서도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결핵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발생한 질병의 하나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미이라에 결핵의 흔적이 있고, 인도와 중국인도 결핵에 대한 내용으로 간주되는 기록을 남겼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폐결핵으로 보이는 질병을 소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결핵이 공기를 통해 전파됨을 처음 주장하기도 했다.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보티첼리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의 모델로 추정되는 시모네타 베스푸치는 결핵 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유명인사가 결핵으로 목숨을 잃은 것을 보면 결핵은 광범위하게 유행한 질병이었음이 틀림없다. 신(神) 중심의 사상을 벗어나 인간 중심으로 문명이 재탄생하던 르네상스기에는 여러 예술작품에 결핵이 등장했다.

근대화 이후에는 유럽에서 일반인들 중앙포토보다 상류 계층에서 결핵 환자가 많이 나타나곤 했다. 이것은 근대 유럽에서 상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인 사교 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농촌을 벗어나 도시로 밀려드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도시가 수많은 사람으로 넘쳐나면서 위생상태가 불량한 가운데 집단생활이 이루어지게 됐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대기의 오염을 필수적으로 수반하게 됐고, 사람들의 거주지는 위생이 엉망인 가운데 열악한 노동조건 등으로 결핵이 상류층보다 하류층에 더 유행하는 질병으로 바뀌었다. 중세 말기를 풍미하며 중세를 멸망시킨 주범으로 평가되는 페스트에 빗대 ‘백색의 페스트’라는 별명까지 등장했다.

질병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그 질병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인류는 19세기를 맞이했다. 1842년 영국의 에드윈 채드윅은 노동자들의 위생상태가 결핵 등 각종 감염병 유행의 가장 큰 원인임을 지적하며 위생의 중요성을 지적했고, 1865년 프랑스 외과의사 J.A. 빌맹은 결핵으로 사망한 사람의 병소를 토끼에 주입시켜 이 질병이 감염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어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인 로베르트 코흐는 결핵의 원인균을 분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류가 결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종두법에서 힌트를 얻은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186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닭콜레라, 탄저, 광견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전염되는 질병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원인이나 치료법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백신을 이용해 예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흐는 현미경을 이용하여 당시 유럽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던 탄저 연구에 집중해, 1876년 마침내 병에 걸린 쥐의 혈액에서 간상체 모양의 미생물을 발견했다. 이 작은 생물체가 탄저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각종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순수배양하는 방법을 정립하고, 특정 세균이 특정 전염병의 원인임을 증명하기 위한 원칙을 발표했다.

코흐의 4원칙 이라고 명명된 이 원칙은 그 후 수많은 학자가 특정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길잡이 역할을 했다. 같은 방법으로 코흐는 1882년에 결핵, 1883년에 콜레라의 원인균을 찾아냄으로써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1970년대 초반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외국인 의사에게 결핵 예방주사를 맞는 학생의 모습. 당시 결핵은 심각한 질병으로 국가의 관리 하에 예방과 치료가 이뤄졌다(위). 최근 HIV 감염 치료에는 여러 가지 기전의 약을 세 가지 이상 혼합하는 칵테일 요법을 사용한다(아래). / 사진·중앙포토
결핵 치료의 결정적 발견 ‘스트렙토마이신’

코흐의 다음 목표는 결핵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결핵균의 배양액으로부터 투베르쿨린을 제조했으나 치료효과를 볼 수 없었다. 오늘날에는 이를 결핵진단에 이용하고 있으나 당시 승승장구하던 그는 결핵 치료제 개발 실패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1896년이 지나서야 다시 학자로서의 명성을 되찾은 그는 세균에 의한 감염질환은 물론 말라리아를 비롯한 열대질병 연구에 큰 획을 그었다. 1905년에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학자로서 절정에 이르는 학문적 성취를 맛보았다. 프랑스의 칼멧과 게랭은 1906년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BCG(Bacille Calmette-Guerin)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결핵예방의 길을 터놓았다.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혀온 결핵의원인균과 예방법을 알아냈지만 치료법이 나오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토양 속 미생물 연구에 흥미를 가진 미국의 셀먼 왁스먼은 플레밍이 곰팡이에서 발견한 페니실린처럼 항생기능을 지닌 물질이 곰팡이 내에 단 한 가지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항생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그는 흙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곰팡이를 키운 다음 그 곰팡이가 생산하는물질 중 항균 효과를 지닌 것을 분리하고자 했다. 시체를 땅에 묻으면 땅 속의 미생물에 의해 시체가 분해되는 것이 토양속에 존재하는 미생물 때문이라 생각한 그는 모든 병원성 세균을 박멸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를 개발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광범위한 연구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1944년 왁스먼은 마침내 방선균의 일종(Streptomyces griceus)으로부터 페니실린으로는 치료할 수 없던 결핵균을 비롯하여 여러 균주에 살균효과를 지닌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스트렙토마이신이라 이름 붙은 이 물질은 인류의 오랜 적이라 할 수 있는 결핵 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약이면서 장티푸스·백일해와 같은 다른 감염질환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스트렙토마이신은 수년 전까지 이소니아지드, 파스와 함께 결핵의 1차 약제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리팜피신, 이소니아지드, 피라진아마이드, 에탐부톨을 사용한다. 스트렙토마이신은 1차 약제로 잘 사용되지 않는 대신 장내구균성 심내막염, 흑사병(페스트), 야토병, 브루셀라 감염증 등에 이용되고 있다.

왁스먼은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2005년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하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마샬과 워렌의 사례가 있긴 하나 특정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발견한 것으로 노벨상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플레밍의 방법을 답습한 왁스먼의 수상은 독창성을 중시하는 노벨상의 이념을 감안하면 예외적인 일이다.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힌 결핵의 치유 방법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1981년 6월 5일, 미국에서 새로운 질병이 출현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초기에는 용어에 혼란이 있었지만 1982년 9월에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이를 에이즈(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후천성면역결핍증)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흔히 에이즈가 1981년에 처음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래 전부터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는 동물에게 감염질환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1959년에 말라리아 연구를 위해 채취한 혈액 시료에서 HIV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침입해 면역결핍이라는 위험한 증상을 일으켜 에이즈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현재는 HIV를 제1형과 제2형으로 구분하며, 위 시료는 최초로 발견된 제1형 HIV를 담고 있었다.

제2형 HIV와 유사한 유인원 면역결핍바이러스(simian immunodeficiency virus, SIV)도 발견됐다. SIV는 오래전부터 숙주역할을 한 동물에서는 특별한 이상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새로운 종류의 유인원 숙주에 침입하면 면역결핍증상을 일으키는 특징을 지닌다. 아마도 아프리카 밀림에서 영장류를 감염시키던 SIV가 밀림의 개발과 함께 사람과 접촉하면서 침입하게 된 것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전파한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후 환자를 조사한 결과 면역을 담당하는 T세포의 수가 정상인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몽타니에 연구팀은 T세포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돼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자현미경을 이용하여 남성 동성애자에게서 얻은 시료에서 바이러스로 의심되는 물질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뤼크 몽타니에는 1983년 5월 20일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고, 이 업적을 인정받아 공동연구자인 지누시와 함께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바이러스가 바로 HIV다.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결핵센터’에서 치료받는 환자들. 2007년 남아공에서는 수퍼내성 결핵균이 창궐해 단시간에 50명 이상이 사망했다. / 사진·중앙포토
‘에이즈 환자’가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자’

HIV에 감염되면 인체에서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T세포를 공격하여 파괴하게 된다. T세포가 파괴되면 자신이 가진 면역기능이 감퇴함은 물론 B세포를 통한 면역기능도 함께 약화시킨다. 계속해서 HIV에 의해 파괴가 지속되면 종국에는 면역결핍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상태가 바로 후천선 면역결핍상태, 즉 에이즈가 된다.

1981년 처음 발표된 이 질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이었다. 그러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33년이 지난 지금은 바이러스가 감염된 상태로 진단을 받는 경우는 있어도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한 후 면역결핍 상태에 이르기까지 모르고 지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발견 초기에는 ‘20세기의 페스트’라는 별명을 가질 만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과대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초기에 발견할 수 있고, 완치 또는 바이러스의 성장을 막는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매스컴에 뜸하게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에이즈가 무서운 불치병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에이즈와 HIV 감염은 구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에이즈와 HIV 감염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며, 매스컴 등에서 에이즈라 하는 경우 사실은 후천성 면역결핍 상태에 이른 에이즈가 아니라 인체에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지 않은 채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를 에이즈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이즈 환자’가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자’라 해야 옳다. 이 상태는 다른 세균이 감염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하기는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는 상태이므로 이때부터 치료를 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치료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약이 HIV에 감염된 환자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1964년 항암제로 개발된 아지도싸이미딘(azidothymidine, 상품명 지도부딘)은 유전정보의 복제를 억제하지만 암세포의 증식을 막지 못해 폐기처분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1974년 리트로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발견되어 다시 등장했고, 1984년에 HIV에 효과가 있음이 발견됐다. 그 후 미국 식품의약품 안전청의 허가를 얻어서 최초의 HIV 치료제로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여러 가지 항바이러스제들이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결핵 치료 시와 마찬가지로 HIV 감염 치료에는 여러 가지 기전의 약을 세 가지 이상 혼합하는 칵테일요법을 사용한다. 한 가지 약만 사용할 경우 어느 순간부터 치료효과가 사라지는 내성 출현을 막기 위해서다. 몸에 있는 바이러스를 모두 죽이고, 몸 밖으로 쫓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바이러스를 몸에 가지고 있다 해도 면역결핍 상태로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되었다. 또한 30년 이상 실패하기는 했지만 예방백신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지속되고 있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에이즈를 예방 또는 치료하는 일은 아마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우연히 자신이 HIV 또는 결핵균에 감염됐음을 알게 됐다고 치자. 결핵균에 감염된 경우 HIV에 감염된 경우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가? 여기서 감염이란 아무런 증상 없이 바이러스 또는 세균이 몸에 들어와 있음을 의미한다. 마이클 조던이 미국 프로농구계를 휘젓기 전인 1980년대에 미국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는 매직 존슨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드림팀을 이끌며 미국에 금메달을 안겨준 그는 33세의 나이에 에이즈(사실은 에이즈가 아니라 HIV에 감염된 상태)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고는 코트를 떠났다. 그가 선수생활을 계속했다면 수많은 기록을 만들어냈을 것이 분명했다. 당시로는 가장 무서운 병의 하나인 에이즈에 걸렸다고 실토했지만 지금까지도 그는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HIV에 감염돼 이른 나이에 은퇴한 NBA 스타 매직 존슨의 현역 시절 모습. 은퇴 후에도 농구보급과 사업 등 정력적인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너무 일찍 은퇴한 HIV 감염자 매직 존슨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HIV에 감염자수는 1만 명 정도다. 그중 사망자는 2천 명 남짓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첫 환자가 발생한 것이 이미 29년 전의 일이고, 최근에는 환자수가 더 많아져 매년 1천 명 가까운 환자가 발견되고 있는데 사망자 수는 연중 150명을 넘지 않는다. 사망자 수가 생각보다 적지 않은가?

이들이 정상적으로 살았다면 HIV가 피 속에서 마구 자라나서 T세포를 공격함으로써 T세포의 수가 줄고, 결국에는 면역결핍 상태에 이르러 다른 질병에 의해 세상을 떠났어야 한다. 그러나 HIV 감염 후 세상을 떠난 이들은 면역결핍에 의해 목숨을 잃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많았다.

반면 결핵은 지금도 1년에 2천 명을 훨씬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무서운 병이다.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하자면 매년 약 5명이 결핵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왁스먼이 스트렙토마이신을 찾아낸 이후 여러 가지 결핵 치료제가 개발됐지만 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결핵은 금세 나빠지는 병이 아니지만 쉽게 증상이 호전되지도 않는다. 적어도 6개월 이상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약을 복용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 약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호전되는 듯하던 결핵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칵테일 요법에 의해 과거에 2년이 걸리던 치료과정을 6개월 정도로 줄여놓기는 했지만 내성균의 출현이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특정 약에 대해 내성을 가진 결핵균이 출현한다면 다른 약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결핵 치료제가 한창 개발되고 있던 1980년대에 여러 가지 약제에 모두 내성을 가지는 다중약물저항성균(다제내성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수퍼내성 결핵은 단시간에 5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올해 ‘국경없는 의사회’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퍼내성 결핵 치료를 위해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요구된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수퍼내성 결핵은 현재 사용되는 치료제에 모두 내성을 지닌 결핵을 가리킨다.

미국에서는 다중 약물 저항성 결핵이 전체 결핵의 약 20%, 수퍼내성 결핵이 전체 결핵의 2∼4%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다중 약물 저항성 결핵은 16%, 수퍼내성 결핵은 약 4%로 추정된다.

결핵은 사람들의 관심에서만 멀어졌을 뿐 결코 과거의 질병이 아니다. HIV에 대한 새로운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은 수시로 들려오지만 결핵은 내성결핵균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HIV 감염에 의한 전체 사망자 수는 1 년간 결핵으로 사망하는 환자수와 비슷하다. 일단 진단이 된 후 그로 인해 사망하는 가능성도 결핵이 에이즈보다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병에 대한 은유적 이해보다는 올바른 지식이 중요하다. 에이즈는 건전한 생활의 영위와 함께 HIV에 감염된 경우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결핵은 예방백신을 접종받고, 결핵균에 감염된 경우 전문의의 처방대로 장기간 지속되는 치료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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