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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공기업 GKL의 ‘수상한’ 인사·자금 관리 - 20억 횡령 직원에게도 팔은 안으로 굽었다! 

빚 쪼들린 직원에게 금고 열쇠 맡기고 감시도 허술… 감사에서 ‘심각한 통제 미비’ 확인하고도 징계는 솜방망이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 사진 지미연 기자
지난 7월 GKL에서 희한한 횡령사건이 벌어졌다. 경리팀 직원이 영업장 금고에서 20억 원을 훔쳐 달아났는데 회사는 신고는 미룬 채 그 직원을 다독거리기에 급급했다. 단순한 동료애의 발로일까?

“미디어에 비치는 카지노는 음울하고 폭력적이다. 돈이 쏟아지는 노다지 사업에다 조작·횡령 같은 부정한 이미지가 겹친다. 하지만 실제와 거리가 먼 이야기다. 요즘 카지노는 실상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산업이다.”


서울역 앞 힐튼호텔에 입주해 있는 GKL 세븐럭 카지노 힐튼점. 이번 횡령 사건으로 인해 카지노 인사·보안 시스템에 중대한 결함이 드러났다.
2009년 11월 한국거래소 상장을 앞둔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사장은 자신이 이끄는 회사를 이렇게 자랑했다. 이사장은 나아가 “GKL 카지노야말로 제대로 된 룰이 지배하는 법치(法治) 경영의 표본”이라며 다음과 같이 장담했다. “정부(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카지노의 영업준칙, 전산시설 기준, 기구검사 업무규정 등을 담은 130여 쪽에 달하는 고시와 규정을 만들었다. 카드와 주사위 등 게임기구의 기준이 다 명문화돼 있다. 그래서 고객의 출입, 환전 및 출납, 게임, 카운트 룸의 계산 장면 등이 CCTV에 실시간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부정과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GKL은 국내 16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운영업체 중 유일한 공기업이다. 한국관광공사가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울 2곳, 부산 1곳에 ‘세븐럭(Seven Luck)’이라는 카지노를 운영한다.

상장 후 GKL은 순풍을 탔다. 매출은 2008년 3634억원에서 지난해 5613억 원으로 치솟았고, 2009년 1만8천원선 이던 주가는 갑절로 뛰어 현재 4만 원을 넘어섰다. 이런 화려한 실적 뒤에서 GKL 금고가 술술 새고 있음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지난 7월 18일 이 회사 힐튼점 현장 경리팀의 차장 박모 씨가 대낮에 20억 원 어치의 수표를 훔쳐 은행에서 현금화를 시도하다 들통이 난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 금고를 담당하던 박씨는 이날 회사 금고에 보관 중인 영업준비금에서 500만원짜리 수표 400매를 들고 나와, 이 중 7억1천만 원을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 무교기업센터에 제시했다. 6억1천만 원은 타 계좌로의 송금, 1억 원은 현금화를 꾀했다. 하지만 거액의 현금 인출을 의심한 하나은행 직원이 GKL 힐튼점에 확인 전화를 하면서 범행 사실이 드러났다.

덜미를 잡힌 박씨는 현장에서 도망쳤다가 동료 직원의 설득에 훔친 수표를 되돌려 주고 밤늦게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박씨에게 횡령 혐의를 적용,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GKL은 횡령의 책임을 물어 인사 및 징계 규정에 따라 7월 31일 박씨를 징계면직했다. 징계면직된 박씨는 8월 8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라 GKL로부터 법정퇴직금을 100% 받았다.

여기까지는 일반 횡령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카지노의 특성에 견줘보면 몇 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박씨가 금고에서 20억 원의 뭉칫돈을 훔쳐 달아나는 동안 왜 현장에 있던 다른 근무자들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걸까? GKL금고 관리가 그렇게 허술한 걸까? 고객과 직원의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100대도 넘는다는 CCTV는 낮잠을 잔 걸까? CCTV에 횡령 장면을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음에도 보안팀에서 부주의로 놓친 걸까?

거액의 수표와 현금이 오가는 카지노의 특성상 금전 거래가 많은 부서의 경우 직원끼리 상호감시가 가능하도록 복수의 근무자를 배치한다. 누군가 금고 문을 열고 돈에 손을 대는 경우 다른 근무자가 이를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이번 박씨의 횡령 행위는 아무도 제지하거나 눈치채지 못했다. 횡령 장면을 목격한 직원이 없거나 적어도 수상쩍게 여기지 않았기에 박씨는 유유히 영업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카지노는 감시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많은 CCTV를 가동한다. 금전을 보관하는 금고 출납은 고도의 주의와 감시를 요하는 행위다. CCTV도 현장경리팀의 금고 주변을 더 삼엄하게 촬영했을 법하다.

금고 입출금 행동 수칙도, 요령도 없어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1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서 GKL 임병수 사장은 “투명·윤리 경영을 내재화 하겠다”는 보고까지 했다. GKL은 국회의원들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업무보고 자료에서 “보안·감시 시스템 고도화를 통한영업점 투명성 제고”를 강조했다. 또 “첨단장비를 활용한 감시기법 운영 및 모니터링 환경 개선”을 호언하는가 하면 심지어 윤리경영 교육, 캠페인 실시 등 조직 구성원 투명성 및 청렴도 확보를 주요 시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났다. GKL 힐튼점은 비단 박씨뿐만 아니라 현장 경리팀 직원이라면 누구든 공금을 빼내도 이를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할 방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월간중앙>이 안민석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실을 통해 입수한 GKL의 횡령사건 감사실 보고서(감사결과처분요구서)에서 확인됐다. GKL은 사고가 발생한 7월 18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힐튼점 해당 부서에 근무한 직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CCTV 영상을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GKL은 경리팀 직원이 금고에서 돈을 넣고 뺄 때의 행동수칙을 애당초 갖고 있지도 않았다. 보고서는 “현재 경리팀 업무 관련 주요 규정 및 지침상, 영업준비금보관 금고의 금전 입·출금 시 직원 행동수칙에 관해 명시된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금고에서 수표나 돈다발을 끄집어낼 때 어떤 행동 요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쉽게 횡령을 할 수 있는 구조다. 같은 맥락에서 “또한 자체 교육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업무매뉴얼 역시 관련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외국의 경우 금고에서 돈을 꺼내는 직원은 항상 CCTV에 잘 잡히도록 움직이고, 일정한 자세로 돈을 운반하며, 옷의 호주머니나 가방 쪽으로 돈이 접근하지 않도록 두 팔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하도록 교육한다고 카지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GKL은 이런 절차 규정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규정도 미비한 데다 직원들을 감독하는 현장 책임자는 경리 창구와 떨어져 근무하는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영업점 경리창구와 팀장의 근무장소가 이원화돼 있어 팀장이 직원의 행동을 상시 관리감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GKL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한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 등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이 5600억 원을 넘어섰다.

“금전사고 예방조치가 시급하다”

GKL도 이를 “심각한 통제 시스템 미비”라고 규정했다. 직원이 업무시간 중에 거액의 수표를 횡령해 밖으로 나갔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므로 관리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자기 고백이다. 보고서는 “각 경리팀은 이와 관련한 규정 및 지침을 마련하고, 확실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장의 경리팀만 구멍 난 게 아니라 부정과 비리를 CCTV로 원격 감시하는 서베일런스(surveillance, 감시)실도 이번 횡령사건에서는 ‘눈뜬 장님’과 다를 바 없었다. GKL은 부정 게임이나 내부의 부적절한 행위를 CCTV로 감독하는 외국인 컨설턴트를 서베일런스실에 두고 있다. 보고서는 서베일런스실 또한 재발 방지 차원에서 경리팀과 협의해 경리팀 창구와 영업준비금 금고의 직원행동을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금고 관리가 서베일런스실의 감시망에서도 벗어나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보고서는 ‘총평’란에서 이번 횡령사건을 “금전관리 및 직원 관리상 사고 발생에 대한 위기의식 부족 등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결과”로 규정하고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모든 부서의 금전사고를 포함한 업무 전반에 대한 사고예방 및 관리체계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GKL 내부 관리·감독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말이다. GKL 횡령사건은 CCTV를 통한 감시와 현장 직원을 통한 상호 감시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케이스다.

20억 원 횡령이 태연하게 저질러진 점도 의아하지만 사고 발생 후에 벌어진 GKL측의 대처 방식도 안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먼저 돈을 훔친 박씨를 보자. 박씨는 한국관광공사에서 근무하다 2005년 GKL에 합류, 창조관광팀장, 기획총괄팀 차장을 역임하는 등 카지노업계의 생리에 정통하다. 감사실에서도 3년간 일했다. 카지노가 거액의 수표를 현금화하는 경우 주거래 은행에서 카지노 영업장으로 직접 현금차량을 보내는게 보통이다. 카지노 직원이 근무시간에 혼자 수표뭉치를 들고 은행창구를 버젓이 찾아간 것만으로도 은행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행동이다.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낮에 훔친 20억 원어치 수표를 들고 GKL 주거래 은행을 왜 갔을까 하는 의문부터 생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평소 박씨가 그런 식으로 은행을 이용했거나, 적어도 탄로가 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 없이는 하기 어려운 범행 수법이다.”

횡령사건으로 비상이 걸린 GKL의 대처방식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GKL 감사보고서를 보면 박씨가 돈을 횡령한 7월 18일 GKL 직원들과 박씨의 행적이 시간대별로 나온다. 이날 오후 2시10분 GKL 힐튼점에 현금수송업체 차량이 도착해 영업준비금을 전했다. 오후 2시37분 그 금고에 보관 중이던 수표 20억 원을 훔쳐 박씨가 회사를 빠져나갔다. 1시간 뒤인 오후3시38분 하나은행 무교기업센터에 나타난 박씨는 횡령한 수표 20억 원 중 7억1천만 원을 제시하며 현금 교환을 요청했다. 이때 은행 직원이 GKL에 전화 확인하면서 횡령 및 도주 사실이 GKL에 전달된다.

이후 GKL의 대응이 특이하다. 오후 3시52분 GKL K팀장이 박 차장과 통화하면서 회사 복귀를 회유한다. 이에 박씨는 K팀장만 나온다는 조건하에 수표를 반환하겠다고 제의한다. 회사와 상의한 K팀장은 4시26분 단독으로 박씨와 만나 12억9천만 원의 수표를 돌려받아 회사로 돌아온다. 박씨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제 갈 길로 갔다는 말이다. 이후로도 GKL 감사실장 등 관계자들은 수차례 박씨에 전화해 회사 복귀를 권유한다. 이때가 5시10분께로 GKL이 강남경찰서에 박씨의 범행을 신고한 시각이기도 하다. 박씨는 밤 10시 이후 GKL 관계자들에게 경찰 자수의사를 밝히고 강남경찰서에 출두한다.


2009년 서울 삼성동에 개원한 GKL의 세븐럭 카지노 아카데미. GKL은 임직원 사이의 금전 거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경찰에 신고 않고 수표만 회수한 이유

GKL은 범법자인 박씨를 다독거려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한솥밥을 먹는 동료라는 점에서 일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회사 공금을 갖고 도주한 사건을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범법자를 직접 만나 수표만 회수한 점이 석연치 않다. 감사 업무에 밝은 여권의 관계자는 “오후 4시 박씨로부터 12억9천만 원을 회수할 당시 경찰에 사전 연락해서 횡령범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게 상식적인 대응”이라며 “횡령범의 처지가 어떤지는 몰라도 명백한 범법자를 방치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GKL은 돈을 회수하고 40여 분이 지난 뒤에야 관할 경찰서에 이 횡령사건을 신고하는 등 이 사건의 공론화에 미온적이었다는 의혹을 낳는다.

회사의 인사 관리도 문제였다. 박씨는 당시 주식투자 실패와 주택 담보 대출 등으로 6억1천만 원의 빚을 진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회사 부하직원의 명의로 대부업체로부터 빌린 돈 7500만 원도 있었다. 부하직원의 빚독촉에 시달린 나머지 우발적으로 금고에서 20억 원을 훔쳤다고 돼 있다. 박씨의 빚은 2008년 3억 원에서 2013년 5억 원으로 늘어났고, 지난해 9월에는 회사 부하직원의 명의로 대부업체로부터 대출받았다. 만성 채무에 시달리는 직원을 감시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경리팀에 배치한 것부터가 GKL 허술한 인사관리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일반 기업도 직원을 수시로 관찰, 과다한 부채 등으로 사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은 계약업무나 금전업무 등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게 보통이다. 한마디로 상식에서 어긋난 GKL 인사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GKL은 “박씨의 경우 소극적 성격 탓에 대인관계가 원만한 편이 아니었다”면서 “평소 금전적인 문제도 주위에 표현한 적이 없었기에 사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박씨는 임직원 간 금전 차용을 금지한 GKL ‘임직원 행동강령’을 어겨가면서까지 부하직원으로부터 1억 원이라는 거액을 빌려 썼다(나중에 2500만 원은 갚았다). 결국 회사는 박씨의 재무상태는 물론 직원 간 금전차용 사실조차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횡령사건은 GKL의 인사와 보안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사건으로 인해 누가 책임을 어떻게 진 걸까?

GKL에 따르면 횡령으로 인해 면직된 박씨 외에 징계조치를 받은 이는 단 두 명이다. 재무관리실 책임자 S씨(1급)와 힐튼경리팀 책임자 K씨(2급)가 관리책임을 지고 각각 근신 10일의 징계를 받았다. GKL 인사 규정을 보면 징계는 견책·근신·감봉·정직·면직 등 5단계가 있다. 이중 근신은 둘째로 경미한 징계다. GKL 감사실은 감사보고서에서 “내부 관리·감독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적시하고도 정작 직원 처벌은 솜방망이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GKL 감사실이 처음부터 물렁한 감사를 벌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GKL 감사실은 힐튼경리팀 K씨의 관리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수표 회수에 우선을 두어 현장에서 박씨의 신변을 확보치 못했으나 유선으로 복귀를 종용해 박씨가 경찰에 자진출두 하였으므로 최선을 다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 업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 횡령자가 자수를 하든 경찰에 체포되든 횡령자 당사자의 처벌 수위의 문제이며 GKL 이익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GKL 감사실이 이런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봐주기식으로 감사가 진행됐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시각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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