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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개혁의 칼자루 쥔 정의화 국회의장 - “여야 극한대결 끝내는 방법?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다당제(多黨制)가 답이다” 

윤리특위에 자문위원단 구성해 비리의원 제재 강화… 남북국회회담이 남북정상회담의 마중물 역할 할 것 

글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국민들의 ‘식물국회’ 비판에 속을 태우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정 의장은 9월 16일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했다. 9월 26일에 본회의를 개최하고 10월 1~20일에 국정감사, 22일 대통령 예산안 시정연설, 23~28일 대정부질문 일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본회의에 계류 중인 91개 법안의 직권상정 여부는 여전히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정상화의 칼자루를 쥔 채 ‘국회개혁’을 선언한 정 의장은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을까?

정의화 국회의장 부산고·부산대 의대 졸업, 15∼19대 국회의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18대 국회 국회부의장·국회의장직무대행,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9월 1일 정기국회 개회를 선언하는 정의화 의장.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정 의장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정의화(66) 국회의장이 18년의 정치생활 동안 가장 즐겨 쓰는 수사(修辭) 중의 하나가 “정치는 심장과 같다”는 말이다. 그는 “건강한 심장은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심장이 날마다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그 심장은 병든 것이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치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그가 국회의장에 취임한 이래 웬일인지 그의 바람과는 달리 정치가 거꾸로 간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충돌로 4개월 넘게 국회의 입법 기능은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

정 의장은 이를 타개하고자 국회에 나와 백방으로 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꼬일 대로 꼬인 세월호정국을 풀기에는 힘이 부치는 형국이다. 그가 9월 15일 회심의 역작으로 추진한 국회의장단과 여야 지도부의 연석회의 개최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 때문에 불발됐다. 정 의장으로서는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를 누르고 재수(再修) 끝에 힘겹게 오른 국회의장 자리가 오히려 바늘방석이 된 형국이다. 국회정상화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인 정 의장을 8월 28일 국회의장실에서 만났다.

국회의장에 취임한 지 100일이 됐다. 소감은?

“지난 3개월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만큼 국회의장으로서 책임감도 통감하는 시간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아직도 타결되지 못해 국회가 공전되고 민생을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

‘식물국회’가 재현되면서 국회를 향한 국민의 원성이 자자하다.

“후반기 국회가 5월 이후 넉 달이 넘도록 한 건의 법안을 처리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불명예다. 제가 해법을 찾기 위해 정기국회 개회식 때도 두 당의 원내대표에게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고, ‘여야에 국회 정상화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의장성명도 냈다. 여야 원내대표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국회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답답하다.”

“직권상정은 피하고 싶다”

여야 원내대표를 의장실로 불러서 죽비소리 같은 말씀을 하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더라.

“국회는 여야가 서로 옳다 그르다고 싸우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곳이다.

그러려면 상호존중, 상호 호혜의 원칙이 정립돼야 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 배려와 양보의 정치가 자리 잡아야 한다. 여야 원내대표가 다소 힘들더라도 법안에 대해 표결로 결정하기보다는 대화하고 타협해서 합의된 결론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가 양당의 원내대표를 불러 한걸음씩 양보해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합의해달라고 독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회를 정상화하고 국민 모두의 삶을 챙기기 위해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 의장이 국회 정상화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에 따라 국회가 운영되도록 정해놓고 있다. 과거처럼 국회의장이 국회의 의사일정을 주도하기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여야 원내대표가 꼬인 정국을 풀지 못한다면 결국은 국회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 의장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민생법안을 더 이상 묵혀둘 수 없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까지 받는 눈치다. 정 의장이 9월 16일 국회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한 이유다. 하지만 법안 직권상정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에 계류 중인 91개 민생·경제관련 법안은 국회법에 따라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다. 현재 새누리당은 원내 과반수 의석(158석)이 넘는다. 상정만 하면 재석의원 60%의 찬성을 요하는 국회선진화법 대상이 아니라서 국회법이 규정하는 과반출석에 과반의 찬성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 의장은 그동안 직권상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가 취임 이후 누누이 강조해온 여야합의 정신에 위배되는 데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더 큰 반발로 국회파행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장으로서 언제까지 식물국회 소리를 듣게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 의장은 ‘여야 합의를 통한 국회 정상화’ 원칙을 고수하며 법안의 직권상정은 끝까지 피하고 싶다는 입장이지만 그가 언제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지는 그자신도 모른다. 정 의장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실제 9월 15일 “리미트(한계)에 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여야는 지난해에도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의 NLL발언 공개 논란 등으로 정기국회를 한 달간이나 공전시켰다.

“우리 정치권이 상대방을 믿지 않는 불신의 늪에 깊이 빠져 있다. 국회개혁·정치개혁이 절실하다고 본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 정상화를 어떻게 이뤄낼지 주시하는 눈길이 많다. 사진은 9월 5일 인성회복국민운동본부와 국학원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방탄국회·휴업국회’를 규탄하는 시위 장면.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해야”

정 의장이 생각하는 국회개혁 방안은 뭔가?

“제가 생각하는 국회개혁은 헌법과 국회법의 정신에 따라 ‘국민을 위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장 직속으로 ‘국회개혁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무엇보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편에 설 수 있도록 국민과의 담장을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도 모르게 젖어버린 권위나 관료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국회의사당 본관 1층 출입문을 40년 만에 일반인에게 개방했고, 주말에도 국회를 전면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회에서 토론대회나 작은 음악회도 개최해 국민과의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혀가는 국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열린 국회’도 중요하지만 해마다 되풀이되는 여야의 극한 대결을 해결할 근본적인 방법은 없을까?

“제가 생각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한다. 이번에 이정현 의원의 경우처럼 호남에서는 새누리당국회의원이 당선되고, 영남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우연에 그치지 않으려면 아예 제도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이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여기에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도 도 도입해야 한다. 선거구제 개편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국회가 실천해야 할 과제다. 그래야 지역화합·국민통합이 가능해진다.


정의화 의장(위쪽 가운데)은 뚝심과 책임감의 정치인이다. 2011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한·미 FTA 국회 비준동의안 의결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아수라장이 됐지만 당시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그가 끝까지 의장석을 지킨 일화는 유명하다.
둘째, 지금과 같은 양당제가 아니라 다당제로 가야 한다. 원내 교섭단체 요건을 15석으로 낮춰서 3당, 4당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교섭단체가 있는 정당이 3개 이상 되면 정책이 비슷한 정당들끼리 정책연대를 통해 연정(聯政)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여 야가 한걸음씩 양보하면 가능하다.(정 의장은 취임 이후 설치한 국회개혁자문위원회, 국회원로자문위원회 등을 통해 선거구제 개편 등 국회개혁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의 다당제와 연정 발언은 최근 새정치민주연합발 정계 개편설이 대두되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부산고와 부산대를 거치며 59년 동안 ‘부산사람’으로 살아온 정 의장은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인 1991년에 ‘영호남민간 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영호남화합과 교류, 소통에 노력한 남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20년 동안 영·호남의 교류활동을 꾸준히 벌여온 터라 ‘부산출신 호남 국회의원’이란 닉네임까지 얻었다. 정 의장은 동서화합 노력을 인정받아 전남 여수시와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등에서 잇따라 명예시민과 명예도민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국회의장 취임 직후인 6월에도 국립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5·18 기념식 지정곡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도“여야를 막론해서 통합의 리더십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스럽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렇게 여야와 좌우를 아우르는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이 그를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에 이어 국회의장의 자리에 오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국회도 낙하산 아닌 시스템인사 정착돼야”

2005년에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을 맡는 등 일찍부터 동서화합에 노력하는 행보를 이어 오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저는 남북통일의 전제조건이 바로 동서화합과 전국의 균형발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동서화합의 방안으로 ‘섬진강시’ 건설을 주창해왔다. 새누리당의 ‘호남포기 정책 폐지’를 주장한 원조가 바로 저다.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간사인 이정현 의원과 함께 호남의 현안을 살피고 예산을 지원하는 데 노력했다. 하지만 동서화합을 실질적으로 완성하려면 정치제도의 대변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비롯해 권역별 비례대표, 석패율 제도 등 선거제도 개혁이 동서화합의 화룡점정이라고 생각한다.”

의장 취임 뒤 국회의 주요 인사와 관련해 일절 중간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에선가?

“제가 그렇게 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행정부나 입법부의 채용방식을 보면 사전에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공모하는 경향이 있다. 채용방식을 보면 사전에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공모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특정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들러리가 된다. 그런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정상인지를 알아야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 수 있을것 아닌가. 예를 들어 국회에서 사람을 공모한다면 인재선발위원회를 구성해서 위원들이 양심에 따라 추천하면 된다. 물론 인사권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추천하고 심사하는 과정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누구를 뽑더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2년의 임기 동안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는 정 의장. 하지만 현재 국회는 ‘식물국회’라는 국민들의 지탄에 직면해 있다.
“국회의원 돈 문제 송구스럽다”

정 의장은 19대 국회 전반기에도 국회의장에 도전했다가 강창희 전 의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국회개혁에 대해 충실하게 준비할 여유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 가 의장 취임 뒤 강조하는 국회의 시스템인사도 오랫동안 염두에 뒀던 개혁안 중 하나다. 그는 최근 차관급인 차기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선임하는 문제와 관련해 인사개입 우려를 차단하고자 “3배수 후보자들을 최종 추천할 때까지 내게 사전 보고를 하지 마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앞서 국회 사무총장 인선에서도 청와대 추천 인사를 거절하고, ‘MB정부 인사’인 박형준 전 의원을 선임해 국회 동의를 구하는 뚝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도 박근혜 정부의 주류인 친박계와 거리를 두고 있다.

국회의 제도개혁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이 불법적으로 돈을 받아 감옥에 가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정치권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이제 선거과정에서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가 많이 정착돼가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지출이 최소화되는 정치가 돼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돈 안 쓰는 정치가 정착되지 않아서 그런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의원들은 좀 낫지만 후원금을 제대로 모으기 힘든 의원들이 더러 돈의 유혹에 빠지는 것 같다. 국회 자체적으로 정화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국회의 제도개혁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이 불법적으로 돈을 받아 감옥에 가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국회 윤리특위 활동을 더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법에 국회의 특위 위원은 국회의원이 맡도록 하고 있지만 자문위원은 일반인이 할 수도 있다. 그런 자문위원분들의 결정은 또 국회의장이 존중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래서 제가 국회윤리특위에 자문위원단을 두고 덕망 있고 존경받는 분들을 모시려 한다. 예컨대 국민들이 존경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을 국회 윤리특위의 자문위원으로 모셔오면 국회의원들이 그분의 말씀은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아닌가! 그런 방법으로 의원들의 윤리위반에 대해 강한 제재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랫동안 국회의장을 준비해온 것으로 안다. 정 의장이 그리는 대한민국 국회는 어떤 모습인가?

“저는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 현재 우리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2~3%나 될까? 하지만 제가 의장으로 있는 동안 최소한 그 신뢰도를 두 자리 숫자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저는 일하는 국회를 원한다. 7~8월 여름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일하는 상시 국회를 만들고 싶다.


정의화 의장은 영호남 화합에 앞장서 왔다. 8월 18일 서울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모행사에 정 의장이 헌화 및 분향하고 있다.정의화 의장은 영호남 화합에 앞장서 왔다. 8월 18일 서울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모행사에 정 의장이 헌화 및 분향하고 있다.
크게 어렵지 않다. 여야 원내대표가 매달 1일부터 20일까지는 국회를 개원하기로 합의하면 된다. 수요일은 상임위 회의,목요일은 공청회 이런 식으로 요일별 상임위 운영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예측 가능한 국회를 만들 수 있다. 그래야 행정부의 공직자들이 국회 방문 일정을 짜는 데 무리가 없게된다. 저는 우리 국회가 달항아리 같은 국회가 돼야 한다고 본다. 19대 국회의 구성은 다수의 초선 의원이 피라미드의 맨 아래를 장악하고 재선-3선 의원이 그 위를 차지하는 피라미드 형태다. 저는 그것보다는 달항아리 형태가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볼록하고 동그랗게 손동작을 만들며) 맨 위에 초선이 25%, 재선과 3선, 4선이 가운데 50%, 그 아래에 5~10선이25%를 차지해서 가운데가 두툼한 달항아리와 같이 예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정치 선진국은 모두 그렇다. 국회가 젊은 의원들의 열정과 선배들의 노련함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 정치가 올바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라미드보다 달항아리 같은 국회라야”

정 의장의 집무실 왼쪽 벽면에는 커다란 소나무 사진이 걸려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의 작품인 줄 착각할 정도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그의 사진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다. 시와 서화에도 밝다.

그의 비서들에 따르면, 국회의장실 책상 뒤편에 서 있는 병풍은 포은 정몽주가 과거시험에 제출해 장원급제한 답안지를 옮겨 쓴 것이다. 물질만능에 찌든 우리 사회에 인성과 윤리의 회복을 제시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문화와 품격을 강조하는 그는 국회도 거친 언어의 대결 장소가 아니라 품격 있는 대화가 이뤄지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국회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국회를 달항아리에 비유한 이유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국회를 오래된 다선 의원들이 지키기보다는 신인들에 의해 정치권이 확 바뀌게 되기를 원하는 심리가 더 크다.

그래도 정치권에 훌륭하고 유능한 인재가 수혈되려면 물갈이도 대폭 이뤄지고 공천도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물갈이도 필요하다. 다만 물갈이를 명분으로 특정인이 선거를 앞두고 과거처럼 제 입맛에 드는 사람을 공천하는 엉터리 공천은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식 프라이머리 제도 같은 상향식 공천도 도입해야 한다. 공천심사위원을 위촉하는 문제도 아주 중요하다. 당내 인사 가운데 누가 봐도 균형감각이 있고 중용의 덕이 있는 인물을 먼저 세운 뒤에 외부에서 덕망 있는 훌륭한 사람을 위원들로 모셔와야 한다. 그분들이 정말 양심에 따라서 공천을 결정하면 당 지도부가 그대로 추인하면 된다. 프라이머리 제도의 도입과 공정한 인물을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것, 이 두 가지 방법을 조화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2011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한·미 FTA 국회 비준동의안 의결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아수라장이 됐지만 당시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그가 끝까지 의장석을 지킨 일화는 유명하다. 국회의장 취임 직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2015년 예산안을 제출할 때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의사 출신이면서도 파산 직전의 병원을 직원 1200명의 종합병원으로 성장시킨 성공한 CEO 경험을 살려 그는 국회 CEO로서도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정 의장 체제에서 특히 주목받는 부분이 개헌 문제다. 정 의장과 정갑윤·이석현 국회부의장 등 19대 국회 후반기의 의장단 모두가 현재 ‘개헌추진 의원모임’의 멤버로 채워졌다. 이 때문에 그동안 논의만 무성했던 개헌 문제가 정의화 의장 체제에서 제대로 공론화될 수 있을지 정치권이 주목한다. 국회 주변에서는 세월호 정국이 해소되고 나면 그동안 개헌추진 의원모임을 이끌어온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과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주도로 국회에 개헌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나온다.

세월호 정국 끝나면 개헌 공론화될 것

역대 국회의장마다 개헌논의를 추진해왔지만 실패했다. 구체적인 복안이 있는가?

“87년 헌법체제가 유지된 뒤 27년이 흘렀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거기에 맞게 헌법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개헌문제에 대해 두 가지 의견을 갖고 있다. 첫째, 권력 구조의 문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여나가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대통령이 통일·외교·안보를 담당하고 내치(內治)는 총리나 부통령이 맡는 분권형 개헌이 바람직하다. 그 권력구조를 적용하는 시기는 차차기 대통령 선거부터 적용해야 한다. 왜냐? 차기부터 적용한다고 하면 다음 대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개헌에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왕에 어렵게 하는 개헌 논의인 만큼 통일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양원제와 부통령제가 논의돼야 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처럼 북쪽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남쪽 사람이 부통령이 되는 식으로 권력을 분점하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한다. 양원제는 서울의인구 과밀화가 심각한 만큼 북한의 양강도, 남한의 전라·경상도 등 인구가 적은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정 의장은 평소 통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국회가 앞장서서 풀기 위해 세워둔 계획은 없나?

“저는 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동서화합, 남북화해협력, 건강사회를 위해 지난 18년간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특히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해주는 마스터키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제가 의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국회가 통일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갈 생각이다. 6월에 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남북국회회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3%였다. 그래서 의장 직속으로 남북 화해·협력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남북국회회담의 추진 방법과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자문위원회의 자문 결과를 토대로 남북국회회담의 실현을 위한 방식, 의제 등이 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통일 문제에 대해 정부와는 2인 3각의 자세로 적극 협력할 것이다. 저는 남북 국회회담이 성사돼 남북간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그런 마중물 역할을 국회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 의장은 부지런한 데다 여야 의원들과 두루 스킨십에 능해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적이 없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정 의장은 그 이유를 자신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로 설명했다. 정의장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났을 때 나라 정(鄭)성 씨에 옳을 의(義), 화합할 화(和)라는 이름을 그에게 지어줬다. 그는 1996년 신한국당 공천으로 부산 중·동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내리 5선에 성공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에 맞게 살았더니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정 의장이 2년 전에 펴낸 책이 <이름값 정치>다. 그 이름에 걸맞은 이름값 정치를 한다면 그때가 바로 그가 기대하는 동서화합이 실현되고 통일에 다가서는 날이 될것이다. 그 전에 우선 국회 정상화가 먼저 매듭이 풀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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