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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레저 | 불을 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어둠 속에서 나를 되찾는 도시 디톡스 여행 4選 

글 윤재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완전한 어둠 속에 있어본 게 언제였더라. 도시는 하루 종일 디지털 기기의 불빛으로 환하고, 온갖 조명과 전광판은 밤에도 쉬지 않고 반짝인다. 현대 사회에서 어둠은 대명천지를 피해 숨고 싶은 피안의 장소이자, 일부러 찾아 나서는 하나의 여가(餘暇)다. 낯선 사람들과 암흑 속에서 어드벤처를 즐기고, 빛 한 줄기 없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어느덧 소리, 맛, 촉감에 익숙해지는 원시 상태의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로등이 꺼진 공원에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동심을 되찾는 것도 밤이 주는 선물이다. 암흑 속에서 잠자는 오감을 깨우고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색 체험공간 4곳을 소개한다.

광명 가학산 동굴은 다채로운 문화예술 공연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동굴 예술의 전당’에서 시민들이 레이저 쇼를 즐기고 있다.
1 서울 인사동 다크룸 에피소드1 - 낯선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어드벤처


‘다크룸 에피소드1’은 어둠 속에서 시각 외 감각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신개념 어드벤처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이 입장 전 미션에 쓰일 쪽지를 남기고 있다(왼쪽사진). 3 낯선 사람들과 눈을 감고 모험을 즐기다 보면 70분의 체험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직원이 불을 끄자 말 그대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 상태에서 과연 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주변 조형물의 이상한 감촉 때문에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 “저, 죄송한데 어깨 좀 잡을게요!” “제 손 잡으세요, 문 조심하시고요!” 캄캄한 어둠이 처음 보는 사람들보다 몇 배는 낯설었기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옆 사람 앞 사람과도 금방 가까워졌다. 협동해서 미션을 하나둘 수행하다 보니 더 이상 새카만 어둠이 무섭지 않았다.

“우리는 눈 감고 논다!”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다크룸 에피소드1’에서는 평소에 주로 사용하는 시각 외 다른 감각을 활용해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미로룸, 미션룸, 터널의 길, 커플룸, 향기의 길, 감각의 룸 등 총 7개 코너로 구성됐으며 공간마다 주어지는 미션을 참가자들과 함께 풀며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어드벤처 프로그램이다.

구현정 마케팅 팀장은 “현대인들의 새로운 체험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수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TV 등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란한 시각 콘텐트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고, 점점 둔감해지는 시각 이외의 오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포인트다”고 설명했다.

‘다크룸 에피소드1’은 한 번에 5~10명 단위로 참가가 가능하다. 입장 전에 각자 숫자가 적힌 조끼를 입으며, 5번 조끼를 입었다면 ‘5번님’이라고 불리게 된다. 불이 꺼지면 목소리만 들리는 안내 직원 ‘눈님’의 설명에 따라 각 방에서 미션을 완수하고 다음 방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미션은 쉽지 않았다. 촉감만으로 물건을 찾고, 구별하고, 모양을 맞추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팀원들은 알파벳을 더듬거려 찾고, 점자를 만져서 지폐를 구별하며, 맞는 열쇠를 찾아 수갑을 풀기도 했다. “오늘 지하철에서 장님을 봤거든요. 정말 불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둠 속에서 직접 촉감으로만 하는 체험을 하니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이 새삼 와 닿았어요.” 다크룸에서의 미션수행을 막 마친 대학생 박혜민(22) 씨의 말이다. 평소 시각에 의존해 생활하는 우리에게 시각이 없는 환경은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시각 외 다른 감각의 중요성도 깨닫게 한다.

혼자서 암흑 속 미션을 성공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도 인기 비결이다. 남자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김소연(24) 씨가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두워도 잘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하니까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어요. 밖에 있을 때는 환하니까 잘 모르는데 어두우니까 서로에게 더 의지하게 되는 점이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 코너는 어둠 속에서 다같이 둘러앉아 소감을 말하는 ‘감정 고백 타임’이다. 부천에서 온 김효정(21) 씨는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도전인데, 어둠 속에서도 이렇게 미션을 잘 완수했으니까 평상시에 다른 일들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말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곧이어 작은 다과회가 있었다. 메뉴는 차가운 커피와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다. 다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슨 맛인지 맞춰보려 애쓰는 눈치다. 어둠 속에서 낯선 체험을 하는 동안,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듯하다. 깜깜한 어둠 속에 있으니 옆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가 않다. 목소리와 말투, 촉감 등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알던 사이라도 낯설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직원 김민아 씨는 “어둠 속에서는 뭔가 기대감이 생긴다. 목소리만 들리고 보이지 않으니까, 상대방에 대한 신비로움이나 환상 같은 게 생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어둠 속의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가나 보다. 20분 남짓 지난 것 같은데 한 시간이 흘러갔다고 한다. 직원 이도림 씨는 “요새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체험을 해보면 아시다시피 70여 분간의 체험이 굉장히 짧게 느껴진다. 스마트폰 없이 눈을 쉬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설명한다.

눈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이 더욱 소중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 꼭 와볼 일이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끼고,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어둠은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는 빛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서 여러 감각을 이용해 특별한 식사를 할 수 있다(왼쪽사진). 어둠 속에서 소중한 사람과의 식사는 이색 데이트로 인기만점이다. 블라인드 레스토랑 대기실에 방문객들이 남긴 메모가 꽂혀 있다.
위치 서울시 인사동 대일빌딩 ‘박물관은 살아 있다’ 인사동본점 내 | 운영시간 오후 12시10분~6시50분, 연중무휴 | 이용방법 100% 예약제로 홈페이지(darkroomepisode.com) 및 현장 예약

2 서울 화양동 블라인드 레스토랑 - 소리로 즐기는 암흑 속의 식사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직원이 파스타를 식탁 위에 놓고 간다. 순간 빨간색일지, 하얀색일지가 궁금했다. 냄새를 맡아 보니 크림소스다. 포크 끝 감각으로 적당히 가늠해보려하지만, 면이 자꾸 미끄러지는 데다 얼마나 집은 건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음식을 입에 넣으려 헛손질을 하다가 포크로 애꿎은 턱만 자꾸 찌른다. 이쯤 되고 보니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싶은 욕구가 불쑥 치민다. 새삼 헬렌 켈러가 존경스럽다.

이른바 ‘블라인드 아트 레스토랑(이하 블라인드 레스토랑)’은 전 세계에 10개 남짓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곳이 유일하다. 암흑 속에서 시각장애 체험을 하며 오랫동안 잠들었던 미각, 촉각, 후각, 육감을 최대한 살려 특별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암흑 속에서의 식사를 통해 눈의 소중함을 깨달을 뿐만아니라 시각장애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른 감각들을 활짝 여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옆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대화는 느리고 더욱 진지해진다.

블라인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시간은 90분. ‘새로운 세상’, ‘심해탐험’, ‘우주여행’, ‘타임머신’ 등의 테마 별로 프로그램이 주어진다. 이들 테마는 영상이나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어둠 속에서 소리를 통해 상상만으로 느끼는 상황일 뿐이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풀밭에 온 듯한 상상을 할 수 있고, 매미 소리가 들리면 한여름의 분위기를 느끼는 식이다. 중간중간 멘트가 나와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유승훈 사장의 설명이다.

식당 안은 한 줄기도 빛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다. 완벽한 어둠을 구현하기 위해 휴대전화 등 조명이 나올 만한 물건은 입장하기 전에 모두 맡겨야 한다. 그러면 음식은 어떻게 배달이 되느냐고? 적외선 안경을 쓴 웨이터가 등장한다. 에피타이저를 갖다 주었다. 냄새를 맡아 보니 토마토와 햄이 들어간 것 같았는데, 먹어 보니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버섯이었다.

나이프는 자꾸만 접시 바닥을 긁고, 포크로는 샐러드를 거의 난도질하다시피 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후각, 촉각, 미각 등 평소에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감각들만으로 사물을 구별해내야 했다. 손님 심미래(22) 씨는 “기분이 무척 이상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까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어둠 속에서 나한테만 집중할 기회”

오늘의 테마는 ‘타임머신’. 들리는 소리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체험을 한다. 갑자기 공룡 소리가 들린다. 어렵지 않게 수풀이 우거진 쥐라기 시대를 떠올렸다. 국민체조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어린 시절의 초등학교 운동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상만으로 과거, 현재, 미래 어디로든 오갈 수 있어서, 볼 수 없다는 게 오히려 자유롭게 느껴졌다.

미리 신청한 사연을 방송으로 전해주는 코너도 있다. 사전예약 시 음료수 및 와인을 주문하면 메시지나 편지를 남길 수 있고, 식사 프로그램 중간에 사장이 잠시 DJ가 되어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사연을 읽어주는 식이다. 여자친구와의 만남 4주년을 기념해 편지를 써준 이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의 여자친구인 유세진(22) 씨의 얼굴에 행복감이 묻어났다.

“지금 당장 휴대전화를 켜기만 해도 일하라고 연락이 오는데,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 가까이서도 갈 수 있는 여행 같아서 좋았어요. 특별한 날에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준 남자친구에게 고마워요.”

환한 세상으로 돌아오자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똑같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레스토랑의 관계자는 “각박한 세상에서 살다가 한정된 공간에서 다른 생각 없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손님 조민경(25) 씨도 감동이 남다른 듯하다. “요즘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기보단,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나를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아요. 오늘 어둠 속에서는 차분하게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블라인드 레스토랑 체험은 단순한 ‘이색 오감 식사 체험’이 아니다. 평소 밝은 곳에서 잊고 지내기 쉬운 소중한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다.

위치 서울시 화양동 2-49 B1층 | 영업시간 오후 3시40분~10시40분(식사시간: 저녁 7시, 밤 9시 입장 후 90분간 식사) | 이용방법 홈페이지(www.blindrest.com)에서 사전예약, 현장 결제 시 5000원 요금 추가

3 한강 뚝섬의 별보기 체험교실 - 도심 속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헤다


한강 뚝섬 별보기 체험교실에서는 잠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하늘을 보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천체망원경으로 직접 별을 보는 경험은 잊지 못할 밤을 선사한다.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본 게 언제였더라. 쫓기듯 발만 보고 걷고,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는다. 도시에는 밤이 없는 탓이다. 별을 볼 여유도 없거니와, 공해에 가까운 불빛 때문에 별을 볼 장소조차 마땅치 않다.


1. 별보기 체험교실에서는 별관측뿐만 아니라 페이스페인팅, 별자리 퀴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한 시민이 전시된 별자리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2. 맑은 날에는 뚝섬 자벌레관에서 다양한 별자리를 볼 수 있다. 별이 뜨니 도심의 밤하늘이 생기를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는 뚝섬 공원. 환한 도심을 벗어나 어둠이 내리니 비로소 반짝이는 별들이 보인다. 지하철 7호선 뚝섬 유원지역 3번 출구는 전망문화콤플렉스 ‘자벌레관’과 바로 연결된다. 자벌레관이라는 명칭답게 구불구불하고 길쭉한 복도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가면, 여러 대의 천체망원경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옆으로 별자리 페이스페인팅, 행성 퀴즈 및 퍼즐 맞추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테이블 별로 마련되어 있다. “안녕하세요!” 환한 웃음으로 반기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미소가 싱그럽다.

‘한강 뚝섬 별보기 체험교실’은 서울시 ‘행복 몽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운영된다. 평일에는 700~800명, 주말에는 1200~1300명 정도가 방문한다. 이병석 주임은 “평소에 천문대를 가볼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고, 주택가에서는 별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남녀노소 오신 분들마다 굉장히 신기해하신다”고 말했다.

한강에서 천체망원경을 통해 낮에는 태양흑점, 밤에는 별을 관찰할 수 있으며, 6개 대학의 천체관측동아리에서 온 학생들이 체험교사로 참여해 별 관찰 방법, 천체망원경 조작 및 실습, 별자리 강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맑은 날은 토성이나 달이 잘 보이며 날씨가 흐려서 별 관측이 어려운 날에도 천체망원경 조작체험, 별 그리기 체험교실, 별 주제 시화전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체험교실은 무료로 진행되며 사전에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인기 코너는 아무래도 야외에서 직접 별을 관측하는 프로그램이다. 뚝섬 자벌레관에는 현재 15대의 천체망원경이 있다. 천체동아리 학생들이 자벌레관 3층 베란다 쪽에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별자리나 행성을 설명해준다.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대니 하얀 고리를 두른 콩알만한 토성이 보였다. 이진규 건국대 우주탐구회 회장은 “어두우면 타인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별을 보면서 자신만의 힐링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각 프로그램 별 테이블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스레 손으로 자르고 붙여 만든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찾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보니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한쪽에서 자원봉사자가 아이들의 얼굴에 황도 12궁 별자리와 뽀로로 캐릭터를 그려주고 있고, 다른쪽에서는 거문고자리 신화를 구연동화로 들려주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성수동에서 온 박지연(38) 씨는 “작년 같은 경우는 별자리에 관련된 프로그램만 있었는데, 올해는 풍선 불기나 페이스페인팅처럼 아이들을 위한 체험이 다양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젊은 커플 방문객을 위한 별도의 코너도 마련돼 있다. 별자리로 궁합을 봐주거나 각자의 성격을 알려준다. 시민들의 여름밤을 밝히는 건 별뿐만이 아니다. 보름 동안 꼬박꼬박 나와 봉사하는 학생들의 마음도 별만큼이나 반짝인다. 바쁜 일상과 생활의 고단함에 하늘을 바라볼 기회가 많진 않지만, 가끔은 불빛에 가려진 동심을 찾으러 뚝섬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위치 서울 뚝섬 전망문화콤플렉스 자벌레관 3층 | 운영시간 오후 2시∼10시(여름철에는 뚝섬·여의도 캠핑장에서도 오후 8∼10시에 별보기 체험교실 운영) | 문의전화 02-3780-0771


아름다운 조명이 동굴 벽을 수놓은 ‘빛의 터널’에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왼쪽사진) 한여름에도 13℃를 유지하는 시원한 동굴 내부는 은은한 불빛이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4 광명시 가학산 동굴 - 역사와 감성이 살아 숨쉬는 동굴 피서

동굴 입구가 거대한 에어컨처럼 시원한 바람을 뿜어낸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냉장고 속에 있는 것 같다. 동굴 안 온도는 연중 13℃ 이하를 유지한다. 시원하다 못해 금새 몸이 으스스해져 미리 준비해간 긴 팔 옷을 꺼내 입었다. 온통 울퉁불퉁한 벽면과 달리 바닥은 걷기 편하게 잘 닦여 있다. 천장에선 이따금씩 차가운 물이 똑똑 떨어진다. 길 양쪽에는 은은한 조명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빨강, 파랑, 보라로 색을 바꾸며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도시에 살면서 동굴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곳 광명시 가학산의 동굴은 서울에서도 지하철을 이용해 쉽게 방문할 수 있다. KTX 광명역에서 7-1번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입구에서 직원들이 번호표와 노란 안전모를 하나씩 나눠주는데, 줄이 길어 입구에서 꽤 먼 곳에 서 있었는데도 동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로 금새 땀이 식었다.

올해 관람객이 벌써 25만 명이 넘어섰으며, 하루 관람객이 1만3천 명을 넘은 적도 있다고 한다. 자녀와 함께 광명동굴을 찾은 윤혜선(46) 씨는 “마치 얼음 냉장고처럼 시원하다. 가깝고 비용 부담도 없고, 동굴이 신기하니까 아이들 호기심도 유발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날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가학산 광산동굴은 굴곡진 역사를 갖고 있다. 제국주의의 침탈과 태평양전쟁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고, 해방 후에는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한 광산개발의 현장으로 국가경제에 효자 노릇을 했다.

1972년에 폐광이 된 이후로 방치됐다가 2011년 광명시에 의해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다. 동굴 내부에는 가학광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동굴의 역사와 이야기, 근대문화 상설전’과 광부들의 삶과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광부 낙서 전시회’가 마련되어 있다.

동굴의 총 길이는 7.8㎞, 깊이는 275m에 이른다. 내부 시설로는 전시관, 영화관, 발효식품저장고, 동굴 예술의 전당 등이 있다. 발효식품저장고에서는 와인·새우젓·김치·막걸리 등을 저장하고 있으며, 동굴 예술의 전당에서는 팝페라 공연, 3D 영화 상영회, 보석쇼 및 패션쇼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동굴 예술의 전당’에 들어가니 높이 8m 정도 되는 널찍한 공간에 좌석이 빽빽하게 마련돼 있다. 수용 가능한 관객이 300명에 이른다. 무대 위는 오후 4시에 시작되는 콘서트를 위해 장비 체크가 한창이다. 동굴 내부에서는 소리가 쉽게 공명하기 때문에 다채로운 효과음을 내고, 마음속을 전율케 하는 음향효과를 누릴 수 있다. 풍부한 소리 덕분에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더욱 커진다.

더위가 한 풀 꺾이는 9~10월부터는 어떤 행사가 진행될까. 올해 하반기에 ‘동굴 와인 레스토랑’을 새로 열기 위한 동굴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와인 시음 행사에서 다채로운 와인을 맛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와인을 분양받아 저장소에 보관할 수도 있다. 경북 청도의 감와인, 전북 무주 머루와인 등도 수탁 판매할 예정이다. 최봉섭 과장은 “동굴에서 여러 지역의 특산품을 판매해 관광산업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동굴 속에서 피서도 즐길 수 있지만 다채로운 문화공연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은은한 조명과 함께 역사, 문화, 예술이 공존하는 환상적인 공간이 가까이 있다.

위치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산 17번지 일대 | 이용시간 오전9시~오후5시(명절 휴무), 평일 오후 4시20분, 주말 오후 4시45분 입장 마감

201409호 (20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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