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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 알카에다도 두 손 든 ‘IS’의 세계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무차별적으로 이교도 참수하는 ‘탁피리즘’ 앞세워 칼리파제 국가 건설 기도… 오일머니와 곡물 밀매 자금으로 중동과 유럽의 소외된 무슬림 청년층 끌어들여

지난 6월 이라크에서 둘째로 큰 도시인 모술에서 이슬람국가(IS) 대원이 IS를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이들 극단주의 세력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테러조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정보 당국이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반군인 ‘IS(Islam State·이슬람 국가)’를 과소평가했다.”


지난 9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공습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IS를 분쇄해 궁극적으로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월 28일 CBS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인 <60분(Sixty Minutes)>에 출연해 정보기관이 지난 몇 년 동안의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IS가 급속하게 영역을 넓히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한 내용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솔직한 발언처럼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미국 정보 기관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IS가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를 제치고 글로벌 지하드(성전)의 주도권을 잡으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IS, “방법·수단 가리지 말고 죽이라”

IS는 중동 지역은 물론 국제질서까지 뒤흔들 만큼 막강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9월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IS를 ‘죽음의 네트워크(network of death)’로 규정하면서 IS 격퇴에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IS와의 전쟁은 테러리즘 대(對) 휴머니즘의 대결”이라면서 새로운 중동전쟁을 시작했음을 선언했다.

미국의 IS 격퇴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제연합전선을 구축해 이라크와 시리아의 IS를 공습하는 것이다. 국제연합전선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과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동참하고 있다.

둘째, 현지 토착 군대를 활용해 IS와 지상전을 벌이는 것이다. 토착 군대는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 시리아 온건 반군 등이다. 이들이 제대로 IS를 소탕하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IS와의 전쟁은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도 IS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인 관측도 나온다.

셋째, IS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다. IS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 극단주의자들이 IS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가 ‘외국인 테러 전투원(Foreign Terrorist Fighters)’이 IS에 가담치 못하도록 강제로 규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맞서 IS는 미국과 국제연합전선에 참여한 국가들에 대해 무차별 테러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IS는 국제연합전선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국민을 살해하라고 추종자들에게 지시했다. IS 대변인 아부 모하메드 알 아드나니는 “미국인과 유럽인이든, 민간인과 군인이든 관계없이 죽일 수만 있다면, 방법과 수단에 상관없이 죽여야 한다”고 밝혔다. IS는 지금까지 인질로 붙잡은 미국인 기자 2명과 영국인 구호활동가 2명 등 4명을 참수했다. IS가 서방국가 인질을 참수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것은 앞으로 절대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IS는 미국과 국제연합전선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테러 공격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IS는 또 중동 각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도 연계를 강화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IS와의 전쟁은 말 그대로 새로운 형태의 싸움이다. 기존의 전쟁이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라면 IS와의 전쟁은 ‘국가 대 무장 극단주의’와의 대결이다. 어떻게 보면 비대칭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IS는 애초 2002년 요르단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만든 ‘자마트 알타우히드 왈 지하드(일신교와 성전)’에서 출발했다. 알 자르카위는 2004년 미군에 각종 물품을 제공하던 우리나라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의 직원 김선일 씨를 납치해 참수하는 등 각종 테러를 저질러왔다. 알 자르카위는 같은 해 알 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알카에다 하부조직이 되면서 자신이 이끌던 조직의 이름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로 바꾸었다. 미국의 강력한 소탕작전으로 알 자르카위가 2006년 사살되자, AQI는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이름을 바꾸고 명맥만을 겨우 이어갔다. 그러다 시아파가 주축인 이라크 정부가 수니파를 탄압하면서 이에 반발한 수니파 젊은이들이 ISI에 합류하면서 부활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무함마드의 대리인 칼리프의 부활

ISI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43)가 2010년 5월 지도자가 되면서 조직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알 바그다디는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시리아로 진출할 것을 모색했다. 당시 알 바그다디는 자신의 심복인 아부 모하마드 알 골라니를 시리아로 보내 알카에다 지부인 알 누스라 전선을 만들도록 했다. 알 바그다디는 2011년 말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 ISI의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ISI는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치하에서 일했던 수니파 장교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했다.

알 바그다디는 2013년 4월 알 누스라 전선이 ISI에서 파생된 조직이며, 두 조직을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통합을 거부한 알 누스라 전선 지도자 알 골라니는 빈 라덴의 뒤를 이어 알카에다 최고지도자가 된 아이만 알 자와히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알자와히리는 알 바그다디와 알 골라니에게 이라크와 시리아에 각각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알 바그다디는 이를 거부하고 같은 해 5월 알 누스라 전선의 본거지인 시리아 동북부 도시 라카를 점령했다. 이후 ISIL은 시리아에서 갈수록 세력을 확대하면서 알 누스라 전선을 흡수 통합할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알자와히리는 지난 2월 ISIL에 알 누스라 전선과의 통합을 중단하고 시리아에서 철수할 것을 명령했지만, ISIL은 이를 거부했다. 알자와히리는 ISIL이 알카에다 조직이 아니라고 파문을 선언했다. 알 카에다로부터 쫓겨난 ISIL은 오히려 더욱 기세를 올렸다. 시리아 북동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한 ISIL은 여세를 몰아 이라크 북부 지역을 점령했다. 알 바그다디는 지난 6월 29일 시리아 북부 라카에서 칼리프로 즉위했고, ‘IS’를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의 ‘움마(이슬람공동체)’인 ‘칼리프제 국가(caliphate)’라고 선포했다.

그렇다면 알 바그다디는 무엇 때문에 칼리프가 됐고, 칼리프제 국가까지 창설했을까? 칼리프는 이슬람의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무함마드의 종교적·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다. 무함마드가 632년 세상을 떠난 이후 슈라(원로 회의)에서 칼리프 4명을 차례로 선출했다. 이런 방식의 선출 제도는 661년까지 계속됐다. 무함마드 사후 제1대부터 제4대 칼리프까지의 시기를 정통 칼리프 시대라고 부른다. 이후 칼리프의 정통성을 놓고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된다.

알 바그다디는 1971년 이라크 북부 사마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브라힘 아와드 이브라힘 알리 알 바드리 알 사마라이’이다. 그런데 알 바그다디는 이름을 ‘아부 바크르’로 바꾸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 사후 최초의 칼리프 이름이다. 무함마드의 오랜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573∼634년)는 통치 기간 중 이라크와 시리아 정복에 나선 최초의 이슬람 지도자 이기도 하다.

IS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북부를 영토로 삼고 있다. IS 이전 명칭인 ISIL(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레반트는 레바논·이라크·요르단·시리아·팔레스타인을 통합하여 지칭하는 명칭이다. 알 바그다디는 ‘바그다드 출신’이라는 뜻이다. 사마라 출신인 그가 알 바그다디를 사용하는 이유는 바그다드의 중요성 때문이다. 칼리프제 국가인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였고 압바스 왕조의 수도는 이라크의 바그다드였다.

알 바그다디는 바그다드의 이슬람대학에서 이슬람학(시·역사·족보학 등)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 집권 시절 바그다드 동북쪽 디얄라 지방에서 이슬람 성직자로 활동하며 반정부 활동을 벌였다. 2003년 미군 침공 이후 무장세력을 규합해 반미 투쟁을 벌였다. 이후 알 바그다디는 알 자르카위와 만나며 본격적으로 지하드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다 2005년 미군에 붙잡혀 2009년까지 이라크 남부 부카 캠프에서 감옥 생활까지 했다. 알 바그다디가 칼리프가 된 이유는 자신이 무함마드의 후계자임을 이슬람권에 과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알 바그다디는 말 그대로 스스로를 이슬람권의 최고지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알 바그다디가 칼리프제 국가를 선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슬람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일대 사건


이라크 민병대가 IS의 포위 공격을 버텨낸 이라크 북부 모술댐 인근의 아메를리 마을을 순찰하고 있다.
알 바그다디는 또 빈 라덴의 유산을 계승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속셈도 있는 듯하다. 빈 라덴은 지하드를 벌이면서 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 공동체를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알 바그다디가 이슬람 역사에서 사라진 칼리프제를 부활시키고 칼리프가 통치하는 국가까지 세웠다는 것은 자신이 빈 라덴의 진정한 후계자이며, IS가 알카에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알카에다의 하부조직으로 출발한 IS가 시리아 북동부와 이라크 북부를 통치하는 사실상 ‘국가’가 됐다는 것은 이슬람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라크 내 소수 종족인 야지디족이 지난 8월 IS의 공격을 피해 도후크 지역의 난민캠프로 몰려들고 있다.
IS가 알카에다와 분리된 이후 칼리프제 국가를 선포하기까지 불과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IS는 현재 영국보다 더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IS는 지난 6월 한 달 만에 이라크에서 둘째로 큰 도시인 모술을 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로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IS는 그 이전에는 시리아 동북부의 라카가 유일한 근거지였다. IS의 활동무대는 2013년 12월 이전까지만 해도 시리아 동북부 지역이었다. 이 지역마저도 알 누스라 전선 등 시리아 반군 세력들과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IS가 올 들어 이라크로 활동 범위를 확대하면서 수니파의 거점이던 팔루자와 라마디 등 안바르주 지역 일부를 점령했다.

IS가 갑자기 세를 불리고 칼리프제 국가까지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거주해온 수니파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라크 북부 수니파 주민들은 그동안 시아파 정권의 노골적인 차별 정책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 점을 간파한 IS는 이 지역의 수니파 부족 지도자들을 포섭했다. 부족 지도자들은 IS의 극단주의적 행동에는 반대했지만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 정부를 붕괴시키고 수니파 국가를 세우자는 목표에는 찬성했다. IS가 이라크 북부의 도시와 마을을 하나둘씩 점령하면서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자 수니파 주민들은 환호했다. 게다가 이라크 정부군은 부패 등으로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오합지졸이었다. 시리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시아파의 일종인 알라위파 출신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에 시달려온 수니파 주민들은 IS를 적극 지지했다.

IS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념적으로 극단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이다. 특히 IS는 포로가 된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는 물론 소수민족인 아지디족과 시아파 민간인들까지 학살하고 참수하는 등 잔인한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IS의 이념은 와하비즘(Wahabism: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알카에다보다 극단적이다. 와하비즘은 이슬람 신학자인 무함마드 이븐 압드 알 와하브 와하브(1703~1787)의 이름을 딴 것이다. 와하비즘은 이슬람 세계의 타락이 이슬람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했다면서 무함마드 시대의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IS가 추구하는 이념은 극단적인 ‘탁피리즘(Takfirism)’이다. 탁피리즘은 와하비즘에서 파생됐다. 탁피리즘은 세계를 이슬람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불신자)으로 구분하고 불신자들을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수니파의 근본주의를 말한다. 탁피리즘의 신봉자들(탁피리스트)은 이슬람 성서인 쿠란에 기초한 칼리프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임무라고 생각한다. 탁피리스트는 이슬람의 이념에서 일탈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무자비하고 단호한 응징을 통해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면서 반(反)이슬람 행태에 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 노선을 주장한다. 이들은 종교적 계율과 실행 및 지하드(성전)에서 극도의 잔인성과 공포를 수단으로 삼고 있다. IS가 무차별 참수를 자행하는 것도 이런 이념에서 비롯됐다.

수니파 성직자들, “IS의 행동은 이슬람 모욕”


지난 9월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군 소속의 한 병사가 바쉬카산에서 로켓추진유탄발사기(RPG)를 들고 IS가 장악한 카지르 지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슬람권에선 탁피리즘을 금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그랜드 무프티(이슬람 율법을 해석하는 최고 권위자)인 셰이크 압둘 아지즈 알 셰이크가 “IS는 이슬람의 제1의 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니파 성직자(이맘) 126명도 알 바그다디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IS의 행동은 이슬람과 무슬림, 전 세계에 대한 큰 잘못이자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이 서한에는 이집트 최고 이슬람법학자 알리고마, 보스니아 이슬람법학자인 무스타파 세릭, 나이지리아 소코토의 술탄인 무함마드 사아드 아부 바카르 3세, 인도네시아 이슬람단체 무하마디야 지도자 딘 시암수딘 등이 서명했다.


IS 웹사이트에 게재된 모술의 시아파 이슬람 사원 알쿠바 후세이니야 모스크의 폭파 모습. IS는 열 곳 이상의 시아파 성지사원을 파괴했다.
오죽하면 알카에다가 IS의 잔인한 행동에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을까. 빈 라덴의 ‘오른팔’로 불리던 아부 카타다도 IS를 “지옥 불구덩이의 개(dogs of hellfire)”, “살인과 파괴 기계들”이라고 비난했다. IS는 강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샤리아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IS는 점령 지역에서 음악 등 모든 세속적 관행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여성과 어린아이를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IS의 극단주의 노선은 사담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군 조직력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IS가 이라크 정부군과 시리아 정부군 및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 등과 동시에 3개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알 바그다디는 미군에 붙잡혀 부카 캠프에서 수감생활을 했을 때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 장성 및 장교들과 끈끈한 유대 를 맺었다. IS 서열 2위로 시리아 전선을 담당하는 군사령관인 아부 알리 알 안바리는 이라크군 소장 출신이며, 이라크 전선을 담당한 파델 아흐메드 압둘라 알 히얄리(아부 무슬림 알 투르마니)도 이라크군 중령 출신으로 정보와 특수부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이들은 모두 당시 부카 캠프 출신들이다.

알 바그다디는 이들과 함께 알카에다식 게릴라전 위주의 전술에 후세인식 이라크 정규군 전략과 국가운영 전략을 접목시켰다. 지휘부에는 샤리아(이슬람 율법 담당)·슈라(내각·입법 담당)·군사·치안 등 4개 위원회를 두고 IS 운영에 조언하도록 했다. 또 석유개발 장관을 포함한 전시내각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IS에서 활동하는 전사들이 최대 3만 1500명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시리아 인권감시단체는 지 난 7월 IS에 들어간 신입전사들만 6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IS에는 전쟁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군인이 많 다. 아프가니스탄전쟁, 체첸분쟁 등 국제적인 전투 현장을 누 빈 병사들이 참가하고 있다. IS는 전사 한 명 당 400달러의 월급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혼자는 배우자 1 인당 100달러, 자녀 1인당 50달러를 추가로 지급받는다. 주택과 연료도 무상으로 받는데, 외국인 출신 전사는 수당을 추가로 더 받는다고 한다.

IS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테러조직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시리아 동부 유전 중 50곳, 이라크 북서부 유전 20곳이 IS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생산되는 석유는 암시장에서 밀매되며 IS에 하루 평균 2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주고 있다. 곡식인 밀도 IS에 중요한 자원이다. IS 가 장악한 이라크 지역은 곡창지대다. 특히 이라크에서 생산되는 밀의 약 40%가 IS가 장악한 5개 주에서 수확된다. 최근에는 중재자를 통해 이라크 정부에 밀 매각을 시도할 정도로 대범하다. IS는 세금도 받고 있다.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인두세인 ‘지즈야’를 비롯해 대중교통 이용료·통행세·보호 세 등을 걷고 있다. 또한 IS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장악한 뒤 은행에서 4억 2500만 달러를 챙겼다.

할리우드 영화 뺨치는 선전·선동술


이라크 인근 걸프해역에 배치된 미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함의 요원들이 IS를 공격할 전투기에 장착할 공대공 미사일을 옮기고 있다.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군사기지를 손에 넣으면서 정부군보다 더 많은 전투 장비를 보유했다. 전사들은 모두 M16 소총을 3세트씩 갖추고 있으며 미국산 험비·곡사포·스팅어 미사일·대전차무기도 보유하고 있다. IS는 또 옛 소련제 T-55탱크 30대와 T-72탱크 1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IS는 선전·선동에도 능숙하다. IS는 알 하야트 미디어와 알 푸르간이라는 홍보·선전 담당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IS는 서방국가에서 전사들을 모집하고 광적인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탁월한 역량을 과시한다. IS가 최근 제작한 52초짜리 동영상은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예고편을 연상케 할 정도다. 이 동영상은 백악관이 폭파되면서 화염에 휩싸이는 슬로모션 동작 영상에 음산한 배경 음악과 함께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는 문구로 막을 내린다. 미국은 최첨단 공격 무기로 IS를 폭격하고 있지만, 이미지와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홍보와 선전전에서 IS에 뒤처지고 있는 셈이다.

IS의 선전 · 선동은 외국인 출신 전사들을 충원하는 데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IS에 가담한 외국인 전사는 80여 개국 출신으로 모두 1만 5천명이며 이 중 2천 명은 서방국가 출신인 것으로 추정했다. 외국인 전사들의 수는 지난해 12월부터 정체되거나 감소하다가 지난 6월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세를 급속히 확장하면서부터 다시 증가했다고 한다. 이중에서 20∼25%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서방 출신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중동 국가 출신이다. IS에 가장 많이 가담한 국가는 튀니지로 3천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으론 사우디 2500명, 모로코 1500명 등이다. 유럽 국가들에서도 상당한 인원이 이슬람 국가에 합류했다. 러시아에서는 800명, 프랑스 700명, 영국 500명, 독일 300명, 벨기에 250명 등이다. 미국에서도 100~300명이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IS에 합류한 서방 출신들 중 10∼20%는 여성이라고 알려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서방 출신의 14∼15세 정도의 소녀들이 IS 전사와 결혼해 아이를 낳겠다면서 시리아로 갔다고 보도했다. 유럽·북미·호주 등을 떠나 IS에 합류하는 여성은 수백 명에 달한다. 이들 중 프랑스 63명, 영국 50명, 독일 40명 등인 것으로 각국 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화이트 위도우(white widow)’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백인 여성 사만다루스웨이트(30)가 IS에 가담한 서방국가 출신 여성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루스웨이트는 지난 2005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벌인 저메인 린지의 부인으로 남편이 숨진 이후 케냐 등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 공격에 가담해온 혐의로 수배를 받아왔다. IS는 지원 여성 전사들의 지침서도 인터넷에 올렸다. 움 레이스라는 여성 전사는 “미리 예방주사를 맞을 것, 튼튼한 부츠와 따뜻한 코트를 챙길 것, 히잡(이슬람 전통 두건)과 니캅을 충분히 챙겨 올 것” 등을 당부했다. 미국의 테러리즘연구분석컨소시엄(TRAC)은 과거에는 여성들이 남성의 보조 역할로 지하드에 참여했지만 IS에 대규모로 여성들이 가담한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외국인 전사들이 IS에 대거 가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념적·종교적 신념과 의무를 들 수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수니파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자신이 겪는 것으로 생각해 중동지역에 활동하는 극단주의 성향의 무슬림들이 IS에 가담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도 있다. 터키 출신 전사들을 보면 대부분 저소득층 젊은이로 돈 때문에 IS에 합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터키 출신 전사는 “전투에 참여하면 하루에 150달러를 받고 모든 것은 공짜”라고 밝혔다.

유럽의 높은 실업률도 IS의 ‘자양분’ 역할

서방 국가 출신 전사들은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 이민자의 2·3세다. 이들은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실제로 유럽에서 무슬림 청년의 실업률은 전체보다 2~3배나 높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의 청년실업률은 20%를 넘는다. 직업이 없는 무슬림 청년들은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하면서 더욱 소외됐다. 극우파들이 높은 실업률의 원인을 외국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국제급진주의연구센터(ICSR)의 연구원 시라즈마허는 “유럽 주류 사회에서 배척된 이들은 외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지적했다. IS에 가담한 외국인 전사가 많은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무슬림 인구 비율이 높다. 이들은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현실을 깨달으면서 극단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분석할 수 있다.

외국인 전사들의 출신 국가로 볼 때 이들은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다. IS에 가담해 전쟁 기술을 배우고 풍부한 전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극단주의 사상을 반복 학습하고 실행하기 때문에 테러 등 잔악한 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테러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는 지난 5월 프랑스 출신 IS 대원이 벌인 벨기에 브뤼셀 유대박물관 테러 등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알카에다보다 더욱 강력하고 잔인한 IS의 부상으로 중동 지역은 물론 전 세계가 앞으로 상당기간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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