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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동향 - 여야 정치권의 동교동계 신(新) 전성시대 - 노병은 죽지 않았다? 

권노갑 고문, 야당의 정치적 위기 때마다 지도부에 조언… 한광옥·한화갑은 박근혜 대통령 도와 국민통합에 힘 보태 

9월 30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사당동 국립서울현충원 안에 자리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노(老)정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김옥두(76) 새정치민주연합 고문, 박양수(76) 전 의원, 김방림(74) 전 의원, 배기운(64) 전 의원, 윤철상(62) 전 의원 등이었다.


동교동계 인사들의 DJ묘소 참배가 정례화되면서 DJ묘소는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새로 들어설 때면 가장 먼저 찾는 장소가 됐다. 9월 23일 동교동계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맨 오른쪽)이 묘소 참배 후 이희호 여사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얼마 뒤 “형님 오늘도 오셨네~. 학교 안가고!”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김 전 대통령이 ‘동지’라고 부를 정도로 아꼈던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84)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었다. 권 고문은 팔순이 넘은 나이에 영문학과 박 사과정에 입학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권 고문도 반가워하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먼저 와 있던 후배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뒤이어 권 고문보다 열네 살이나 나이가 적은데도 백발이 성성한 남궁진(72)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도착하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남 전 장관의 탈모 부위가 더 넓어져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 “허허 공산명월이 서산낙일로 떨어져가네” 라며 탄식했던 것. 덩달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정균환(71) 전 의원의 동안(童顔)도 화젯거리가 됐다. 한적하기만 했던 묘소가 원로 인사들의 입담으로 술렁거리며 참배객들로 성시(成市)를 이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박준영(68) 전 전남지사도 오랜만에 찾아와 원로들과 악수를 나누었고, 박 상천(76) 전 민주당 대표도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다. 국제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대학에 강의를 나간다는 막내 김민석(50) 전 의원도 바쁜 시간을 쪼개 찾아와 원로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한때 신문 정치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이들 원로들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 인사들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참배하며 서로의 소식을 전할 때면 DJ묘소는 이처럼 동교동계 인사들의 ‘만남의 광장’이 된다. 동교동계는 DJ직계라고 할 수 있는 김 전 대통령 비서출신이 20여 명, 범동교동계 인사까지 확대하면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1세대는 권노갑·한화갑·김옥두·이용희·남궁진·이윤수 등 6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해온 인사들이고, 2세대는 최재승·윤철상·설훈·배기선·정동채 등 80년대 초반 합류한 이들이다.

3세대는 전갑길·배기운·이협 등 87년 이후 합류한 이들이고, 범동교동계로는 한광옥·조재환·박양수·이훈평 의원 등 이 꼽힌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함께 군사독재 시절에 정치권 내 민주화 세력의 양대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시계가 정확히 11시30분을 가리키자 김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희호(92) 여사가 비서진의 부축을 받으며 묘지 입구에 도착했다. 그 순간 참배를 위해 모인 인사들도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이희호 여사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김 전 대통령 생전에 동교동계의 특징이었던 일사불란한 모습이 재현되는 듯했다. 이후 권노갑 고문 등 참배객들은 이희호 여사의 뒤쪽에 나란히 정렬해 묵념하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김 전 대통령 사후 5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되풀이돼온 참배 여서 그런지 추모의 분위기는 경건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서울 현충원은 동교동계 ‘만남의 광장’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로 이 참배모임의 총무 역할을 하고 있는 윤철상 전 의원에 따르면 동교동계 인사들의 DJ묘소 참배는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뒤 이희호 여사가 매주 화요일에 혼자서 묘소를 참배하자 이 여사의 외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하나 둘씩 함께 하면서 정례화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 멀리 강원도, 대전에서 찾아 오는 참배객도 있다고 한다. 참배객은 동교동계 전직 의원이 많지만 현직인 문희상·이석현·설훈·김동철 의원 등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참석해왔다고 했다. 이희호 여사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주 화요일 참배는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윤 전 의원은 또 “보통 40~50명이 모이는데 그날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는 분이 연락을 해오면 자연스럽게 식사장소로 이동해 정담을 나눈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이날도 권노갑 고문의 부인이 경영하는 강남의 비빔밥집 ‘예촌’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함께했다. 이희호 여사와 권노갑 고문이 자리한 헤드테이블에는 김방림 전 의원, 그리고 이날 점심을 대접하기로 한 김민석 전 의원이 앉아 대화를 나눴다. 권 고문은 김 전 대통령의 생일이었던 1월 6일, 이희호 여사와 동교동계 인사들을 이 비빔밥집으로 초대해 통크게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주 정례화된 이 참배모임이 동교동계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결사모임으로는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참여하는 인사들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윤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은 민주당의 뿌리가 어디에 있 는지 일깨워주는 의미가 있다”라며 “대부분 현실정치를 떠나 있는 입장인데, 동교동계의 목소리를 굳이 내서 정치적으로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자가 만난 또 다른 동교동계 인사는 “우리가 하 는 DJ묘소 참배가 정례화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새로 들어설 때면 가장 먼저 찾는 참배 장소가 됐다”라며 동 교동계 인사들의 영향력이 현실정치에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9월 23일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문재인·박지원 비대위원 등 새로 출범한 비대위의 중진들이 첫 외부 일정으로 김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이희호 여사, 권노갑 고문과 만나 조언을 구했다. 당시 문희상 위원장은 묘소 참배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치철학이 새록새록 그립다. 너무 잘못한 것 같아서 뵙기가 부끄럽다”며 자신의 뿌리가 동교동계임을 밝혔다. 그리고는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이 묘소 주변에서 권노갑 고문 등 동교동계 원로들과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상임고문은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실질적인 대부 역할을 하고 있다. 당의 원로로서 당이 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고 당이 위기에 처할 때 파국을 막아주고 있다고 한다. 최근 몇 차례 고비 때마다 권노갑 고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증언이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탈당’파동을 사전에 진화시킨 사람도 권노갑 고문이었다고 한다. 박 원내대표가 탈당까지 언급하며 칩거하자 권노갑 고문은 박 원내대표의 남편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탈당을 간곡하게 말렸다.

권 고문은 지금의 문희상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키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희상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한 동교동계 출신이다. 권 고문은 처음에는 같은 동교동계 인사인 이석현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밀었지만 비상국면에는 강단 있는 문희상 의원이 더 낫다고 판단해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권 고문은 이후 “당이 어렵다. 만장일치로 문희상 의원을 추대하자”고 밀어붙여 문희상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이쯤 되면 동교동계의 원로와 중진들이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 고문은 최근 문희상 비대위원장에게 “비상한 상황이니 만큼 전직 대선후보, 대표를 모두 망라해야 한다”며 당의 여론을 폭넓게 수렴할 수 있도록 대선후보를 지낸 정동영상임고문과 중도파를 대변하는 김한길 전 대표를 비대위원에 참여시키는 게 좋겠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권 고문은 당의 원로로서 차기 대선주자들을 단속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촉구) 단식을 중단했던 것도 “대선후보를 지낸 사람으로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권노갑 고문의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권 고문은 최근 진보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정동영 고문에게도 제주도 강정마을 시위,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앞장서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당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쉽게 하기 힘든 말이기도 하다.

여권으로 간 한광옥·한화갑 맹활약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고문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DJ묘소에 먼저 와 있던 후배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권노갑 고문에 이어 김옥두 새정치민주연합 고문도 새정치민 주연합의 원로로서 지도부에 중요한 조언들을 해주고 있다.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이기도 한 김옥두 고문 은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올해 6월 전남도지사 경선 후보로 나선 주승용 의원을 위해 유세 현장을 순회하는 강철 체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정부 여당 안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있는 한광옥(72) 전 비서실장과 한화갑(75) 전 대표가 대표적인 인사이다.

2012년 대선 때 동교동계 인사 중 가장 먼저 새누리당행을 택한 한광옥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6월부터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지역차별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운전면허증의 지역 표기를 없애 박수를 받았다. 특히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대통합위 간사를 맡겨 국민통합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관심을 더 이끌어내려 애쓰고 있다.

특히 한 위원장은 지방 연설을 다니면서 “구들장이라는 게 데워지기는 어려운데 한번 데워지면 식을 때까지도 오래 걸린다. 국민대통합도 오래 걸리지만 한번 되면 사회 인프라가 튼튼해진다”는 ‘구들장 논리’로 국민통합에 힘을 보태고 있다. 10월에도 전국 4개 권역을 돌며 국민대통합과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해 갈등해소 방안과 국민통합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는 등 박 대통령이 주창한 국민통합에 매진하고 있다.

권노갑 고문과 함께 ‘양갑(兩甲)’ 또는 ‘리틀 DJ’로 불리는 동교동계 핵심이었던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도 국민통합 상임고문으로 활약하며 전성기 못지않게 활약하고 있다.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북한을 먼저 지원하고,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북한 인정을 통한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이를 통해 최종적 영토적 통일에 이르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그만의 통일론을 설파하는 등 전국을 돌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역시 2012년에 민주당을 탈당한 김경재(72) 전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도 언론과 방송에 빈번히 등장하며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세월호 국면에서 ‘동교동·상도동 정치’ 부활


1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동교동계 인사인 그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민통합에 힘을 보태고 있다. 2 동교동계 핵심인사인 한화갑 전 대표는 특강정치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돕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동교동계라는 귀속 의식은 여전하다고 한다. 지난 8월 18일 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도식에는 권노갑 상임고문과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같이 참석해 동지애를 나누기도 했다.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1997년 9월 권노갑 의원과 한화갑 의원 등 동교동계 핵심 7인방이 ‘집권하면 어떠한 공직에도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며 소속정당을 떠나 대의를 추구하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희생정신과 결단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여야를 망라한 동교동계 인사들의 이같은 활약은 정치판에도 긍정적인 바람을 몰고 왔다. 새누리당을 자극해 3김 시대를 이끌었던 동교동·상도동 정치가 부활한 것이다. 공전을 거듭하던 세월호 특별법 정국이 종료되고 국회 정상화가 극적으로 합의된 것도 그 덕분이다. 동교동계 출신인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상도동계 출신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통크게 합의하면서 엉킨 실타래를 풀어갔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김 대표와 문 위원장은 과거 경쟁하면서도 협력해온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출신답게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도 타협과 협상을 추진해 결국 타결을 이끌어냈다. 3김 시대 유산이라는 옛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정치가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국회 정상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한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친노 VS 비노, 친박 VS 친이로 나뉘는 도토리 키재기식 계파정치보다는 경쟁하면서도 타협할 줄 아는 ‘통 큰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는 평가다.

이 같은 동교동·상도동 정치의 부활은 11월에 여의도를 한바탕 들썩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고문의 출판기념회가 11월 3일 국회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권 고문을 수행하는 문성민 비서는 “권 고문과 정치활동을 함께 해온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기쁜 날이 될 것”이라 고 말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동교동계 정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0년 전 JP는 자신을 ‘지는 해’라고 비판하자 “지기 전에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와병 때문에 현실로 이루지 못한 JP의 그 소망을 지금 권노갑 고문과 한광옥 위원장 등 동교동계 원로들이 현실로 이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현역시절 못지않게 활약하고 있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신전성 시대는 틈만 나면 계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는 몇몇 중진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인터뷰 -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반기문 사무총장도 야당후보 될 수 있다”


총선 공천 잘하고 대선후보 잘 뽑으면 야당 지지율 금방 올라가…“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이미 한 몸, 분당은 바람직하지 않아”

글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권노갑(84)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최근 자신의 51년 정치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회고록을 펴냈다. 9월에는 만학의 열정을 안고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 박사과정에 입학해 손자뻘인 학생들과 공부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젊은이 못지않게 활약하고 있는 그를 10월 1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새정치민주연합 안팎에서 여전히 권 고문을 찾고 의지하는 분이 많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정치적) 욕심이나 (권력에 대한) 미련이 있겠습니까? 지금에 와서 내 소원이 있다면 어떻게 하든지 새 정치민주연합이 정권을 창출하는 수권세력이 되야겠다는 것뿐 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50년 만에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뤘고,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재창출했어요. 이제는 그 두 분을 잇는 제3기 대통령이 우리 야당에서 나와서 김 대통령의 정책과 노선을 계승해나가야 합니다. 그게 내 소원입니다.”

“안희정 지사는 늘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


권노갑 고문은 새정치민주연합 인사들이 여전히 찾고 의지하는 정치 원로다.
권 고문의 소원이 이뤄지려면 훌륭한 대통령감이 나와야 할 텐데 차기 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박원순 시장, 안희정 지사, 문재인 의원, 정동영 고문, 정세균 고문, 안철수 의원 등 한둘이 아니죠. 이 사람들이 2017년 대선 경선 때 선의의 경쟁을 해서 누가 후보로 선출되건 당이 총력을 기울여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야 합니다. 게다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고위직을 지낸 분인데 우리 후보군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박원순에서 정세균까지 좋은 후보가 넘칩니다”

40대의 안희정 지사까지 염두에 두십니까?

“안 지사는 무엇보다 품성이 좋아요. 사람이 겸손하고, 친화력이 있습니다. 또 늘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나라를 이끌 사람은 10년, 20년을 내다보는 통찰력으로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안 지사에게 늘 이야기하기를 ‘국민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라.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껴안는 포용력을 가지라’고 했어요. 안 지사도 지금 그렇게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려면 야당이 강해져야 할 텐데, 지금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여론이란 게 늘 가변적입니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2016년 총선 때 공천 잘하고, 2017년에 국민의 호응을 받는 대통령 후보를 뽑아놓으면 야당의 지지율은 금세 올라가요. 그러면 당도 살고 대통령 선거도 이길 수 있지요. 총선 공천을 잘하려면 내년 2월 전당대회부터 잘해야 합니다. 다수파인 친노계가 당권을 잡더라도 공정하게, 균형 있게 공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자질을 가진 새로운 인물들을 대폭 영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반발하는 세력이 생기지 않게 되지요. 그러지 않고 특정 계파가 독점하면 꼭 문제가 생깁니다.”

2012년 총선 공천 잘못이 계파정치 키워

권 고문에 따르면, 과거 민주당 때는 당권을 주류계가 잡으면 당직이나 공천권을 다 갖지 않고 60%만 가져갔다고 한다. 40%는 무조건 비주류에 배분해줬기 때문에 계파정치가 발호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권 고문은 “(친노가 주도한) 2012년 총선 때 공천 배분은 6대 4가 아니라 9대 1이 넘었다. 여기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다수 생겨나면서 계파정치가 심해 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노계가 당을 장악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 내게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미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은 한 몸입니다. 지금 친노계라는 한명숙·이해찬 전 대표도 사실 그 뿌리는 동교동이잖아요. 김대중 대통령이 자리를 주면서 당에 수혈했던 사람들이니까요. 분당은 바람직하지 않죠. 이미 열린우리당으로 경험한 것 아닙니까? 지금은 모든 계파를 초월해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해요. 그래야 수권정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만큼 친노계가 더 유념해야 해요. 잘못하면 당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벌써 3분의 1(20개월)이 지났습니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리라고 기대했는데 인사(人事) 문제가 너무 무원칙해 실망이 큽니다. 내 생각에는 대통령 주변에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아요. 인사를 총괄하는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인사문제를 상의할 때 사적인 것은 절대 배제해야 합니다. 사람을 추천할 때는 그 분야에서 능력이 있고, 또 대통령과 정부를 위해 잘 할 수 있 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지 나와 가깝다거나 아는 사람이라 고 해서 추천해서는 안 됩니다.”

박정희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과거를 다 묻고 용서하기로 했지요. 어느 날 대통령이 나를 불러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가장 탄압받고 억업받은 사람이 자네하고 나 둘 아닌가. 그러니 내가 명예회장을 하고 자네가 부회장을 하고, 박근혜도 부회장하고, 신현확 전 총리에게 회장을 맡겨서 기념사업회를 만들세’ 그러시더군요. 그렇게 된 겁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잘 되었으면 합니다. 불행하게 돌아가신 부모들을 위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어요.”

후배 정치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대통령 후보나 당 대표를 지낸 사람들은 시위나 집회에 앞장설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한쪽에서기보다는 국민 대다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얘기를 내가 당의 상임고문으로서 특히 대통령후보를 지낸 문 재인 의원, 정동영 고문에게 자주 얘기해주고 있어요. 지도자는 국민 다수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고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51년 정치역정을 담은 회고록을 내셨다지요?

“책 이름이 <순명(順命)>입니다. 가까운 분들을 모시고 11월 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합니다. 1999년에 일본 동경의 오쿠라호텔에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삶이 아름답다>는 제목의 일본어판 책을 내서 출판기념회를 한적이 있는데 국내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나를 부르더니 아들 결혼식에 청첩장도 내지 말고 축의금도 받지 말라고 했어요. 출판 기념회도 사람들 많이 모이지 말게 한국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 일본에서 했지요. 제가 그렇게 순명했습니다.”(웃음)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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