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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한국의 언터처블 권력’ 국회예산정책처·국회입법조사처 - 행정부 감시하는 무소불위 파워 

자료 요청권, 예산 심사권 지렛대삼아 중앙부처 공무원들 휘어잡아… 자정 노력 없으면 국회의장도 통제 못하는 ‘수퍼갑’으로 둔갑할 수도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인 10월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높고 푸른 하늘과 만발한 꽃들이 가을 정취를 자아낸다.
정기국회가 국정감사로 한창 숨가쁘게 돌아가던 10월 14일 국회의원 전원에게 한 통의 e메일이 날아들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상임위별 예산 심사를 앞두고 의원들에게 배포한 4권짜리 ‘2014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였다. 예산정책처는 해마다 이맘때 ‘OOOO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를 펴냈다. 상임위와 예산결산특위에서 활동하는 의원 지원용이다.

올해는 예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압축해서 정리한 보도자료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엔 A4용지 24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12개 분야별 재정투자 현황, 재원배분 추이 및 특징을 분석해주었다. 이제는 국 회의원들이 16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일일이 다 훑어봐야 내년도 예산의 전체 맥락을 가늠해볼 수 있다.

보도자료가 생략된 것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새누리당 의원 14명이 ‘국회예산정책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예산정책처의 직무에서 국가 주요 사업에 대한 평가 업무를 제외’하는 것과 ‘예산정책처의 조사 또는 분석자료를 외부홍보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외부홍보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보도자료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예산정책처가 직무와 관련해 정부 정책 평가 등을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하면서 예산정책처의 의견이 국회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댔다.

이 법안은 현재 소관상임위인 국회운영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을 검토한 국회운영위 수석전문위원은 “개별 법률에서 홍보를 금지하는 입법례가 없다”고 했다. 그는 나아가 “의회 재정 기구는 재정 현안이나 문제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증진을 위해 분석·평가보고서와 같은 업무 성과물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외부 홍보가 타당하며 보도자료를 내도 된다는 말이다

예산정책처 보도자료를 둘러싼 여야 기싸움


국회입법조사처는 입법 및 정책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중장기 현안도 분석한다.

12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국가 재정 및 예산을 분석·연구하는 국회예산정책처.
그럼에도 당사자라 할 국회예산정책처는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그것도 지난해 11월부터 예산·정책 관련 보도자료는 아예 씨가 말랐다. 이와 관련해 예산정책처는 “입법 보좌기관인 예산정책처가 국회의원이나 상임위보다 더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 “보도자료 배포의 필요성이 적은 것으로 판단” 등의 석연찮은 이유를 댔다.

도대체 국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지난해 이맘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를 11월 내놓았다. 56개 중앙행정기관의 예산안을 분석해 359개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예산 과다편성, 집행 실적부진에 따른 이월 예상, 법과 제도의 미비, 사업계획 부실 등 중앙정부 예산의 부실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 관련 사업(기초연금, 행복주택, 셋째 아이 이상 대학등록금 지원, DMZ 세계평화공원 등)도 포함됐다. 이에 정부여당이 발끈했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예산정책처 분석 내용을 반박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사무처·예산정책처에 항의했다.

예산정책처는 그해 정기국회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예산정책처를 담당하는 국회 운영위의 이채익 의원은 지난해 11월 26일 “예산정책처는 국회를 보좌하는 기관인데 너무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서 “의원 보좌기관이 보도자료를 배포해 혼란스럽게 한다”고 따졌다. 보고서를 기껏 공들여 만들어놓고 보도자료를 만들지 말라는 건 함구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홍지만 의원도 “국회예산정책처가 본연의 임무를 너무 확대해서 중립성이 굉장히 떨어지고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고 가세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을 보좌하라고 둔 국회 기구가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걸 좋게 봐줄 리 없다. 언론의 조명을 받아도 국회의원이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국회 예결위도 같은 이치에서 예산정책처의 부상을 떨떠름하게 여긴다. 이에 국경복 예산정책처장은 국회 답변에서 “이유야 어떻든 간에 그런 비판이 있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성찰해야 할 문제이므로 보고서가 나갈 때 이중삼중 체크를 한다”고 정확성을 기할 것임을 약속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도 맞불을 놓았다. 지난 4월 야당 의원들은 새누리당과 정반대의 내용을 담은 ‘국회예산정책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예산 정책처의 직무에 조세 정책·조세 지출 예산에 대한 연구분석과 조세특례에 대한 평가 등을 추가했다. 규제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 분석도 직무에 포함했다. 국가의 주요 사업에 대한 분석·평가에서 중·장기재정소요 분석의 대상을 기존 법률이 규정한 국가뿐 아니라 새롭게 공공기관을 추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별개로 예산정책처의 자료요청권을 강화해 국가기관이 자료제출 요구를 받게 되면 20일 이내에 제출토록 못박고 있다. 예산정책처에 막강한 권능을 부여하는 법안이다.

여야는 예산정책처를 두고 해를 넘겨가며 밀고 당기는 상황을 연출한다. 예산정책처가 뭐 그리 대단하길래 여야가 힘 겨루기를 마다하지 않는 걸까?

국회예산정책처는 ‘국회법’과 ‘국회예산정책처법’에 따라 2003년 설치됐다. 하는 일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 예산안·결산·기금운용계획안과 기금결산에 대한 연구 및 분석 ▷예산 또는 기금상의 조치가 수반되는 법률안 등 의안에 대 한 소요비용의 추계 ▷국가재정운용 및 거시경제동향의 분석 및 전망 ▷국가의 주요 사업에 대한 분석·평가 및 중·장기재정소요 분석 ▷국회의 위원회 또는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사항의 조사 및 분석의 직무를 수행한다. 예산정책처장은 국회의장이 국회운영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임면한다. 예산정책 처는 직무와 관련해 국회 위원회와 국회의원의 요구가 있으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예산정책처는 4개 실·국 2 심의관 2담당관 16과로 구성돼 있으며 정원은 125명이다. 또 핵심 가치로 전문성·중립성·신뢰성·독립성을 내세운다.

부처 향한 자료 요청권, 막강한 힘 불러


5월 30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국회개원 66주년 기념식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사무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장 큰 직무는 예산안 및 결산안 분석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5년 예산안은 374조 원. 예산은 국민 세금에서 충당되므로 예산정책처는 세금이 한 푼도 낭비되지 않도록 예산안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10월 14일 국회의원들에게 배포된 4권짜리 ‘2015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자료도 그렇게 나왔다. 국회의원들은 소관 상임위 예산심의 과정이나 예결위에서 이 자료를 활용하게 된다.

여야가 예산정책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건 이 기관이 그만큼 파괴력이 있기 때문이다. 100명이 넘는 인원과 대정부 자료 요청권을 가진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배포한 ‘2014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는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야당의 정부 예산안 삭감의 주요 논거로 활용됐다. 국회 소속기관이 만든 보고 서인 만큼 공신력이 부여된다. 예산정책처의 지적사항이 소관 상임위는 물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두고두고 언급됐다. 예산안을 방어 해야 할 정부여당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또 예산정책처 보고서는 국회의원이 활용한다. 방대한 예산 관련 서류를 일일이 분석하기보다는 예산정책처의 자료를 인용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인용되는 빈도가 높아 국회 내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원을 위해 존재하면서도 국회의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중적 존재가 바로 예산 정책처다.


국회 국정감사가 열린 10월 초순 서울 여의도 국회는 답변자료를 준비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도 분주하다.
이 기구 앞에서는 우리 사회의 갑(甲)이라 불리는 중앙정부 관료들도 기를 못 편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예산정책처를 일러 ‘수퍼갑’이라 칭한다. 반면, 예산정책처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가 행정부 감시하는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자부한다.

예산정책처가 ‘갑’으로 인식되는 건 무엇보다도 자료 요청 권한에서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법 10조는 “처장은 의장의 허가를 받아 국가기관, 그 밖의 기관·단체에 대해 직무수행에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 요청을 받은 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도 명시돼 있다. 앞서 예산정책처는 다섯 개 분야의 직무를 수행하므로 국정의 거의 모든 분야에 자료를 요구할 권한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에 따라 자료를 요구하면 어떤 기관이라도 긴장하게 된다. 행여 자신들에게 불리한 지적이 오지나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이때부터 행정부는 을(乙)의 처지에 놓인다. 입법조사처도 마찬가지다. 국회입법조사처법 9조(처장은 의장의 허가를 받아 국가기관, 그 밖의 기관·단체에 대하여 직무수행에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가 힘의 원천이 된다.

앞에서 봤듯이 예산정책처가 특정 현안 또는 예산에 시비를 걸면 정치 이슈로 부각되기 십상이다. 특정 부처 사업예산이 반 토막 날 수도 있다. 국회의 예산심의권과 입법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행정부의 공무원은 좌불안석이다. 예산정책처가 한번 부정적으로 기술하면 그 공무원은 국회 상임위 의원, 국회 예산결산특위 위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해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중에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더라도 일단 언론 또는 국회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조차도 공직사회에서는 반기지 않는다. 결국 미연에 사단을 방지하는 게 최상이다.

따라서 “중앙부처의 예산 담당자들은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딴지를 못 걸도록 평소 관계를 돈독히 하게 된다”고 국회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형사사건으로 따지면 재판정(국회 상임위, 예결위)에 가기 전에 검사(예산정책처)로 하여금 기소유예 또는 불기소처분을 받아내는 게 상책이다. 정부와 국회의 이런 역학 구도 때문에 예산정책처의 힘이 날로 커진다. 이게 예산정책처가 행정부에 우위를 갖는 메커니즘이다.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예결위 계수조정 심사소위에 예산정책처 직원의 출입을 금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행정부에 예산정책처의 입김이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가을이면 정기국회가 열리고, 예산안 심의도 본격화된다. 예산정책처는 국회상임위, 예결위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만들면서 마지막 순간에 주무부처에 초안을 보낸다. 혹 잘못 지적됐거나 계산에 오류가 있는 대목을 지적해달라는 의미에서다.

중앙공무원들은 ‘닥치고 저자세’


국회 국정감사가 열린 10월 초순 서울 여의도 국회는 답변자료를 준비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도 분주하다.
이렇게 되면 지적을 받은 정부 부처의 담당 공무원은 부리나케 달려온다.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 설명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행정부가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는 구조다. 설령 예산정책처가 착오를 했다손 쳐도 대놓고 반박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업이라도 크고 작은 문제는 안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역공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에 차질 없이 추진된다고 보고된 사업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면 해당 부서는 낭패를 본다. 최종 보고서를 꾸미는 주체는 예산정책처이기 때문에 행정부는 가급적이면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10월 중순 예산정책처가 국회의원들에게 제출한 ‘2015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자료. 예산정책처는 예년과 달리 보도자료는 배포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예산정책처가 어떤 주장을 펴든 간에 행정부는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한다”고 국회사무처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예산정책처와 행정부 간의 미묘한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행정부 공무원은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예산정책처에게 자세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 조직 관리의 핵심은 인사와 예산이다. 자칫 예산이 뭉텅이로 날아가는 상황에서 행정부가 목에 힘을 줄 수는 없다. 논리적으로 따진다고?

논리도 중요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마음도 통해야 한다. 설득 이라는 게 100%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행정부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행정부와 조율하는 기간에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각 부처에서 서류뭉치를 든 공무원들이 예산정책처 사무실에 상주하다시피 한다. 일부 정부부처 공무원은 자신의 승진이나 진급에 걸림돌이 된다며 아예 예산정책처에 진을 치고 버티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공무원에게는 예산정책처가 끝내 양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산정책처, 새누리당 가이드라인 따를까?

물론 행정부가 늘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역대 예산정책처나 입법조사처 고위직 중에는 다음 보직을 염두에 두고 완급조절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A상임위의 수석전문 위원으로 다음 보직을 점찍은 예산정책처의 고위 간부가 있다고 하자. A부처 공무원과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관계를 꾀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A부처 관련 문구를 슬쩍 완화하거나 빼주면 나중에 자신이 부탁할 패를 쥐게 된다. 또 A상임위 소속 유력 국회의원에게는 미리 환심을 사두는 게 유리 하다. 그 의원이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에게 자신의 평판을 좋게 해주면 그만큼 다음 인사에서 유리해진다. 그래서 해당 의원에게 불리한 내용은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빼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고서는 물 건너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예산정책처가 ‘2015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도자료를 내지 않은 것도 스스로가 기능으로 설정한 ‘국가 재정건전성 확립’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산정책처는 부서 소개 책자에서 “건전하고 효율적인 국가재정 운용을 위한 ‘나라살림 지킴이’로서의 역할과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나라정책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국회의 재정정책 결정 기능강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고 표명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비난이 빗발칠 때조차 국경복 예산정책처장은 “재정건전성에 관련된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에 보도자료를 낸다” 고 맞서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말 이후 보도자료가 쑥 들어감으로써 ‘예산정책처의 조사 또는 분석자료가 외부 홍보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새누리당의 가이드라인에 순응하는 모양새로 귀결된다. 정부·여당의 눈치를 보는 신세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예산정책처와 쌍벽을 이룬다. 입법조사 처는 늘어나는 입법 정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법’, ‘국회 입법조사처법’에 따라 2007년 출범했다. 국회 기능이 강화되고, 의원 입법이 활성화되는 추세와 맞물렸다. 국회의원에게 입법 및 정책 정보를 제공해 정책 국회의 위상을 다지는 역할도 한다. 주요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의원 및 상임위원회의 입법조사 요구에 신속하게 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주요 현안이 될 입법 및 정책과제를 사전에 예측해 조사·분석하는 일이다. 입법조사처는 3실, 1관, 2담당관, 12 팀으로 구성된다. 정원은 119명이다. 이 기구는 또 현대와 미래에 주요 현안이 될 입법 및 정책 과제를 능동적으로 개발 해 조사·분석한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제공한다. ‘이슈와 논점’, ‘현안보고서’, ‘정책보고서’, ‘현장조사보고서’, 기타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등 종류도 다양하다.

입법조사처는 의원들의 요청으로 제공한 현안 분석자료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지난 9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5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재정지출 규모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 기획예산처의 심기를 곤두서게 했다. 재정 지출을 통해 경기회복을 꾀하는 정부의 정책기조에 역행하는 분석이라서 그렇다. 또 교육감 직선제 폐지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추진 중인 ‘교육자치·지방자치 통합안’이 위헌소지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 안은 직선제인 교육감 선출방식을 간선제 또는 임명제로 바꾸는 게 골자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등장한 이래 교육 이슈로 등장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 권한이 교육부가 아닌 교육감에게 있다며 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자사고를 지정하거나 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거치도록 한 교육부 훈령이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고,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회답서를 야당 의원에게 제출했다.

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이나 위원회가 요구하는 입법 및 정책 관련사항을 분석해 답변할 의무를 지닌다. 이 중 몇몇 입법 해석이 야당 의원에 의해 언론에 공개되면서 첨예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온 것이다. 최근에는 검찰의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 대응’ 발표가 표현의 자유 및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대법원 판례에도 맞지 않다는 취지의 입법조사처 의견이 또 언론에 보도됐다.

입법조사처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국회의원의 요청에 따라 객관적 판단 자료를 제공했을 뿐인데 그게 언론에 공개되면서 마치 입법조사처가 주도적으로 입장을 개진한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입법조사처 최선영 기획협력담당관은 “우리는 입법 조사 요구에 회답한 의원의 명단을 비밀에 부친다”면서 “의원의 입법활동을 물밑에서 지원하는 게 입법조사처 본연의 업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입법조사처 ‘북치고 장구치고’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 회의. 여야 국회의원들은 예산정책처가 배포한 예산 자료도 자주 활용한다.
그래도 입법조사처는 행정부에 갑이다. 앞서 예산정책처가 그랬듯이 행정부 공무원들은 입법조사처의 보고서나 자료에도 똑같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과 위원회의 입법 및 정책에 관한 조사분석 요구에 회답한다. 뿐 만 아니라 다수의 입법 조사 요구가 예상되는 주요 현안에 대 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중장기 현안이나 정책과제도 분석 대상에 포함된다. 올해에도 9월 말까지 발간한 보고서가 191건에 달한다. 정책보고서 4건, 현안 보고서 15건, 이슈와 논점이 144건 등이다. 19대 국회 개원 이후 9월 말까지 입법조사 요구에 답한 사례가 1만 4400여 건에 이른다. 웬만한 국정현안은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의해 걸러진다고 봐야 한다. 특히 의원연구단체나 국회의원과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고, 의원실에 대면보고를 하기도 한다.

나름의 자가발전도 하는 과정에서 국회사무처와 긴장을 연출하기도 한다. 입법조사처는 원래 국회의원이 특정 법안에 대한 의견을 요청할 때 회답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한번은 거꾸로 입법조사처가 국회의원 측에 입법조사처 기능 활성화 관련 방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알려지면서 유감을 표한 국회 사무총장도 있다. 당시 사무처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입법 기능을 보좌하는 입법조사처가 자체 의견으로 법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끌고 가려던 사건이라서 당시 국회사무총장이 강하게 반발했다”고 말했다.

보도자료 작성 논란과 관계해서는 예산정책처가 빌미를 준 측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몇 년 들어 예산정책처의 업무 스타일이 바뀐거 같다고 국회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이 전했다. 과거 같으면 몇몇 핵심 의제에 집중해 깊이 있는 분석을 꾀했다면 언제부터인가 질보다는 양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류성걸 국회의원 등 새누리당 재정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도 이런 ‘깊이의 문제’라고 이 소식통이 말했다. “분석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분석 대상을 넓혀가다 보니 질이 떨어지고, 구미에 맞지 않는 보고서에 열받은 여당이 역공을 가한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예산분석관이 증가한 것도 이런 상황을 부추긴 한 요인이다.”

기획재정부에서도 “예산정책처가 무리한 분석 보고서나 자료를 통해 일방적인 의견을 내놓을 때면 국가 재정을 이끄는 입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으로 당혹스럽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국회의 주인이 국회의원? 천만에!


2012년 2월 국회도서관 개관 60주년을 맞아 국회도서관·국회사무처·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직원들이 최고 도서관으로의 도약을 다짐하는 플래시몹(번개모임)을 선보이고 있다.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도 난감할 때가 많다. 양심과 전문성에 입각해 찬반양론을 다 넣어도 야당에서 일부 반대 의견만 발췌해 정부정책이 틀렸다고 공격하면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예산정책처가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예산정책처 직무가 국회 상임위원회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직무와 중복돼 업무의 비효율을 초래하고 위원회의 권한이 침해된다고 본다. 이는 예산정책처의 전문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정의화 국회의장은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 전문성 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 의장은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취임 직후 이들 2개 기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정 의장은 “분야별로 전문가를 채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라”며 이들 기관의 전문성 제고를 강조했다. 유능한 예산분석관(예산정책처), 입법조사관(입법조사처)의 장기 재직을 유도하라는 주문이다.

예산정책처의 예산분석관은 국회 예결위, 상임위원회, 사무처 등지에서 순환근무를 한다.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는 예결위, 상임위원회, 사무처보다는 상대적인 한직 내지는 변방으로 인식되면서 장기 재직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졌다. 정 의장은 예산분석관이 1~2년 정도 근무하고 다른 부서로 가는 일이 반복되면 전문성 축적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국회의장실의 김성 정책수석비서관은 “입법조사관, 예산분석관의 장기 재직을 유도하는 한편으로 박사급 외부 전문가도 대폭 수혈해 기능을 강화하라는 게 정 의장의 주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예산정책처는 외부의 예산 전문 연구자들보다 순환보직 개념으로 와 있는 사무처 직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입법고시 출신들은 나름 빨리 적응하는 편이지만 오래전 일반 공무원으로 들어와 눌러앉은 경우 예산 분석업무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하면 외부 전문가를 더 많이 채용하라는 게 정 의장의 요청이라고 김성 수석비서관은 부연 설명했다.

국회의장의 이런 주문이 제대로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그도 2년 임기를 지나면 떠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이런 얘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떠돈다. “국회의 주인은 누구일까? 국회의장, 국회의원은 아니다. 이들은 4년 뒤 어찌될지 모르는 운명 아닌가? 주인은 바로 우리 사무처다.” 파워에서는 의원들에게 밀리지만 ‘늘공(늘 공무원)’인 국회사무처 직원이 진정한 주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국회의장이 다그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국회사무처 공무원들도 없지 않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의장도 임기가 2년”이라며 “내년 1월 국회의장이 행하는 정기인사가 나면 그의 영향력도 반감된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가 ‘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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