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사회이슈 | 공무원연금 개혁의 이면 - ‘상생’ 사라지고 ‘공멸’로 치닫나? 

국민연금과 불균형 심각한 수준, 개혁 공감대 넓게 퍼져… ‘하후상박’ 정부 방침에 공적연금 하향평준화·역할 축소 우려도 

300만 원 대 32만 원. 대한민국 국민 중 두 집단이 매달 받는 연금액이다. 전자는 공무원이고, 후자는 일반 국민이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공무원연금 재정 부족은 오래전에 시작된 문제지만 국민 정서가 용납을 허용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칼을 빼든 이유다.

9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연금학회 주최로 열린 ‘공무원연금 개혁 정책토론회’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부는 ‘하후상박’식으로 공무원연금제도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 사진·중앙포토
공무원연금의 위기는 급속한 노령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조원진 의원(새누리 당)이 공개한 안전행정부의 공무원연금 수령액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매월 300만 원 이상 수령자는 전체 공무원연금 수령자의 22.2%인 7만 5036명에 이른다. 2012년 말에 300만 원 이상 수령자가 전체의 18.4%인 5만 6205명이었으니 1년 8개월 만에 1만 8831명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말까지 300만 원 이상 수령자 수가 7만 9천 명에 육박하리란 예상이다.

400만 원 이상 수령자도 2012년 말 859명에서 올해 8월 말 2326명으로 20개월 만에 170%나 증가했다. 반면 200만 원 미만 수령자는 43.2%에서 37.9%로 줄었다. 공무원연금 의 고액화는 1970~80년대에 공무원 조직이 크게 성장할 당시 입직했던 이들의 퇴직이 도래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공무원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보상적 차원에서 연금을 ‘고급여’ 구조로 설계했던 게 큰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제도 도입 당시에는 지금처럼 수령액 비율이 높지 않았다. 1960년대 공무원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40%였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까지 소득 대체율을 점점 올려 최고 90%까지 이르렀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 나라에 돈이 없다 보니 후불임금 성격으로 나중에 경제가 성장하면 연금으로 보상해주겠다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09년 개혁 후에도 수령액 거의 유지돼


지난 2007년 정부가 공무원·군인·사학연금 개혁을 추진하자 공무원과 교원, 군인 등 전·현직 공무원들이 서울 광화문 앞에서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공무원연금은 1960년에 도입돼 순항해오다 1990년대에 들어와 몇 차례 개혁의 된서리를 맞았다. 첫 개혁은 공무원연금이 적자로 돌아선 1993년에 있었다. 당시 연금지출액이 보험료 수입액을 초과하면서 연금 개혁론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공무원 개인이 내는 연금기여율을 인상해 적자를 메우는 방법을 택했다. 이어 1995년에 연금지급개시연령제를 도입했다. 만 60세가 돼야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공직사회에도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 이 불었다. 부족한 재정으로는 쏟아져 나오는 퇴직자들에게 퇴직금을 줄 여력이 없었다. 정부는 임시방편으로 공무원연금 기금 중 4조7169억 원을 떼어내 퇴직금을 지급하는 임시 방편을 택했다. 이 때문에 공무원 연금 기금액이 1999년 6조 원에서 1년 뒤 1조7천여 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3차 개혁이 단행됐다. 연금기여율이 8.5%로 인상됐고, 보수 기준에 따르던 책정 방식을 국민연금처럼 물가 상승률과 연동되도록 바꿨다. 이듬해에는 정부보조금이 투입돼 연금 적자를 보전해주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이후 한동안 개혁이라 할 만한 조치는 나오지 않다가 2009년에 개혁이 이뤄졌다. 2010년 이후 임용된 공무원은 연금 지급 개시연령을 만 65세로 늦췄다. 연간 소득대체율은 2.1%에서 1.9%로 인하됐고, 연금 산정기준 보수도 퇴직 전 3년 평균 월액에서 전체 재직기간의 평균 소득으로 바꿨다.

그러나 당시 조치는 공무원연금 안정화에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2009년 당시 공무원연금의 국고보전액(1조9748억 원)은 이듬해 1조3071억 원으로 잠시 떨어졌으나 곧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1조8963억 원으로 개혁 이전으로 돌아갔다. 올해 공무원연금의 국고보전액은 2조4854억 원이고 내년에는 3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공무원연금공단 관계자는 “2017년에는 4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당시 개혁안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는 계산법에 꼼수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꼼수란 당시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배포한 설명자료에 잘 나타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재직 10년 차 이상은 연금이 전혀 감소하지 않고 현행 수준이 유지되며, 9년 차(-0.9%)부터 신규(-8.4%) 직원까지는 연금액이 ‘미세하게’ 감소된다.

연금 지급 개시연령을 높이고 연간 소득대체율을 낮춰 연금액은 감소한 게 맞다. 그러나 연금산식 지급률을 ‘최근 3년 평균 보수’에서 ‘전 재직기간 평균 기준소득’으로 바꾼 게 오히려 연금을 늘리는 역효과를 냈다. 공무원노총은 “전 재직기간 평균 기준소득으로 바뀌면 30년 재직자의 경우 퇴직연금이 약 30% 가량 감소한다. 그러나 기준보수를 ‘보수월액’에서 ‘과세소득’으로 변경해 오히려 퇴직연금 증가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1989년에 임용된 공무원이 2017년에 은퇴한다고 했을 때 공단에 납부한 기여금은 1억 7251만 원이 된다. 이 공무원이 받게 될 연금 총액은 6억 3527만 원과 퇴직수당 6510만 원을 합쳐 7억 원을 넘는다. 퇴직 후 매달 248만 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총 퇴직소득은 개혁안 이전보다 4369만 원 적지만 월 지급액은 동일하게 나타났다.

2009년에 개혁안 시행 이후 임용된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30 년간 재직한 것으로 가정했을 때 기여금 납부 총액은 개혁안 시행 전보다 26% 증가한 1억 9420만 원으로 연금총액은 4억 7464만 원(개혁안 이전보다 25.13% 감소)이지만 매달 받는 연금액은 224만 7천 원으로 개혁안 시행 이전(245만 원)보다 8.25%밖에 줄지 않는다. 당시 공무원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안을 관철했는데도 이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런 꼼수 때문인 것이다.

민간기업보다 보수 낮다고? 현실과는 달라!


(단위 : 명) ※2014년 8월 기준 <자료 : 안전행정부>
공무원 단체는 공무원의 급여가 민간에 비해 박봉이고 고용보험 미가입 등 제약이 많아 연금이 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쉽게 납득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국민연금 최고액 수급자의 수령액은 168만 원. 공무원연금 평균 수령액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우선 국민연금과 차이는 수치로 나타난다. 국민연금의 연보험료율은 9%이고, 소득 대체율은 40%(납입기간 40년 기준)이다. 반면 공무원연금은 연보험료율 14%에 소득 대체율 62.7%(납입기간 33년)이다. 납입액수로는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많지만 납입기간과 소득 대체율을 감안하면 역전된다.

국민연금을 처음 시행한 1988년을 기준으로 하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이 별 차이가 없었다. 월평균 소득 180만 원의 근로자가 1988년부터 33 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매월 86만 원을 받게 돼 소득 대체율이 48% 수준으로 나타난다. 퇴직금을 포함하면 월 102만 원으로 소득 대체율이 62.5%로 높아진다.

이에 비해 같은 소득과 기간에 공무원연금에 가입한 공무원은 월 수급액 90만 원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약간 높지만 퇴직금을 포함하면 99만 원으로 오히려 적어진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수익비율은 각각 3.25%, 2.61%였다.

그러나 2010년에는 상황이 역전됐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월 수급액은 63만 원(퇴직금 포함 93만 원)으로 20만 원 넘게 줄어든 반면 공무원연금 월 수급액은 116만 원(퇴직금 포함 127만 원)으로 늘어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소득 대체율도 국민연금은 48%에서 35.1%로 떨어졌지만 공무원연금은 50.4%에서 64.9%로 늘어났다.

공무원 처우가 일반 기업에 비해 열악하다는 주장도 허구에 가깝다. 안전행정부의 공무원 보수 실태조사 결과 지난 해 6월 기준 공무원 보수는 100인 이상 사업체 평균 임금의 77.6% 수준에 달했다. 민간기업 직원의 월급이 100만 원이라면 공무원은 77만 6천 원을 받았다는 의미다. 공무원의 퇴직 수당도 재직기간에 따라 민간의 6.5~39%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통계만 보면 얼핏 타당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근속기간의 차이가 빠져 있다. 기업 경영 평가기관인 CEO스코어가 지난 7월 말 발표한 국내 500대 대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는 9.4년. 이들의 평균 연봉은 6천만 원 정도 다. 반면 12개 공기업 직원의 평균 근무기간은 15.4년으로 민간기업보다 길었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은 이보다 길어 30세에 임용되면 징계를 받거나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이상 30년 이상 근무가 보장된다.

퇴직 후 재취업의 길도 공무원이 일반 국민보다 상대적으로 넓다. 각종 협회나 단체, 공단 등 공기업과 민간단체를 가리지 않고 퇴직 공무원이 포진해 있다. 퇴직 공무원이 가는 자리는 대부분 정해져 있어 퇴직 후 2~3년 정도 취업을 보장해주는 게 관례화돼 있다. 고위직은 기관이나 단체의 장 또는 이사급 간부 자리를 주고, 중하위직은 팀장 등 실무간부 자리를 주는 식으로 퇴직 당시 직급에 상응하는 자리를 내준다. 이런 관행은 정부부처 관련 기관단체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관련 단체와 기관 등 대한민국 전역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퇴직 후 재취업할 마땅한 경력이나 기술이 부족하다”는 공무원단체들의 주장은 뻔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춘 거짓말에 가깝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하후상박’식 유력


<표1> 공무원·국민연금 특성 비교
공무원연금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은 없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 안전행정부가 당정협의를 통해 내 놓은 안은 ‘하후상박(下厚上薄)’식이다. 하위직 연금은 손을 덜대고 고위직은 많이 깎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직급과 근속연수가 올라갈수록 연금수령액이 높아지는 현행 ‘비례식 연금’에서 ‘누진식 연금’으로 바뀌게 된다.

구체적인 방식은, 현재 직급에 관계없이 1.9%로 동일한 급여율을 2026년까지 1.25%로 인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방식을 따르면 2026년 고위직의 연금수령액은 현재보다 34% 줄어들게 된다. 차등적인 소득대체율 도입은 5급 공무원이 7, 9급 공채 출신 공무원보다 5억~7억가량 더 소득을 가져가는 현실을 반영한 안이다. 고액 연금수령자들이 대체로 5급 출신의 고위직 출신들이다. 6급 이하 공채 출신의 소득 대체율은 1.6%, 5급 공채는 1.42%로 조정하고 대신 보험료 납입기간을 33년에서 35년으로 늘렸다. 이대로 하면 7, 9급 공채 출신의 소득 대체율은 56%, 5급 공채 출신은 50%가 된다. 또 연금적용 소득 상한액(월 805만 원)을 국민연금 수준(408만 원)으로 낮춰 고액연금 수령자를 줄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경우 연금수령액을 하향평준화할 수 있고, 정부가 1대 1로 분담하는 연금 출연액을 아낄 수 있어 국고 재정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공무원연금 개혁방식도 검토 대상 중 하나다. ‘더 내고 늦게 받는’ 방식으로 요약된다. 독일은 1998년에 공무원연금 가입 기한을 35년 에서 40년으로 늘렸다. 오스트리아는 2005년에 40년에서 50년으로 개편했다. 우리나라는 최장 납부기간이 33년으로 이보다 짧다. 이 방식은 연금 지급 개시를 늦추고 현직 공무원들이 적립금을 쌓을 기간을 늘려 재정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연금 지급시기가 도래하면 재정 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500대 기업의 평균 근속기간은 9.4년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에 비해 턱없이 짧다. 한 취업박람회에서 중년의 남성들이 면접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뉴시스
공무원단체들의 반발은 거세다. 정부와 여당이 각각 노조와 야당의 의견을 따로 수렴하기로 방침을 정하자 논의 테이블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라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오성택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연금위원장은 “공무원노조 없이 장관과 연금 관련 간담회를 할 수는 없다”며 “야당에서 거론하는 것처럼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공적연금 전반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일에는 여의도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도 준비하고 있다.

안전행정부의 설문조사 결과 공무원연금 개혁의 당위성에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을 등에 업은 정부는 개혁을 밀어붙일 태세다. 그런데 빠르게 진행되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칫 공적연기금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다.

참여연대는 9월 22일 논평을 통해 “새누리당이 내놓은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재정부담을 핑계로 공적연금을 축소시키

려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가 지적한 새누리당의 개혁안은 한국연금학회가 설계했다. 재직 공무원의 부담금을 지금보다 43% 올리고, 수령액을 34% 깎는 내용이다. 또 2016 년 이후 채용하는 공무원에게는 국민연금과 동등한 부담과 혜택을 적용하고, 이미 공무원연금을 타고 있는 퇴직자에 대 해서도 수령액을 최대 3% 삭감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연금을 하향평준화하는 식인데 국민적 불만을 잠재울 순 있지만 전반적인 공적연금의 실익이 적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쟁에 미소 짓는 민간보험사들


정부가 강도 높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예고하면서 공무원들의 반발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지난 10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법원 공무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참여연대는 “전적으로 정부의 재정부담만 고려한 내용이고, 연금제도의 목적인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은 철저히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앞으로 지급돼야 하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가 500조 원에 육박할 거란 연금학회 의 발표를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실제 2007년 기준 정부의 공무원연금 지출 부담은 0.6%로 OECD 평균 1.5%에 비하면 과도한 수준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연금학회가 종합적인 정보를 배제하고 공무원연금 재정부담에 대한 공포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최대 수혜자는 민간연금 운용사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정부가 8월 27일에 발표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은 퇴직연금 의무 가입대상을 넓히고 운용 규제를 푸는 게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2022년까지 모든 기업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도록 의무화한다. 중소기업에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 자산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했다. 퇴직연금 가입자 확대를 위해 세액공제 등의 세제 지원과 재정 지원을 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정부는 제도가 안착하면 2022년에는 10인 미만 사업장까지 퇴직연금을 도입하게 돼 530만 명이 퇴직연금에 가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이 같은 퇴직연금제도 전면 확대 방안은 현재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이 노후 소득보장을 위해 불충분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공적연금이 담당해야 할 기능을 사적 연금에 분담토록 하는 것이다. 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근연구위원은 “공적연금의 불충분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개선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사적연금만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연금체계를 사적연금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표2> 공무원연금 변천사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사적연금에 기반하는 원칙은 ‘각자의 노후는 각자가 책임진다’는 자력구제의 원칙이다. 이는 각종 민영화의 대전제와 같은 맥락이다. 사적연금이 활성화하면 공적연금제도와 서로 경쟁하는 국면이 나타나는데 이는 진보적 시각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연구위원은 “사적연금의 운용주체가 대기업 산하의 금융기관으로 몰린다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사이에 역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선진국들이 사적연금의 활성화를 추진해 나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이 나라들의 공적연금체계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정도의 토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적연금은 공적연금의 보조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의 개혁이 하향평준화로 이뤄질 경우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의존도가 약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이런 정서가 확산되면 사적연금 의존도가 커지게 되고, 이는 대기업 중심의 금융시장의 이익으로 돌아가리란 분석이 나온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설계한 한국연금학회와 전문가들의 성향이 친자본적이란 지적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적연금 약화로 이어지면 국민적 합의 어려워


공무원연금 개혁이 하향평준화로 이뤄질 경우 공적연금의 보장성이 약화돼 사적연금 시장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사진·중앙포토
안전행정부는 10월 2일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전문가회의를 소집하면서 참석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 뒷말을 낳았다. 안행부가 밝힌 참석자는 공적연금과 인사행정 분야 교수 5명,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등 모두 7명이란 사실 외에 다른 정보가 없다. 그러자 김용하 한국연금학회 회장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최재식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등 성균관대 출신이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개혁안을 유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개혁안을 내놓은 연금학회의 성격을 보면 이런 의혹을 일면 수긍할 만하다. 연금학회는 지난 4년간 일곱 차례의 정책토론회를 통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에 들어가는 정부 재정을 줄이고 사적연금 시장을 통해 개인들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가 발표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과도 기조가 일치한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유럽 복지선진국가들의 경험을 참고하겠다고 한 것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있는 현재의 개혁안 논의에 있어 바람직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단지 표면에 보이는 숫자 계산식만 참고해선 여론을 통합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모델로 꼽은 유럽 국가들은 노후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밑바탕에 깔고 개혁을 이뤘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단지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흘러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해 절약한 국가 재정을 어떻게 재분배할지에 대한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201411호 (2014.10.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