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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달라진 군대, ‘선진병영’ 실험장을 가다 

동기 내무반·온라인 소통·과학장비 도입해 가족 안심시키고 사병 근무피로도 줄여… 병영생활 투명해졌지만 보안위협·형식적 미봉책 지적도 

군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불안하다. 임 병장 총기난사사건,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등 올 들어 연이어 벌어진 군대 내 악성 사고들 때문이다. 군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 건, 군에 대한 신뢰와 사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군도 이런 위기감을 느낀 듯하다. 최근 들어 병영문화를 혁신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에 나섰다. <월간중앙>은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병영문화 혁신의 실험 현장을 1박2일 동안 돌아봤다.

중부전선의 한 GOP 부대 철책초소에서 초병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10월 7일 오후 7시 전방부대의 한 생활관. TV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와 병사들의 잡담이 뒤섞여 어수선하다. 병사 예닐곱 명이 편안한 자세로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가슴에는 모두 이등병 계급장이 붙어있다. 한쪽 침대에 누워있던 한 병사는 휴대전화를 꺼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자 메시지를 작성한다. ‘연락 바랍니다’. 이내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다.

“아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지난 8월에 발생한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에 대한 소식이 여전히 주요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들의 밝은 목소리에 어머니도 이내 걱정을 덜어낸 듯 가족들의 안부를 전했다. 마침 TV에서 인기 걸그룹이 등장했다. “어머니, 또 연락 드릴 테니 이 번호 저장해두세요. 그럼 끊을게요.” 통화를 마친 병사는 TV 앞에 몰려든 다른 병사들 틈을 비집고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동기들끼리 생활하고 휴대전화로 외부와 소통


동기 생활관 운영, 휴대폰 사용 등 선진 병영문화의 도입으로 병사들의 내무반 생활이 달라졌다. 생활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병사들
기자가 찾아간 25사단 72연대 2대대 생활관의 일과 후 풍경이다. 이 생활관에는 10명의 이등병이 함께 지낸다. 육군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동기 생활관’이다. 일과시간에는 각자 소속된 분대에서 교육·훈련 활동을 하고 일과 후에는 동기 생활관으로 ‘퇴근’해 자유시간을 맘껏 누린다. 계급이 같다 보니 고참들 눈치를 볼 일도 없다. 강혁신(21·가명) 이병은 “분대 단위의 생활관은 가족적이어서 위계질서가 존재했는데 동기 생활관은 친구끼리 한 방을 쓰는 느낌”이라며 “영화에서나 보던 미군부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방부대에서 누릴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72연대 2대대는 비무장지대(DMZ)를 코앞에 둔 최전방 소초인 GOP 경계를 주임무로 하는 정예부대다. 어느 부대보다 근무강도가 높고 군기가 세기로 유명하다. 이 부대는 2012년에 전군에서 처음으로 동기 생활관을 시범 운영했다. 이어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병사들에게 휴대전화를 보급하고 온라인을 통해 외부와 활발히 소통하는 실험을 하는 중이다.


시범 도입된 휴대폰
우선 동기 생활관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동기 생활관을 운영한 지 3년째 접어든 지금은 13개 생활관에서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같은 계급끼리 생활한다. 도입 당시만 해도 간부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기강이 흐트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과 이후 자유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니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이는 근무와 교육훈련에 대한 집중도 향상으로 이어졌다. 선·후임병끼리 불화도 사라졌다.

지난 9월에는 병사들에게 휴대전화를 보급했다. 계급별로 한 대씩 4대를 운영하고 있다. 일과시간에는 소대장이 보관하다가 일과가 끝나면 계급별 대표 병사가 받아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휴대전화로 가족이나 친구 등 통화를 원하는 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상대가 전화를 걸도록 하는 방식이다. 보안상 전화를 걸거나 카메라 촬영 등은 할 수 없도록 봉인돼 있다.

휴대전화를 보급한 뒤로는 공중전화에서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거나 중대 행정실에서 간부가 보는 앞에서 통화를 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선임병이나 간부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으니 가족들의 만족도도 높다. 2대대장 안창명 중령은 “과거에는 아들의 전화를 기다려야만 했던 부모님들이 이제는 언제든지 먼저 전화할 수 있어 걱정을 덜게 됐다”며 “병사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벌어질 수 있는 구타나 따돌림 등의 문제도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군 당국은 이 부대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를 바탕으로 전군에 확대할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 부대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부와 활발한 소통을 위해 온라인 창구를 열었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하고,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온라인 소모임(네이버 ‘밴드’)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생일을 맞은 병사가 누군지, 병사들의 진급 일정과 각종 부대 소식이 시시각각 올라온다. 병사의 가족과 애인, 친구 등 누구나 가입해 영상편지를 띄울 수 있고 궁금한 점을 물으면 실시간으로 답변이 달린다. ‘군사우편’ 소인이 찍힌 편지와 이따금 걸려오는 짧은 전화로 그리움을 삭히던 일은 이제 추억이 된 것이다. 서성훈(22·가명) 상병은 “온라인을 통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고립됐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며 “심적 부담이 사라지니 군 생활이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철책 초소에 첨단 경계장비가 도입된 이후, GOP 부대 병사들의 피로감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2인 1조로 초소 순찰 중인 GOP 부대 병사들.
첨단장비 도입해 격무 스트레스 줄여


병사들이 개인용 침대와 관물대가 비치된 신형 생활관에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다.
2대대에 이어 다음날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투입돼 휴전선 경계 근무를 하고 있는 ◯◯부대를 찾아갔다. 이 부대가 맡고 있는 지역은 파주의 임진강과 감악산 일대로 자유로를 통해 서울까지 연결된 관문 역할을 하는 군사 요충지다. 신원확인을 한 뒤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는 위병소를 들어서자 길가에 ‘지뢰주의’라고 써있는 팻말들이 긴장감을 더했다. 1㎞쯤 들어가자 GOP 부대의 생활관이 나타났다. 생활관 안에는 야간근무를 앞둔 병사들이 TV를 보거나 잠을 청하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오후 5시에 군장검사와 철책을 점검한 뒤 해가 지면 경계근무에 투입된다. 마침 이날은 서해 연평도 인근 NLL에서 남북한 경비정들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 이 때문인지 병사들의 표정은 사뭇 긴장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야간 경계 근무조가 투입되고, 기자는 소초장을 따라 초소 순찰에 나섰다. 철책선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초소에서 병사 두 명씩 조를 이뤄 경계근무를 한다. 경계 근무는 GOP 부대 병사들의 주된 임무이면서 가장 고된 일이다. 초소에 투입되면 6시간 동안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전방에 펼쳐진 비무장지대는 물론, 4㎞가량 떨어진 북한 군 초병의 움직임까지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소초장 김 모 중위는 “서로 기관총을 겨누고 있어서 잠깐의 방심이나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며 “신경을 곤두세운 채 밤새 근무를 서고 나면 온몸에 힘이 풀릴 정도로 근무강도가 세다” 고 말했다.

초소 근무에서 오는 극한의 피로는 병사들의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이렇게 누적된 스트레스가 생활관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갈등을 큰 사고로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6월 21일 소총을 난사해 병사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곳도 GOP다. 그래서 GOP 근무자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근무강도 조절은 군 당국의 큰 과제 중 하나다.

보여주기 위한 혁신 돼선 안돼


GOP 부대 병사들이 조를 이뤄 철책 정밀점검에 나섰다.
최근 이런 문제의 해법으로 첨단 경계장비가 도입됐다. 기자가 찾아간 ◯◯부대 GOP에도 8월 말부터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구축됐다. 과거에는 모든 초소에 초병이 배치돼 전방 DMZ 내에서 움직임을 감시했지만 지금은 적의 침투 가능성이 높은 중요 초소 두 곳 중 한 곳의 경계를 첨단장비가 대신 한다. 병사가 없는 초소에는 중거리 감시카메라와 근거리 카메라가 설치돼 전방을 감시한다. 중거리 카메라는 북한군 초소의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할 정도로 성능이 좋다. 근거리 카메라는 360도 회전하며 DMZ 일대를 샅샅이 훑는다. 카메라는 움직임을 자동으로 감지해 해당 지점을 포착한다.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은 상황실로 전송된다. 3명의 병사들 중 2명이 모니터를 주시하며 상황을 감시하고 급한 용무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할 때 나머지 한 명이 근무를 교대한다. 모니터에는 해상도가 뛰어난 컬러 화면이 실시간으로 전방을 비춘다. 움직임이 포착되면 해당 지점을 확대할 수도 있다. 때마침 근거리 카메라 모니터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병사가 화면을 확대해보니 고라니였다. 병사는 확대한 장면을 저장해 상급부대에 보고하고 다시 모니터를 주시했다.

경계장비가 설치된 뒤 병사들의 경계근무는 한결 부담이 줄었다. 과거에 2~3일 근무하고 하루 쉬던 것에서 이제는 하루 근무하고 하루를 쉴 수 있게 됐다. 휴가를 갈 기회도 늘었고,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게 줄었다. 상황실에서 모니터 근무를 하던 병사는 “특히 겨울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군의 경계장비 과학화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내년 말까지 GOP 부대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과 열영상감시장비를 활용한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병력 위주의 경계체제에서 장비 위주로 바꿔 병사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혹독한 추위를 참아가며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도 옛 추억이 될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병영 혁신을 위한 군 당국의 이런 노력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병영생활을 투명하게 하고 억압적인 위계 질서를 타파하려는 시도가 군대의 폐쇄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자칫 형식적인 대책에 머물거나 군대의 생명과 같은 보안을 위협할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미흡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9일 열린 국방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병사들에게 보급한 휴대전화의 보안 문제를 지적했다. 휴대전화 메모리나 사진 촬영, 녹음 기능 등을 통해 군 기밀을 외부로 유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일과시간 이후 휴대전화 사용을 일일이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일부에선 휴대전화의 GPS 기능이 부대 위치를 적에게 노출시킬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은 카메라와 녹음 기능을 봉인했고, GPS 기능 등 문제가 생길 만한 요소를 원천적으로 제거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휴대전화 기지국을 해킹할 경우 부대와 병사들의 위치가 노출되는 문제에 대해선 아직까지 기술적인 보완이 이뤄지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기밀 유출을 확인하려면 통화내역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하지만, 이 경우 병사의 인권침해와 감청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병영생활의 투명성과 소통을 위해 만든 온라인 창구도 취지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인터넷을 수시로 접하기 어려운 병사들의 여건상 온라인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병사는 “네이버 밴드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인증을 받아야 활동할 수가 있는데 일반 병사들은 스마트폰이 없어서 어떤 글이 올라오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대장 등의 부대 간부가 새로 올라온 글들을 모아 병사들에게 보여주는 식이어서 완전히 투명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또 소대장 등 초급 간부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느라 업무량이 많아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부대 활동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수시로 답변을 달거나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등의 일들도 꽤 손이 가는 작업이다. 전투 준비와 교육 훈련, 병사들의 생활관리, 상급부대의 지시 이행까지 지금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초급 간부들로선 달갑지 않은 업무의 하나일 뿐이다. 이에 대해 72연대 2대대장 안창명 중령은 “도입 초기에는 부모님들이 수시로 글을 올려서 신경을 많이 썼던 게 사실이나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돼 과도한 업무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시범 도입해 지금은 전군에 어느 정도 정착한 동기 생활관 제도도 병영 내 폭력행위를 완전히 근절할 해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선임병에 의한 해코지는 예방할 수 있게 됐지만 동기들끼리 특정 병사를 집단 따돌림을 하는 괴롭힘 문화까지 없앨 순 없다는 것이다. 보다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이유다.

병사들의 자발적 해결능력 키워줘야

기자가 찾았던 72연대 GOP 생활관에는 ‘령(令)이 확립된 가운데 생명과 인권이 존중되고 화합 단결된 따뜻한 GOP 대대’란 문구가 내걸려 있었다. 생명, 인권, 화합, 단결 등 온갖 미사여구보다 ‘령’ 한 글자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군대의 본질은 무엇보다 확고한 명령체계에 있음을 말해주는 문구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군대 내 사건 사고로 인해 병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군 당국으로선 어떤 식으로든 군대에 자식을 보냈거나 보내야 할 부모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게 최대 과제가 됐다. ‘엄정한 군 기강을 확립하겠다’는 다짐이 부모들의 불안감을 불식시켜주지 못한다는 걸 군 당국도 알고 있는 듯하다. 최근 내놓은 대책(동기생활관 확대, GOP 면회 허용, 휴대전화 보급, 온라인 소통 확대 등)을 보면 온통 가족과 병사를 직접 연결시켜줌으로써 부모를 안심시키는 데 치중한 조치들뿐이다.

병영 안의 문제는 병사들이 스스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병사 개인의 정신전력을 강화하고 끈끈한 전우애를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명령체계가 바로 서고 병영 내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대 안에서 병사들의 자발적 갈등 해결능력을 키우기보다 가족 등 외부를 향한 의존도를 높여 갈등 요소를 억제하는 대책이 돼선 곤란하다. 상명하복식 대책으로는 병사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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