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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연구 | 김정은 ‘악단정치’의 비밀 - 모란봉악단 내세워 권력 대이동 메시지 전파 

북한의 공연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의 파격적 형식과 내용… 김정은은 왜 은하수악단을 거세하고 모란봉악단을 키웠나?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정은의 지시로 만들어진 모란봉악단 공연에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무대에 나와 춤을 추었다. 여성 가수들은 <미녀와 야수>의 주제곡을 부르기도 했다. 이 파격적인 공연에는 김정은 통치술의 속성과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부전선의 한 GOP 부대 철책초소에서 초병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2012년 7월 김정은의 지시로 창단된 모란봉악단은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무대에 등장해 춤을 추는 등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 사진제공·강동완
2012년 7월 세계는 이 한 장의 사진에 주목했다. 폐쇄국가, 통제와 억압으로 상징되는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디즈니 캐릭터 인형들이 공연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원쑤의 나라’로 선전하는 미국 영화 <록키>의 한 장면을 무대 배경으로 보여주고 주제곡도 연주했다. 지금까지 ‘제국주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단속하고 퇴폐적이고 색정적인 자본주의 날라리풍을 엄격히 통제’했던 북한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화였다.


올해 9월 모란봉악단의 신작발표회 공연을 감상하는 김정은(앞줄 오른쪽 둘째)과 부인 리설주(왼쪽 옆). 리설주 왼쪽에 앉은 이가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다. / 사진·중앙포토
그뿐이 아니었다. 화려한 조명, 현대식 전자악기, 여성 단원들이 입은 짧은 치마와 어깨라인이 드러난 노출된 옷….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막을 올린 이 무대는 북한의 공연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형식과 내용에서 파격적이었다. 북한은 모란봉악단의 등장을 ‘혜성처럼 나타나 첫 막을 올린 공연’이라고 표현했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 시대의 아이콘이다. 2012년 7월 김정은의 지시로 창단된 이래 현재까지 20여 차례 공연을 가졌다. 북한의 기념일에는 반드시 모란봉악단의 축하공연이 있을 정도로 그 위상이 높다.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가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란봉악단 시범공연 때였다. 최근 한 달여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김정은의 마지막 행보도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 공연을 관람한 이후였다.

모란봉악단 공연이 주목을 받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시작과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기존의 북한식 공연과는 구별되는 내용과 형식 때문이다. 화려한 조명, 현대식 전자악기, 단원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기존의 북한 공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모란봉악단 공연에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 인형을 뒤집어 쓴 캐릭터가 무대에 등장해 춤을 추었다. 여성 가수들은 <미녀와 야수>의 주제곡을 부르며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불렀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우리 당의 음악 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가는 모란봉악단이야말로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의 최후 승리를 위한 대진군을 힘있게 선도 해나가는 제일 나팔수이다”라고 언급한다. 김정은은 모란봉 악단 시범공연을 관람한 직후 “공연의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편성, 연주기법과 형상에 이르는 모든 음악요소를 기성 관례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혁신하였다”고 평가했다.

모란봉악단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대적 선전은 김정은의 음악정치를 잘 보여준다. 북한에서 음악은 인민대중을 사상 학습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된다. 김정일은 “음악이 때로는 수천·수만의 총포를 대신했고, 수백·수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면서 음악정치를 강조했다. 김정일의 음악정치를 계승하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김정은식 음악정치가 모란봉악단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무대 위에 오른 ‘미제’의 문화아이콘


동기 생활관 운영, 휴대폰 사용 등 선진 병영문화의 도입으로 병사들의 내무반 생활이 달라졌다. 생활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병사들
악단조직 및 공연 구성이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바, 공연에서 발표된 노래 가사·내용·공연순서 배치 등은 치밀하게 의도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모란봉악단을 보면 김정은이 보인다. 모란봉악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모란봉악단이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결성됐다면 이전 김정일의 지시로는 은하수관현악단이 결성된 적이 있다. 모란봉 악단에 등장하는 현대악기는 사실 은하수관현악단에서 먼저 사용됐다. 은하수관현악단 역시 일렉트릭 기타, 일렉트릭 베이스, 신디사이저 같은 소위 ‘밴드 악기’와 색소폰 등이 연주되면서 이전의 북한 공연과는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시범 도입된 휴대폰
그런데 두 악단의 차이가 있다. 모란봉악단의 경우 악단 전체가 현대식 전자악기와 여성단원들로만 구성된 반면 은하수 관현악단은 주로 서양악기를 위주로 한 관현악단이라는 점과 남녀로 구성된 합창단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은하수관현악단은 2011년 이후 소해금·가야금·장새납·대금 등을 북한에서 개량한 악기들과 협연하면서 소위 ‘전통음악과 클래식의 조화’를 추구하는 독창성을 보이려 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김정일과 김정은이 매월 공연을 관람할 정도였으며, 결성 직후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차례나 신년음악회를 개최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모란봉악단 공연은 경음악·독창·중창으로 구성된다. 매회 공연이 특정 행사일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전회 공연과는 다른 곡들이 주로 연주된다. 노래는 기존 형식과는 차별성이 있다. 2013년 7월 6일자 <노동신문>의 평가를 들여다보자.

“모란봉악단의 공연에서는 지난 시기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이미 불리워지던 노래들의 반주에서 기성관례를 대담하게 깨고 시대적 미감에 맞는 리듬들을 다양하게 적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듣는 듯한 감흥을 주고 있다. 음악형상에서 리듬을 잘 살려 쓰면 선율이 보다 새롭고 독특한 형상으로 살아나게 된다.”

모란봉악단 공연에서 선보인 노래들은 새롭게 만들어져 처음 불린 노래도 있지만 기존의 노래를 편곡하고 현대악기로 새롭게 구성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북한에서 현대식 전자 악기를 사용한 것이 모란봉악단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김정일에 의해 결성된 은하수관현악단 공연과 황재산경음악단에 서도 일부 전자악기가 등장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은하수관현 악단이 정통 클래식 위주의 공연이었다면 모란봉악단은 전체 구성이 현대식 전자악기로서 ‘기성관례를 대담하게 깨고’ 새로운 음악을 구사했다고 선전한다.


철책 초소에 첨단 경계장비가 도입된 이후, GOP 부대 병사들의 피로감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2인 1조로 초소 순찰 중인 GOP 부대 병사들.
사라진 은하수관현악단은 어디로?


병사들이 개인용 침대와 관물대가 비치된 신형 생활관에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2년 3월 정명훈의 지휘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은하수관현악단과 라디오프랑스 교향악단의 합동연주회. 서양 클래식음악을 주로 연주했던 은하수관현악단은 모란봉악단이 출범한 뒤 사실상 해체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 사진·중앙포토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모란봉악단이 등장하면서 은하수관 현악단의 위상은 낮아졌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지시로 모란봉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이 7·27 전승절 기념공연을 합동으로 개최한다고 <노동신문>에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합동공연이 아닌 별도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이 공연을 끝으로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은하수관현악단 역시 “이색적이며 부르조아적인 사상문화를 내부에 퍼뜨리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비렬한 책동에 맞서 백두산 대국의 존엄과 위용을 과시”하는 예술단체로 평가됐다.

국내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은하수관현악단의 일부 단원이 처형됐고 사실상 악단은 해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의 죄목인 ‘음란물 제작 및 유포’가 사실이라면 제국주의 사상문화 침투를 막으려는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에서만이라면 너무나도 가혹한 처벌이지 않은가. 이전의 보천보전자악단, 은하수관련악단 모두 지도자의 교체로 인해 정치적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모란봉악단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최근 북한에서 남한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 한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남한 따라 하기 현상으로 드라마에서 본 스타일을 동경하며 한국산 제품이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 “나도 저런 나라에서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북한주민들의 의식변화는 북한체제 균열의 틈새가 될 수 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체제유지를 위해 철저한 통제와 단속을 하려 한다. 이른바 ‘자본주의 날라리풍’을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 행위로 규정하고 엄격히 통제해왔다. 하지만 단속원들의 압수물품 등이 재판매되는 등 ‘비법적’으로 유통되는 남한 영상물을 단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에서의 한류 현상은 단순히 남한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의 확산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국산 상품의 유통과 계층 간 경계를 허무는 조직적 연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통제와 단속은 이미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과 뇌물의 구조를 끊기에는 한계가 있다. 외부정보의 유입이 나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기존처럼 일방적인 통제만을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식과 사상이 변화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통제할 수만은 없기에 북한 당국으로서는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체적으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발은 여기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북한 당국의 선전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한 정치구호라 할 수 있다.

모란봉악단은 한마디로 ‘제국주의자들의 비렬한 책동’에 맞서 사회주의 사상을 지키려는 북한당국의 사상 전 역할을 한다. <노동신문>은 ‘천만 군민을 고무, 추동하는 주체의 음악예술’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음악예술을 사람들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좀먹고 마비시키는 도구로 전락시켜 이색적이며 부르조아적인 사상문화를 우리 내부에 퍼뜨리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비렬한 책동에 맞서 백두산대국의 존엄과 위용을 과시하며 공훈국가 합창단과 모란봉악단, 은하수관현악단을 비롯한 혁명적인 예술단체들의 장엄한 음악 포성이 천지를 진감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를 앞질러 새것을 개척해나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이 바라고 인민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열 백밤을 패서라도 해내고 세계를 앞질러 끊임없이 새것을 개척해나가는 모란봉악단의 혁명적이고 진취적인 창조정신과 투쟁기풍은 우리 군대와 인민을 새로운 시대정신창조에로 힘있게 고무, 추동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모란봉악단과 장성택의 운명


GOP 부대 병사들이 조를 이뤄 철책 정밀점검에 나섰다.

2012년 11월 평양 롤러스케이트장 시찰에 김정은(앞줄 오른쪽 둘째)과 동행한 장성택(왼쪽 옆 안경 쓴 이). 약 1년 후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모란봉악단의 공연 형식과 내용은 확연히 달라졌다. / 사진·중앙포토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시기적으로 시범공연 때부터 2013년 10월 노동당 창건 기념공연까지의 14회차 공연까지 그리고 2014년 3월 15회차 컴백공연부터 19회차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작음악회로 불리는 20회차 공연 등으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1회차부터 14회차 공연까지는 북한의 주요 행사일에는 반드시 김정은이 참석하는 모란봉악단 공연을 개최했다. 예를 들면, 전승절 기념일, 당창건 기념일, 광명성 2호-3호기 발사 축하공연, 김일성종합대학 설립기념일, 신년음악회 등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은 화선공연을 두 차례나 개최했다. 김정은의 군부대 현지지도 시 직접 수행하며 최전선에서 군인들을 위문하기 위한 공연을 가졌다. 김정은은 리설주와 함께 공연을 관람했으며 그의 곁에는 항상 최룡해가 옆자리를 차지했다. 14회차 공연 기간 중 수행원을 보면 단연 최룡해가 가장 횟수가 많다. 좌석배치도 김정은과 나란히 같은 테이블에 앉은 반면 당시 북한의 2인자로 알려졌던 장성택은 그 옆에 위치했다.

그런데 모란봉악단은 2013년 10월 공연을 끝으로 약 5개월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 기간은 바로 장성택 처형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후 15회차 공연을 컴백공연이라 부르는 이유는 5개월이라는 공백기를 거쳤다는 이유와 함께 이 전의 공연과는 또 다른 노래와 무대형식 등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모란봉악단이 공연을 하지 않았던 지난 5개월은 장성택 처형사건과 관련자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이루어졌던 기간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음악정치’로 표현될 만큼 문화 예술을 통한 선전선동과 사상전을 강조하는 북한에서 노래 가사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의도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새롭게 구성된 컴백무대를 통해 장성택 처형에 따른 북한 내 권력변화 양상과 북한 정권이 의도하는 지도자의 특정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다.

5개월 만에 컴백하여 평양에서의 10일간 공연과 양강도 순회공연까지 마친 모란봉악단은 장성택 처형 이전의 공연 형식과 내용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무엇보다 제일 주목되는 변화는 노래가사의 내용이다. 컴백공연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찬양과 충성맹세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대표적으로 ‘우리 어버이’, ‘자나깨나 원수님 생각’, ‘날아가다오 그리운 내 마음아’, ‘우리 원수님’, ‘그이 없인 못살아’, ‘우리는 당신 밖에 모른다’ 등이다. 이 노래 중에는 아래 ‘그이 없인 못살아’와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의 가사 내용처럼 김정은에 대한 개인숭배와 충성을 강조하는 노래가 많았다.

‘그이 없인 못살아’

친근하신 그이의 정 가슴에 흘러 자나깨나 그 숨결로 따뜻 한 마음/ 하늘 같은 인덕과 믿음에 끌려 우리모두 따르며 사네/ 그이 없인 못살아 김정은 동지/ 그이 없인 못살아 우린 못살아/ 우리의 운명 김정은 동지 그이 없으면 우린 못살아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이 조선 이끄는 힘 억세다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안고/ 우리가 바라는 꿈과 이상 모두다 꽃펴주실 분/ 위대한 김정은 동지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 당신께 충성하리라

북한에서 문화예술이 지도자를 찬양하고 선전선동의 내용으로 구성된다는 점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모란봉악단의 컴백공연에서 밝혀진 노래들은 다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전 공연이 김정은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했다면, 컴백 공연에서는 유독 충성맹세와 유일사상 강조가 지나칠 정도로 강조된다. 이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내 권력 변화의 양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북한에서 사상전을 통해 백두의 혈통을 강조하는 것은 김정은의 권력기반과 인민들의 충성도가 그만큼 낮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형상의 권력승계가 마무리 되었다면 이제 집권 3년차를 맞으며 김정은 자신에 대한 실질적인 권력과 정신적 무장을 인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랩 버전 등장한 ‘인민의 환희’


2012년 10월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당시의 리설주. 그녀는 북한의 주요 행사일에 열린 모란봉악단 공연에 김정은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 사진·중앙포토
컴백 공연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노래는 민요풍의 ‘바다만풍가’, ‘바다의 노래’, ‘귀향의 노래’ 등이다. 이 노래들은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는 곡들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밝힌 수산업 분야 발전과 연관이 있다. 실제로 <노동신문>은 이 노래에 대해 “신년사에의 구절구절을 다시금 심장 깊이 새긴다”고 표현 하고 있다. 즉, “모란봉악단은 이번에 나라의 수산업을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끊임없이 향상시킬 데 대한 당의 정책을 민감하게 반영한 노래 ‘바다만풍가’를 창작 형상하여 공연무대에 올리었다”(노동신문, 2014년 4월 2일)고 선전한다.

공연 구성에서도 무대와 객석의 간격을 대폭 줄이고 무대와 객석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특색 있는 구성형식을 취한 것으로 “출연자와 관람자는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이 스스럼없이 결합되어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조명, 분수, 배경 등으로 예술적 조화를 입체적으로 잘 이룬 무대 형상 요소들도 눈길을 끈다”(노동신문, 2014년 3월 27일)고 선전한다. 노래형식에서도 처음으로 ‘인민의 환희’라는 곡에서 랩 버전을 소개했다. 가수들이 “우리는 누구도 두렵지 않아 원수님 계시기에…”라는 가사를 랩으로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컴백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공식적으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김정은이 부인, 여동생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다. 3월 9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처음 노동당 중앙 위원회 ‘책임 일꾼’으로 소개된 김여정은 모란봉악단 관람 수행자 명단에서 김병호 당 부부장 다음으로 호명됐다.

컴백무대에서 주목되었던 점은 단장선우향희와 모란봉악단 단원 중 유일하게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던 류진아가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분명 장성택 처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실제로 북한 당국은 ‘Music Channel’ 이라는 대외홍보용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을 통해 “선우향희, 류진아 등 일부 단원이 ‘장성택 계파(Jang Song Thaek fraction)’에 강하게 연루돼 있어 현재 공연에 나서지 못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치 국내 언론에 대해 화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처형된 것은 아니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복귀한다”고 언급했다. 이후 양강도 순회공연(17회차)에서 류진아와 선우향희가 다시 등장했다.

최근 김정은이 약 한 달 이상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그의 마지막 행보였던 9월 3일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가 주목된다. 이 공연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던 세 곡이 눈길을 끄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첫째 곡은 ‘그날의 15분’이라는 노래로 “가렬했던 351고지에 우리들을 세우네”라는 가사가 나온다. 주목할 점은 ‘351고지’인데 이곳은 6·25 당시 휴전협정을 앞두고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남북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흥미롭게도 이 351고지를 지난 7월 14일 김정은 제1비서가 현지지도하여 방사포 사격 훈련을 직접 지휘한 것이다. 이 훈련은 남측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최전방에서 실시됐다.

둘째 곡은 ‘만경대혁명학원교가’인데 이 곡 역시 김정은의 현지지도와 관련이 있다. 김정은은 지난 6월 6일 만경대혁명 학원을 현지지도 했는데 당시 학생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눈물을 흘렸다고 <노동신문>은 보도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북한의 최고엘리트를 양성하는 학교로 항일유자녀와 전쟁영웅의 유자녀가 다닐 수 있는 학교다. 북한권력의 실세로 알려진 최룡해 당 비서도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다. 한마디로 북한 권력의 핵심부가 모두 이 학교 출신인데 이 노래는 대를 이어 충성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20회차 신작음악회에 숨겨진 비밀


최근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김정은의 현지 지도를 칭송하는 우상화 작업, 전투 의지를 다지는 군사적 선전·선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사진·중앙포토
셋째 곡은 <근위부대자랑가>라는 곡으로 여기에는 “질풍처럼 달려 서울에 공화국 기를 휘날린 105 땅크사단”이라는 가사가 눈길을 끈다. 이 곡도 김정은의 현지지도 및 6·25와 관련이 있다. 가사에서 표현한 것처럼 ‘105 땅크사단’은 6·25 때 가장 먼저 서울에 입성한 부대로 북한에서 큰 공을 세운 부대나 기관에 주어지는 최고영예인 ‘근위’ 칭호를 받은 부대다. 김정은이 2012년 공식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현지지도를 한 곳도 바로 ‘105 땅크사단’이었다.

지금까지 모란봉악단 공연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이 세 곡에 주목하는 것은 모두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칭송하기 위한 우상화 작업이라는 점과 함께 6·25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공공연히 2015년 성전을 거론하며 대남도발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모란봉악단을 통해 김정은이 진정 무엇을 인민들에게 선전하려 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2015년은 광복 70년이 되는 해지만 달리 보면 분단 70년 이라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시기이기도 하 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2015년은 우리에게 역사적 결단을 요구한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이른바 북한 실세 3인방의 깜짝 방문은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를 남겨놓았다. 2차 고위급 회담을 통해 의제를 조율해야 하지만 분명 5·24조치 해제 문제, 북한 당국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6·15와 10·4 공동선언의 이행 등은 남북한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이슈는 아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 DMZ평화공원 등 우리 정부의 대북제의는 분명 북한의 호응과 합의가 뒷받침 돼야 하는 사안들이다. 북한은 실세들의 방문을 통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며 모든 공을 우리에게 넘기는 고도의 전략을 펼쳤다. 만약 이번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악순환은 물론 북한에게 군사적 도발의 빌미를 줄 우려마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언급한 ‘작은통일’로부터의 시작은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사업부터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란봉악단의 남북한 합동공연은 문화를 통한 남북한 상호교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란봉악단은 세계적 추세를 강조하며 북한 노래만이 아닌 세계명곡을 연주한다. ‘가극극장의 유령’(오페라의 유령), 미키마우스 행진곡 등이 대표적 사례다. 북한 노래는 사상만 있고 남한 노래는 사랑만 있다고 한다. 북한의 모든 노래는 정치사상적 내용이 담겨 있지만, 세계명곡 연주는 모란봉악단의 한국 초청공연이 최소한 공연 내용상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북한판 걸그룹’으로 표현되는 모란봉악단의 실제 한국의 걸그룹과의 합동공연이다. 정치와 이념을 넘어 음악과 정서로 하나되는 남북한. 통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통합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문화로 여는 통일시대’를 소망할 때, 모란봉악단은 머지않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북한의 문화단체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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