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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 ‘반기문 대망론’의 허와 실 - ‘반기문 株’ 몰빵 투자? 여의도정치 실패 자인하는 꼴 

여야 정치권의 ‘개헌’, ‘세력결속’ 프레임이 반기문 현상의 본질… 실체 없는 메시아니즘, 그러나 폭발력은 메가톤급 

‘반기문 현상’은 한국 정치의 허약한 체질을 웅변한다. 인물이 국가를 바꾼다는 믿음에 기초한 신드롬이다. 정책과 비전 제시에 실패한 정당과 정파가, 메시아를 새로 구해 국민 앞에 내세웠다. 반기문 주가의 급등은 한국정치주가의 폭락을 의미한다. 반기문의 성패보다 한국 정치의 성패가 더 중요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2017년 대권 도전설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각 정파의 ‘세력결속’ 등 정략적인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그가 강렬한 ‘목표지향형 인간’이란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엔 사무총장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집념’을 보면 그가 결코 ‘허당’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2006년 유엔 사무총장 선거과정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부시 미 대통령에게 지지를 얻게 된 장면이 꼽힌다. 그해 7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한 당시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지지를 호소했다.

반 장관은 노 대통령이 사무총장 선거 문제를 화제에 올리지 않자 노 대통령을 채근하기까지 했다. 머쓱해진 노 대통령이 “직접 해보시라”고 하자 반 장관은 주저하지 않고 그 화제를 꺼내 결국 부시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부시는 정상회담이 끝나갈 무렵 반 장관에게 “당신이 우리의 후보(You are our candadate)”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미국의 공개적인 지지를 받는 후보는 당선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하는 후보는 더더욱 당선이 힘들다. 미국으로부터는 오직 ‘암묵적인 지지’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미국의 공공연한 지지는 ‘죽음의 키스’라 불릴 정도로 금기가 되어 있다. ‘기름 뱀장어’란 별명을 지닌 노회한 반 장관이 부시의 지지 사실을 내색했을 리 없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지원을 가슴속에 묻고 ‘지독한’ 선거운동을 치러냈다. 2006년 2월 14일 출마 선언을 한 후 5개월간 그는 전 세계를 돌며 선거운동을 했다. 현직 외교부장관이란 직책도 100% 활용했다. 치밀하고 정력적인 선거운동 과정을 쓰면 책 몇 권이 나올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반 총장에 대한 평가는 그래서 피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권력의지란 결국 강렬한 ‘목표지향’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미국 조야, 반 총장에 대한 신뢰 깊다”


대권 가능성을 논할 때 사람들이 간과하는 반 총장의 강점이있다. 바로 미국과의 관계다. 1980년대 ‘워싱턴 마피아’라는 은어가 외교부 안에서 나돌던 시절이다. 한국 외교는 숙명적으로 워싱턴을 중시하는 친미노선의 외교관(觀)이 외교부를 풍미했다. ‘워싱턴 마피아’는 그런 관점을 신념에 가깝게 갖고있는 직업 외교관 집단을 가리켰다. 때때로 이들은 '친미주의자’라 욕을 먹었고, ‘워싱턴 마피아’란 조어에도 냉소적인 함의가 다분했다. 이들은 일본전문 직업 외교관 그룹인 ‘도쿄 마피아’와 함께, 한국 외교의 양대 중추 세력이었다.

‘워싱턴 마피아’는 박건우 전 주미대사를 비롯해 반기문 장관, 장재룡 전 주프랑스 대사, 임성준 주 캐나다 대사 등이 대를 이어갔다. 반 총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핵심 외교관료 송민순 현 의원과 함께 ‘워싱턴 마피아’의 우등생으로 불렸다.차기 대선에서 미국이 선호하는 한국의 대선 후보가 있다면 그 1순위는 반 총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그는 미국을 잘 알고, 미국 조야 역시 반 총장에 대한 신뢰가 깊다. 반 총장의 오랜 측근인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외교부 OB의 대선 출마 문제가 논의된 적이 있다”고 시인한 것도 외교부 출신이 갖고 있는 미국과의 친화력을 염두에 둔 발언일 가능성이 있다. 실상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보가 범보수세력의 리더가 될 확률은 희박하다.

‘반기문 대망론’이 회자되는 1차적인 이유는 그에 대한 높은 지지율 때문이다. 40%를 상회하는 지지율에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가 특징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그 요인으로 ▷높은 지명도와 글로벌 리더의 이미지 ▷여야를 모두 아우르는 중도적 위치 ▷영호남의 견제를 덜 받는 충청권 출신 ▷정치권 네거티브로부터 자유롭다는 점 ▷여야 절대 강자의 부재와 새 인물에 대한 열망 등을 꼽고 있다.

대선출마설, 측근의 정치권 접촉설이 확산되자 반 총장 측은 11월 4일 ‘언론대응자료’를 발표했다.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반기문 총장이 국내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나오지만, 반 총장 본인은 아는 바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뉴앙스가 묘했다. 측근들이 그의 대선 출마를 전제로 여야 정치권을 접촉했다는 설에 대한 부인일 뿐,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확연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여운을 두고 관망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여야 후보 어느 쪽이든 강점과 매력을 갖기 때문에 결국 대권후보로 거론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원장이 상식에 입각한 일반론을 제기했다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무혈 입성론’까지 거론했다. 신 교수는 “야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은 인물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선전할 경우,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이 반 총장을 무혈 입성시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반기문 카드는 여야 유력 후보 ‘견제구’

일단 실패를 맛본 ‘제3 후보’ 안철수 의원은 반 총장 측이 가장 주목해야 할 반면교사다. 보수주의 논객 복거일은 “안철수의 실패를 미리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반 총장의 최대 강점”이라고까지 말한다. 안 의원과 반 총장을 맞비교할 때는 반 총장의 비교우위를 점치는 전문가가 월등히 많다. 여론조사기관 R&R의 배종찬 본부장은 “과거 고건 전 총리의 지지층이 호남 지역에 편중됐고, 안 의원이 20~30대에 편중됐다면 반 총장은 모든 정파, 지역, 세대에 걸쳐 지지기반이 고르다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신율 교수는 “외교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지낸 반 총장은 안 의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관료 경험과 정무적 감각이 있다”고 평가했다. 실상 외교부장관, 유엔 사무총장 경력의 반기문과 기업 CEO 경력의 안철수를 ‘경륜’의 차원에서 맞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반기문 현상’은 지난 대선에서의 ‘안철수 현상’을 연상케 하는 유사성이 있다. 안철수의 추락 과정은 끔찍했다. 안철수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시장 후보적합도 조사에서 그는 36.7%로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17.3%)과 박원순 현 서울시장(12.8%)을 압도했다.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하고 철수한 뒤에도 ‘안철수 현상’은 지속됐다. 그해 11월 26일 한국리서치의 차기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는 무려 50%의 지지도를 얻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차기대선후보 선호도 1위를 놓친 적이 없었던 박근혜 현 대통령(38%)을 누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선후보 철수(撤收)와 민주당과의 통합 등 정치적 실책과 악수를 거듭하면서 현재 ‘안철수 현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반 총장이 1위에 오른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원의 지지도는 5% 이하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도 뒤처지는 5위에 머물러 있다. 국민 지지율이라는 것이 실상 모래성, 신기루와 같다는 점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결과다.

반 총장의 출마 여부를 점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경쟁력이나 비전, 리더십 따위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다. 반대로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식의 부정적 예단도 부질없는 일이다. 유엔 사정에 정통한 국내 한 언론인은 “2016년 9월경이면 새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되기 때문에 (만일 출마한다면) 반 총장의 진짜 행보는 그때부터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2017년 12월 대선까지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타임테이블이므로 설사 대권의 뜻이 있더라도 사전에 절대 서두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여야의 다양한 정치세력이 반기문 카드를 통해 어떤 정치적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느냐다.하나는 개헌 프레임, 또 하나는 ‘세력결속’의 프레임이다. 두 프레임이 중첩돼 뒤섞여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관찰인지도 모른다. 신율 명지대 교수의 프레임 분석은 더 명쾌하고 단순하다. “친박계가 반 총장을 미는 것은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기 위함이며, 야당 동교동계가 미는 것은 문재인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것이다.

‘반기문 대통령-김무성 총리’ 상정한 포석?


새누리당 ‘친박세력’이 만지작거리는 반 총장 대권카드는 한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사진)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반기문 현상의 배후에 ‘개헌 프레임’이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헌법학을 전공한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 아까운 반 총장을 대통령 감으로 호명하는 순간, 제왕적 대통령제 정부형태가 어딘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면서, 다른 편에서 반 총장을 호명하는 모습은 그래서 뭔가 심상치 않은 여운을 남긴다. 이원집정부제 하의 대통령을 반 총장으로 상정하는 개헌 프레임이다. 과거 유엔 사무총장이던 쿠르트 발트하임이 퇴임 후 대통령이 된 나라도 바로 오스트리아다.

발트하임은 지난 1972년부터 81년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1986년 대선에 도전해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재임 중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것은 대선 직전에 나치 친위대 복무 전력이 드러 났기 때문이다. 재선에도 실패했고 퇴임 후 (나치 전력 때문에) 미국 입국이 불허되는 등 명예에 큰 타격을 입었다. 어쨌거나 발트하임이 외교관에서 유엔 사무총장, 대통령에 이르는 코스를 거쳤다는 점에서 반 총장 측이 눈여겨봐야 할 모델임은 분명하다. 1997년 대선에서 DJ에게 ‘호남-충청 지역연 합론’을 제시했던 황태연 동국대 명예교수(정치학)는 발트하임의 집권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발트하임이 대통령이 된 과정에는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작용했다. 나치 친위대 복무 경력이 대선 1년 전에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80%가 넘는 국민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그때 국민은 발트하임에게 ‘오스트리아의 아들’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여야를 초월한 지지를 받았던 선거였으며,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경력의 후광을 100% 활용한 선거로 기록된다.”

국민은 반 총장에게 ‘대한민국의 아들’이란 이름을 붙여줘 그를 대선에 등 떠밀 수 있을까? 황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정치현실 속에서 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그러나 대선 후보 검증 과정의 혹독함을 반 총장이 과연 견딜 수 있겠는가 반문했다.

“선출직 선거에 나서 본 적이 없는 반 총장이 사소한 이유로 자칫 검증 과정에서 낙마한다면, 수십 년 공직생활은 물론 인생 전체에 큰 흠집을 남기게 된다”는 우려다. 부인 유순택 여사 등 가족들이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형태다. 대통령제 요소와 내각제 요소 중 강한 쪽에 따라 그리스식(내각제에 대통령제적 요소를 다소 가미), 프랑스식(대통령제에 내각제적 요소를 다소 가미), 오스트리아식(대통령제적 요소에 내각제 요소를 강하게 가미) 등으로 구분된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에서의 대통령은 조약체결, 국방통수권, 국회해산, 정당해산 제소, 계엄선포, 긴급명령권을 갖는다. 총리는 행정부 통할, 법률안 제출권, 예산편성권,행정입법권 등을 행사한다. 참여정부 이후 한때 실현됐거나 강조된 책임총리제 역시 ‘대통령-총리 분담 모델’이지만, 오스트리아식은 내각제 요소가 훨씬 강화된 권력구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0월 중국 방문 중, 연말부터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 전망하면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언급한 바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외치와 내정으로 권력을 분담하는 모델로 예시했는데, 이는 ‘반기문 대통령-김무성 총리’를 상정한 포석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당 대표가 되면서 여권 내 대선 선두주자로 떠오른 김 대표가 반 총장과 한 팀을 이룬다면 최강의 러닝메이트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그런 추정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반기문 대망론에 결정적인 불을 지핀 계기는 10월 29일 열린 친박 모임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다. 이 세미나에서 대권 후보로서의 반 총장이 토론의 대상이 됐다. 이날 모임엔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 홍문종·윤상현 전 사무총장 등 친박계 국회의원 30여 명이 참석했다. 발제자로 나선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가 ‘반기문 대망론’을 언급했고,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안홍준 의원은 “당내 인사로 정권 창출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반 총장을 생각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제 살길 찾기’인가, ‘돌발적 실수’인가


2006년 10월 당선돼 이듬해 1월 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의장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은 새누리당에 ‘김무성 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후보들을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된 김 대표는 이후 당내에 측근 인사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안정적으로 체제를 굳혀가면서 친박계는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친박계가 국가경쟁력강화포럼 활동을 다시 재개한 것도 이 시점이다. 김무성 대표의 체제 굳히기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되던 포럼활동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한 것도 ‘친박계의 결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새누리당 ‘친박’ 일부의 ‘반기문 띄우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평가가 있다. 하나는 ‘제 살길 찾기’, 또 하나는 ‘돌발적인 실수’가능성이다. 의원들의 ‘제 살길 찾기’ 행보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은 세미나가 열린 시점에 주목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회생 의지 천명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당일,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세미나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친박 진영의 절박함이 반영된 행사였다는 분석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정당이나 정파가 유력한 차기 후보를 내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황태연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대통령제 하에서 그런 불임 정당이나 정파는 국민의 외면을 받는 것은 물론, 정치행위 전반에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잠재적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무성 대표·정몽준 전 대표·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남경필 경기도지사·김태호 최고위원 등은 모두 친이(親李)계다. 친박계는 대권주자는 고사하고 이렇다 할 구심점도 없다. 친박계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며 ‘반 총장 카드’를 기획했다는 것이 ‘제 살길 찾기’론의 배경이다.

최근엔 ‘친박’ 일부 세력의 ‘반 총장 띄우기’가 ‘단순 실수’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친박 결집의 새로운 계기로 삼고자 했던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엉뚱하게도 ‘반기문 대망론’을 낳게 됐다는 것이다. ‘친박 좌장’으로 평가되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11월 10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박 대통령 임기가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친박계에서 먼저 군불을 뗀 게 아닌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것’이라고 부정했다. 대통령의 흉중, 친박 중의 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최고의원, 윤상현 의원 등이 반 총장 이슈에 대해 계속 함구하고 있는 것도 ‘박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도 “개헌 문제에 이어 반 총장 대권설의 돌출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집권 후 채 2년이 되지 않은 대통령 앞에 차기 주자가 어른거린다면 국민이 과연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느냐”고 개탄했다. 설사 대통령이 반 총장에게 호감이 있더라도 그것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이 의원의 지적이다.

야권에서 반 총장에 주목하는 세력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노계다. 권노갑 상임고문은 11월 3일 열린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반 총장의 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내게 와서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만큼 훌륭한 분이 없다고 화답했다”고 밝혔다. 정대철 상임고문도 이튿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반 총장이 좋은 후보임에는 틀림없다”면서 “정치를 한다면 민주당 쪽에 오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라 거들었다.

새정치연합 범호남·비노계 세력은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고문, 안희정 충남지사 등 차기 유력 주자와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 비노계의 문재인 견제 심리가 ‘반 총장 띄우기’로 비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권 고문의 ‘반기문 행보’에 대해서는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황태연 교수는 “권 고문이 과연 반 총장 카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라면서 “전혀 검증되지않은 반 총장의 3년 후 행보는 삼성 라이온스가 3년 후 리그 우승 여부를 점치는 것과 같다”고 냉소했다.

다시 말해 권 고문이 ‘반기문 현상’을 공론화한 것은 동교동계의 ‘목소리 키우기’에 불과하다는 폄하다. 같은 당 박지원의원이 11월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반 총장을 (영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러면서도 박 의원은 “분명한 것은 일부 인사가 ‘반노(反盧) 신당을 창당하고 반 총장과 함께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충북 출신인 반 총장의 중원 장악력 때문에 더욱 힘을 받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DJ와 JP가 손을 잡고 ‘DJP 연합’을 통해 정권을 창출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충청권 표심을 등에 업고 집권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1997년 이뤄진 ‘DJP 연합’과 같은 지역연합이 정확히 20년이 지난 후인 2017년에도 적합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프로세스는 매우 낡은 구도임이 분명하다. 반 총장과 같은 후보를 오히려 좁은 새장 안에 가두는 행위로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박지원 의원이 최근 밝힌 반 총장 측근의 권노갑 고문 접촉설의 진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야권의 ‘뉴DJP 연합’ 정권 창출 시나리오


11월 6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권 고문은 이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측근 접촉 사실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권 고문에 의사를 타진한 측근 그룹은 약 세 곳인데, 조직적인지 아닌지는 전혀 모르겠다. ▷나도 잘 알고 권노갑 상임고문과 특히 가까운 반 총장의 지인들이다. ▷‘반 총장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새정치연합에서 검토하면 어떤가’하는 의사를 타진해왔다. ▷새누리당은 이미 경선 구도가 짜여 있기 때문에 새정치연합에서 경선을 해야 반 총장이 이길 수 있다. ▷뉴DJP 연합을 통해 호남과 충청이 다시 손을 잡으면 대선승리가 가능하다. ▷반 총장의 대북정책이 ‘햇볕 정신’이므로 새정치연합의 대북정책과 부합한다.

박지원 의원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 측근들이 반 총장과 교감하며 그의 뜻을 대변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햇볕정책이나 뉴DJP 연합, 당내 경선 문제 등 고도로 민감한 정치 사안을 그렇게 즉흥적으로 타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친노계 의원은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반 총장을 호가호위하며 벌인 해프닝으로 (설사 측근이라 해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고 못 박았다.

반기문 대망론은 아직까지 실체가 없는 메시아니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반 총장은 본의 아니게 국내 정치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3년 후 반 총장이 발트하임이나 아이젠하워처럼 국민적 추대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물론 있다. 이것이 현실정치의 수수께끼 같은 변증법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대권은 ‘세력’과 ‘권력의지’의 게임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정치학)는 “반 총장의 성패는 본인의 의지가 결정한다”면서 “마타도어의 덫이나 막판 지지율 하락과 같은 시련을 이겨낼 동력은 결국 본인의 강한 권력의지”라고 말했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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