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와이드 인터뷰 | 글쓰기가 투병이다! 간암과 싸우는 작가 복거일 - “반기문 충청대망론은 착시” 

한일 외교갈등, 국민감정과 국제현실의 갭 정부가 메워야…정부 리더십 위기도 문제지만 국민의 팔로워십(followership) 실종이 더 큰 문제 

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osang@joongang.co.kr〉
복거일이 바라본 한국사회는 역동성과 활력이 소진된 공동체다. 경제 주체는 몸을 움츠리고 있다. 투자도, 소비도 줄었다. 정부는 단기 과제에 매달려 지지율 추이만 살피고 있다. 국민감정과 국제외교 현실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굳이 외면한다. 사회 전체에 거대한 관료주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복거일은, 고통스럽지만 우리 사회가 꼭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부채를 들고 다니는 버릇이 있는 작가 복거일. 글쓰기와 강연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암을 극복해내고 있다.
복거일(1946~ )은 한국 문단에서 전례 없는 작가다. ‘강인한 의지와 명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상가란 평과 함께 ‘역사를 거스르는 보수주의자’로 지탄받기도 한다. 본인도 공사석에서 “남북 문제에 관한 한 극우의 시각이 옳다”는 생각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시장경제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해낸 경제 체제들 가운데 에선 가장 낫다”는 지론을 바이블처럼 품고, 또 열렬히 전파 해온 인물이다.

복거일에게 늘 감탄하게 되는 것은 그의 견고한 논리다. 이념적 차원을 떠나 글과 생각이 명징하다는 데에 토를 달 수 없다. 그래서 소설가보다 칼럼니스트로서 그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글이 명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사와 논리에 태생적으로 강하고, 평생경제학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지적 훈련을 지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복거일이 글 잘 쓰는 경제학자인가, 경제를 아는 글쟁인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로 그의 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독특하고 유례없는 것이다.

올해 출간한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는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와 <보이지 않는 손>(2006)에 이은 ‘현이립 3부작’의 완결편이다. 쓰기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마저 2년 반 전 간암 판정을 받은 복거일 자신의 상황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글을 쓰기 위하여’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실상 처절한 것이다. 간암에 걸린 상태조차 생명의 흐름으로 간주하는 그의 생사관이 아마도 작용하고 있을 터인데, 어쨌든 그는 세상을 향해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는 글쟁이의 신념과 배포를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한국사회 가장 첨예한 현안과 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암 치료 받으면 글 쓸 체력 유지 못해


올해 출간된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3부작 자전적 소설의 완결판이다.
치료와 집필의 병행, 또는 건강을 회복한 다음 집필하는 길도 있는 것 아닙니까?

“작가는 글 쓰는 일이 생명만큼이나 중요하죠. 전장에 나가는 자세로 쓰는 겁니다. 병원 스케줄 위주로 생활하면서 진지한 글을 쓰기란 불가능해요. 고 최인호 선생은 동년배라 제가 그 사정을 생전에 잘 알았지요. 고생은 고생대로, 병도 못 고치고 글도 쓰지 못했어요. 글쓰기란 체력전인데, 암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그 체력을 유지 못해요. 고 홍성원 같은 작가도 투병하면서 쓰긴 썼지만 예전 같은 글을 쓰진 못했어요. 제가 30∼40대 같으면 치료받았겠죠. 앞으로 몇 년이 다른 사람의 몇 십 년보다 더 소중합니다.”

예후를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인 검사는 받고 있는 겁니까?

“검사도 받지 않습니다. 한번 검사를 받기 시작하면 의사 페이스에 말려드는 거니까…. 병원에 일체 안 갑니다. 아예 발길을 끊었어요.”

최근작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이후 새 작품 구상에 들어갔나요?

“불려 다니는 데가 많아서 아직 착수를 못 하고 있어요. 강연다니고 칼럼 쓰면서 바쁘게 살고 있어요. 제 나름의 투병이라고 할까…. 새 작품 구상과 집필 못지 않게 좋은 칼럼 쓰는 일도 게을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느닷없이 반기문 대권 문제가 정국을 달궜습니다. 반기문 현상, 어떻게 봐야 합니까?

“과거 안철수를 따랐던 사람들이 반기문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입니다. 안철수와 반기문의 인기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구세주에 대한 열망의 소산입니다. 그런데 구세주는 역량이 드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안철수의 경력은 중소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CEO에 불과했어요.나머지는 없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과 운이 많은 사람이지만 한국 정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아직 검증이 안됐다는 게 장점일 뿐, 구름에서 내려와 사람을 조직하고 당을 만들고 할 때 많은 사람이 환멸을 느낄 겁니다. 안철수의 행로를 밟는 것이죠. 그런데 반기문은 다행히 안철수라는 반면교사가 있습니다.”

여권의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여권의 잠재적 대권후보들이 반기문에게 권력을 주겠습니까? 김무성·김문수·홍준표·원희룡 이런 사람들이 반기문 같은 ‘굴러온 돌’에 절대 빼앗기지 않죠.”

반기문 외교라인 세력 무시 못 해


복거일은 지독한 지식광(狂)이다. 젊은 시절 그의 좌우명은 “나는 알기를 열망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당신은?(I am he that aspired to know, and thou?)”이었다. 영국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시 ‘파라켈수스’(1835)에 나오는 구절이다.
반 총장은 안철수 현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반기문은 땅에 내려오기 전에 대세를 확고하게 장악해야 합니다. 안철수의 패착은 문재인과 협상한 것이죠. 협상하면 절대 안 되는 시점에서 안철수는 문재인과 협상에 들어갔죠. 안철수 같은 야인은 사람들을 다 끌어 모으고 그들의 교주가 돼야 하는 것이었어요. 반기문이 과연 반기문교를 만들어 헤쳐모여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이게 관건입니다. 그것은 마치민란을 일으키는 것과 같습니다. 반란은 거의 초능력적인 인물이 리더가 되어서 압도적인 기세로 싸우지 않고 관군을 무너뜨려야 성공합니다. 관군하고 싸움하기 시작하면 지게 돼 있습니다. 관군은 원래 프로 군인들 아닙니까? 소수라도 관군이 이겨요. 민란은 한번의 전투도 없이 이겨야 성공한다, 이게 철칙입니다. 안철수는 협상하는 순간 끝났습니다. 상대가 시간 끌고, 마타도어 생기고, 거기에 해명하고 하면서 패배의 늪으로 걸어간 거죠. ‘협상은 내가 당선된 다음에 하자!’, 이러면서 박차고 일어났어야 하는 겁니다. 민란을 이끌 수 있는 수괴가 될 수 있느냐, 이것이 관건입니다. 기성정치판과 싸우는 민란의 성격이란 점을 투철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신비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신속하게 해치워야 하죠. 단 한 번의 전투에도 패함이 없이 수도를 장악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안철수처럼 원탁회의에 나가서 설득을 당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반 총장, 야심은 있는 걸까요?

“당연히 야심은 있죠. 의외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여론이라는 게 묘해서 그를 민란의 지도자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모르는 거예요.”

충청권 민심에 반기문 대망론이 서려 있다고들 합니다. 충청도 태생으로서 충청 민심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충청권은 원래 민심이 없습니다.(웃음) 원래 쪼개지게 돼 있어요. 대전이 중심인데, 영호남 충청도 사람으로 3분의 1일씩 늘 쪼개집니다. 반기문이 충청권을 석권한다? 아마 아닐 겁니다. 보수세력은 그가 노무현 정권 하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것이 찜찜할 테고, 친노세력은 그가 성이 차지 않을 겁니다. 그는 충북 음성이 고향인데, 음성은 아주 먼 땅입니다. 충청도 주류 입장에서 보면 어찌 보면 경기도보다 멀어요. JP가 충청 지역 석권할 때도 충북은 따로 놀았습니다. 충청이 반기문 대망론의 강력한 진원지가 되기 어려운 거죠. 충주를 중심으로 해서 그 이북은 경기도와 통해요. 공주·홍성 쪽하고는 교류가 거의 없습니다. ‘반기문 충청대망론’은 지도를 보는 데서 오는 착시일 뿐입니다. 그런데 반기문은 안철수보다 경험이 많고, 외교라인 세력을 무시할 수 없어요. 정무수석 했던 박준우 씨가 똑똑한 참모 역할을 잘할 거예요. 외교부 인맥은 생각보다 강해요. 안철수와는 그런 점이 다르죠.”

‘반기문 불가론’ 쪽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요소들이 있을까요?

“저와는 63학번 동기인데, 아무래도 나이가 너무 많죠. 올해 우리 나이로 71세니까요. 나이가 많았어도 DJ 같은 사람은 예외입니다. 그분은 호남의 한을 풀어야 한다는 역사적 책무가 있었어요. 반기문에겐 그런 역사적 소명의식이 없습니다. ‘충북의 한’을 풀자며 대선에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웃음) DJ는 훌륭한 정치가였어요. 그는 호남의 한을 가장 혼란이 적은 길을 택해서 풀었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했겠죠.”

팔로워십(followership) 부재가 진짜 문제


복거일은 자유주의 궁극의 지향이 “생태계의 모든 존재와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늘 강조해오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흐름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최경환 장관의 일련의 정책이 현실적합성이 있느냐는 비판과도 맞물린 문제입니다.

“우리 기업의 실적이 부진합니다. 근원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시장경제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규제가 심하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 기업의 발목을 잡는 세력의 힘이 강합니다. 최 장관은 이런 근본조건을 바꿀 입장과 처지에 있지 못합니다.”

그런 조건은 언제나 존재했죠. 그래도 각 경제주체는 정부만 바라보고 있어요. 최 장관이 정부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입장이고, 누구든 그를 대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맞는 얘기입니다. 제 얘기는 최 장관이 한국 경제의 흐름을 바꿀 중장기 대책을 내놓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임기도 짧고 권한도 약하고 수단도 변변치 않아요. 이번에 ‘단통법’ 사례에서도 보듯 기획재정부가 타 경제부처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도 없어요. 단통법은 미래창조부가 주도한 것 아닙니까? 거기에 환경부나 안전행정부처럼 경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부처에서 만든 규제가 기업을 옥죄고 있어요. 경제부처 장관이 할 수 있는 정책이 제한적이라는 것이죠. 시원치 않으면 갈아치우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임기는 통상 1년이라고 봐야 해요. 1년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2∼3년 후에 약효가 나오는 정책을 쓸 수 있겠어요? 후임자들이 빛을 받는 정책을 펼 수 없는 거죠. 남은 임기가 3년 정도인 대통령도 마찬가지 입니다. 후임 대통령에게 공이 돌아가는 정책을 추진할 수 없어요. 당장 급하니까 단기적인 처방을 급히 모아서 반짝 시행 하는데, 그 뒤를 떠받칠 정책이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 경제에 정말 도움이 되는 정책, 경제 체력을 향상할 정책이 나오지 않는 거죠.”

그렇다고 기업이 정부만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정부 정책도 아쉽지만 기업 스스로 발휘하는 역동성과 활력도 부족한게 아니냐는 거죠.

“기업에 활동할 여지를 마련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아요. 정치적 힘의 공간에서 시민세력이 차지하는 포션이 크다 보니 기업이 휘둘립니다. 이번에 제2롯데월드 개장 문제에서도 기업이 엄청나게 시달렸죠. 막말로 하층부를 조기 개장해서 추석에 대목을 보자는 거였는데, 그게 크게 욕먹을 일은 아니죠. 이리 막고 저리 막고, 막는 걸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기업이 공장 하나 짓지 못하는 걸 대통령이 나서도 잘 안 되는 겁니다. 병원을 지으려 해도 민원이 들어오면 지을 수 없어요. 지자체에서 민원인 눈치를 보거든요. 이건 뭐냐? 자본주의의 기본인 재산권을 정부가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님비현상도 심하죠. 교도소나 장애인 시설, 노인시설, 장례식장이 들어서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장애인 학교가 혐오시설이 되는 나라 아닌가요? 국민이 단단히 반성해야 합니다. 리더십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더 부족한 것은 팔로워십(followership)이라고 봅니다. 정치인도 기업인 괴롭히는 데 나섭니다. 국회 상임위에 기업 총수를 뻔질나게 불러요. 결국 총수들에게 정치자금 내라는 시그널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기업인은 있는 재산을 지키는 데 관심을 쏟아요. 지키는 것도 힘든 마당에 무슨 신규 투자냐, 이런 마인드가 생기죠. 그래서 새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외국으로 나가요. 지자체가 재벌기업을 관내에 유치하려 하면 특혜다 뭐다 말이 많아요.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은 이제 글로벌 기업입니다.이젠 좀 놔줘야 해요. 한국법 따르라고만 강요해선 안돼요.사랑해서 이별한다는 말이 있죠. 대기업이 통 크게 사업할 수 있도록 이젠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 삼성그룹 강연에서 “기업이 관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더군요.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인가요?

“얼마 전 현대가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입찰에 10조5천억원을 써내 낙찰받았죠. 그런데 부동산에 이렇게 큰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지금 타이밍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이걸 가만 지켜보면 현대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뭔가 느슨한 측면을 노출한 것이라고 봐요. 시장은 그 액수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 과정을 주시합니다. CEO는 신이 아닌 한 실수할 수 있는데 큰 베팅을 할 때 목숨 걸고 간언하는 측근이 없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 거죠. 시장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점 입니다. IMF 사태 이후 김대중 정권이 기업빅딜을 시도할 때 각 대기업 그룹에는 그런 ‘충실한 간언자’가 있었다고 해요. 총수가 정치적인 이유로 정권과 타협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도,‘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한‘충신’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없어요. 대기업이 관료화되고 있다는 단적인 징후라고 봐요. 관료주위가 팽배하면 이런 사람들이 나올 여지가 없어요.”

인공광합성 통해 인류 구원받을 수도 있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위원으로 제3차 회의에 참석한 복거일.(가운데) 왼쪽이 김문수 혁신위원장이다.
결국 창조적 경영의 시작이 관료주의 척결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보는 겁니까?

“관료주의는 조직이 커지면 자연히 따라서 나오는 현상입니다. 다른 말로 관료주의는 외부보다 내부를 중시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승진하느냐, 그게 관료주의 구성원들의 마음속 풍경입니다. 일하면 다친다는 생각이죠. 설거지하면 접시 깨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말썽 피우지 말라는 주문이 조직 안에 횡행하는 것, 이것이 대표적인 관료주의 현상입니다. 기구가 커지면 내부가 외부와 점점 단절이 돼요. 관료주의를 혁파하려면 외부를 키워야 해요. 같은 볼륨에 표면적을 늘리려면 사람의 뇌처럼 쪼글쪼글해야죠. 외부의 표면적을 그렇게 넓혀야 합니다. 전문 경영인 영입, 컨설턴트, 사외이사 등등 외부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일상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관료주의를 깰 수 없어요. 총수가 나서서 신천지를 제시하고, 맨땅에 해 보자는 것을 제안해야 합니다. 혁명과 같은 아주 특단의 대책을 들고 나서라는 겁니다.”

9월 삼성 강연 때 “이재용 부회장이 이제는 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셨죠?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까?

“‘애플 직원은 창업하는 것이 별 다는 것이고, 삼성은 임원승진이 별 다는 것’이란 말이 있죠. 과연 어느 쪽이 장래성이 있겠습니까? 삼성은 말썽 안 부리는 것이 최고 아니냐, 안 그래도 삼성은 월급을 많이 주기 때문에 임원 하면 평생 먹을 것이 보장되는 회사입니다. 이것을 일신하려면 뭔가를 내놔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삼성의 신수종사업을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원래 5개에다 몇 개를 추가해 내놨는데 각 사업이 상호 연관성이 없습니다. 구글은 서치 엔진으로 시작해서 지도를 만들고 네비게이션으로 갔습니다. 다시 말해 무인자동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거예요. 아! 구글이 그렇게 가려고 했구나, 무릎을 치게 되죠. 얼티밋 스토리(ultimate story), 즉 구글이 지향하는 궁극의 스토리를 사람들이 알게 되었죠. 애플은 잘 아는 것처럼 생태계를 만들죠. 애플의 얼티밋 스토리입니다. 삼성도 그런 궁극의 지향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대기업의 신수종 사업이 ‘궁극의 스토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경제가 나빠졌다고 태양광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태양은 화석 연료 다음의 클린 에너지원인데 포기해선 안 되는 거죠. ‘궁극의 스토리’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까 안 되면 바로 접는 식으로 나가는 거죠. 우리는 궁극적인 것을 찾아야 합니다. 태양광은 궁극적인 소스죠. 예컨대 인공광합성 같은 분야가 있죠. 언젠가 인공광합성을 통해 인류가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완벽한 에너지원 아닙니까? 물론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자연이 35억 년 동안 진화해 발견한 것을 인류가 몇 십 년 연구해서 금방 자연을 따라가진 못하겠죠. 그러나 이런 사업이야말로 대기업에 걸맞은 사업이 아닌가요? 태양광 전지도 사실은 그곳(인공광합성)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방향을 제시하면 된다고 봅니다. 스토리와 방향성, 그리고 궁극적인 것으로의 지향입니다.”

최초 우리 기업의 스마트 사업 부진도 ‘궁극의 스토리’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건가요?

“휴대전화 어닝쇼크로 삼성전자가 공황상태에 빠진 것은 맞아요. 그러나 대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휴대전화는 모토롤라가 시작했지만 손들었잖아요? 노키아도 사라졌습니다. 코모더티commodity, 상품)가 되면, 그리고 범용기술이 되면 그건 언젠가 사라지는 운명입니다. 궁극적인 것은 인공광합성같은 것입니다. 공장에서 식물을 만든다는 것은 인류가 환경을 해치지 않고 먹이사슬에서 벗어나는 혁명적 상황을 의미하죠. 아마 노벨상 10개가 걸려 있는 분야가 될 겁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 비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면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도 달라질 거예요.

성숙한 다자외교 전략 가다듬어야

한일관계가 경색 국면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국 정상 모두에 ‘외교적 무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도 합니다. 위안부 문제가 핵심인데요,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일본인들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일단 끝난 것으로 봅니다. 우리 국민의 인식과는 현격히 다릅니다. 일본 총리도 일본 내부사정에 직면해 있어요. 후퇴하면 정권이 무너진다고 보는 겁니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죠.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이 객관적 국제관계는 국민감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외교적인 관례와 관행이 국민감정과 다를 때 그 틈을 누가 메우느냐죠. 정부가 메우는 겁니다.우리 정부가 그걸 안 해요. 효순이·미순이 사건 났을 때 어땠나요? 미국적 법적 프로세스와 우리 시민사회의 인식과 간극이 벌어졌던 거예요. 우리 정부가 그 간극을 적극적으로 떠안는 자세가 필요했던 건데 그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일본 정부가 해줄 수 있다고 볼 수는 없죠. 그 간극에 대하여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정부가 일부 떠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쉬(nash) 균형’이란 말이 있습니다. 군비 경쟁할 때 한 번 균형이 무너지면 양측 모두 계속 군비를 확충하는 상황에 빠지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먼저 방문한 것도 매우 나쁜 시그널을 줬습니다. 그간 순서는 미·일·중·러 아니었습니까? 일본은 섭섭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음 대통령은 어떻게 하죠? 중국으로 가나요, 아니면 일본으로 가나요? 질서의 교란이었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미·일·중·러’이므로, 그것이 관행이므로 그렇게 중국을 설득했어야 합니다. 중국은 이제 ‘굳히기’에 들어갈 겁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중국을 우선시 해야 한다고 강변하겠죠. 요우커들의 한국행만 막아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겁니다. 그런데 중국은 그 수단을 충분히 갖고 있어요.

중국이 북한 송유관 잠그듯, 우리를 컨트롤할 수 있어요. 사실 일본인들은 한일관계 경색에 대하여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심지어 ‘한국하고 관계 끊어도 좋다’, 이렇게 나옵니다. 생산장비와 핵심부품 어디서 사오나요? 미 공군 전투기가 어디서 발진 하나요? 일본은 미군이 일본기지에서 다른 나라로 출병할 때 일본정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사시 미국 지원을 못 받게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한 것입니다. 결국 다자외교의 문제입니다. 정부가 국민 감정과 기대수준, 그리고 국제적인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어떤 논의에 참여했나요? 밀실의 대화가 궁금하네요

“일주일에 두 번씩 혁신위를 열어요. 김문수 위원장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저녁 6시에 사람을 불러서 밤 12시까지 회의를 해요. 병자도 사정 안 봐줍니다. 제가 죽을 뻔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잘 안 나갑니다. 의외로 많은 것을 다루죠.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내려놓는 방법을 아주 심도 있게 논의했죠. 원래 불체포 특권은 나쁜 게 아니에요.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대표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장치죠. 국회의원이 공안기관에 불려가면서 위협이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체포하려면 임의동행, 자진출두 해야 하는데, 정권이 악용할 수 있죠. 그걸 막기 위해 체포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불체포 특권입니다. 권력이 형식적으로는 법적 절차를 밟지만 실질적으로는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탄압하는 걸 막자는 취지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임의동행을 막는 것이죠. 국회 입장에서 답답한 점이 있어요. 체포동의안이라는 것은 동료 국회의원의 죄상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이죠. 이게 문제입니다.

그 대안으로 나오는 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의 의견을 적어 보내라는 겁니다. 원래 남경필 지사의 안입니다. 그런데 재판도 열기 전 의원의 죄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고, 또 판사는 판결로 이야기 해야지 무슨 의견으로 말하는 게 아니거든요.미리 예단하는 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원들은 체포동의안이 오면 그냥 묵힙니다. 72시간 안에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안 했을 경우에 대한 규정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깔아 뭉개는 거예요.계속 미결정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죠. 그 폐단을 막기 위해 혁신위에서 나온 안이 뭐냐…. 72시간이 지나도 상정이 안되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자는 거예요.

법리에 어긋나지만 국민은 특권을 내려 놓길 원하니까 그 눈높이에 맞춰서 국회법을 개정하자는 안이 나온 겁니다.사실은 그냥 놔두는 게 나아요. 그런데 국민은 화가났어요. 의원들이 일도 하지 않고 세비 타먹는다는 것이지요.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국회법 고쳐서 72시간 지나면 자동 동의되는 것으로 하자, 그게 현재 혁신위의 안입니다. 출판기념회 막는 문제도 그래요. 내가 볼 때는 그게 제일 깨끗한 돈 이에요. 어차피 국회의원이 긁어모아야 정치할 수 있는데, 십시일반으로 모으는 돈은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들어오는 것이에요.”

“정치 혐오는 위험… 독재를 부른다”

그런 돈을 막으면 의원들이 밀실로 가겠죠.

“혁신이 힘들다는 것을 느껴요. 오픈 프라이머리, 그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그 의제는 제일 뒤로 미뤄놨습니다. 현역의원에게 유리한 오픈 프라이머리를 앞에 내세우면 본인들이 그거에만 관심을 기울이니까요. 회의는 춤춘다는 말이 있죠? 그런데 새누리당 혁신위를 가만 들여다 보니까 이번에는 진지하게 춰요. 정치혐오는 위험한 거예요.민심이 정치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 혐오는 독재를 부르니까요.”

‘2014 올해의 자유인 상’ 수상 기념 칼럼을 공들여 읽어보았습니다. “자유주의 궁극의 지향은 생태계의 모든 존재와 공존하는 것”이란 대목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자유주의의 진폭이 이렇게 넓은가 놀라기도 했죠. 더 부연한다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보는 유기체들은 모두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진 친척들입니다. 당연히 모든 생명체를 생태계의 구성원들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지요. 다른 생명체에게도 그들이 누려야 마땅한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다른 종들에 대해서 마음대로 할 힘을 가진 우리도 스스로 그런 제약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이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201412호 (2014.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