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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인터뷰 | 이희호 여사 방북(訪北) 실무 책임자 김성재 전 장관 - “평화통일과 동서화합은 DJ·박근혜가 손잡을 때 완성” - 

김대중 대통령, 2002년 방북한 박근혜 의원의 화해 의지 높이 평가… 김정은 제1위원장도 선대가 남한과 합의한 약속을 되새겨봐야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전민규 기자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1층 로비에서 촬영에 응한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장관. 뒤편으로 검은 화강석 벽면에 에칭(etching)으로 새긴 김대중 전 대통령 초상화가 보인다.
10월 28일의 청와대는 사람은 물론 사건까지도 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만 같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를 방문해 환담했다. 박정희·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역사적 라이벌로서 항상 대척점에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날 회동을 가진 두 사람도 두 전직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각기 5년을 분주히 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2년엔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지원을 업고 북한을 방문했다. 이번엔 거꾸로 이희호 여사가 박 대통령의 배려를 받아 방북길에 오른다. 이날 이 여사는 박 대통령에게 “북한을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고 박 대통령은 “기회를 보겠다”고 화답했다. 그 뒤로 방북 승인 등 모든 국내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0·28 청와대 회동과 이 여사의 방북은 꽉 막힌 여야 관계와 남북관계에 숨통을 틔우는 계기가 되리라는 관측이다.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이번 청와대 회동의 산파역이자 이 여사 방북 준비작업의 총책임자다. 2004년 8월 12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말하던 자리에 그가 배석했다. 2012년 8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김대중도서관으로 이희호 여사를 예방할 때도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DJ)측과 박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그가 있었다. 11월 12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김성재 전 장관을 만나 청와대 회동 경위와 향후 방북 준비과정, 북한에서의 활동 계획등을 들었다.

박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청와대 회동은 어떻게 이뤄지게 됐나?

“이희호 여사는 오래전부터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평양을 방문할 생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난화분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이런 뜻을 청와대에 전했다. 올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행사에 즈음해 박 대통령이 꽃과 함께 청와대 초청 의사를 보내왔다. 여러 일정 등으로 미뤄지다가 이날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정치적 메시지 갖고 가는 방북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8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환담했다.
이희호 여사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이 여사는 박 대통령의 초청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 북한을 다녀오게 해준 점도 고맙게 여긴다. 박 대통령이 대북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역사적 라이벌(박정희-김대중)의 퍼스트레이디를 지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번 만남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뉴스를 본 국민들도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흡족해 했을 것이다. 국정도 저렇게 풀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을 법하다.”

그 일을 김 전 장관이 중간에서 성사한 것인가?

“잘했다는 격려 전화를 많이 받았다.”(웃음)

이 여사의 방북이 이명박 정부 5년을 포함한 보수정권 7년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의 단초가 될지 기대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푸는 데 도움이 될까?

“이 여사의 방북은 정치적 상황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 정치적 메시지를 갖고 가는 방북이 아니다. 이 여사도 인도적 지원의 방북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거나, 정치와 관련된 발언이 주변에서 나오는 걸 극히 경계한다.”

그런다고 파급효과가 없다고 보나?

“이 여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 자체로도 남북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 여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에도 참석했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도 언제든지 오시라고 초청한 상태다. 이 여사의 인도적 방문 자체가 남북관계에서는 말로 전하는 메시지보다 더 큰 파장을 가져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10월 28일 청와대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이 이랬다저랬다 마음이 바뀌고 있어서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다리고 관계개선을 하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내가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라고 자꾸 말을 하는데도 저쪽에서는 흡수통일이라고 해서 참 안타깝다”는 언급도 했다고 한다.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북한에 주는 모종의 메시지 같다. 이 여사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이 여사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를 추진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관계개선 차원에서 고위급회담을 제안했는데 남북관계에서는 때로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6·15정상 회담을 하고 나서도 남북 갈등이 있었지만 대화로 풀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합의했다가도 갈등이 생기고, 또다시 그걸 넘어서는 길이 열리는 게 남북관계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 차원, 한 차원 발전된 길을 걸어온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를 이 여사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말한 게 맞나?

“그렇지 않다. 박 대통령이 이 여사 때문에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건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서 ‘때문에’가 들어가면 안 된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면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평화통일에 관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가 정확한 어법이다.”

박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이던 2002년 5월 북한을 다녀왔다. 이때는 국민의 정부 시절로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을 배려한 셈이다. 이번에 거꾸로 박 대통령이 이 여사의 방북을 돕는 입장이다.

“2002년 방북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조종련계 문세광의 흉탄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런 심정으로 당시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 심정으로는 안 된다. 정말 북한과 화해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점을 김대중 대통령이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다녀오겠다는 걸 적극적으로 다녀오시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가 이 여사 방북길 열어

그런 일이 있었나?

“많은 언론이 놓치는 부분이지만 당시 박근혜 의원 주변에선 다 반대했고, 보수진영에서는 위험해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만류했다. 그래도 박근혜 의원은 가야 한다고 해서 갔다.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과 평화통일과 남북관계 발전에 노력한다는 합의를 맺고 돌아왔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김정은 제 1위원장도 선대 때 같이 합의한 중요한 약속을 지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면 안 된다. 그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중요한 포인트다.”

김 전 장관은 인터뷰 도중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은 이 점을 잘 감안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훈수도 뒀다. 그는 “이 여사의 방북을 허락한 것도 ‘그때 허락했으니 지금 허락한다’는 식의 단순한 과거의 품앗이 같은 것이 아니고 박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졌다는 표시”이라고 덧붙였다.

이희호 여사의 방북은 박 대통령의 평화통일 의지를 가늠케 하는 잣대가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평화통일과 사회·문화 교류를 적극 추진하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이 여사 방북의 길을 열었다고 본다.”

북한은 흡수통일을 경계하는데.

“대통령도 흡수통일로 오해되는 게 안타깝다고 했지 않았나? 통일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서도 이런 얘기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을 하는 것이지 흡수통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2002년 5월, 박근혜 의원의 방북 건에 대한 DJ의 발언은 언제 확인한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얘기했다. 2002년 박근혜 의원 방북 당시에는 내가 그 자리에 없었고 관여한 것도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국정을 되돌아보면서 ‘박근혜 의원이 북한에 가겠다고 한 것에 놀랐고, 진정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김 전 대통령을 찾아왔을 때는 그 진정성을 다시 확인했던 것이다.”

10월 28일 청와대 회동 당시 박 대통령이 2002년 방북 건에 대해 얘기한 건 없었나?

“없었다.”

박 대통령도 2002년 방북 당시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지동훈 유럽-코리아재단 공동이사장, 장 자크 그로하 주한 EU 상공회의소(EUCCK) 소장 등 3명과 동행했다. 이번 이 여사 방북에는 누가 함께하나?

“협의를 해 봐야 한다. 박 대통령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이 여사 방북은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가는 것이므로 일체의 정치인, 정치적 행위는 배제한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국한되는 것 같지가 않은데.

“아니다. 정치인은 배제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 여사도 그렇고 퇴임 후 국가 원수가 현실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그래서 일체 정치적 관여는 하지 않았다.이 여사도 마찬가지고. 이번 방북도 인도적 차원에서만 추진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지 않나?

“어휴, 그건 더 큰 정치다. 정치인은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여사의 뜻이다. 동행은 저하고…. 이게 원래가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이라는 단체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사업을 해왔고, 그 차원에서 가는 것이다. 이 여사가 명예회장, 내가 회장으로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에 가는 것이다. 자꾸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하면 북에서도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그러면 이 여사 방북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수행하는 사람들도 비정치적인, 인도적 차원에서만 수행하게 된다. 이건 분명하다. 이건 이 여사의 뜻이기도 하다.”

이희호 여사 수차례 ‘평양가고 싶다’고 말해

‘사랑의 친구들’은 어떤 단체인가?

“원래 1997년 6·25 전쟁 이후 최대 국란이라고 말하던 IMF 외환위기가 왔다. 이듬해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굶는 아이들이 속출하니까 당시 영부인이던 이희호 여사가 버려진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며 내게 의논을 해왔다. 그래서 ‘사랑의 친구들’을 사단법인체로 만들었다. 이 여사는 직위를 안 맡고 내가 부총재로 일을 해왔다. 민정수석으로 임명되면서는 자리를 내놓았다가 2003년 다시 복귀해서 지금은 회장으로 있다. 북한에 털모자, 영양제, 영양식 등을 보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못하게 되니까 미국에 있는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에 대한 지원을 계속했다.”

방북을 결심한 직접적인 동기는?

“이 여사는 북한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 마음을 많이 아파했다. 수차례 ‘평양에가고 싶다. 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뜻을 내가 (여권에) 전한 것이다. 이번에 가면 인도적 지원 규모가 조금 더 많아지지 않겠나? 정상회담 후인 2001년인가에 이 여사가 북한 산부인과에 의료기기를 보내준 적도 있다. 이번에 방북 협의 과정에서 어떤 물품이 필요한가를 알아보겠다. 사랑의 친구들도 그동안 쭉 준비해온 것도 있으니 북한과 협의해보겠다.”

통일부에 북한 주민접촉 신청서를 제출했고 정부가 수리했다. 진행 과정이 궁금하다.

“박 대통령이 다녀오라고 해서 신청서를 제출했고, 승인이 났다.”

북한의 누구와 접촉하고 있나?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와 한국의 김대중평화센터가 협의한다. 우리 직원이 아태 중국 사무소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여사의 방북 의사를 전하고 접촉을 제안했다. (11월) 12일 현재까지는 반응이 오지 않았다. 북한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실무접촉에 나선다. 어디서 만날지는 미정이지만 아마 중국 아니면 개성이 되겠지. 저쪽에서 중국에서 보자고 하면 개성에서 만나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겠다. 우리는 개성에서 만나길 원한다.”

방북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언제라고 시기는 말씀 드릴 수 없다. 만나봐야 하니까.”

이 여사는 어떤 자격, 직함으로 방북을 하게 되나?

“개인자격으로 간다. ‘사랑의 친구들’ 명예회장이자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격이다.”

전직 대통령 부인의 방북이다. 북한에서는 누가 영접에 나서나?

“그런 협의도 다 해야 한다. 이 여사가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조문 갔을 때 그쪽에서 의전으로 다 영접했었다. 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가셔서 다 했는데 뭐….”

2002년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 방북할 당시에는 한국 정부의 여러 기관이 준비작업에 참여했다. 박 위원장과 동행한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은 당시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국가정보원, 정세현 통일부장관과의 협조는 무난하게 이뤄졌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서울 삼청동에 있는 남북회담 사무국에서 신언상 당시 사무국장으로부터 특별 브리핑을 받기도 했다.

이 여사 방북을 앞두고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하게 되는가?

“박근혜 의원은 정치인으로 갔기 때문에 정부와 여러 가지 조율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방북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이미 대통령이 다녀오라고 해서 추진하기 때문에 그런 복잡한 절차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와의 접촉은?

“없다. 북에서 연락이 와서 접촉을 하게 되면 그 결과를 알리고 가는 것이다.”

개성-평양 잇는 육로 방북 기대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 숙소인 평양 백화원초대소를 찾아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면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방북 경로는 어디를 생각하나?

“육로로 간다면 개성으로 가서 개성으로 돌아오는 거겠지.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 개성을 통해 평양에 갔으면 좋겠다. 이 여사가 2011년 조문 차 방북했을 때도 개성-평양고속도로를 따라 평양에 갔다. 조문의 길 그대로 가면 된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도 만난다고 봐도 되나?

“그건 봐야지.(웃음)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박 대통령을 만나서 이뤄진 이 여사의 방북이라 대통령의 어떤 메시지가 전해질지 모르는 일이다. 김 제1위원장은 이 점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문한 이 여사가 방북하면 예우상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맞이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나올 거라 기대한다.”

이번 방북이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주고 남북협력의 디딤돌이 될 가능성은? 이 여사가 현역 정치인들이 못하는 일을 대승적 관점에서 풀어주기를 국민은 기대하지 않을까?

“그것은 인도적 지원 차원의 이 여사 방북이 얼마나 큰 사건 인가를 간과해서 하는 말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의 물꼬가 확 열리는 것이다. 사회·문화 교류도 열린다. 그러면 남북관계 개선이 얼마나 급진전 되겠나? 언론에도 나왔듯이 지금 박 대통령은 5·24조치나 금강산관광 문제를 고위급 회담에서다 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다른 쪽에서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정부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걸 다른 쪽에서 풀어내면 안 된다. 사람들이 자꾸 우회하려고 하는데 정도(正道)가 아니다.”

김 전 장관은 이 말을 거듭 강조했다. “이건 분명하다. 5·24조치나 금강산관광 문제는 고위급 회담에서 풀어야지 그걸 우회해서 이 여사가 한다? 그건 올바른 기대가 아니다.”

얼마 전 북한이 억류하고 있던 미국인 두 명을 풀어줬다. 혹시 이 여사 귀환길에 북이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와 동행하는 일은 없을까?

“미국인 석방은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비밀협상을 통해 이끌어 냈다. 여기서는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서 무슨 일이 되겠나? 그건 지나친 기대다. 있을 수 없다.”

혹시 대통령이 메시지를 준 게 없나?

“아~이, 없어요 없어.”(웃음)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통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2002년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 방북했을 당시 만찬장에서 중국을 경유하는 항공 귀환이 아닌 판문점 육로귀환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연락해서 판문점 귀환 허락을 받아낸 것으로 보도됐다. 이번 방북에서도 그런 파격이 있을 수 있을까?

“김정일 위원장은 통 큰 결정을 잘 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국방위원장과의 직접적인 신뢰가 중요하다. 한국이야 이런 저런 절차와 관련 요소가 많지만 북은 국방위원장 한마디면 다 된다. 그날 육로 귀환도 김 위원장과 박 위원장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DJ도 김정일 승용차 동승 예상 못해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방북 조문 당시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가 김정은 당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조의를 표하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정책기획수석으로 청와대를 지켰다. 평양에서 여러 가지 파격적 장면이 연출됐는데 조마조마하지 않았나?

“6·15정상회담 할 때 사실상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 보통 정상끼리의 회담이라면 다 준비되는데 그쪽에서는 그냥 오시면 된다고, 오세요라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항 영접을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몰랐다. 또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캐딜락 승용차 뒤편 오른쪽에 오르자 왼쪽 문을 통해 김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김 대통령도 김 위원장이 갑자기 올라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자기주장도 강하지만 지시도 시원시원하게 내리는 등 추진력과 장악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희호 여사는 평소 어떻게 지내시나?

“요즘도 북한 어린이들에게 줄 털모자를 직접 짠다. 하루에 몇 시간이고 그러는 통에 주변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말릴 지경이다. 손 관절에 자극이 와서 통증을 느낄 정도로 몰입하는 통에 의사가 만류할 때도 있었다.”

1948년 경북 포항 태생인 김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정책기획수석·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고 지금은 김대중도서관장으로 일하는 등 철두철미한 ‘DJ 사람’이다. 김 전 대통령과는 1969년 3선개헌 반대운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김 전 대통령은 신민당 국회의원으로, 한신대 3학년생이던 김 전 장관은 김재준 목사를 따라 범국민투쟁위원회에 참여했다. DJ가 후보로 나선 1971년 대선에서는 공정한 투·개표를 위한 참관인 참여운동을 벌였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당시엔 김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도 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한신대 교수였던 그는 김 전 대통령 초청 특강을 열기도 했으며,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 전 대통령이 재산의 사회 환원을 선언하며 뒤처리를 김 전 장관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 후로는 김 전 대통령의 자문교수로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 직속의 통일준비위원회 사회문화 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언젠가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 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통일준비위 참여를 요청해왔다. 통일에 관한 문제라 이 여사에게 의논드렸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했다. 그래서 사회문화분과 위원장을 맡게 됐다.”

그래도 진영이 다른데 껄끄럽지 않나?

“나는 박 대통령의 평화통일 의지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 동의한 것이다. 두 가지 계기가 있다. 2002년 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진정한 화해의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결단이다. 또 박 대통령이 1993년 펴낸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이란 책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올바르게 사는 게 뭔가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았더라. 순수성과 진정성을 믿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통일과 동서화합은 결국엔 박 대통령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고 있다.”

내년은 광복 70주년이다. 통일준비위에서 많은 행사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내가 광복 70주년 남북공동 문화행사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이미 대통령께도 보고한 내용인데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 해외동포, 세계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평화문화예술제를 열 계획이다. 또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초청해 서울국제평화회의도 개최한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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