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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 아베노믹스의 최후 실험? - 우경화 바람 탄 ‘엔저 공습’ 동북아 경제 위협하다 

‘해외자산 가치 늘면 국내 재투자·경기 회복’ 환상에 빠질 위험… 한·중 갈등 심화되면 지역 리스크 커져 동반 침몰할 수도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최근 원·엔 재정환율이 2008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며 엔저가 심화하고 있다. 엔저의 공습은 일본의 우경화 정책과 맞물려 동북아의 긴장을 불러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일본 엔화의 약세 흐름은 단기간에 멈출 성격이 아니다. 엔화는 약세 흐름을 이어갈 조건을 갖췄다. 일본 경제의 구조적 변화, 선진국들의 엔 절하 용인, 도를 더해가는 무모한 통화정책이 그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결국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주저앉은 경기를 일으켜보겠다는 전략이다.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는지는 지난 2년의 실험 결과가 말해준다. 숫자로 표현되는 환율과 주가는 올랐을지 모르나 일본 국민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베노믹스가 내부적으로 부의 양극화와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동북아의 긴장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상쇄할 수단이 제한적인 현재 조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실험은 결과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20년 넘게 다양한 실험을 반복해온 일본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정도로 결사적이다. 일본이 정책의 한계를 깨닫고 방향전환을 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주변국 정부나 주변 기업들도 엔저 흐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할 듯하다.

흔히 일본 엔화는 안전통화로 인식돼왔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자산가격이 급락해 안전선호 심리가 높아지면 엔화는 마치 수학공식처럼 강세를 보였다. 그 배경에는 ▷세계최대 순채권국 ▷경상흑자국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통화국 ▷헌법으로 교전권을 포기한 국가라는 4대 요소가 떠받치고 있다. 최근 2년간 엔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은행(BOJ)의 공격적 통화정책 못지 않게 엔의 성격을 규정해왔던 이 4가지 요소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엔 약세를 추동하는 구조적 변화


지난해 4월 9일 엔·달러 환율이 1달러 당 98.5엔까지 치솟았다. 2009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107엔 수준으로 엔화 가치가 하락했지만 무역수지는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첫째, 일본이 세계최대 순채권국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의 대외순자산은 325조 엔에 달한다. 이 중 해외직접투자(FDI)와 외환보유고를 뺀 107조 엔가량이 순(net) 해외증권 투자액이다. 1조 달러에 이르는 일본계 자금이 글로벌 증시와 채권시장을 넘나들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처럼 큰 악재가 터져 해외자산 가격이 급락하면 여기에 들어있던 일본계 자금이 일본 국내로 되돌아오고, 이 과정에서(외화자산을 팔고 엔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엔은 강세를 띠게 된다. 그런데 이 순해외증권투자액은 2012년 125조 엔에서 지난해 107조 엔으로 줄었다. 최근 일본 증시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 늘었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글로벌 시장이 요동칠 경우 일본으로 대피할 일본계 자금 못지않게 엔화를 팔고 일본을 탈출할 외국인 자금도 종전에 비해 많다는 걸 의미한다. 과거처럼 엔화 강세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둘째, 경상수지에서 화학적 변화도 두드러진다. 외부 조건이 동일할 경우 경상흑자국 통화는 강세를 띠기 쉽다. 포트폴리오 자금의 이동이 멈춰도 국민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유입돼 엔의 상대적 가치를 떠받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상수지가 최근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전2007년) 24조3376억 엔에 달했던 경상흑자는 지난해 3조3061억 엔으로 급감했다. 올 상반기(4~9월) 경상흑자는 34% 감소한 2조239억 엔에 불과하다.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저다. 무역흑자국, 경상흑자 대국이라는 칭호가 무색해질 정도다.


최근 달러-엔 환율 추이
셋째, 물가가 하락하는 나라의 통화는 구매력평가이론에 입각하면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은행(BOJ)의 양적·질적 완화(QQE) 정책과 소비세 인상이 맞물리면서 일본의 물가는 오르기 시작했다. 디플레이션 통화에서 인플레이션 통화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가 오름세가 확대되면 실질금리 마이너스를 견디지 못한 일본의 예금자들이 고수익 자산을 찾아 해외로 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외환시장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엔 약세도 빨라졌다.

넷째, 교전권이다. 실증적으로 입증됐다기보다는 심리적 측면이 강한데, 전쟁기피 국가의 통화는 지정학적 위기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기에 안전통화로 인식된다. 중립국을 선포한 스위스의 프랑화와 교전권을 포기한 일본 엔화의 공통점을 찾던 일부 전문가가 설파한 논리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논리가 깨졌다. 헌법해석을 변경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일본은 헌법 9조를 수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려 한다. 때문에 시간을 두고 일본 엔화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휘말릴 수 있는 통화로 인식될 소지가 다분하다.

분명 엔의 가파른 하락세는 BOJ의 양적·질적 완화정책으로 촉발됐지만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는 엔 약세를 부추기기 쉬운 방향으로 조류가 바뀌고 있었던 셈이다. 엔 약세 흐름이 장기화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우세한 것은 일본의 펀더멘탈이 단기간 내에 과거로 돌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류의 변화를 살폈으니 이제 수면 위의 거친 물살을 일으키는 바람을 가늠해보자. 지난 10월 31일 구로다 하루히코BOJ 총재는 기습적으로 추가 완화를 단행했다. 이를 전혀 예상치 못한 금융시장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BOJ 금융정책위원 9명 중 4명이 반대표를 행사할 만큼 내부 반발도 컸다. 주요 골자는 본원통화 공급 규모를 종전 연간 60조~70조 엔에서 80조 엔으로 늘리고, 연간 국채매입 규모도 50조 엔에서 80조 엔으로 늘리고, 연간 국채매입 규모도 50조 엔에서 80조 엔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연간 ETF와 리츠 매입한도도 3배로 늘렸다. 지난해 4월 4일 내놨던 조치에 비하면 추가6 자금공급 규모가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조치에 따른 엔 추가 절하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BOJ의 양적완화 확대조치와 함께 패키지로 발표된 후생성의 일본공적연금펀드(GPIF) 포트폴리오 변경안 때문이다.

GPIF는 운용자산이 127조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연기금이다. 구로다의 ‘깜짝쇼’가 있던 날 발표된 GPIF 포트폴리오 변경안은 연금의 자산별 투자배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일본 국채보유 비중을 60%에서 35%로 낮추고 일본 주식에 대한 투자비중을 12%에서 25%로 늘렸다. 주목할 것은 종전 23%에 불과했던 해외자산 비중을 40%로 늘린 것이다. 일본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엔 추가 약세를 도모하겠다는 정책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잠시 2012년 말을 떠올려보자. 총선에서 승리한 아베와 그 측근들은 당시 80엔대를 맴돌던 엔화를 비정상적인 ‘엔고상태’라 규정하고 ‘환율 정상화’를 외쳤다. 그 일환으로 일본 은행의 해외자산직접 매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당시 BOJ 수장이던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가 일본은행법상 해외자산 직접매입은 불가능하다고 하자, 법을 고치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했다.

10월 31일 내놓은 ‘구로다의 추가 완화+GPIF의 포트폴리오 변경’ 패키지는 사실상 2년 전에 논의됐던 BOJ의 해외자산 직접매입을 현실화한 것이다. 방식은 이렇다. GPIF는 변경된 포트폴리오에 따라 순차적으로 국채 30조 엔가량을 판다→국채매입 한도를 50조 엔에서 80조 엔으로 늘린 BOJ가 이를 사들인다→BOJ에 국채를 팔아 생긴 30조 엔으로 GPIF는 일본주식과 해외자산을 매입한다. 즉 BOJ가 찍어낸 돈이 GPIF를 매개로 해외자산 매입에 사용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외화자산을 매입하겠다고 덤비니 엔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배기겠나? 향후 엔이 강세로 돌아서려 할 때마다 GPIF는 해외자산을 매입(엔화를 팔고 달러자산 매입)할 테니 상당기간 엔 약세를 떠받칠 기제가 마련됐다.

일본 다국적기업들이 느끼는 체감도 미미해

국제적으로 BOJ의 이번 조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사전조율 아래 나왔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 연준이 ‘돈 풀기(양적완화·QE3) 종료’를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발표된 BOJ의 추가 완화는 구멍 난 글로벌 유동성을 메우는 성격이 짙다. 그간 연준이 QE로 금융시장에 공급했던 자금은 미국 국채시장과 뉴욕증시를 떠받쳐왔다. 이 자금이 앞으로 끊기게 되니 글로벌 자산시장도 흔들리기 쉬운데 그 충격을 BOJ가 완화해주는 것이다. BOJ가 공급할 자금의 상당수는 그나마 경기회복세가 뚜렷한 미국 자산시장으로 향할 공산이 크다. 이는 미국이 일본의 노골적인 2차 엔 절하 유도책을 당분간 인정할 수 있는 고리다.

나아가 BOJ의 이번 조치는 독일을 압박한다. 그간 G20 내에서는 미국을 주축으로 유로존의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허나 독일의 반대에 막혀 수월치 않았다. 구로다의 기습공격(엔 추가 절하)으로 수출가격경쟁력 저하를 우려한 독일이 유럽중앙은행(ECB)의 미국식 양적완화를 수용한다면 미국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엔과 유로가 약세를 보이면 달러는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달러 가치와 연동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이는 수입물가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률 둔화로 나타난다. 시장은 연준의 QE가 종료된 후 불안한 마음으로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연준은 물가상승세 둔화(디플레이션 우려)를 이유로 제로금리를 더 오랜 기간 유지할 명분이 생긴다. 경기회복세를 마냥 자신할 수 없고 향후 금리인상이 불러올 충격을 걱정해야 하는 미국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미국 내 임금이 오르고, 유럽과 일본 내수시장이 살아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엔 약세 덕분에 일본경제는 나아지고, 국민은 행복해졌을까? 보통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하면 수출가격 경쟁력이 생겨 수출량이 늘고 무역흑자폭도 커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상황은 정반대다. 2년 넘게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적자폭도 커지고 있다. 왜 과거 통했던 마법이 사라진 걸까? 일본의 산업구조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궁극의 환 헤지는 해외시장 내 생산이다’라는 모토 아래 일본의 다국적기업은 설비를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는데,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엔 강세가 두드러지면서 이런 행보가 더욱 빨라졌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기업들의 설비 이전을 더 부추겼고, 옮겨간 설비들은 지난해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즉 현재 일본은 엔 약세를 등에 업고 수출량을 늘리고 싶어도 일본 내 생산능력(설비)이 한계가 있다. 더구나 초고령화로 노동생산 가능인구가 줄고 있는 데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내놓은 공공사업이 일손을 빨아들이면서 민간기업은 노동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엔고로 누적손실이 쌓였던 기업들도 수출단가를 낮춰 수출량(시장점유율)을 늘리기보다 단가를 유지하며 마진확대를 꾀했다. 지난 2년간 수출 대기업의 매출액과 순이익이 늘기는 했지만 이는 해외 판매량이 늘어서가 아니라 엔 절하에 따른 환산이익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원전가동 중단으로 일본의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은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 급속히 전개된 엔 약세는 엔으로 환산되는 모든 수입제품(에너지·원자재·소비재) 가격을 부풀려놓았다. 나라 전체로 무역적자폭이 확대되고 가계와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진 이유다.

엔 약세에 따른 원자재 비용상승을 제품가격에 전가하기 힘든 중소기업은 죽을 맛이다. 도쿄상공회소에 따르면 9월중 엔 약세 때문에 28개 기업이 도산했다. 작년 같은 달보다세 배가 늘었다. 연료비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은 운수업체의 도산이 가장 많았다. 엔 약세의 부작용이 실물 쪽에서 현실화하고 있는데 충격이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 불만도 크다. 2014회계연도 상반기(4~9월)를 기준으로 보면 엔 약세로 도산한 건수는 150건에 달한다. 전년 동기의 두 배를 넘어섰다.

빈부격차 확대재생산해 계층간 갈등 심화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일본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엔화 환율은 100엔 당 946원으로 하락세가 계속된다.
상황이 이쯤 되면 전략을 수정할 법도 하지만 최근 BOJ의 추가완화에서 볼 수 있듯 일본은 더 필사적으로 기존 정책을 밀어붙인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격이다. 당국자들은 엔 약세가 궁극적으로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엔이 지금보다 더 약세로 가는게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걸까? 엔 약세로 무역적자폭이 커지더라도 대외순자산에서 발생하는 (엔 환산) 소득수지가 증가해 이를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당국자들은 이렇게 증가하는 소득수지, 특히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에서 가져오는 배당수익 증가분이 국내 투자재원과 임금인상 재원으로 쓰이길 기대한다.

여기까지는 산수다. 정치적·철학적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엔 약세에 따른 대외자산 증대, 즉 소득수지 증가는 해외자산을 갖고 있는 계층이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들이 획득하는 부는 엔 환산이익과 투자이익의 결합인데, 투자를 잘해 발생하는 자본차익은 그렇다 치고 엔 약세에 따른 환차익은 해외자산을 갖지 못한 대중들이 나눠내는 메커니즘이다. 엔 약세로 상승하는 수입물가 부담을 불특정 다수가 나눠서 지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인플레이션은 엔 약세를 더 충동질하며 다시 물가상승을 부채질하는 연쇄고리를 형성하기 쉽다. 때문에 엔 약세가 불러오는 대중 자산의 추렴효과는 갈수록 확대될 위험에 놓인다. 그래서 아베노믹스는 빈부격차를 확대재생산해 계층간 갈등, 정치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월별 실질 임금 변동률 추이
이를 최소화하려면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엔 약세의 최대 수혜자인 수출 대기업이 대중들로부터 거둬간 돈을 다시 대중들에게 일정부분 돌려줘야 이 시스템은 유지된다. 명목임금은 올랐다. 그러나 후생성이 매달 발표하는 실질임금이 보여주듯 대중들에게 돌아오는 실제 몫은 15개월째 줄고 있다. 임금인상분이 물가상승을 따라가지 못해서다. 국내외 수요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과연 기업들은 인건비, 즉 고정비를 시원하게 인상할 수 있을까? 기업의 경영판단은 물건이 얼마나 잘 팔리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엔 환산이익이 늘어도 수요 전망이 밝지 않으면 고정비를 크게 끌어올릴 마음이 없다.

엔 약세가 이어지면 해외로 나갔던 설비는 국내로 돌아올까? 미국발 금융위기 전 엔이 약세를 보였던 시절 일본의 전자업체는 일본 내에 설비를 대폭 늘렸었다. 이후 엔이 강세로 돌면서 이들은 치명상을 입고 만다. 재계엔 환율에 부화뇌동 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고, 트라우마는 가시지 않았다.더구나 가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해외설비를 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 주가는 그간 많이 올랐다. 이를 근거로 아베노믹스의 웰스이펙트(자산효과·Wealth effect)를 이야기하는 이가 많다. 지난 12개월간 닛케이225지수의 상승률은 다우지수의 상승률을 웃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자국통화로 계산한 값이다. 달러로 계산한 닛케이의 상승률은 1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일본은 기업가치가 올라 주가가 오른 게 아니다. 통화가치가 떨어진 만큼 표현되는 가격이 오른 것뿐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웰스이펙트는 발생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를 사상누각이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대에 기반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증시는 경기흐름을 무시한 채 무모한 폰지게임(Ponzi Game)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소비세 추가인상을 버틸 만큼의 체력도 만들지 못했다. 정부재정에 대한 신뢰상실로 국채시장이 요동친다면 BOJ는 더 극단적인 국채매입에 나서야 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맞먹는 본격적인 부채화폐화(Debt Monetization: 중앙은행을 통한 정부재정 충당)의 늪으로 빠져든다는 이야기다. 당시의 부채화폐화는 고통스러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사실 돈을 풀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짐바브웨는 이미 지상 최강의 경제대국이 됐어야 한다.

국제유가 하락에 기댄 위험한 정책

종합해보면 일본의 엔 절하 전략은 일본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권은 미련을 못 버린다. 끊임없이 ‘환율이 오르면 모두에게 이롭다’는 인식과 ‘주가가 오르니 경제도 좋아질 것’이란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환율 상승은 일본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몰아갈 위험만 키운다. 이러다 하락하던 유가가 급반등이라도 하면 아베노믹스는 정말 위태로워진다. 정책당국이 환율정책을 급선회해야 하는 시점도 이 무렵일 것이다. 궁극적인 해법은 구조조정과 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지만 정치권은 표심을 이유로 이를 미루고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누적손실을 만회한 일본기업들이 시장점유율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갈등도 증폭된다. 외교안보에서 마찰을 빚어온 중국과 일본 사이의 반목이 확대되고 아베가 이를 빌미로 우경화 행보를 강화하면 고조된 동북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역내 경제를 더 얼어붙게 만든다.팽창주의 색채가 짙은 아베노믹스는 태생부터 대내외 충돌을 불러오기 쉬운 정책이었던 거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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