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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 저유가 행진 음모인가, 묘수인가 

미국의 셰일오일 기업 파산 노린 사우디의 가격인하 시위? 유가전쟁 촉발되면 러시아, 이란이 유탄 맞을 가능성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이라크의 근로자가 바스라의 한 정유공장에서 정유 파이프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이라크와 시리아 정정 혼란, 우크라이나 사태등 지정학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하락세를 보인다. 앞으로 하락세가 계속 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선까지 내려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유가는 이미 몇 차례 70달러 선까지 하락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4일 거래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77.19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국제유가는 지난 6월에 비해 무려 25%가량 떨어졌다. 국제유가의 추이를 보면 2010년 11월 이후 4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는 2015년 1분기 브렌트유 가격을 85달러로, WTI유가는 75달러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2015년 2분기에는 브렌트유 가격이 80달러, TI유가는 70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알리 알 오마이르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76~77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유가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는 과거 사례를 볼때 중동지역이나 유전이 있는 지역에서 분쟁이나 전쟁이 벌어지면 상승세를 보였다. 올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는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국제유가는 매우 이례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것은 무엇보다 석유 수급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IEA는 지난 10월 14일 발표한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 원유 수요 증가율이 5년 만의 최저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IEA는 올해 하루 원유 수요가 9240만 배럴로, 종전의 전망치보다 2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와 신흥국들의 성장동력 약화를 원유 수요 하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원유 수요 증가를 주도해온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예년만 못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하루 원유 소비량 1100만 배럴로 신흥국 전체 소비량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8%대에서 7%대로 하향세를 보인다. 인도를 비롯한 다른 신흥국들의 경제성장률도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한동안 고공행진한 유가 부담에 석유 대체에너지 수요가 급증했고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도 석유 수요를 제한하고 있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새 자동차의 연료 소비량이 10년 전에 비해 5%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선진국의 자동차 수요가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메리카’


야간에도 조업 중인 미국 텍사스의 셰일오일 채굴 현장. 선진국을 중심으로 셰일오일에 투자하는 펀드가 인기를 끈다.
반면, 공급은 이라크와 시리아 사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12개 회원국의 지난 9월 생산량은 최근 13개월 동안 최고인 하루 3066만 배럴을 기록했다. OPEC 회원국인 이라크의 경우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반군인 이슬람국가(IS)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라크 남부 유전시설 타격은 없었다. 내전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리비아도 지난 9월 말 한 달 만에 산유량을 40% 늘렸다. 특히 미국의 원유 생산이 크게 늘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 (EIA)에 따르면 하루 원유 생산량은 2012년 615만3천 배럴에서 올해 797만7천 배럴로 늘었다. 올 연말까지 9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FT)>는 지난 2년간 하루 평균 350만 배럴 이상 늘어난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분은 전 세계 석유 공급 증가량과 거의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IEA는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미국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가리켜 '사우디아메리카(Saudi America)’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미국의 원유 생산 증가는 셰일오일(shale oil) 개발 덕분이다. 셰일오일은 모래와 진흙이 굳어진 혈암층(shale·셰일)에 들어있는 원유로, 매장 형태가 달라 전통적인 수직시추 방식으로는 생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평시추법과 수압파쇄법 등이 보급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했다. 셰일오일 생산이 크게 늘어나자 미국은 지난 7월부터 나이지리아에서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나이지리아는 4년 전만 해도 사우디·캐나다·멕시코·베네수엘라 등과 함께 미국의 5대 원유수입국 중 하나였다. 나이지리아는 2006년 하루 130만 배럴의 원유를 미국에 수출했지만 2012년 50만 배럴로 줄었고, 올 초에는 10만 배럴에 그쳤다. 앞으로 3년 이내에 알제리·리비아·앙골라도 미국에 원유 수출을 못 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에너지 역학관계는 셰일오일을 앞세운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 때문에 변화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현재 세계 원유의 40%를 중동국가 중심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공급하는데, 미국의 생산 확대는 OPEC의 영향력 축소를 의미한다. OPEC은 1960년 9월 산유국인 이라크·이란·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가 바그다드에서 모여 창설한 국제기구이다. 당시 산유국은 국제유가를 조정해 상호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기구를 만들었다. 때문에 OPEC은 일종의 석유 생산자 카르텔이라고 볼 수 있다.

OPEC 회원국들은 현재 중동 6개국(사우디·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연합·카타르·이란·이라크), 아프리카 4개국(나이지리아·리비아·알제리·앙골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12개국이다. OPEC은 국제유가를 통제하기 위해 회원국들의 생산량에 쿼터를 부여하고 있다. OPEC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3천만 배럴이다. OPEC은 지금까지 국제유가를 좌지우지해왔다. 그런데 미국의 셰일오일이 등장한 이후 OPEC은 과거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특히, 미국이 원유 수출을 허용할 경우 국제유가는 더욱 하락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10월 2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원유를 수출하면 국제유가 하락을 유발할 것”이라면서 “원유 수출 허용은 세계의 원유 공급을 크게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GAO는 원유 수출이 허용되면 향후 20년에 걸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 최고 330만 배럴까지 늘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지난 1975년 제정된 에너지정책·보호법에 따라 휘발유와 경유·중유를 제외하고 원유 수출을 금지해왔다. 미국에선 지난해부터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나면서 휘발유 가격이 안정되자 원유 수출 금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6월 최소한의 정제만 거친 ‘콘덴세이트(condensate)’로 불리는 초 경질유 40만 배럴의 수출을 선별적으로 허용했다. 당시 미국상무부는 석유 수출 규제를 완화하면서 콘덴세이트에 대해 최소한의 가공만 거치면 수출이 가능한 석유로 재규정했다. 콘덴세이트는 암석층에서 셰일가스를 뽑아낼 때 함께 나오는 천연가솔린 성분으로 지하에선 고온·고압의 기체로 존재하다가 지상으로 나오면서 액화돼 초경질유가 된다. 셰일가스에 5~25%가량 함유돼 있으며, 이를 정제하면 디젤·가솔린 등 정유제품을 더 값싸게 생산할 수 있다.

미국, 내년부터 석유 수출국


미국 텍사스주 매버릭 분지 내의 이글포드 셰일오일 생산현장에서 핵심기술인 수압파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근로자들.
미국 석유기업은 내년부터 콘덴세이트 형태로 수출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부의 원유 수출은 러시아의 에너지 지정학에 휘둘려온 유럽 국가들은 물론 중동산 에너지의 가격 변동에 따라 희비가 엇갈려온 우리나라·중국·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제유가의 또 다른 하락요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위험한 도박’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제유가가 급락하면 사우디 등 OPEC 회원국들은 원유 생산량을 줄이는 식으로 가격 조정을 해왔다. 그런데 사우디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원유 생산량을 늘리고 있으며, 공급 가격도 내리고 있다. 사우디는 최근 OPEC에 하루 10만 배럴 증산을 통보했다. 실제로 OPEC의 석유 동향 보고서를 보면, 사우디는 지난 9월 하루평균 970만4천 배럴을 생산했는데, 이는 지난 8월의 960만 배럴보다 10만 배럴 늘어난 수준이다. 사우디는 또 증산은 물론 원유 수출가격을 넉 달 연속 인하했다. 사우디의 일방적인 가격 인하에 베네수엘라 등 다른 OPEC 회원국은 강하게 반발한다. 그런데도 사우디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사우디의 의도는 생산량을 낮추기보다는 증산과 가격 경쟁을 통해 시장 점유율과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경쟁자를 견제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쟁자는 미국을 말한다. 사우디는 미국 셰일오일을 고사시켜 중장기적으로 유가상승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사우디 한 소식통은 “미국의 셰일오일과 남미의 심해유전 투자 열기를 억제시켜야 중장기적으로 국제유가를 높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낮은 유가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도 “유가 하락에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저유가 전략을 지속하면 결국 생산단가가 높은 쪽이 궁지에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는 7500억 달러의 막대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하락해도 1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반면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셰일오일의 개발 비용이 높은 미국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사우디의 이런 전략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셰일오일 채산성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가 유지돼야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기업들이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반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기업들은 배럴당 75달러 선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RBS 캐피털마켓 보고서는 미국 3대 셰일오일 생산 기업이 배럴당 66∼77달러 수준에서도 생산을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런던 소재 리서치회사인 글로벌데이터의 석유·가스 부문책임자 매튜 쥐레키도 “유가가 웬만큼 내려가서는 셰일오일의 채산성을 흔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크 핸슨 모닝스타 애널리스트는 “유가가 배럴당 75달러까지 가면 마치 패닉상황이 올 것처럼 얘기하지만 배럴당 50달러 아래에서도 수익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미국은 그동안 금지해 온 원유수출을 해제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사우디의 저유가 전략은 자칫 패착이 될 수도 있다. 사우디 내에서도 저유가 전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사우디를 통치하는 사우드 왕가의 핵심 인사이며 세계적인 투자가인 알왈리드 빈 탈랄 알 사우드 왕자는 “사우디 전체 예산의 90%가 석유 수입에서 나온다”면서 “유가 하락의 파장을 무시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재정을 파탄시켜라!


지난 8월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청소년포럼에 참석해 지구본을 선물로 받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서방이) 러시아와는 장난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국제유가가 계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음모론도 나오고 있다.음모론의 핵심은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핵 개발을 적극 추진해온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을 궁지에 밀어넣고, 시리아의 뱌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적극 지원해온 러시아의 재정난을 가중시켜 미국을 측면 지원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음모론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펌프 워(pump war)’라는 칼럼(10월 14일자)에서 국제유가 하락은 미국과 사우디의 러시아 및 이란에 대한 석유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미국과 사우디가 30년 전 옛소련에 대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석유 증산 공세로 러시아와 이란이 국가 예산을 충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유가를 낮춤으로써 이들을 파산시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리드먼은 최근 셰일오일로 미국의 석유 생산이 크게 늘어난 만큼 미국과 사우디가 힘을 합치면 에너지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러시아와 이란의 ‘석유 독재자(petro-dictator)’를 쳐부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6개국(P5+1: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과 독일)과 핵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란 정부는 경제제재로 원유판매 자금이 절반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국제유가마저 급락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해 경제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중산층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국제유가를 배럴당 140달러로 잡고 재정 운영계획을 짰지만 유가가 80달러 대로 떨어지면서 향후 3개월간 23억 달러의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 중산층에 대한 각종 보조금을 대폭 삭감해야 할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란이 서방의 제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핵 협상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란 상공회의소의 잼시스 에델라틴 이코노미스트는 “로하니 정권이 핵협상을 타결해 경제제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도 유가 하락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국가 세수의 45%, 수출의 3분의 2를 원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러시아로서는 위기를 피할 수가 없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 예산을 배럴당 100달러 기준으로 짜놓았는데, 유가 하락으로 모두 수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떨어질 때마다 러시아 재정 손실이 20억 달러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2016년 국방예산을 5.3%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방예산 삭감 검토는 1998년 이후 16년 만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경제성장률이 0%로 추락할 것으로 본다. 게다가 유가 하락은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 환율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달러 대비 루블화 환율은 계속 치솟고 있다. 러시아 금융당국이 환율 안정화를 위해 외환 매각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도 줄어들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러시아 국민들이 동요하고 있다.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는 루블화를 버리고 외화를 환전하려는 행렬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에서의 자본 유출도 가속화되고 있는데, 올 들어 9월까지 852억 달러의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옛 소련이 유가 하락으로 붕괴됐듯이 최근의 유가 하락이 러시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년째 권좌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국제유가가 3배나 뛰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유지한다면 러시아의 재정은 파탄이날 수밖에 없고, 푸틴 대통령의 정치 생명도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란과 러시아의 상황을 볼 때 음모론은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

사우디는 과거에도 유가전쟁을 벌여 승리한 적이 있다.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사우디의 주도로 OPEC은 이스라엘을 비호해온 미국 등 서방국가에 대해 석유 수출금지 조치를 내렸다.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를 제1차 석유위기라고 부른다. 제2차 석유위기는 지난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자 석유 수출이 중단되면서 일어났다. 당시 유가는 배럴당 12달러에서 최고 40달러까지 올랐다.

제3차 석유위기는 지난 1985년 9월 영국의 유가 자유화에서 비롯됐다. 북해 유전을 개발해 풍부한 석유를 생산하게 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OPEC에 정면 도전했다. 자유시장주의자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도 대처 총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대처 총리의 유가 자유화 선언으로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했다. 당시 사우디는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하루 생산량을 200만 배럴에서 1천만 배럴로 늘렸다. 사우디가 가격전쟁을 벌이면서 유가는 배럴당 32달러에서 10달러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석유 기업들은 유가가 생산비에도 못 미치자 잇달아 도산했다. 영국도 사우디와의 가격전쟁을 버틸 수가 없었다. 북해 유전은 채굴 비용이 많이 들어 생산비가 비싸다. 결국 조지 H.W. 부시 미국 부통령이 1986년 4월 사우디를 방문해 파드 국왕과 무려 나흘간 비밀회담을 한 끝에 가격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후 유가는 오름세를 보이면서 같은 해 9월 18달러 선에서 안정됐다. 제3차 석유위기는 옛 소련의 붕괴를 겨냥한 미국과 사우디의 합작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OPEC을 붕괴시키기 위한 영국과 미국의 공모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론 옛 소련 붕괴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그 이유는 지난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옛 소련의 수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에 달했기 때문이다. 유가 폭락으로 옛 소련은 재정적으로 파탄이 날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 정보 책임자의 반미 발언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정유 공장.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 증가로 국제유가가 하향곡선을 그린다.
국제유가 하락이 사우디와 미국의 음모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다른 이유는 양국 관계가 과거처럼 돈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니파의 맏형을 자처하는 사우디는 군사·안보·자원·경제 분야에서 지난 70년간 미국과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최고의 맹방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정책에 강한 불만을 토로해왔다. 사우디는 미국이 이집트 군부를 적극 지지하지 않는 것에 상당히 분노했다. 이집트 군부가 지난해 7월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내자 미국은 군사원조 잠정 중단 의사를 밝혔었다. 반면 사우디는 이집트 군부에 대해 50억 달러(5조원)의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사우디는 또 시리아 내전사태에서도 미국과 불화를 보였다. 시리아의 온건 수니파 반군을 지원해온 사우디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에 대한 공습을 포기한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에 크게 실망했다.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 핵문제를 놓고도 대립했다. 사우디는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주장해왔지만 미국은 반대로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왔다. 사우디는 이란이 시간을 벌면서 은밀히 핵무기 개발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였던 반다르 빈 술탄 알 사우드 왕자는 “사우디의 대미 외교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서 “중동지역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축소할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4월 사우디 정보 수장을 맡은 지 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반다르 왕자는 1983년부터 22년간 주미대사를 지내며 1991년 제1차 걸프전쟁과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쟁 등에서 미국과 협조해온 인물이다. 사우디에서 가장 친미파라는 말을 들어온 전 정보기관 수장이 서슴지 않고 반미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은 사우디의 미국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안보를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가 공개적으로 미국에 반기를 들 수는 없는 입장이다. 때문에 사우디의 새로운 유가 전쟁은 미국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우디의 전략은 유가를 낮춤으로써 러시아와 이란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한편, 미국의 셰일오일이 국제시장에 진입하려는 것을 제한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10월 16일자) 데보라 고든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에너지·기후 담당이사는 “사우디가 미국과의 동맹을 소원하게 하지 않으면서 경쟁자와 적을 함께 견제하는 영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사우디의 저유가 정책으로 러시아와 이란 등 반미 국가들이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을 은근히 반긴다. 유가가 80달러가 되면 미국 소비자 한 가구당 연간 600달러의 감세효과가 있다. 사우디의 국영에너지회사 아람코는 11월 3일 12월 미국 인도분 가격(OSP)을 45센트 인하했다. 미국 에너지소비량 중 사우디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8월 7%에서 올해 8월 4.6%로 줄었다. 셰일오일 때문에 사우디산 원유의 경쟁력이 떨어졌다. 사우디로선 미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려면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으로 미국의 지정학적 목표와 소비자들에 대한 경제적 혜택을 주는 대신 미국 셰일오일 생산 기업의 피해는 감수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에너지 부문 개혁을 단행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올해 국가 예산의 20%에 육박하는 300억 달러를 에너지 보조금으로 편성했는데, 유가 하락으로 인해 그로 인한 부담을 줄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취임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최우선 개혁과제로 내건 에너지 보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맞이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이 정부를 이끌고 있는 태국도 저유가는 세수를 늘릴 기회다. 석유소비세를 부활시킬 경우 태국 GDP의 0.8%포인트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도는 또 경상적자를 줄이고 에너지 보조금도 축소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하락하면 경상적자 감소폭은 1년에 최대 10억 달러까지 줄어든다.

중국은 원유 사재기 열풍

중국의 경우 유가 하락은 전략비축유를 늘이는 데 도움이 된다. 중국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가 지난 10월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1800만 배럴의 원유를 사들였다. 중국은 보통 고정가격으로 장기 계약을 맺어 원유를 확보해왔으나, 아시아 최대 원유 거래 허브인 싱가포르의 현물시장에서 직접 원유를 구매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이 원유를 대량으로 사재기 하는 것은 유가 하락을 전략 비축유를 늘리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중국의 전략비축유 보유량은 30일치에 불과하다. 지난해 중국 원유 수입량을 기준으로 유가가 1달러 하락할 때 마다 중국은 21억 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이후 4개월간 국제유가가 25% 하락하면서 지금까지 절감한 비용은 250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원유 수입량을 늘려 전략비축유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일본도 소비자 구매력 증대와 비용절감 효과 등으로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가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세계경기 둔화 탓이기 때문에 수출 비중이 큰 국가들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유가 하락은 각 국의 이해관계에서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차원의 유가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자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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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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