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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오키나와 캠프 인터뷰 - 청와대 강연 ‘야신’의 말 “변명 말라. 아랫사람이 죽는다” 

꼴찌팀 한화, 마무리캠프부터 지옥훈련…“선수 포기하는 건 지도자의 태만” 

오키나와=이상학 OSEN 기자

김성근 감독은 최근 청와대에서 리더십 특강을 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고양 원더스 해체 후 인터뷰 장면.
일본 오키나와의 한화 마무리캠프는 아주 바쁘게 돌아간다. 오전 7시40분 먼저 훈련하는 ‘얼리 워크’ 조가 훈련장 고친다구장을 가장 먼저 찾는다. 이어 8시20분에는 투수·야수가 도착해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야수는 수비-주루-타격, 투수는 러닝-스트레칭-투구로 ‘논스톱 훈련’이다. 이전까지 한화 캠프는 오후 4~5시면 마무리됐지만 김 감독이 온 이후로 6시를 넘는 건 기본, 때때로 7시30분까지 이어진다. 일부 선수는 야간훈련조에 배치돼 밤 9시까지 배트를 돌리고 섀도우 피칭을 한다.

한화는 최근 6년 사이에 5번 꼴찌를 했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한화는 김태균·정근우·조인성 등 베테랑도 캠프 명단에 포함됐다. 김태균은 10년 만에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고, 정근우는 가족여행을 취소하고 SK 시절 은사 김성근 감독과 재회했다.

김태균은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스케줄”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선수들이 군말 없이 훈련을 버틴다. 김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뒤에서 팔짱 끼고 지켜만 보지 않는다. 항상 그라운드 곳곳을 누빈다. ‘잠자리눈’이라는 별명처럼 그의 눈은 항상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다. 훈련 중에 절대로 앉아 있는 법이 없다. 선수들과 함께 같이 서서 움직인다.

펑고 훈련은 김 감독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직접 펑고를 쳐주기 위해 자신부터 몸만들기에 나섰다. 김 감독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10~15kg 아령을 들며 체력과 힘을 키운다. 선수들도 노감독이 직접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기합을 넣어 쳐주는 펑고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펑고 뿐만 아니라 타격과 주루까지 김 감독의 손을 거치지 않는 훈련이 없다.

신경현 배터리코치는 “감독님께서는 코치들이 가만히 있는걸 싫어하신다. 없으면 찾아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감독이 쉼 없이 움직이는데 나머지 코치와 선수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김 감독은 2군 선수 또는 방출 선수들에게도 꾸준히 관심을 보인다. SK에서 방출된 마흔 살 투수 임경완, 만년 2군 선수 정민혁도 김 감독의 부름에 오키나와 캠프에 왔다. 김 감독은 “선수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선수가 없다고 포기하는 건 리더의 태만”이라고 했다.

11월 7일 청와대 강연이 화제였다. 무슨 말을 했나?

“처음에 굉장히 고민했다. 뭔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다른 곳과 똑같이 하기로 했다. 자기 위치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요즘 리더들은 심플하지 못하다. 자기를 지키려고만 한다. 인생살이에서 중요한 것은 밑의 가치를 얼마나 알고 인정하느냐다. 이 세상에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청와대에서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떤 메시지인가?

“인생에서 제일 나쁜 게 책임 전가다. 나 하나 욕 안 먹으려고 하면 아래 사람들이 죽는다. 잘못을 했으면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해명만 할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리더들은 그런 점이 부족하다. 변명을 할수록 어지러워진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문제다.”

야구감독을 넘어 젊은 세대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올바른 사회를 원하고 있다. 어른들은 살기 위한 세상을 원하고, 젊은 사람들은 미래를 원한다.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주지 못하고 있다. 내가 1959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나 지금이나 부정부패가 여전하다. 요즘 아이들도 부정부패에 대해 알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미래를 주느냐가 중요하다. 요직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가 다칠까 봐, 이 순간 나만 살겠다는 생각으로 말도 못한다. 이렇게 되면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은 다 죽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바꿔야 한다.”

야구감독으로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돈하고 ‘모가지’에 안 매달렸다. 돈과 모가지에 매달리는 순간 사람이 슬퍼진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된다. 스테이크 먹던 것 안 먹으면 된다. 감독 자리라는 것은 위에 아부하는 순간 밑에 애들이 다 죽는다. 난 지금도 돈에 관심이 없다.”

“젊은 패기와 나이 먹은 사람의 경험 섞여야”


한화의 오키나와 훈련캠프에서 선수들의 투구폼을 일일이 바로잡아주는 김성근 감독.
감독으로서 어떤 사명감이 있나?

“이기고 지는 승부세계이지만 사회에 필요한 것이 야구 속에도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난 정치를 모르지만 결국 사명감 아닌가. 나라를 위해 자기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어떻게 바라보나?

“선수가 안 된다고 포기하면 그건 지도자가 잘못한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실력으로 보면 버릴 아이가 많지만 어떻게든 써야 한다. 여기서 나를 만난 걸 30년 후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사람 만나서 인생 망가졌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나중에 20~30대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나를 만나 조금이라도 배웠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

한화 감독으로서 사회에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실 한화도 내가 오려고 해서 온 자리가 아니다. 내가 차기를 노린 줄 알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해명을 하면 지저분해질 뿐이다. 결과를 내면 된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살고, 이 세대가 살 수 있다. 요즘 세상은 젊은이들만 원한다. 하지만 사회라는 건 젊은 사람들의 패기와 나이 먹은 사람들의 경험이 믹스되어야 한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로만 가니까 자꾸 문제가 터지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다면 그 역할을 하고 싶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뭘 하고 있을까?

“한국시리즈 가야지.(웃음) 사람은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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