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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 가수·방송인·제작자 ‘1인3역’ 윤종신 - “TV서 깐족댄다고요? 음악 얘기할 땐 진지하잖아요” 

가요계·방송계서 가장 바쁜 이 남자… “아이돌 음악 아닌 ‘가요’ 내세워 굵직한 제작사로 키워가는 게 목표”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TV에선 가벼운 모습의 윤종신이지만, 음악 연습실에서 마이크를 잡은 그의 모습은 진지하다.
요즘의 윤종신(45)은 ‘세 얼굴의 사나이’라 할 만하다. 그는 1989년 데뷔한 26년차 가수다. ‘오래전 그날’이나 ‘팥빙수’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히트곡의 주인공이자, 최근 5년간은 매달 한 곡씩 꾸준하게 신곡을 발표하고 있는 부지런한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잘나가는 방송인이기도 하다. 〈속사정쌀롱(JTBC)〉 〈라디오스타(MBC)〉 〈슈퍼스타K 6(Mnet)〉에 고정 출연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재치 있는 웃음을 주고, 오디션프로그램 〈슈퍼스타K(슈스케)〉에서는 냉철한 심사위원이다.

그리고 그는 제작자다. 조정치, 하림, 박지윤, 김예림, 에디 킴 등을 거느린 소속사 ‘미스틱89’의 프로듀서다. ‘미스틱89’는 올해 3월 한채아 등 연기자가 소속된 ‘가족액터스’와 합병을 발표하면서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몸집을 불렸다.

“버티는 게 현명한 것이더라”


▎‘미스틱89’의 프로듀서 윤종신(가운데)과 조정치, 김예림, 하림, 도대윤 (왼쪽부터).
너무 많은 일을 벌여서 하는 윤종신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던 때도 있었다. ‘순수하게 음악에 집중하지 않고 방송에 기웃댄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시시덕대는 가벼운 이미지였던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스케〉에서 누구보다 냉철한 눈으로 참가자를 평가하자 그에 대한 평가가 새삼 달라졌다. 가수로서의 꾸준함도 인정받는다. 그는 2010년 ‘월간 윤종신’이란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금까지 매달 한 곡씩 신곡을 내놓고 있다. 윤종신은 “미련하게 버티는 게 현명한 거더라. 오래 버티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인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도 나를 보고 ‘원래 가수였느냐’며 놀라는 사람이 많다”며 웃었다. ‘문어발식’ 활동을 하는데도 그가 불안해 보이지 않는 것은 본업인 음악으로 무게중심을 확실히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해왔던 ‘한국 발라드’,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가요’ 장르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된 11월 중순, 서울 합정동에 있는 그의 음악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윤종신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마치 〈슈스케〉 심사평을 하듯 객관적이고 냉정해 보였다. 특히 음악, 비즈니스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이 조금씩 길어졌다.

윤종신은 가수로서, 방송인으로서, 제작자로서 여러 분야를 소화해내고 있지만, 그중 어느 분야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본인의 말 그대로 미련할 정도로 꾸준히, 또 부지런하게 버티면서 정상급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 점이 마치 전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MVP를 받은 적은 없지만 통산 최다안타 등 각종 기록을 보유) 같다고 말했더니, 윤종신의 얼굴에 슬쩍 웃음이 번졌다. 그는 “양준혁 같은 꾸준한 존재감에 대해서 나 역시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다.

현재 가수 윤종신을 대표하는 단어는 ‘월간 윤종신’이다. 2010년부터 5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한 곡씩 신곡을 내놓고 있다. 그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건가?

“보통 가수들이 1~2년 쉬다가 앨범 한 장 내고, 이런 식으로들 활동하지 않나. 그런데 왜 1~2년에 한두 번을 내야 하나? 나는 ‘어차피 그만큼의 곡을 발표할 거라면 매달 하나씩 내보자’고 생각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그 생각을 굳히게 된 것 같다. 대개 음악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풍류가 있다’, ‘밍기적댄다’, ‘유유자적이다’ 이런 식으로.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글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스타일인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0년대에 이미 그걸 해버렸더라고.(웃음) 만약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작품 하나 내고 몇 년 쉬고 그래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건 못한다. 출퇴근하듯이 일상 속에서 일을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밤낮을 바꿔서 살 거라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잔다.”

그런 스타일의 음악인을 또 본 적이 있나?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월간 윤종신’으로 매달 꾸준하게 곡이 나오긴 하는데, 대신 한 번 곡이 나올 때 화제성이나 파급력은 떨어지지 않나?

“매달 큰 리액션이 나오진 않지만, 아카이브(한 곳에 모아둔 일단의 파일)의 장점도 있다. 3년 전에 나온 걸 지금 찾아 듣기도 한다. 잡지는 구보(舊譜)가 팔리지 않지만, ‘월간 윤종신’은 구보도 팔리는 시스템이다.”

‘월간 윤종신’은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

“지칠 때까지. 아니다 싶을 때까지. 어떻게 보면 나만의 약속이다.”

가수이자 제작자이자 동시에 방송인이다.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줄여야 할 것 같다. 요즘 더 이상 방송 출연 프로그램을 늘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에 내가 하는 일 중에 뭔가를 줄여야 한다면, 일단은 방송을 먼저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요즘은 뭐 때문에 가장 바쁜가?

“공연 연습하느라 바쁘다. 현재 전국투어 중이고, 서울에서는 12월 12일부터 사흘 동안 ‘종신예술대상’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한다. 내가 게스트들에게 직접 상을 주는 포맷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연기 잘한 가수한테 ‘올해의 남우주연상’, ‘올해의 작품상’ 뭐 이런 상을 준다. 나한테 내가 직접 주는 상도 있다.”

“제작자는 돈 벌게 해줘야”


▎JTBC 예능프로그램 <속사정쌀롱>의 초대 MC 장동민, 진중권, 윤종신, 신해철, 강남(왼쪽부터).
공연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노력하는 느낌이다. 올 9월엔 자라섬에서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라는 뮤직 페스티벌을 주최했던데 성과가 있었다고 보나?

“뮤직 페스티벌이란 게 지금까지 고정관념 같은 게 좀 있었다. 주로 인디록 장르 페스티벌이 많았고, 재즈 페스티벌도 있고, 이런 건 마니아들이 모이는 페스티벌이다. 주류 무대에선 아이돌 음악이 잘나가고. 그런데 가요는 죽고 있더라.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음악적 노하우가 제일 많이 쌓인 집단이 발라드를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장르를 위한 페스티벌이 없다. 그래서 김범수, 박정현, 아이유, 정엽, 최백호 선생님, 플라이투더스카이, 하림을 다 불러모았다. 나는 뮤직 페스티벌이란 건 ‘OO기업 김대리’, ‘동네 아주머니 김씨’ 이런 보통사람들이 모이는 일상의 축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로 소속사 가수들, 혹은 친분이 두터운 가수들이 나왔던데 출연료 거의 안 주고 섭외한 것 아닌가?

“밖에서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가수들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범수(김범수)는 출연료 받고서 ‘형,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줬어요?’라고 하던데. 그 가수들이 주말에 시간을 뺀다는 건 곧 돈이란 얘기다. 당연히 대우를 잘해줘야 된다. 한국 음악 비즈니스가 그렇게 친분이나 정에 얽매이면 안 된다.”

라디오 DJ나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시작한 이유는 ‘그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서’였나?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나?

“우리나라의 모든 연예인은 방송과 생업이 연결돼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나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벌고 싶습니다’라고 대놓고 표현하는 걸 터부시한다. 그런 터부는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방송하고, 노래하는 걸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지 않나? 개인적으론 이런 사고방식은 유교문화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음악 하는 사람도, 방송하는 사람도 당연히 수입과 생업이 중요하다. 나는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커머셜 아트를 하는 사람이다. 방송출연의 가장 큰 장점은 파급력이 있다는 것이다. 나를 알리는 데 그만큼 도움이 되는 게 없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더더욱 돈을 벌어야 하지 않나?

“당연한 이야기다. 소속 가수들이 돈을 벌게 해주는게 제작자의 의무다. 허각과 존박이 결승에 갔던 〈슈스케 2〉가 2010년에 했는데, 그때 느낀 게 있었다. 한국 가요의 주류가 아이돌 음악이지만, 사람들이 조금씩 거기에 피로감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곧바로 그 틈을 노리고 치고 들어갔으면 뭔가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 겁이 났던 거지.”

현재 한국의 뮤직 비즈니스는 SM, YG, JYP ‘빅3’가 독식하는 구조 아닌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수만이 형(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대표)이나 현석이(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 진영이(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 모두가 엄청난 투자를 해서 이 판을 자기들 판으로 만든 거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될지 모르는데도 몇 십억원을 투자했다. SM도 H.O.T가 터지기 전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처음 제작을 시작할 때는 가요계 주류가 발라드였다. 배짱 있는 투자를 했으니까 지금 성공한 건데, 마치 그들이 저절로 잘돼서 지금의 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공격하는 제작자들이 그런 도박을 (19)90년대부터 했다면 지금은 양상이 또 달라졌겠지. 그런데 반대로 다른 제작자들은 우후죽순으로 뒤늦게 수만이 형만 따라갔다.”

SM, YG, JYP 같은 대형기획사를 보고 어떤 점들을 배우나?

“거기서 만들어낸 아이돌 음악이 지금 전성기다. 그런데 아이돌 음악은 어린 가수, 젊은 가수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그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계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음악, 우리 회사 가수들의 음악은 감성적인 음악 위주다. 아이돌처럼 판타지를 노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현재를 노래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는 음악이다. 그런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기획사의 장점을 보고 배우고, 동시에 단점도 보고 배우는 거다.”

“괴물 스타 한 명이 판도 바꾼다”


▎12월 콘서트 ‘종신예술대상’을 준비 중인 윤종신.
미스틱89를 만든 이유는 뭔가?

“〈슈스케〉 심사위원을 하면서 ‘애들(가수지망생)을 키워가는 재미가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는 짜릿함이랄까! 제작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결심하는 데 슈스케가 엄청난 영향을 줬다. 또 하나는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노래가 아이돌 노래는 아니지 않나? ‘거위의 꿈’ 같은 노래, 바로 ‘가요’가 국민 애창곡이다. 그런데 그런 장르는 지금 비주류다. 진짜 애창곡은 다 군소회사라는 게 얼마나 웃긴가. 가요 제작사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스피릿이 문제다. 그런 점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왜 정작 ‘국민 애창곡’이란 말을 듣는 노래를 만들어내는 제작자들은 마케팅을 할 돈이 없나?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제작사들을 순위별로 세워놨을 때, 지금은 상위권이 전부 아이돌 기획사다. 가요를 만드는 기획사가 1등은 아니더라도 상위권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아이돌 없는 가요제작사가 매출을 올린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너무너무 힘들다. 우리 회사 소속 가수들이 몇 번 멜론차트(음원 사이트의 인기순위)에서 1등을 했는데도 회사에 돈 남기기가 힘들다. 회사 호감도만 높였을 뿐이지. 발라드 가수 성시경의 소속사(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도 최근에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다. 시경이가 ‘형 회사도 아이돌 해야 되는 것 아니야?’라고 그런다. 그래서 그냥 ‘성시경 같은 가수 세 명만 있으면 매출 올린다’고 말해줬다. 가요 하는 가수 중에서도 성시경, 아이유 이런 급의 보석 같은 스타를 키워야지.”

회사 이름 ‘미스틱89’는 어떤 뜻인가?

“내가 1989년에 가수로 데뷔했다. ‘미스틱’이라는 건 뭔가 신비롭다는 느낌의 단어다. 나는 가수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공일오비의 객원가수로 데뷔를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신비롭게 바뀌었다.”

1990년대 ‘문화대통령’이라 불렸던 서태지는 대형 소속사의 가수가 아니었다. 과거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스타가 됐지만, 이제는 대형 기획사를 거치지 않으면 가수로 데뷔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21세기에 ‘제2의 서태지’가 나올 가능성은 없는 걸까?

“그 시대의 형태 그대로는 나오기 어렵다. 서태지도 당시로선 시대가 달라져서 나온 거고, 지금은 또 지금 시대에 걸맞은 폭발력 있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지. 양상은 다르지만 지금 세대에겐 또 지드래곤같은 수퍼스타가 있지 않나. 제작자는 좋은 사람을 찾아내는 깔때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어차피 전체 판도는 괴물 같은 스타 한 명이 바꾼다고 생각한다.”

“난 말 잘하는 사람 아니야”

최근엔 연기자들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가족액터스’를 인수했다. ‘윤종신은 야심가’라는 말도 나왔다더라.

“하하, 야심이나 야망 이런 건 아니다. 만일 가수들 몇 명만 데리고 있는다면 그저 윤종신이 하는 소담스러운 레이블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사업이다. 사업은 사이즈 싸움이다. 매출 구조도 나와야하고, 투자를 받으려면 사이즈가 커져야 한다. 가족 액터스를 인수한 건, 말하자면 우리가 GRP(그루신-로젠 프로덕션·칙 코리아 등 컨템포러리, 퓨전재즈계열의 스타군단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후에 글로벌제작사인 유니버설에 합병됐다) 레이블에 머물지 않고 유니버설을 향해 간 거다. 사실 난 골치 아프게 큰 사업 안 하고 그냥 작은 레이블만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업 전문가는 아니고, 지금 미스틱89를 함께하는 파트너가 사업 전문가라서 그 사람을 믿고 가는 거다. 어차피 연예 사업을 하려면 종합엔터테인먼트가 맞는 것 같다.”

〈슈스케 6〉 심사위원이다. 혹시 올해 참가자 중에 스카우트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예선 미션에서 ‘벗님들’ 팀을 만들었던 김필, 곽진언, 임도혁이 다 좋다. 송유빈도 좋고. 그런데 내가 이 사람들을 우리 회사로 데려오고 싶다고 다 데려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맹랑할 정도로 똑똑한데.(웃음) 아마 자기들 마음속으로 가고 싶은 소속사가 다들 있을 거다. 나는 그들과 딜(협상)을 해야 하는 거고. 스카우트 입장에선 〈슈스케〉뿐만 아니라 〈케이팝스타(SBS)〉 같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도 전부 꼼꼼하게 모니터한다.”

심사할 때 특히 그렇지만, 정말 말을 잘한다. 20여 년 전에 처음 방송할 때부터 달변이었다. 타고난 건가?

“하하. 나는 말을 잘 못한다. 말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이를테면 〈속사정쌀롱〉에 같이 출연하는 진중권 교수 같은 분들? 나는 그냥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진중권 교수랑 얼굴이 닮았다는 이야기도 듣지 않나?

“무슨 소린가? 진 선생님이랑 나는 하나도 안 닮았다.”

〈슈스케〉 첫 시즌부터 쭉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다가 작년 시즌5 때는 한 시즌을 걸렀다. 빠졌던 이유는 뭔가?

“내가 하는 음악이 주류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감히 가수지망생들을 심사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히 얘네들을 떨어뜨리고 붙이고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다가 올해 다시 심사위원으로 돌아왔다. 판을 바꾸려면 공격적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에 신해철 씨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가수·제작·방송까지 많은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사는데, 그의 죽음에 인생이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나?

“해철이 형 관련 기사를 보면, ‘요절’이란 말이 없다. 요절이란 건 보통 20대나 30대에 죽었을 때 쓰는 말이니까…. 그런데 나는 요절처럼 느껴졌다. 새삼스럽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이라는 게 이렇게 너무 갑자기 오는구나…. 해철이 형이랑은 원래 많이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 형이 벽을 허물고 다가오면서 친해졌다. 〈속사정쌀롱〉녹화하면서 분위기도 좋았는데 그게 마지막 방송이 됐으니….(〈속사정쌀롱〉은 고 신해철 씨가 사망하기 전 녹화한 1회 방송분을 11월 1일에 방영했다)”

대한민국 40대로 산다는 것

〈속사정쌀롱〉 1회 방송을 보면 신해철 씨를 바라보면서 ‘엄마 미소’를 짓는 장면이 자주 나오던데.

“해철이 형이 부드러워졌더라. 그래서 그런 표정이 저절로 나왔다. 해철이 형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고 나서 힘들었다. 그런데 우리 나이가 무서운 게, 일을 해야 되니까 또 일을 하게 된다. 만약에 20대나 30대 때 친한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면 아마 스케줄 다 취소하고 며칠간 술 먹고 드러누웠을 거다. 그런데 이젠 내가 일을 안 하면 안 되는 나이가 됐더라. 대한민국 40대 남자라는 게 그런 거더라고. 해철이 형 장례 치르던 날 그 난리(윤종신 등 가수들이 모여서 유가족에게 부검을 요청했다는 기자회견을 했다)를 겪고도 그날 저녁에 슈스케 심사위원으로 방송하러 갔으니까. 공연도 스케줄 대로 소화하고. 그게 더 무섭더라. 예전에 광석이 형(고 김광석)이나 누군가를 보냈을 때 기억도 있는데…. 지금은 비통해하고 그러다가도 방송을 했다. 그런 나이가 됐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어땠나?

“방송인 윤종신으로 보자면…. 방송을 여러 개 말아먹었다.(웃음) tvN 〈팔도방랑밴드〉나 SBS 〈맨발의 친구들〉 같은 건 잘 안되지 않았나. 그런데 방송을 20년 정도 하면서 느낀 게, 방송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리듬이 있다. 올해는 내가 내리막이었던 거지. 희한하게 나랑 강호동이 서로 리듬이 비슷하더라.(웃음) 제작 쪽에선 에디 킴 앨범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 그거다. 사업 쪽에서도 올해 많이 배웠다. 지금 미스틱89 직원이 30명이 넘는데 이 사람들을 조율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회사 대표님을 존경하게 됐다.”

집에선 어떤 아빠인가? 아이 셋(1남2녀)을 둔 다둥이 아빠인데

“애가 셋이라는 생색은 내가 전혀 낼 수 없다. 와이프(전 테니스 국가대표 전미라)와 장모님이 다 하신다. 나는 육아에 전혀 도움을 못 주니까 미안하다. 와이프는 밖에서 내가 성공하는 것보다 지금 아이들이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좀 더 애정을 쏟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는 일 욕심이 생기고, 지금 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고…. 40대의 남편이라는 자리가 한편으론 내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할 시기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아빠 노릇을 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 게 참 쉽지 않더라. 와이프한테도 미안하고.”

개인적인 야심, 꿈, 그런 게 있다면 어떤 건가?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야심가가 아니다.(웃음) 난 그저 현재를 극단적으로 즐기는 현재형의 사람이지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다. 제작자로서 수만이 형이나 현석이만큼 될 자신은 없다. 그들은 파이터다.”

그럼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은 뭔가?

“미스틱89가 나 없이도 잘 돌아갈 수 있을 만큼 만들어놓고 어느 순간 다 내려놓는 거다. 아, 물론 ‘월간 윤종신’은 계속할 거다.(웃음) 그렇게 하고 나서 신치림(윤종신+조정치+하림의 프로젝트 그룹)이 다같이 리조트 라운지에서 매일 기타치고 그렇게 사는 것.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꼭 이루고 싶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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