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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전시 | 장숙 사진전 ‘늙은 여자의 집’ - 자궁으로 되돌아가는 여인의 뒷모습 

노인의 인생은 그 자체가 오래된 집… 페미니스트 관점 넘어 ‘늙음’의 카테고리에 주목 

글 우설아 월간중앙 인턴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늙은 여자의 집’ 시리즈 안에는 사람, 식물, 흙의 형상이 녹아들어 있다. 카메라에 담긴 노인들은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다한 듯 덤덤한 모습이다. 노인의 왜소한 등줄기를 타고 그 주변을 훑어보면 앞마당에 핀 맨드라미꽃이 보이고, 쓰러져가는 고목나무도 보인다. 세월의 풍파 속에 여기저기 갈라진 살들은 오랜 가뭄으로 균열이 난 땅과 같은 모습이다. 자연과 늙음이 함께 호흡하여,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까지 장숙(45) 작가는 카메라 렌즈를 고정시킨다.

11월 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열리는 ‘늙은 여자의 집’에서 만난 사진 속의 노인들은 손녀에게 옛날 얘기를 들려주듯 자신의 일생을 생생히 보여준다. 작가는 2011년 공근혜 갤러리에서 ‘늙은 여자의 뒷모습’이라는 주제로 여성의 몸을 오랜 시간 사유했다. 사진 속 한 노인의 등은 작가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단위로 찍은 90대 여성의 뒷모습들이다. 작품 속의 노인은 마지막 사진을 찍고 1년 뒤 세상을 등졌다. 작가는 “순차적으로 사진을 보면 마치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려는 준비를 마친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라고 관람객에게 반문했다. 엉덩이가 축 쳐지면서 타원형을 그리는 사진, 꼿꼿한 일자였던 다리가 관절이 불편 해지면서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O자형으로 바뀐 사진은 작가가 말한 느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피사체가 됐던 그녀와 유대감을 쌓기 위해 작가는 1년 반 동안이나 경상북도 영주를 드나들며 노인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음식을 해가서 같이 밥을 먹으며 얘기를 하고, 인간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으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소품으로 쓰라고 젊은 시절 혼수로 해 오신 이불까지 주셨어요. 너무 감사해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울었지요.”

장 작가는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페미니스트로 단정지어 보지 말고 늙음이란 큰 카테고리에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속에 존재하는 노인의 인생은 그 자체가 오래된 집이라고 봐요. 그 집으로 들어가 그분의 인생과 소통을 하면 돼요.”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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