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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 살아 있는 강의 지표종(指標種) 물총새 

이들이 득실대던 그 시절엔 냇물도 건강하고, 터줏고기도 들끓었건만… 


물속 25㎝ 깊이까지 들어가 사냥하는 물총새
내가 놀던 강물이 바다로 드는 것도 잘 모르고, 시골 무지렁이로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한여름엔 시골 동네 앞을 휘몰아 흐르는 지리산에 뿌리를 둔 큰 강줄기는 촌뜨기들의 놀이터로 노상 거기서 살다시피 했다. 덕천강(德川江)은 진주 진양호(晉陽湖)에서 잠시 머물다가 남강을 따라 낙동강으로 합류한 뒤, 김해 삼각평야 끝자락의 을숙도(乙淑島)를 스쳐지나 남해바다로 흘러든다. 바다가 강보다 훨씬 낮게 자리하기에 강물이 흘러내린다. 우리는 여기서 하심(下心)을 익힌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드넓고 깊다란 대양(大洋)을 이루고, 산불양토(山不讓土)라고 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치 않아 태산을 이룬다. 부산모해(父山母海)라 했던가. 지혜로운 아버지는 산과 같고, 자비로운 어머니는 바다 같다.

웃통(윗옷)도 벗고 삼베 몽당바지 하나만 걸쳤으니, 그 따가운 여름 볕을 내리받아 ‘흑인종’이 되었었지. 가뜩이나 새까매진 피부는 반질반질 광택이 날 지경이었으니 아프리카 애들도 저리 가라다. 강고기를 잡는다는 주제에 반두, 족대도 없다. 큰 돌로 강바닥의 강돌을 메치거나, 손더듬이하여 물고기나 다슬기, 징거미(새우) 같은 단백질거리를 사냥한다. 수렵은 사내들의 몫 아닌가.

이렇게 천렵(川獵)꾼이 되어 물놀이를 하는 동안에 아리따운 품새 좋은 물새를 만나니, 물고기 잡는데 으뜸가는 날쌘 물총새(Alcedo atthis)다. 물총새는 파랑새목, 물총샛과에 들며, 한국에는 같은 과(科,family)에 물총새·호반새·청호반새 3종이 살고, 물총새는 그중에서 가장 작은 꼬마둥이 새다.

한자리에 머무는 정지비행의 대가

또 물총새는 유럽·아시아·북아프리카에 주로 살고, 우리나라에는 여름철새로 남부 일부 지방에서 월동하기도 하지만 주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등지로 이동(migration)하여 겨울나기를 하는데, 강이 얼어붙으면 먹이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총새(-銃-, common kingfisher)는 머리와 눈은 크고, 목은 짧은 편이며, 몸길이 16㎝에 날개 편 길이 25㎝, 체중은 34~46g, 짤따란 꽁지에 몸은 통통하고, 발과 발가락은 아주 붉으며, 다리는 짧고 앞발가락 3개는 붙어 있다. 머리와 날개 위는 반드르르 광택 나는 청록색, 등은 파랗고 멱(목의 앞쪽)은 흰색, 배는 주황색이며, 목 옆면에는 밤색과 흰색 얼룩이 있다. 부리는 유별나게 길어서 30~45㎜로 검고 길고 뾰족하며, 암컷의 아랫부리는 붉다.

노래를 할 줄 모르고, 그냥 ‘치치’ 또는 ‘치치치’ 하고 두세번 지저귈 따름이며, 텃세가 아주 센 편으로 텃세권은 어림잡아 1~3.5㎞에 이른다. 영문 이름 ‘common ingfisher’에서 ‘common’은 흔하게 보는, 'king’은 으뜸, ‘fisher’란 물고기를 잡아먹는 동물을 총칭하니, ‘고기 잡는 귀신’ 정도의 의미가 들었다 하겠다.

이들은 천천히 흐르는 맑은 물가를 사냥터로 삼고, 연못가의 나뭇가지나 너럭바위 따위의 정해진 망대(望臺)에 앉는다. 나지막하게 수면에서 1~1.5m쯤에 있는 나뭇가지에 올라 나붓 엎드려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물고기가 나타나면 퐁당 총알처럼, 쏜살같이, 날렵하게 물속 25㎝ 깊이까지 들어가 깔축없이 낚아챈다. 얼마나 빠르게 잠수(潛水)하기에 ‘물총새’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그런가 하면 때때로 공중에서 멈춘 상태로 팔랑팔랑 날개 흔들며 한자리에 머무는 정지비행을 볼라치면 신비로움 그 자체다! 이때다 싶으면 벼락같이 휙 내려 꼽는다. 물고기 큰 놈 한 마리가 떡하니 입에 물렸다!

물총새가 떠난 지구의 미래

잡은 물고기를 바위나 나뭇가지에 짓이겨서 죽이거나 기절시킨 다음 비늘·지느러미가 목에 걸리지 않게끔 머리부터 꿀꺽꿀꺽 삼킨다. 먹이는 60%가 물고기이고 나머지는 올챙이나 개구리·잠자리 유충(학배기)·새우 등의 수서곤충이며, 날마다 오지게도 제 몸무게의 50%나 되는 먹이를 잡는다. 그리고 다른 맹금류가 뼈나 새털을 토해내듯이, 이들도 하루에 몇 번씩 뼈나 비늘, 이석(耳石, 머리 속귀에 있는 하얀 골편) 따위의 소화가 안 되는 펠릿(pellet)은 게워낸다.

수컷이 암컷에게 물고기를 선물하며 갖은 아양을 부려 암컷 마음을 사서 짝을 맞춘다. 물가의 깎아지른 흙 벼랑 언덕 위에 동그마니 몸 하나 들 수 있는 60~90㎝ 깊이의 구멍을 동그랗게 파 둥지를 틀며, 끝자리 막장에 널따란 보금자리인 알자리(산란장, 産卵場)를 마련하고, 물고기 뼈를 토해 바닥에 깐다. 길이 2.2㎝, 폭 1.9㎝, 무게 4.3g인 둥글고 반점 없는 새하얀 알을 한배에 5~7개 낳아, 낮에는 암수가 갈마들며 품지만 밤에는 암컷이 포란(抱卵)한다. 포란 기간은 19~20일이고, 24~25일간 육추(育雛, 알에서 깐 새끼 키움)하며, 수명은 21년으로 꽤 긴 편이다.

저 높은 절벽 윗자락에 몰래몰래 들락거리는 물총새 굴이 바야흐로 발각되고 만다. 또래들은 짐짓 흥분하여 어깻죽지 올라타기를 해서 굴속에 슬며시 팔을 뻗어 넣는다. 동글동글한 알을 끄집어내거나 새끼들을 잡는 등 그들을 무진 못 살게 굴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미안하다. 안절부절 질겁한 물총새도 발칵 뿔이나 그냥 당하지만 않고 꾸러기들 주변을 맴돌면서 대들지만 깐치(까치) 정도면 몰라도 꼬마둥이 물총새쯤이야 아랑곳 않는다. 이래저래 그들이 시나브로 지구를 떠나게한 범인(犯人)이 우리인지도 모른다.

매무새가 비슷하게 생겼거나 흡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놓고 ‘같은 과(科)’란 말을 한다. 생태는 물총새와 모양새가 유사한 같은 과의 호반새(ruddy kingfisher)도 여름철새로, 몸길이가 27㎝로 물총새보다 훨씬 크고, 전체적으로 생김새는 과히 틀리지 않지만 깃털이 주황색으로 불그스름한(ruddy) 것이 색다르다.

또 청호반새(black capped kingfisher)도 여름철새로, 몸길이 29㎝로 호반새보다 등치가 조금 크고, 머리와 날개 끝은 검은색(black capped)이고, 목과 멱은 흰색, 꼬리는 광택 나는 진한 파란색이며, 부리와 발은 물총새에 비해 덜 붉다.

이들은 모두 강과 물고기의 지표종(指標種, indicator species)으로, 물총새 무리가 득실대야 냇물도 건강하고, 터줏고기도 들끓는다는 말이다. 즉, 물총새를 보면 강물과 물고기가 한눈에 보인다. 그런데 시골에 갈 때마다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물총새를 찾는데, 예전에 간간이 눈에 띠던 것이 요샌 어쩐 일인지 눈을 씻고 봐도 잘 보이질 않는다. 물총새야, 우리 같은 인간 나부랭이의 횡포 탓에 죽기살기로 버둥대다가 영영 지구를 떠난 건 정녕 아니겠지? 아무렴 그래야지. 물총새 천세만세!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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