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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 SF 영화의 결론은 왜 늘 ‘사랑’일까 

첨단 시각효과로 무장한 영화 <인터스텔라>… 결국 기적은 과학 아닌 사랑의 힘 

강유정 영화평론가

사랑이란 무엇일까? 뇌과학자들은 사랑의 신비를 증명 가능한 논리로 규명하기 위해 애써왔다. 아니, 지금도 애쓰고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뇌의 가장 신비로운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사랑과 연관된 부분이다. 호감의 유효 기간을 밝혀내고, 서로에게 반하는 호르몬의 작용을 밝혀냈다고 해서, 사랑의 모든 비밀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사랑의 신비가 과학적 원리와 부딪히는 장면 중 하나는 SF 영화에서 종종 발견된다. SF는 공상과학(Scientific Fiction)의 약자로 과학적 이론으로 증명 가능한 가설 위에 세워진 허구적 상상을 지칭한다. 시간 여행, 상대성 원리, 웜홀과 같은 영화적 클리셰들은 실제 세상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과학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어쨌든 과학적으로 논증 가능한 가설이 SF의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과학적 이론에 충실한 이 SF 영화들이 최종적 해결방식으로 사랑을 제시하곤 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구한 것은 그의 뛰어난 기술력이 아니라 그에 대한 트리니티의 사랑이었다. <콘택트>에서 주인공이 집념으로 얻어낸 우주 여행의 결과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확인이었다. 심지어 <더 문>에서 슈퍼 컴퓨터의 이름이 ‘사랑’이었고, <아바타>의 최종 귀착지 역시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랑은 기적일까, 마술일까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이 영화는 11월 6일 개봉 후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면밀한 학술적 고증과 이론적 합일성, 그리고 과학적 사실에 근접한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애썼던 감독들이 왜 사랑이라는 증명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결론에 닿는 것일까? 이론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상상의 허술한 봉합일까? 아니면, 사랑이란 결국 그 어떤 논리와 이론도 초월하는 인간의 위대함 그 핵심이라는 것일까? 결국, 우주의 먼 곳이나 미래의 아주 먼곳까지 간다 해도 문제는 사랑인가? 지구, 인간, 우주의 구원은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인가? 개봉시점부터 전 세계 관객의 주목을 끌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이런 질문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영화의 마술은 무엇일까? 물리적 세계, 그러니까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불가능한 일을 눈앞의 현실처럼 재현하는 것이 바로 영화의 마술일 것이다. 가령, 꿈의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한다거나 우주 여행을 마치 지금, 우주에 떠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감각의 교란술. 그게 바로 영화의 마술인 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 인류의 새 보금자리를 찾아나선 탐사대원들이 지표면이 물로 뒤덮인 행성에 도착한 장면이다.
그래서인지 마술을 영화적 소재로 삼고 그 원리를 탐구한 작품이 꽤 많다.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우디앨런 감독의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도 마술쇼의 개막과 함께 오프닝 시퀀스가 열린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작 <프레스티지>를 보면 영화의 운명과 마술의 원리에 대한 고민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눈앞에 존재하지만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공간이동을 하는 현현 마술, 어쩌면 영화란 기꺼이 속아주기를 바라는 관객 앞에서 사투를 건 마술을 펼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상업적인 예술, 대중적인 천재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2009년작 <아바타>.
유능한 감독을 굳이 두 부류로 나눠보자면, 한쪽은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이 차지할 것이다. 세상의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감독 말이다. 다른 한 부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미지로 그려내는 쪽일 것이다. 무의식, 트라우마, 과거, 시간, 미래와 같은 이념적 추상어들이 아마 그 세계를 차지할 것이다.

<지미스 홀> <자유로운 세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같은 영화를 만든 켄 로치나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의 왼발>을 만든 짐 쉐리단 감독이 전자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있다.

가끔 치명적일 정도로 천재적이라고 여겨지는 예술가들이 있다. 영화계에서 이 천재성은 더욱 오묘한데, 왜냐하면 영화란 애초부터 대중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대중 예술이라는 것은 곧 상업성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업성을 갖춘 예술, 대중적 천재, 어딘가 이 두 단어의 조합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 모순적 수식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는 영화의 기술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을 마술로 펼쳐내는 기술자이자 천재다. 상상이라는 관념의 공간을 시각적 실제의 이미지로 바꿔내는 작업, 크리스토퍼 놀란이 해내고 있는 영화적 작업이 딱 그렇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 <인셉션>이 그 예시가 될 법하다. <인셉션>은 인류의 영원한 궁금증 중의 하나인 꿈의 세계를 보편적 이미지로 재현해낸 작품이다. 꿈이란 주관적인 체험이다. 이야기로 전달할 수는 있지만 전달되는 것은 앙상한 서사의 흔적뿐이다. 현실의 개연성을 넘어서는 꿈의 체험, 이 꿈은 수많은 예술가가 모방하고 재현하고자 했던 인간이라는 우주의 핵심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간이라는 개체를 하나의 우주로 본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는 가히 인문학 열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메멘토>의 죄책감이나 기억,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트라우마·악·원죄, <인셉션>의 무의식과 꿈, 에고와 리비도에 이르기까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인문학적으로 깊고도 넓다.

그의 신작 <인터스텔라>는 그런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인문학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 안에는 감독이 그동안 천착해왔던 인간이라는 우주, 그러니까 인간성의 핵심과 인간을 뛰어넘는 초월적 능력, 그리고 가시적 수준에서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초월적 세계에 대한 근본적 호기심, 마지막으로 우주라고 부르는 미지에 대한 강렬한 애정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미래의 어느 시점이다. 20세기 과학 문명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 산소와 식량을 뺏어 가고 만다. 대신 지구를 차지한 것은 먼지다. 태풍을 방불케 하는 모래바람이 불어 와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차가 움직일 수조차 없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는 밀마저도 혹독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멸종하고 만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옥수수. 하지만 그 유일한 식량원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상대성이론의 핵심은 감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인셉션>.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그려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게 사람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즉, 발달한 과학 문명이 가져온 재앙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아폴로호의 달착륙이 냉전 시대의 사기극이라고 가르친다. 우등생은 대학이 아닌 농업기술학교로 보낸다. 지구에 필요한 것은 농부이지 과학자가 아니다. 농부가 땅을 일군다면 과학자들은 지구를 좀먹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딸 방에 나타나는 기묘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고 그것을 쫓아가다가 없어진 줄 알았던 NASA(미 항공우주국) 본부를 찾게 된다. 마침, 웜홀을 통해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을 준비 중이던 NASA는 전직 우주인이던 쿠퍼를 설득해 그를 보낸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지구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자 마지막 희망을 건다. 과거를 부정한다고 해서 지구의 멸망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인간이 살아야 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인터스텔라>에는 초월적 현상과 과학적 신비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딸의 방에 나타난 모스 부호는 영화 종반쯤 되면 과연 초월적 현상인지 과학적 신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숙제가 된다. 이는 마치, 사랑이 인간의 초월적 능력인지 과학적 현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과 닮아 있기도 하다.

영화는 일단 현대 영화의 기술적 장점을 최대한 발휘한다. 시각적 쾌감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일궈낸 <그래비티>의 감동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캘리포니아 공대를 4년간 다녔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의 시나리오다. 웜홀 이론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킵 손이 재직했던 캘리포니아 공대를 다니며, 그는 상대성이론의 핵심을 오히려 센티멘털한 감성에서 찾아낸다. 상대성 원리의 한가운데서 헤어지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슬픔을 발견한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재난 영화이자 모험영화이며 SF 판타지다. 지구의 멸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재난영화 이며 새로운 공간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모험영화이다. 상대성이론과 웜홀, 블랙홀에 대해 가장 최신 이론을 보여주며 또 그것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SF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근원적 희망을 묻는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공대의 킵 손 박사가 자문에 참가한 영화는 현대 천체물리학을 가장 친절하고도, 명확히 보여주는 예시가 될 법하다. 아이맥스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블랙홀이나 우주의 풍광은 영화라는 마술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극치의 감각을 선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미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연기력을 입증한 바 있는 매튜 매커너히의 부성애 연기다.

사랑, 영화 속 아버지인 쿠퍼는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유령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서는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쿠퍼의 동행자였던 브랜든 박사(앤 해서웨이)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 없지만 확실한 믿음과 확신을 또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사랑하는 매순간이 기적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6년작 <프레스티지>.
이는 곧 질문의 반복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스스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기도 하는가? 왜 간혹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도 기쁨을 느끼는가? 더 근원적 생존이란 결국 무엇일까 등의 인문학적 질문 말이다.

많은 SF영화가 최후의 해결책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구한 것도 사랑이었고 <아바타>에서 최종적 선택도 사랑이었다. <인터스텔라>에서도 사랑은 무척 중요한 매개가 된다. 우리를 이끄는 어떤 초월적 힘,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외계의 창조자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 무엇을 크리스토퍼 놀란은 사랑이라고 고쳐 부른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매번 기적을 행하고 있다고 말이다.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철학적 사유를 전해주는 수작, <인터스텔라>다.

강유정 -영화·문학평론가. 전 고려대 연구교수. 2005년 3개 신문사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했고, 지은 책으로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스무 살 영화관>이 있다. 현재 <김C의 뮤직쇼>에서 ‘거꾸로 걷는 영화관’을, KBS <문화공감>에서 ‘거울나라의 사람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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