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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 중국 고속철의 천하통일 ‘모든 길은 베이징으로 통한다' 

세계 시장 점유율 49% 돌파, 기술력도 종주국 프랑스 앞질러… ‘21세기판 실크로드’ 구축해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전략 저지하는 효과도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중국 고속철은 2014년 시속 605㎞로 운행하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수십 대의 고속철 차량이 줄지어 서 있는 중국 허베이성 우한의 차량 기지.
한혈마(汗血馬)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고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전설의 명마다. 대완(大宛: 중앙아시아의페르가나 지역)의 한혈마가 중국에 알려진 것은 한무제(漢武帝, BC 156~BC 87년)때다. 한무제는 서역으로 대군을 보내 이 말을 가져오도록 했다. 이후 유목민족인 흉노족을 토벌하고 서역과의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당시 한혈마는 실크로드를 오가는 데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한혈마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3천 마리 정도만 남아 있다. 이 가운데 2천 마리가 중앙아시아 서남부의 초원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다.

지난 5월 12일 중국 베이징 노동인민문화궁에서 세계한혈마협회 특별대회 및 중국말 문화제가 열렸다. 옛 실크로드 상인들의 교역과 동서 문화교류, 실크로드 출발점이었던 시안(長安)의 활기찬 모습 등을 재현한 공연도 열렸다. 이 행사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으로부터 한혈마 한 마리를 선물받고 감격했다. 시 주석은 “중국인은 한혈마를 좋아해 예전부터 천마(天馬)라는 명예로운 이름까지 붙였다”면서 “한혈마가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됐듯이 중국과 중앙아시아가 힘을 합쳐 21세기 신(新)실크로드 시대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과 도자기, 칠기 등을 중앙아시아, 유럽과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2100여 년이 흐른 21세기, 제2의 실크로드를 꿈꾸는 중국이 새로운 한혈마인 고속철을 타고 전 세계를 질주하고 있다. 중국 고속철은 세계 고속철 시장에서 점유율 49%를 차지하며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중국 고속철 기업들의 2014년 해외 수주 규모는 1300억 위안(22조3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속철 기업과 철도 기업들은 고속철뿐만 아니라 경전철과 철도 차량 공급 등 다양한 철도건설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특히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해외 순방 때마다 ‘고속철 세일즈 외교’를 펼치며 적극적으로 측면지원을 해왔다.

중국 기업들이 올해 수주한 고속철을 비롯해 각종 철도건설 및 차량 내역을 보면 눈부실 정도다. 대표적인 고속철기업인 중궈난처(中國南車)는 지난 6월 36억 위안 규모의 싱가포르 고속철 공급 사업자 자격을 따냈다. 또 다른 고속철 기업인 중궈베이처(中國北車)는 지난 6월 필리핀 교통통신부(DOTC)와 5억1천만 위안 규모의 경전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고속철, 미국 보스턴을 달린다


▎1. 청나라 말기인 1840년대에 ‘쿨리’로 불리는 중국 저임금 노동자들이 미국의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대거 투입됐다. 2. 1909년 10월 2일 중국 난커우(南口 )에서 거행된 징장철도 개통식. 이로부터 100년 만에 중국은 세계 고속철의 맹주로 떠올랐다.
중궈난처의 자회사이자 중국의 대표적 고속철 차량 제작업체인 칭다오 난처스팡(南車四方)은 지난 7월 아르헨티나와 5억2천만 위안의 전동차량 및 부속품 수출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9억6천만 위안 규모의 싱가포르 전동차량 공급업체로 낙찰되기도 했다. 중궈베이처의 자회사인 베이징얼스치 철도교통설비공사(北京二七軌道交通裝備公司)도 난 7월 콩고에 1억500만 위안 규모의 기관차 수출계약을 따냈다. 이 밖에도 중궈베이처는 지난 10월 미국 보스턴에 5억7천만 달러 규모의 지하철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보스턴 지하철 레드라인과 오렌지라인 노선에 총 284대의 지하철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중국의 철도가 미국에 진출하기는 이번에 처음이다.

중국철도건설공사(中國鐵建)는 지난 11월 나이지리아 해안철도 사업권을 따냈다. 이 계약은 무려 807억7900만 위안에 이르는 규모로, 중국의 해외 수주 중 최대 금액이다. 이 사업은 나이지리아 서부의 경제 수도 라고스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10개 주를 거쳐 동쪽 카라바에 이르는 철도를 건설하는 것이다. 총 길이 1402㎞로 22개 역이 세워질 예정이며 시속 120㎞로 설계된다. 중국은 지난 8월 1344㎞에 달하는 앙골라 횡단철도를 완공해 운행 중이며 에티오피아에서도 756㎞의 철도를 건설하고 있다. 케냐에서도 항구도시 몸바사에서 수도 나이로비를 연결하는 480㎞의 철도를 건설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케냐에서 탄자니아·우간다·르완다·부룬디·남수단 등 동아프리카 6개국을 연결하는 장기 철도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고속철은 2011년 터키에 첫 수출된 이후 본격적인 해외진출의 시동을 걸었다. 당시 수주한 고속철사업은 지난 7월에 개통돼 운행 중이다. 수도 앙카라와 최대 도시 이스탄불 구간을 운행하는 길이 533㎞의 고속철은 시속 250㎞로 달린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이란에서 22억 달러 규모의 580㎞ 구간 고속철 사업을 따냈다. 이어 2013년에는 루마니아에서 고속철 건설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6월 런던을 방문했을 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영국의 차세대 인프라 사업인 고속철 프로젝트에 중국의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철도 원조’인 영국에 중국의 고속철이 진출하게 된 셈이다.

중국은 현재 20~30개국과 고속철 건설 협상을 벌이거나 수주 경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중에서 중국이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프로젝트는 크게 세 개 노선의 고속철 건설사업이다. 첫째는 러시아와의 고속철 협력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고속철로 연결하는 것이다. 러시아철도공사는 모스크바∼베이징을 연결하는 고속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총 투자액은 7조 루블(170조원)에 이르며 이 중 3조 루블은 러시아가 조달하고, 4조 루블은 중국이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7천∼8천㎞에 달하는 베이징∼모스크바 고속철이 완공되면 양국간 화물운송 시간은 현재의 5일에서 30시간으로 단축되며 170량의 화물열차와 400량의 여객열차가 운행된다. 특히 시속 300㎞ 이상으로 달리는 고냉지대용 고속철은 중국만이 보유한 기술력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지난 10월 모스크바~카잔을 연결하는 770㎞ 구간의 고속철을 건설하는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정부는 오는 2018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맞춰 100억 달러를 투입해 고속철을 건설할 계획이다. 모스크바~카잔 구간의 고속철이 완공되면 현재 13시간이 걸리는 이동시간을 3시간30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양국은 앞으로 모스크바~카잔 구간을 중장기적으로 베이징까지 연결할 계획이다.

해외 고속철 수주 3대 프로젝트에 ‘올인’


▎지난 7월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브릭스(BRICS) 5개국과 남미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맨 오른쪽).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또 다른 프로젝트는 인도 정부가 추진하는 델리∼첸나이 사업이다. 델리∼첸나이 고속철 구간은 길이가 1754㎞로 세계에서 둘째로 긴 고속철 구간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철 구간은 베이징∼광저우 노선으로 2298㎞다. 델리∼첸나이 고속철 프로젝트의 사업비는 326억 달러(36조2천억원)로 추산된다. 양국 정부는 지난 9월 시 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할 당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델리~첸나이 고속철을 공동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이르면 새해 초에 타당성 연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인도의 고속철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해온 만큼, 만약 인도가 중국과 손잡는다면 일본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는 모디 인도 총리와 지난 9월 1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에서 향후 5년간 인도에 3조5000억 엔을 투·융자해 진출 기업 수를 갑절로 키우겠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포함시켰다. 중국에 인도의 고속철 사업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인도의 철도망은 10만㎞에 이르고 육상 화물수송의 40%, 여객수송의 20%를 차지하지만 노후시설의 교체가 시급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철도 현대화를 위해 델리∼첸나이뿐만 아니라 델리∼뭄바이, 뭄바이∼첸나이, 첸나이∼콜카타, 콜카타∼델리, 뭄바이∼콜카타를 고속철로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이 델리~첸나이 구간의 사업을 수주한다면 다른 구간들의 사업을 따내는 데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중국이 눈독을 들이는 셋째 프로젝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고속철이다. 이 구간은 길이 1287㎞이며, 공사비는 680억 달러(7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이 사업에서 시속 354㎞의 고속철 95량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일본과 스페인 등 10여 개 업체가 입찰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의 경쟁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은 청(淸)나라 말인 1849년 ‘쿨리(苦力)’로 불린 저임금 노동자를 캘리포니아로 보내 미국 대륙 횡단철도에 참여했다. 당시 최악의 난코스였던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통과하는 철도 건설에 중국 노동자 1만2천여 명을 투입해 이 중 1200여 명이 숨지기도 했다. 현재의 고속철 공사는 과거와는 달리 기술력이 중요하다. 몸으로 때우던 중국이 이제는 환골탈태해 수준 높은 기술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이 캘리포니아 고속철 수주에 성공한다면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 사건이 될 것이다.

중국은 또 브라질, 페루와 함께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을 연결하는 철도를 공동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시 주석은 지난 7월 남미를 방문해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브라질·페루 등 3개국이 남미대륙횡단철도를 공동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호세프 대통령과 우말라 대통령이 동의했다. 중국은 지하자원과 곡물을 남미에서 대규모 수입하고 있어 남미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면 운송비 등이 대폭 절감될 수 있게 된다. 브라질과 페루 등 남미국가들도 내륙과 태평양 연안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3국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기획과 설계·건설·운영 등에 관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고속철은 후발주자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베이징올림픽 직전인 2008년 8월 1일 첫 고속철인 베이징~톈진 고속철을 개통했다. 2004년 4월 1일 서울~대구 경부고속철 1단계를 개통한 한국에도 4년이나 뒤처졌다. 하지만 현재 중국 고속철 운영 거리는 1만1천㎞를 넘어섰다. 전 세계 고속철 길이의 50%에 이르는 수치다. 중국 전역을 4개의 종축과 4개의 횡축을 기반으로 촘촘히 연결하는 ‘4종4횡(四縱四橫)’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오는 2020년에는 총연장이 1만8천㎞로 늘어날 예정이다.

4종 노선은 베이징~상하이, 베이징~우한~광저우~선전~홍콩, 베이징~선양~하얼빈, 항저우~닝보~푸저우~샤먼~선전 구간이며, 4횡 노선은 칭다오~스자좡~타이위안, 쉬저우~정저우~란저우, 상하이~난징~우한~충칭~청두, 상하이~항저우~난창~창사~쿤밍이다. 중국 정부의 ‘철도 12차 5개년(2011~2015년)’ 발전계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각 성 소재지와 인구 50만 명 이상 되는 모든 도시에 기본적으로 고속철이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연간 40억 명이 고속철을 이용하게 된다. 중국 철도총공사는 지난 7월 1일부터 매일 총 2447편성(1편성은 한 노선의 양쪽 종착역에서 열차가 동시에 출발하는 운행 횟수)의 여객열차 가운데 54.3%인 1330편성을 시속 250㎞ 이상 고속열차로 운행하고 있다.

대륙을 바둑판처럼 연결하는 ‘4종4횡’ 플랜

고속철은 중국처럼 인구가 많고 넓은 나라에서 효과가 더욱 크다. 경제성장과 도시화, 인적 교류 확대를 통한 사회통합 등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베이징~상하이 구간 (1318㎞)은 운행시간이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행기 대신 고속철을 이용한다. 고속철은 접근성이 편리하고 시간이 정확하다는 게 장점이다. 중국에서 여행거리가 800㎞ 이하의 경우에는 항공편보다 고속철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빠른 시간에 전국을 고속철로 연결한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고속철 건설에서 ‘차이나 스피드’란 말이 회자될 정도다. 중국의 고속철은 정치적으로 볼 때도 전국을 하나의 시간대로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한 함의가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음으로써 통일된 행정을 통해 국민을 통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도시와 농촌, 지방과 지방간의 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분리 독립 움직임과 소요사태 등에 대비하고 각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중국이 고속철 제작을 시작한 것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난 1978년 일본을 방문해 도카이도(東海道) 신칸센을 탔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도쿄~교토 구간의 신칸센을 탑승한 덩은 “바람과 같이 빠르다”면서 일본의 고속철 기술에 감탄했다고 한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세계 최초의 고속철 신칸센 운행을 시작했다. 이때 중국의 평균 철도속도는 43㎞에 불과했다. 덩의 방일 직후 신칸센은 중국 고속철의 벤치마킹 모델이 됐다.

현재 중국 고속철의 기술력은 이미 고속철 종주국인 프랑스를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고속철은 지난 1월 시속 605㎞로 운행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세계 주요 고속철의 평균 운행속도가 시속 300∼320㎞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정도 빠르다.

지난 2007년 4월 프랑스 고속철 테제베(TGV)가 세운 세계 최고기록인 시속 574.8㎞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중국과학원은 머지않아 고속철이 민용 항공기 속도(시속 800∼ 850㎞)에 도전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 고속철 선진국 모두로부터 습득한 중국의 고속철 기술력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다.

중국 고속철은 2012년 12월 세계 최초로 혹한 지대인 하얼빈~다롄 구간도 주파했다. 총연장 904㎞의 다롄~하얼빈 구간은 겨울철 최저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 중국은 이 지역의 최근 30년간 기상 데이터를 분석해 영상 40도부터 영하 40도까지 무려 80도에 이르는 기온 차이와 폭설과 강풍에도 견딜 수 있는 궤도와 차량, 전력, 통신, 신호 설비 등을 구축했다. 현재 러시아와 북유럽에도 영하 40도의 혹한지대를 지나는 총연장 700㎞의 철도 노선 3개가 있지만 고속철이 아닌 일반열차다. 게다가 세계 최장의 고속철을 건설,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어느 나라도 따라오기 힘들다.

중국 고속철은 건설비용도 저렴하다. 중국의 고속철 건설비용은 ㎞당 3300만 달러로 외국 업체들의 5천만 달러에 비해 35% 정도 낮은 편이다. 가장 좋은 기술로 가장 싸게 고속철을 건설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기술과 경험 이외에 풍부한 자금도 보유하고 있어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등 후진국이나 개도국에 대해서는 저리차관 등을 통해 자금도 지원해준다. 고속철을 지어주고 대금을 자원으로 챙기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다. 막대한 양의 에너지 조달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고속철이 효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리커창 총리는 “중국 고속철의 해외 진출은 장비와 노동력을 수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시장에서의 경쟁 과정에서 스스로의 종합적 실력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 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민용 항공기 속도(시속 800∼850㎞)에 도전

중국 고속철은 앞으로 경쟁력에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우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양대 고속철 업체인 중궈난처와 중궈베이처가 합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국유기업인 두 회사는 합병 초안을 마련해 국무원에 제출한 상태다. 두 회사는 지난 10월 27일부터 합병 건으로 주식거래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현재 중궈난처와 중궈베이처의 자산은 각각 1500억 위안에 육박할 만큼 합병 이후의 자산이 3천억 위안(54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초대형 공룡기업이 될 전망이다. 세계 철로기술장비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 철도 관련 장비시장에서 영업수익 기준으로 중궈베이처와 중궈난처는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3~7위는 캐나다 봄바르디어, 독일 지멘스, 프랑스의 알스톰,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다. 중궈난처와 중궈베이처의 영업수입을 합친 액수는 이들 5개사의 영업수익 합계와 맞먹을 정도다.

중국 정부가 고속철 양대 기업을 합병하려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두 회사가 해외에서 출혈 경쟁하는 상황을 막고 규모의 경제를 키워 경쟁력을 더욱 높이려는 포석인 셈이다. 왕멍수 중국공정원 원사는 “두 회사의 합병은 중국 고속철의 해외진출 전략을 고도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회사는 합병 이후 5년내에 매출을 지금의 3배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중국은 고속철을 통해 21세기판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고속철 네트워크 계획을 추진한다. 글로벌 고속철 네트워크는 유라시아 고속철, 중앙아시아 고속철, 범아시아 고속철 등 크게 3개 노선으로 구성된다. 유라시아 노선은 영국 런던~파리(프랑스)~베를린(독일)~바르샤바(폴란드)~키예프(우크라이나)~모스크바(러시아)~알마티(카자흐스탄)를 지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로 연결되고 간쑤성 란저우를 거쳐 중국 각지로 나가는 것이다.

유라시아 노선은 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몽골의 울란바토르로 연결된 후 네이멍구 자치구 만저우리를 거쳐 러시아의 하바롭스크를 잇는 지선도 포함된다. 이 노선은 북한을 거쳐 한국까지 연결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남북한에서 유럽을 철도로 연결하자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계획이다. 이 구상은 부산을 출발해 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 혹은 북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을 말한다.

중국은 2013년 7월 자국과 독일을 잇는 1만214㎞의 화물열차 노선을 개통했다. 이 노선은 허난성 정저우를 출발, 중국대륙횡단철도(TCR)를 타고 카자흐스탄을 지난 뒤 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를 거쳐 독일 함부르크로 이어진다. 열차 운송 시간은 16∼18일로 선박을 이용했을 때보다 보름 정도 단축된다. 이 노선은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과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된다. 최근 들어 중국과 독일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란 말도 있다. 실크로드라는 말을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 쓴 것처럼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과 중국이 21세기판 실크로드를 통해 손을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노선은 터키~이란~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을 거쳐 우루무치로 이어지는데, 이 노선은 터키에서 독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시 주석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실크로드 경제지대(絲綢之路經濟帶)를 만들어 공동번영과 협력의 시대를 열자”고 제의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실크로드 경제지대를 위해 중국과 중앙아시아간 교통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태평양에서 발트해까지 연결통로를 만들고 이를 동유럽과 서남아시아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말하는 실크로드 경제지대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 각국과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목표는 또 실크로드 경제지대를 발판으로 내친 김에 유럽까지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중화민국의 위대한 꿈과 차이나 고속철의 질주


▎신비의 땅 티베트 고원지대를 질주하는 칭짱열차가 2006년 개통됐다. 중국 베이징에서 티베트 라싸를 잇는 칭짱철도는 장장 4천㎞를 달린다.
중국의 이런 계획에서 중요한 지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실크로드가 연결되는 출발점이다. 중국철도총공사는 지난 11월 간쑤성 성도 란저우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구도인 우루무치를 잇는 총 연장 1776㎞의 ‘란-신 고속철’ 중 우루무치~하미 구간을 개통했다. 각종 테러가 빈발해 중국의 화약고로 불리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에도 고속철이 개통된 것이다. 이 고속철은 우루무치~하미 사이의 530㎞ 구간을 3시간 만에 주파한다. 전체 노선은 2015년 말에 완공된다. 이 노선은 만년설이 덮인 고산지대, 사람은 물론 동물도 살 수 없는 습지대, 기반이 약해 시공이 힘든 사막지대 등을 모두 통과한다. 여기에는 해발 3607m, 길이 1만6336㎞의 고산 터널도 포함된다. 이 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속철 터널이 될 것이다. 이 노선 전체를 완공하는 데에 1400억 위안(23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공사비가 투입됐다. 이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게 분명한데도 이 공사를 강행한 것은 이곳이 새로운 실크로드 구축에 반드시 거쳐갈 지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략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새롭게 구축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세상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이 세계의 고속철은 모두 베이징으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중국의 전략은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으리란 전망까지 나온다.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볼 때 고속철을 이용해 주변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고속철은 세계 패권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속철은 특성상 한번 깔리면 건설한 국가의 철도 표준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중국은 고속철을 통해 자국의 규칙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고속철을 통해 경제적 이득도 얻고 영향력도 확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는 셈이다. 중국의 고속철은 앞으로 상당기간 전 세계를 향해 무한질주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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