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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 대통령의 ‘소신’ 보수의 위기 부른다 

박 대통령의 불통 행보가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 어두운 그림자 드리울까 보수진영 노심초사… 30~40%대 지지율이 차기 주자군 등장 막고 새 구심점 마련에도 찬물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 등 국무위원들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답하며 국무위원 쪽을 바라보고 있다.
영남에서 중견 기업체를 경영하는 70대의 A씨는 2012년 대선 당시 자비를 들여가며 박근혜 후보 지지활동을 폈다. 기권하거나 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내 20~30대 직원들을 저녁 자리에 불러 보수 재집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박 후보와 일면식도 없고, 박 후보는 그의 존재조차 몰랐다. 보수 성향의 장년층이 흔히 그랬듯이 그냥 좋아서 신념과도 같이 박 후보 당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이다.

요즘 그는 ‘박근혜’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넌더리를 낸다. 그는 “청와대 문건 파동과 더불어 신년 기자회견을 보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앞으로도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2년이 걸리지 않더라”며 넋두리를 했다. “청와대 참모도 국회의원도 소통이 안 된다고 하는데 본인은 민생 현장에 가서 터놓고 얘기했다고 한다. 눈을 맞추고 얘기하고 싶다는 참모들에게 대면보고가 필요하느냐고 태연히 반문한다. 국민 상당수가 공감하는 문건 의혹에 대해서도 말도 안되는 일쯤으로 일축한다. 세상이 뭐라 하든 자기식대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꽉 막힌 모습에 할 말이 없더라.” A씨는 새해 들어 불거진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 파동, 청와대 행정관의 문건 배후 발언 논란 등 청와대의 기강 문란은 입에 올리기조차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보수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B씨는 최근 자신의 모친 얘기를 들려줬다. 부친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무위원을 지냈고, 모친도 청와대를 더러 방문해 육영수 여사와 영애, 영식과 교분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적극 반겼던 모친이 어느 순간 부터인가 대통령에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모친은 ‘지금의 박 대통령은 육 여사 생전의 해맑던 영애 박근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그는 전했다. B씨가 옮긴 모친의 발언은 이랬다. “그 시절 어린 박근혜는 상냥하면서도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았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말로는 귀를 열어둔다지만 궁극엔 자신의 의견만 내세운다. 언제부터 저런 고집불통이 됐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레임덕 부르는 특정인 중심의 권력 운용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 말 아르바이트생들이 부당대우를 받는다는 질문에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가 알바노조의 거센 반발을 샀다.
영남권의 대표적 보수인사 A씨,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을 기억하고 흠모하는 B씨와 그의 모친. 이들은 모두 철두철미한 보수 성향의 소유자이면서 대선 당시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이들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요즘엔 이들처럼 박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 ‘박근혜 지지자’들을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내놓고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풍경으로까지 와 닿는다. 법조계의 한 보수 원로급 인사는 “사실 박 대통령을 보수를 대변하는 지도자로 불러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한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통하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박근혜 ‘지지’에서 ‘반대’로 돌아선 대표적인 인사다. 그는 “박 대통령이 이제는 어떤 결정도 못 내리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국정 마비 가능성을 경계한다. 박 대통령 리더십이 붕괴 된 탓에 자신감도 잃어버리고 아주 어려운 지경으로 내닫는다는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누구의 말도 안 듣고, 연락도 안 되는 것이고. 그래서 너무 황당하다. 정부가 이제는 희화화마저 되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한 핵심인사도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한다. 정권의 레임덕은 언제 오느냐의 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전망했다. 레임덕은 청와대와 정권이 ‘일’에 몰입해 국정에 임한다면 늦춰지겠지만 특정인 중심의 ‘권력’에 따라 움직인다면 당겨진다는 게 이 인사의 경험담이다. 새누리당의 중진의원은 총리, 장관 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와 국무위원들의 중도하차를 보면서 “대통령이 사람을 너무 편협하게 쓰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이 자기 말 잘 듣는 사람만 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도 했다. “대통령에게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상황이 많이 심각해졌다.”

‘7인회’의 침묵과 고립

정권 출범 3년 차에 접어드는 박 대통령을 향하는 보수의 시선이 날로 온기를 잃어간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시련의 기간을 감내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미숙한 대응에서부터 거듭된 인사파행,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등을 거치면서 55~60% 대를 오가던 국정지지율이 40% 안팎으로 주저앉았다. 전체적으로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가 내리막길의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승요인보다는 하락요인이 더 많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결국 경제다. 집권 1, 2년차에는 경제가 어려워도 화살은 전임 정권에게 돌아갔지만 집권 3년차부터는 그 책임을 현 정부가 져야 한다고 동아시아연구원의 정한울 사무국장은 말한다. 정 사무국장은 “올해부터는 이명박 정부 탓이나,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면서 “국가가 발표하는 거시경제 지표상의 실적이 아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제에 따라 지지율이 출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그 불똥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로 옮겨가는 경향도 감지된다. 박 대통령은 선친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업을 계승하고자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누차 밝혔다. 그래서 지금은 대통령이 돼서 아버지의 못다 이룬 나라사랑의 꿈을 실천하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전 대통령의 평가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하향곡선을 그린다는 점이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사회조사센터가 2004년, 2014년 실시한 역대 대통령 선호도 분석 조사결과가 잘 보여준다.

가장 좋아하는 국가 지도자를 묻는 2004년 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50%의 지지를 얻어 노무현 전 대통령(11.6%), 김대중 전 대통령(8.6%)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2014년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38.5%로 뚝 떨어졌고,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32.1%)과 김대중 전 대통령(11.5%)이 올라갔다. 박 전 대통령 선호도는 11.5%포인트 준 반면, 노 전 대통령 선호도는 20%포인트 늘어 대조를 이뤘다. 아직 박근혜 정부가 임기의 절반도 못 채운 시점이긴 하지만 지금의 추세라면 역대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순위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는 물론 과거의 영광마저 빛이 바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만들기에 앞장선 사람들 중에는 아예 입을 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원로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 멤버들이 그렇다. 박근혜 정부 2년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용환 한나라당 고문은 “내 의견이 없는 게 아니지만 언론에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한사코 말을 아꼈다. 1월 초 박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여러 현안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기에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 약속이 실행에 옮겨지는 걸 지켜보자는 말인가?

“(청와대 문건 파동 등과 관련한) 참모를 거느린 박 대통령께서 충분히 해명됐다고 간주하고, 또 참모들이 최선을 다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얘기를 하셨다. 나는 대통령께서 하시말씀에 토를 달고 싶지 않다.”

꼬여가는 정국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밖에서 언론에 가타부타 자꾸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의견이 있으면 어떻게든지 대통령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얘기를 해야 할 텐데…. 내가 박 대통령을 만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이해해달라.”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에게 어떻게 협조해야 하나?

“새누리당에는 김무성 대표, 청와대에는 비서실을 지휘하는 비서실장이 있다. 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분들이 대통령을 잘 보필하겠지.”

김 고문은 혹여 박 대통령에게 누가될까 봐 발언을 극도로 삼갔다. 또 박 대통령을 만나 진언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는 안타까움도 그의 발언에서 배어났다. 같은 ‘7인회’ 멤버로 알려진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도 기자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대통령으로부터) 떨어진 지 오래”라면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일체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는 말을 아꼈다.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라고 보면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셔도 된다”고 답했다가 “아니다”라고도 말하는 등 마음이 꽤 착잡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잃어버린 보수정권’ 10년 될라


▎2012년 18대 대선 당시 투표소에 길게 늘어선 유권자들.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중·장년층에서도 국정운영에 실망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 만들기에 혼신의 힘을 쏟은 이들조차 공개적인 발언을 삼갈 정도로 박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만큼 보수진영 내 기류가 심상찮다는 말도 된다.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요즘은 냉장고 하나를 팔아도 제조회사가 5년간 애프터서비스를 한다”면서 “우리도 박 대통령을 만든 이상 임기 5년간 좋은 평가를 받도록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박 대통령이 일을 잘하도록’ 지원하는게 자신들의 책무라고 여기는 듯했다. 7인회 멤버들조차도 ‘박 대통령이 잘한다’고 딱 부러지게 말을 못하는 게 요즘의 보수진영의 현주소다.

대통령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그만이지만 총선 (2016년)과 대선(2017년)을 치러야 할 새누리당은 막막할 따름이다. 전망은 어둡다. 여권의 두 축인 당·청이 서로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행정관의 ‘문건 배후’ 발언은 김무성 대표에 대한 대통령 측근 참모들의 불신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이에 새누리당 소장파 의원들은 역으로 청와대 참모들을 정조준한다. 김성태 의원은 “당 대표가 대통령을 잘 모시려고 그렇게 무던히 노력하는데 정작 청와대 참모라는 사람들은 집권당 대표를 우습게 본다”며 여권이 위계질서가 엉망으로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정치 권력을 장악한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한 지붕 두 가족’을 이루는 새누리당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직책 선정과 공천 방식 등을 두고 언제든지 격돌할 것 같은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청와대의 잇딴 실책과 여권 내 갈등 요인,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주는 피로감 등을 근거로 향후 선거에서 보수진영이 고전하리라는 관측이 확산된다.

새누리당이 정권을 되찾아오던 2007년 17대 대선 당시로 돌아가보자.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입사 5년 만에 현대건설 이사, 12년 만인 35세에 최고경영자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별칭을 얻은 이명박 후보를 내세워 압승을 거뒀다.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공격해 정권을 되찾아왔다. 진보정권 피로감을 선거에 활용한 전략이 재미를 보았다고 새누리당은 말한다.

그렇게 해서 세운 보수정권(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2년)은 크게 달라졌을까?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10년과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10년을 평가하는 심판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보는 내년 총선 전망은 잿빛이다. 새누리당이 수도권은 물론, 충청, 강원, 부산·울산·경남 심지어 대구·경북에서도 굉장히 힘든 선거전을 치러야 한다고 전망했다. 유 의원은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과 달리 내년 총선에서는 결집할 동기가 많이 약화됐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이는 박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라기보다는 보수정권 8년에 대한 평가다. 선거에 대한 불안감이 새누리당에는 엄청난 위기의식이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대선 전망은 더욱 암담하다고 하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 말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여야의 상위 4명의 지지율은 각각 다음과 같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문재인 의원이 16.3%, 박원순 시장 14.6%, 안철수 전 대표 7.7%, 안희정 충남지사가 3.6%를 얻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12.7%, 김문수 보수혁신 특위 위원장은 7.6%, 홍준표 경남지사는 7.5%, 정몽준 전 대표가 5.0%의 지지를 기록했다.

새누리당이 대통령에게 꼼짝 못하는 이유


▎18대 대선을 하루 앞둔 2012년 12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결한 보수 지지층. 내년 총선에서는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여권에서 흘러나온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야당 상위 주자 4명의 지지율과 여당 상위 주자 4명의 지지율 합계 격차를 주목하라”고 했다. 야당 4명 지지율을 합계는 42.2%에 달한다. 여당 4명의 지지율 합계는 32.8%에 그쳤다. 야당이 전체적으로 10% 가까운 우위를 보였다. 다음 대선을 기준으로 보자면 정권교체 쪽으로 여론이 쏠렸다는 분석이 나옴직하다.

보수진영에서는 박 대통령이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존하는 국정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게 안 된다면 누군가 차기 주자가 나서 이런 불안하고 어정쩡한 상황을 교통정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35~40%에 이르는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여권 내 그 누구도 추월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지층을 지렛대삼아 차기 대선 주자 선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권 내 차기 주자군도 이 점을 고려한다면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한마디로 “대통령에게 밉보이면 30%의 지지율을 잃고 시작해야 하기에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이 조성돼야 차기 주자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할지라도 결코 붕괴되지는 않는다고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주장했다. 차라리 붕괴된다면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해 다른 방향의 활로를 모색할 수는 있다. 이 전문가는 “하지만 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다른 점은 집권의 기반이 된 ‘통치연합’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여권이 지금처럼 결속된다면 급격한 하락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통치연합이란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보수 세력 전반의 결속을 말한다. 박 대통령이 보수 세력을 아우르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친이계가 들썩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여권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간 건 아니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창당 및 호남의 이탈이라든가, 김영삼 정부·김대중 정부 당시와 같이 JP(김종필 전 총리)의 탈당 내지는 공동정부 이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당은 야당의 공격으로 무너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언제나 여당 내부의 균열에서부터 붕괴는 시작됐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이 여권 진용을 깨뜨리지 않는 다면 보수진영은 박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정윤회 문건 파동’, ‘김영한 항명 파동’ 등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로 가는 보고와 소통의 경로가 아주 제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을 매개로 하는 박 대통령의 특이한 소통 방식은 정부·여당의 주요 인사들에게 소외감과 좌절감을 안긴다. 여론은 대통령의 인사 및 소통 방식에 의문이 많고 불만이 깊다. 이와 관련해 한 국가 원로급 인사는 “국내 소통도 잘 안 되는 박 대통령이 외부와의 소통은 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남북 대화를 지지하는 이 원로급 인사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려도 걱정, 안 열려도 걱정”이라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인사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경기’와 같다. 기본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은 임기의 비대칭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3년의 임기를 남긴 박 대통령과 별탈 없으면 평생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과의 만남이다. 시간의 이익은 북한에 있어 남한으로서는 불리한 사안이다.

정상회담에 임하는 테크닉에서도 우리가 앞선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상회담 관련 전략적 사고에서 북한이 우리보다 뛰어나다”고 이 인사는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안보 라인(김관진 청와대 안보정책실장-류길재 통일부장관-홍영표 청와대 통일비서관)이 북한의 노회한 대남전략통들에 비해 중량감, 경륜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인사는 “류 장관이나 홍 비서관은 실력은 두텁지만 전략적 마인드는 잘 모르겠다”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요즘 청와대와 정부에서 보신주의가 확산되고 있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구사하리라는 기대는 점점 사라져간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김정은과는 제대로 소통될까?

반면 북한은 정상회담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취하고, 남한에 반미친북 세력을 확산시킨다는 전략을 일관되게 구사한다. 그는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주역들이 건재할 뿐만 아니라 밀고 당기는 협상력 또한 뛰어나다”고 전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대화에 응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원하는 실리는 챙기는 데 탁월한 인물이 즐비하다.”

불리한 여건을 딛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일은 전적으로 정상의 역량에 속한다. 박 대통령이 변칙과 파격을 일삼는 젊고 야심 찬 북한 지도자를 능히 제압하고 압도하느냐에 회담의 성패가 달려있다. 사전에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뜬금없는 대화나 제안이 툭툭 나오는 게 정상회담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박 대통령보다 한참 어리다는 이유로 상당히 공격적으로 또 무례하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이 인사는 예상했다. “젊고 경험이 일천하다는 이유로 버릇없이 굴어도 실수로 용납되고 양해될 수도 있는 회담이 이번 정상회담이다. 노회한 지도자일수록,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일수록 돌발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이다. 그러자면 평소 소양과 토론, 단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의 안보전략 수립을 자문하는 한 안보 전문가는 “사회주의 토론을 경험한 김정은이 박 대통령을 흔들자고 나올 수도 있다”면서 “평소 준비된 원고를 주로 읽어내려가는 박 대통령이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는지 걱정”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금의 청와대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다 보니 일하는 이들을 무기력증에 빠지게 한다. 박 대통령에게 변화를 주문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이와 관련해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는 정치 지도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지적 통찰력, 사회통합능력 그리고 책임성을 들면서 “현행 대통령제에서는 이런 인물을 뽑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현행 정치 구조와 선거제도에서는 이런 자질을 갖추고 대중성도 획득한 지도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나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지도력을 보완하라고 김 교수는 조언한다. “국민이 나의 충정과 헌신을 몰라준다 할 게 아니라 나를 믿고 따르게끔 내가 진정성을 갖고 행동했는가를 반추해야 한다. 지금 국민의 수준은 지난 날 국가 최고지도자들의 지적 수준을 능가할 만큼 높아졌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지도자급 인사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때 박근혜 정부의 총리 후보로도 거론된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박 대통령에게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고 충고했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묵묵히 일하면서 고생했고 비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의 설명은 핵심을 비켜났다”면서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면 그럼 어디에 문제가 있어 그런 일이 벌어졌나를 고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비서관 3인에게 문제가 없다면 국민들이 왜 청와대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게 결국 구조를 고치라는 말 아니겠나.” 진영 논리로 갈라진 대한민국이지만 대통령의 변신과 자각 요구에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고 하겠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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