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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 청와대 민정수석 항명 파동의 顚末 - 왜곡된 구조와 자괴감의 충돌 

엘리트가 적응하기 어려운 업무 시스템에서 정보마저 소외돼… 일하려는 참모는 대통령이 직접 만나 힘 실어줘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1월 9일 오전 국회 운영위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에 대한 사과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김영한 민정수석이 운영위 출석 지시에 불응해 일대 파란이 일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바쁜 와중에서도 친박계 원로급 인사들과 만나 시중의 여론을 청취하고 여러 가지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원조 친박’으로 불리던 김용갑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박 후보를 자주 만났다. 그에겐 박 후보를 만날 때마다 건네는 단골 레퍼토리가 하나 있었다. “대통령이 되면 민정수석을 잘 골라야 한다”는 당부였다.

본인이 5공화국에서 민정수석을 역임했기에 그 자리가 얼마나 막중한가를 절감한 까닭이다. 특히 “검찰 출신 인사는 절대로 민정수석에 기용해선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검찰 출신 인사는 대부분의 사안을 검사적 시각에서 보기에 민정수석 본연의 역할에 충실을 기하기 어렵다. 민정수석은 정권 실세 인사의 동향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대통령이 싫어하는 시중의 여론도 전달해야 한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민정수석이다.” 그런 자리에 상명하복 문화에 길들여진 검찰 출신을 임명하면 직언이 나오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검찰을 장악하기는커녕 검찰논리에 포섭되기 쉽다. 그래서 그는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는 웬만한 용기와 헌신이 없이는 버텨내기 어려운 자리”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여 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사상 초유의 청와대 항명 파동이 박근혜 정부에서 터져나왔다. 1월 9일 김영한 청와대 당시 민정수석이 청와대 문건 유출 관련한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거부하며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여야가 민정수석 출석에 합의하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출석을 지시했음에도 불참의사를 꺾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항명에 국회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민정수석이 출두하도록 제가 지시를 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출석할 수 없다 하는 취지의 행동을 지금 취하고 있어서…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이완구 국회운영위원장: 출석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까?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그런 반응을 본인이 보였습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올해로 국회의원은 11년차 입니다만 오늘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오간 대화록이다. 그 누구도 예상을 못한 김영한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 거부사태에 직면한 청와대와 국회 수뇌부들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짧은 대화 속에서도 묻어난다.

그 즈음 김영한 민정수석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지난 25년간 특별한 경우 외에는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돼왔던 것인데 정치공세에 굴복한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말에 따르면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에 합의해 준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와 이를 받아 출석을 지시한 김기춘 실장은 졸지에 ‘정치공세에 굴복한 나쁜 선례를 남긴’ 공직자들이 돼버린 것이다. 청와대 위계질서가 뒤죽박죽이 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검사 출신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조차 “아무리 사의를 갖고 있어도 후임자가 올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하는 게 공직자의 자세”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수석들 사이에 확산되는 박탈감

국회와 청와대에 불을 지른 김영한 수석은 당일 오후 사표를 던지고는 총총히 청와대를 빠져나갔다는 게 그와 가까웠던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조차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날 항명 파동은 그가 혼자서 전격 단행한 아주 ‘발칙한’ 사건이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은 사표를 낸 그날 밤 사석에서 김기춘 실장이 대통령을 잘못 모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지인과 함께 통음을 한 그는 ‘민정수석 7개월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조사에서도 완전히 배제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고도 알려졌다. 요약하면 문건 조사에서 배제된 상황을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말을 지어낼 수도 없어서 국회 운영위 출석을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영한 전 수석은 사단이 벌어진 9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용갑·김영한 두 사람의 언행을 종합해보면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는 원래 아주 역동적이고 사명감을 요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보와 권한에서 소외된 허울뿐인 직책에 불과한 게 된다.

이 사태를 이해하자면 청와대에서의 수석비서관의 기능과 권한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지적부터 곱씹어봐야 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올 1월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석비서관에 임명돼도 그 비서관이 자기가 비서관과 행정관을 임명해서 팀을 짜서 자기가 소신껏 일을 하고 대통령에 대해서 직접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하는 구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에 일조한 이 교수에 따르면 “수석비서관들은 그냥 앉아 있는 일종의 장식물이고 실제로 청와대를 움직이는 것은 이른바 십상시라고 언론에서 거론하고 있는 보좌관 출신들 아니냐”며 청와대 시스템이 파행으로 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청와대 수석 대부분이 김영한 전 수석이 겪은 무력감, 박탈감 같은 걸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밖에서 보는 청와대와 내부에서 겪는 청와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만 해도 공직자의 비리를 엄단하고 시중의 여론을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영향력이 막강한 자리로 인식된다.

대통령, 참모에게 친절한 답을 줘야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청와대에서 신년회견을 했다. 그는 참모들과의 대면 기회를 자주 갖느냐는 질문에 “전화 한 통으로 빨리빨리 할 때가 편할 때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박근혜 정부는 딴판이다.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올려도 답신을 주지 않으면 대통령 생각을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거나 지적인 교감을 통해 알아볼 기회가 자주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을 모르는 수석은 소신을 갖고 일하기가 어렵다. “이게 청와대 모든 수석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현실일 것”이라고 이 여권 인사는 추정했다. “자기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청와대에 입성한 엘리트일수록 지금의 청와대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렵다. 허울만 수석일 뿐 청와대 돌아가는 사정에는 깜깜한 일개 실무자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청와대 생활에 회의를 품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도 그 연장선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대통령과 만나지도 못하고 문건 파동 조사에서 배제됐다면 특히나 그렇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의 진위과 유출 경위를 조사하는 민정수석실의 최고 책임자인 그가 조사에서 배제됐다는 건 결국 절차를 무시한 직거래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예컨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우병우 민정비서관에게 직접 지시하고 보고받는 식으로 일을 처리했거나, 우 비서관이 대통령의 측근 비서관 3인과 다이렉트로 연결됐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김영한 전 수석이 설 자리는 없다.

비서실장이든 청와대 3인방이든 김영한 전 수석을 무시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문건 파동에 관련이 없었기에 조사라인에서 배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소외감을 느끼며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을 수 있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겉도는 마당에 국회 운영위에 나가서 바람막이 역할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는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에 대한 답을 하다가는 더 난감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고, 검찰 출신으로서의 개인 명예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는 추론이다.

일부 청와대의 관계자도 이런 상황을 부정하지 않는다. 내부에서도 김 전 수석이 대통령과 거의 독대를 못했고, 회의 도중 대통령으로부터 오는 전화 정도나 종종 받는다고 여긴다.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해야 할 민정수석이 대통령과의 업무를 대부분 전화로 처리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청와대 기능을 잘 아는 이들은 “민정수석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말과도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사 시절 동향인의 민원을 단칼에 잘라 원성을 살 정도로 고지식한 성향을 가진 김 전 수석이 청와대 재직 7개월간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으리라는 추정이다. “지금의 청와대는 멀쩡한 사람도 바보로 만들 수도 있는 파행적 구조로 운영된다”는 비판도 여권 내에서 나온다.

김영한 전 수석 개인의 캐릭터도 사태를 부른 한 요인으로 꼽힌다. 대검 강력부장 출신으로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그는 성격이 딱 부러지고, 호불호도 분명하다. 2009년 8월~2010년 7월 대구지검장 시절 민원인의 접견을 거부하다 지역의 유력 인사의 미움을 사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했다는 꼬리표가 따른다. 1991년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엔 기자에게 술을 권하다 거절당하자 맥주병으로 기자의 머리를 내리친 일도 있다. 만취상태였다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안길 수도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당시 검찰 내부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후문이다.

그런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와서는 아주 조용하게 지냈다고 한다. 저녁 6시가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곧바로 퇴근하는가 하면, 부하직원과의 소통에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민정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김 수석과 제대로 회식자리를 가진 기억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항명 파동을 일으키고 사퇴의사를 밝힌 1월 9일의 장면으로 가보자. 사표를 낸 김 전 수석은 민정수석실 직원들에게 이렇다 할 작별인사도 없이 청와대를 나섰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온다 간다는 얘기도 없이 사무실을 비우는 모습이 일부 직원에게는 꽤 씁쓸하게 와 닿았다는 후문이다. 덩달아 민정수석실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이라는 전언이다. 일과 종료와 동시에 청와대 비서동을 나서는 민정수석실 공무원들의 행렬에서 일에 대한 어떠한 열정을 느끼기 어렵다는 게 내부의 자조 섞인 반응이다.

‘원조 보수’ 김용갑이 주는 고언


▎지난해 6월 임명장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촬영에 나선 김영한 당시 민정수석. 그는 국회 출석 지시 거부라는 초유의 항명사태를 빚고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2년간 거쳐간 3명의 민정수석 모두 중도에 하차했다는 점도 정권엔 부담이다. 초대 곽상도 수석은 정부 출범 초기 잇따른 인사검증 실패의 책임을 지고 2013년 8월 경질됐다. 인사 참사가 국정운영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로 부상하면서 뜻하지 않은 유탄을 맞은 셈이다. 그의 후임인 홍경식 수석도 지난해 6월 총리 후보 2명의 연쇄 낙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해 11월 불거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 홍 수석 재임 당시의 일로 밝혀지면서 그 책임을 따진 경질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이번에 김영한 전 수석이 항명 끝에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은 모두 단명한다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역대 대통령은 민정수석비서관에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앉혔다. 공직 기강을 세우고, 권력 실세를 감시하며, 민심을 전달하는 중요한 직책인 까닭이다. 통상 정권의 레임덕은 임기 중·후반에 터져 나오는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의 권력형 비리에서 촉발된다. 임기 중반으로 접어드는 박근혜 정부도 지금부터 친인척과 측근 관리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에게 자문을 아끼지 않았던 김용갑 전 민정수석은 “민정수석만 잘 두면 정권은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피했지만 민정수석 인선과 운용에 대해서는 작심한 듯 의견을 쏟아냈다. 앞으로 민정수석에 오른 인사들은 언제든지 사표를 낸다는 생각으로 공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리에 연연해 하는 사람일수록 대통령 대면을 못한다는 둥 변명을 늘어놓거나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고 머뭇거린다”면서 “언제든지 그만둘 자신이 없으면 아예 눈길도 주지 말라”고 충고 한다. 또 대통령이 만나주지 않으면 제 발로 찾아가서라도 진언을 하는 게 청와대 참모의 마땅한 도리라고 말한다. 그는 “소신을 갖춘 참모라면 어떻게든 대통령과 소통하는 길을 뚫어야 한다”면서 “유능한 수석은 현실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헤쳐나간다”고 덧붙였다.

김용갑 전 수석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에게 이런 약속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면 절대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 않겠다. 대신 대선 기간에는 내가 하는 잔소리에 귀를 열어달라.” 그래서 정권 출범 후 현안에 대한 언급을 일절 삼갔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에 딱 한마디 의견을 내놓았다. 바로 청와대 참모진 운용에 관해서다. “참모들이 자리를 걸고 소임을 다하려고 해도 대통령이 받아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박 대통령은 후임 민정수석을 포함해 청와대 수석을 자주 만나고 그들의 열정을 북돋워줘야 한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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