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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성매매특별법 10년 ‘독버섯’ 더 키웠다 

집창촌은 줄었다지만 각종 ‘변장·변태업소’ 숨바꼭질 영업 기승… 온라인 포털 이용해 주택가, 업무지구 등으로 확산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2003년 겨울만 해도 ‘홍등가’ 근처의 거리에서는 짙은 화장을 한 ‘언니’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풍경이 흔했다. 요즘은 그런 호객행위를 보기가 쉽지 않다. ‘언니들’은 휴대폰을 통해 ‘실장님’이 연결해준 고객과 정해진 아지트에서 은밀하게 만난다. 만남은 시민들의 실생활과 더욱 가까워졌다. 성매매와의 전쟁은 실패한 것인가?

▎2004년 9월 23일 선포됐던 ‘성매매와의 전쟁’은 10년이 흘렀는데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성매매업은 더욱 은밀해졌고 조직적으로 번져간다. 서울 강남의 풀살롱, 안마방 등 신종업소와 미아리 집창촌의 모습. / 사진·중앙포토
1월 6일 어둑어둑한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번화가의 한 오피스텔 앞에서 사복경찰관 7명이 긴장된 얼굴로 주위를 경계했다. 이윽고 휴대전화가 울렸다. “306호에 진입하세요!” 오피스텔 안으로 뛰어들어가자 속옷 차림의 한 여성이 놀란 표정으로 앉아있다. 방에는 콘돔과 야한 속옷이 널브러져 있고, 욕실에는 칫솔과 샴푸, 수건이 여러 개씩 준비돼 있었다.

경찰은 여성의 휴대전화부터 압수했다. 전화기를 켜자 이미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접속 흔적 등이 모두 지워져 있다. 여성은 수사관에게 “이제 한달 됐어요. 막 출근했어요”란 말만 반복한다. 잠시 후 12층에 있는 별도의 룸에 있던 ‘실장’이 붙들려왔다. 그는 “이 방 한 개만 운영한다”고 발뺌하다가 경찰의 추궁 끝에 결국 업주의 신원을 실토했다. 전국에서 성매매업소가 가장 많이 몰려 있다는 서울 강남 일대에서 있었던 경찰의 성매매 단속 현장의 풍경이다.

<월간중앙>은 서울경찰청 광역단속수사팀이 벌이는 성매매업소 단속현장을 동행했다. 일종의 잠입수사였다. 수사관들은 일단 성매매업소의 광고가 많이 올라와 있는 유명 사이트에서 ‘서울’ ‘강남’ ‘오피’란 단어로 검색했다. 웹페이지에 수십 건의 성매매 광고가 줄줄이 떴다. 그중 업체 하나를 클릭하자 도발적인 자세를 한 여성들의 사진이 화면을 빼곡히 채웠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여성들의 이름과 나이, 신체 사이즈 등이 적혀 있다. 이런 식이다. ‘선희, 24세, 166㎝, 48㎏, c컵, 44size’. 여성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뒤따른다. ‘귀여운 눈웃음이 포인트! 애인모드 자신 있습니다. 뒤태 죽입니다. 청순한 얼굴, 완벽한 몸매, 어렵게 모셔온 만큼 살살 다뤄주시기 바랍니다.’

정보에 있는 연락처로 수사관이 예약신청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번호가 노출된 사람은 업주가 아니라 성매매를 알선하고 일정 금액을 받는 ‘실장’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은밀한 접선 작전이 펼쳐진다. 실장은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은 채 ‘접선지’를 알려줬다. “강남역 O번 출구로 나와서 연락하세요.” 약속장소에서 다시 연락하자 “OO오피스텔 11층 비상계단에서 만나요”란 문자메시지가 왔다. 이렇게 여러 번 약속장소를 옮겨가며 상대가 순수 고객인지, 단속요원인지 확인하고서야 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으로 안내한다.

성매매와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 9월 23일에 시작돼 10년을 넘었다. 성매매는 사라지긴커녕 더 은밀해지고 다양해졌다. 집창촌과 주택· 생활지역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오피스빌딩이 몰려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대담하게 영업이 이뤄진다. 지난해 하반기 성매매특별법 시행 10주년을 맞아 정부 부처와 학계, 시민단체 등은 이 법률의 성과를 놓고 각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포괄한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벌 강도에 비해 근절 효과를 별로 보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성매매업은 더욱 넓게 번졌다. 종류와 방법도 더욱 다양하고 기발해졌다. 마치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이따금 눈에 띄는 업소를 산발적으로 단속하는 데 그칠 뿐이다. ‘성매매를 뿌리뽑겠다’는 애초의 기대는 바람에 그쳤다.

오피스텔, 주택가 파고드는 변장업소들


▎1월 6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단속수사팀에 단속된 강남의 한 오피스텔 성매매 현장. 야한 속옷들과 콘돔, 젤 등이 구비된 것을 빼놓고는 여느 오피스텔 룸과 다르지 않다. / 사진·박지현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전국의 집창촌은 단속의 철퇴를 맞았다. 그로 인해 성매매 집결지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전국에 있는 전업형 성매매 집결지(이하 집장촌)는 44곳으로 집계됐다. 2002년 69곳이었던 것에 비하면 25곳이 줄었다.

집결지가 해체되자 이곳에 있던 성매매여성과 포주들은 점조직처럼 흩어져 영업을 계속했다. 이들은 신·변종 성매매업소를 차리고 보란 듯이 남성들을 유혹했다. 여가부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국내 성매매 산업규모는 6조8600억원에 달했다. 룸살롱·단란주점 등 유흥산업 규모는 3조5729억원이다. 전국적으로 성매매업소가 적어도 4만 개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숨어 있는 음성형 성매매는 더 많아서 정확한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집창촌 중심의 단속이 ‘풍선효과’를 불러왔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뒤따랐다.

실제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성매매업소들은 상업지구나 주택가 등에 파고들었다. 대표적인 게 ‘오피’라는 방식이다. 오피스텔 방 몇 곳을 단기 임대해 성매매 장소로 쓰는 것이다. 건물 전체를 빌려 성매매 영업장으로 이용할 만큼 큰 기업형 업소도 있다. 주로 서울 강남·화곡동·건대입구와 경기도 안양(평촌)·수원(인계동) 등이 대표적으로 성행하는 곳들이다. 단속현장에 나섰던 진도환 팀장은 선릉역 근처의 건물들을 가리키며 “사무실 건물과 섞인 일반 주거용 오피스텔이어서 겉으로는 성매매업소를 확인할 수 없다”며 “이들의 광고를 보고 고객으로 위장해 단속하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법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세분화하고 진화했다. 성매수자들이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유사성행위 업소인 ‘키스방’, ‘립카페’, ‘귀청소방’, ‘안마방’ 등 형태도 다양하다. ‘키스방’은 3∼4년 전부터 붐이 일었던 업종이다. 키스방을 운영했던 업주 최호윤(34·가명) 씨는 “(키스방은) 업소마다 수위가 다르다”며 “가벼운 대화와 키스가 기본이고 약간의 스킨십도 가능하다. 아가씨(성매매여성)의 솜씨에 따라 수위를 조절할 수 있고 수입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키스방’의 진화된 형태가 ‘립카페’다. ‘귀청소방’은 귀지를 파주는 척하다가 유사성행위로 이어지는 변종업소다. 함께 샤워를 하고 밀실에서 성행위를 하는 ‘샤워카페’는 피부관리숍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단속 기준이 모호한 점을 노려 초기에 반짝 대대적으로 영업을 해서 이익을 취한 뒤 자진 폐업하거나 새로운 업종으로 바꾸는 식으로 생존한다.

형태 다양해지고 온라인으로 은밀히 영업


과거 성매매업소들이 집창촌에 몰려 있을 때에는 영업방식을 차별화해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집창촌이 해체되자 성매매업소들끼리 경쟁도 치열해졌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업 방식을 만들어 손님을 끌어들인다. ‘풀살롱’도 그중 하나다. 일반주점과 룸살롱, 방석집(단체 성행위 업소)의 영업방식이 합쳐진 풀살롱은 이제 유흥주점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때 ‘북창동식’, ‘파장동식’ 등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떨쳤다. 경찰청에서는 “강남 풀살롱의 경우 한 사람당 평균 술값과 화대가 30만~40만원으로 하루 매출만 3천만원이 넘는다”고 전했다.

변태적 성향을 충족시켜주는 ‘페티시’ 업소도 늘고 있다. ‘학교방’, ‘병원방’, ‘지하철방’, ‘감옥방’ 등 세트장처럼 꾸민 곳에서 교사, 간호사, 간수 등의 코스튬 복장을 한 여종업원과 성행위를 하는 식이다. 배설물을 이용한 업소들도 간혹 있어 단속하는 경찰들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양모 경위는 페티시 업소에 대해 “점점 더 강한 자극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업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며 “최근에는 ‘풋잡’이라고 발로 유사성행위를 해주는 업소도 생겼다”고 말했다.

성매매 정보는 초기에는 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살포된 명함형 유인물을 통해 확산됐다. 낯뜨거운 여성의 전라 사진에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거리에 잔뜩 뿌리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게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후의 영업 방식이라면 최근에는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일대일로 영업이 이뤄진다. 업주들은 인터넷 상에서 ‘점조직’ 형태로 분산돼 있어 이른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서버를 찾아내기는 더 어렵다. 홈페이지 주소를 숫자로 변경해 영업하기 때문이다. 해외서버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다 매일 홈페이지 주소가 바뀌다 보니 사이버를 통한 수시 단속은 더욱 어렵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성매매업자들의 유용한 영업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랜덤채팅이나 실시간 친구 사귀기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관련 앱을 실행하면 수많은 성매매 정보가 날아든다. 카카오톡을 모방한 ‘J톡’은 아예 조건만남 전용 앱으로 성매매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광역수사팀이 알선업주로 의심하고 있는 앱이다. 화면에는 여성들의 적나라한 프로필 사진과 ‘저랑 놀지 않으실래요?’ 등의 문구가 즐비했다. “비슷한 문체들과 형식, 사진들을 볼 때 성매매 업주가 크게 운영하는 것 같다”는 것이 경찰측의 설명이다.

업주들 간의 네트워크도 촘촘하고 방대해졌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히면 즉각적으로 경찰관의 번호, 접속 아이디, 차량번호, 차종 등이 지역 성매매업소 전체로 퍼진다. 진 팀장은 “성매매업소가 가장 많은 강남권은 단속이 뜨면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단속 정보가 노출되면 며칠씩 단속 계획을 짜고 준비했던 것들이 헛수고가 된다”고 말했다.

법 피하는 꼬리 자르기, 업주들 간의 결속 강해져


▎신·변종 성매매업소들의 정보 집결지는 인터넷사이트이다. 해외서버를 사용해 수시로 홈페이지 주소를 바꾸거나 조건만남을 가장하는 등 사이트 운영도 교묘하고 기발해졌다. 업소에 있는 여성들의 신체 프로필이 적혀 있다.
이처럼 성매매가 교묘해지면서 단속 실적도 낮아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남윤인순 의원에 따르면 경찰의 성매매사범 검거 건수는 2009년 2만5480건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8668건으로 급감했다. 집창촌을 중심으로 한 단속은 정기적인 순찰에 그친다. 집창촌 바깥의 성매매에 대한 단속은 더 어렵다. 신·변종업소들의 단속을 피하는 방법이 더 용의주도해졌기 때문이다. 법을 악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안마시술소는 맹인 종업원을 사실상 볼모로 삼아 성매매영업을 하고 있다. 합법적인 맹인 안마사를 고용하고 단속망을 피하는 것이다. 또 단속에 적발돼 폐업조치가 내려지면 고용됐던 장애인과 관련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도록 부추겨 애초에 단속 의지를 꺾기도 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현장입증이 필요한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안마시술소를 단속하는 건 쉽지 않다”며 “심지어 문을 부쉈다가 단속에 실패하면 사비로 물어줘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특별법이 성매매 여성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도 있다. 법령에 따르면 ‘성매매를 한 행위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 된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기소유예로 ‘훈방조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진술에만 의존할 경우 기소를 해도 혐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검거된 성매매여성과 업주들이 처벌을 면하려 입을 맞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 팀장은 “대부분 처음이라거나 경험이 없다는 식으로 초범임을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한다”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으니 강하게 처벌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증거현장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중요 증거자료인 체액은 물론 현금으로 거래되는 성매매업소의 금전거래 흔적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성매매에서 ‘미수’는 처벌대상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단속 현장에선 웃지 못할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현재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객원교수)는 10년 전 현장단속 경험을 들려 줬다. “성매매여성들이 증거물품인 콘돔을 삼켜버리거나 변기에 버려 물을 내린다. 그렇게 증거를 없애고서 속옷을 챙겨입고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현행범으로 처벌하기가 어렵다.” 오피스텔 주민의 민원신고로 단속에 나서도 마찬가지다. 진도환 팀장은 “성매매 여성과 성매수 남성이 서로 애인 사이라고 주장하면 사실 단속을 계속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황은영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 부장검사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전과가 없으면 기소유예, 전과가 있으면 벌금’ 식으로 관대하게 넘어가는 처분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성매매가 일반인에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전문종사자(성매매 여성)’가 대다수를 차지했다면 지금은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일반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성매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빚을 지거나 인신매매에 의해 감금당한 채 성매매에 시달려야 했던 모습은 옛일이다. 지금은 ‘자발적’인 성매매 종사자가 늘고 있다.

특히 대학생과 일반 직장인, 유부녀 등 쉽게 돈을 벌려는 욕심에 눈 먼 여성들의 ‘비생계형’ 성매매가 늘었다. 이들은 1회에 수십만 원을 벌어들이는데 각자 외모와 수위에 따라 금액이 다르다. 성매수 남성들이 일반인 여성을 선호한다는 점을 노려 ‘여대생’ ‘유부녀’ ‘회사원’ 등으로 광고해 남자를 유혹 하기도 한다. 키스방 업주였던 최호윤(34·가명) 씨는 “방학에는 여대생들의 아르바이트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한 여성당 하루 6명 정도만 대해도 월 500만원 이상 수익을 낸다”며 “여행비나 명품 구입비 등을 마련하려는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키스방에서 ‘혜나’라는 닉네임으로 일했던 이연희(24·가명) 씨는 처음에 “구인사이트에서 ‘건설사무소 손님응대, 월급 250만원 이상 보장’이라는 공지를 보고 찾아와 일을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나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버는 수입은 상당하다. 그는 “첫 학기 방학에는 눈과 코 성형을 했고, 소형차를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셋집까지 얻고 대학졸업을 마쳤다고 했다. 성매매알선업체들은 이런 젊은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해 ‘투잡(두 개의 직업)’을 권하거나 오피스텔 무상 임대로 현혹하기도 한다.

김강자 교수는 성매매 여성들의 ‘장기체류’를 지적했다. “처음에 (성매매 여성 중) 아무도 이 일을 오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용돈 벌고 그만둬야지’라는 생각으로 발을 들이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수익과 노동의 강도에 익숙해지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성매매업소를 전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성매매업소들은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졌다. 정부가 성매매특별법 시행의 성과로 내놓는 집창촌은 과거의 명성을 잃은 채 쇠락한 모습이다. 1월 2일 금요일 밤 9시경.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 백화점 뒤 골목에 들어서자 간판도 없이 붉은 등을 켠 쇼윈도 형 ‘유리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나는 행인도 뜸하고 손님이 거의 없는 듯 한산했다. ‘유리방’ 안에는 몸을 드러낸 드레스를 입고 진하게 화장한 여성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남성들이 지나가면 유리문을 두드리며 호객행위를 하지만 적극적으로 팔을 잡아 끄는 정도는 아니다. 이곳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규모가 반으로 줄어 20여 개 업소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한때 전국적 명성을 떨쳤던 ‘미아리 텍사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요일 밤인데도 길음역 근처에 있다는 집창촌의 ‘홍등’은 보이지 않았다. 고가도로 밑으로 3m도 넘어 보이는 철벽 같은 담이 높이 솟아 있고 울타리 밑에는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다. 음습한 길목마다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한 남성이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안으로 들어서자 호객꾼인 듯한 40~50대 여성들이 어두운 커튼을 열어젖히고 남성을 안으로 안내했다. ‘미아리텍사스’는 100여개의 가게에 250여 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다.

성매매업소의 부익부빈익빈


▎경찰이 증거현장을 확보하는 것이 성매매 단속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다. 김강자 교수는 “성행위는 ‘미수’면 처벌이 어렵다. 이를 이용해 증거물품을 재빨리 없앤 뒤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 사진·중앙포토
미아리 집창촌의 성매매여성 이수영(37·가명) 씨는 “‘어깨가 치일 정도’로 손님이 붐볐던 예전과 매우 다르다”고 회고했다. 탈성매매에 대한 정부의 의지에 대해 종사자들은 냉소적이다. “취지는 좋았지만 (성매매특별법은) 정작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생계만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신·변종 성매매업소가 늘면서 업소별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다. 이씨는 “오피 등 음성화된 업소에서는 20대 초반 여성이 많다. 여성들은 상품처럼 가격이 매겨져 이 직종에서조차 부익부빈익빈이 크다”고 말했다. 집창촌의 화대(가격)는 7만~10만원 선이다. 지방의 집창촌 업소들은 3만~5만원 수준을 유지하는 곳도 많다. 반면 ‘오피’로 불리는 도시 내 출장성매매의 경우 10만~3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탈성매매를 위한 법적 지원이 있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성매매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정부 지원금은 2004년 29억7400만원에서 2014년 136억9200만원으로 400% 늘었다. 몇 년 전 성매매여성지원시설에 입소했다가 다시 돌아온 성매매 종사자 최가연(32·가명) 씨는 “시설에서 받은 지원금이 한 달에 40만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강현준 한터전국연합 대표는 “성매매 여성 지원단체를 악용해 업주에게 선금을 가불한 뒤 떼먹고 도망가 지원단체에 숨어드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며 “지원단체들은 실제 자립을 돕기보다 단체 운영을 위한 실적 채우기(입소인원 확보)에만 급급해 자립 프로그램이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매매 근절요? 택도 없는 소리!”


▎정부가 10년간 ‘성매매특별법’ 단속 성과로 내놓은 것은 성매매 집결지 중 하나인 집창촌 수의 감소뿐이다. 전국적으로 69곳에서 45곳으로 규모가 축소됐지만 아직도 영업을 이어가는 곳이 많다. 2014년 9월, 청량리 집창촌의 모습. / 사진·중앙포토
성매매특별법 10년을 지나 성매매에 대한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지만 역시 결론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성매매 여성과 업주의 자기결정권과 인권 차원에서의 도덕적 가치의 문제가 팽팽히 맞서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최근 5년 사이 성매매 알선 혐의로 처벌받은 업소들에게 토지· 건물을 빌려준 소유자를 상대로 성매매 수익에 대한 몰수·추징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한편 성매매특별법의 실효성을 두고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있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성매매는 근절될 수 있을까? 강현준 한터전국연합대표는 냉소적이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단속은 ‘위에서 기침하면 아래에서 감기 걸린 꼴’”이라며 “단속은 시늉에 불과하고 벌금 추징으로 성과를 포장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성매매 근절에 대해서는 현장에 있는 단속 경찰들도 회의적이다. 성매매 단속현장에 동행했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속팀 7명은 입을 모아 “수요와 공급 논리가 딱 맞다. 성매매는 근절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때 성매매 단속의 최일선에 있었던 김강자 교수는 특별법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오히려 공창제를 제안했다. “성욕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식욕과 같다. 파트너가 없는 홀아비, 독거노인, 장애인 등 성적소외자들의 해소 공간까지 막아버리면 성범죄가 상대적으로 는다. 실제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이 아동성폭력 등이 아니냐”고 말하며 “제한적이나마 공창제를 두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차츰 줄여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여성인권계는 반대 입장이다. 강월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세상에서 거래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매매는 약자에 대한 명백한 인권유린이다. 결국 돈을 지불한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며 “성매매 근절은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성매매 근절을 위한 성매매특별법 개정안 발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 실행에 옮기기는 부담스러운 상태다. 남윤인순 의원실에서도 “성매매 알선 영업소 정지나 폐쇄조치로 신·변종 성매매업소의 근절을 위한 입법을 추진 할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법안 발의와 개정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비쳤다.

성매매는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집창촌과 같은 특정 윤락지역은 법과 현실의 타협의 산물이다. 신·변종 업소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법과 제도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강요된 도덕’은 자발적 통제를 이끌어낼 수없다. 성매매를 근절할 근본적인 처방은 꾸준한 교육과 지원일 수밖에 없다. 성매매를 관리할 수단에 대한 논의마저 금기시하는 동안 독버섯이 우리가 사는 집 앞마당까지 침투하고 있다.

-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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