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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그림을 읽다 | 가망 없는 싸움과 모험에 도전한 영웅들 - 상처와 저항으로 성장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오디세우스와 이카루스… 금기를 깨고 권위에 저항한 프로메테우스와 오르페우스, 안티고네와 아라크네 

정여울 문학평론가
얼마 전 ‘최고의 스펙’은 토익 점수나 학점이 아니라 ‘부모의 신분’이라는 뉴스를 읽었다.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마음 한구석의 단단한 장벽 하나가 무너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바라볼 때 재능보다도 성실과 인내를 더 높이 평가하곤 했다. ‘주어진 것’보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향해 얼마나 달려갈 수 있는지, 천부적인 것보다 천부적이지 않은 것을 향해 얼마나 땀 흘릴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젊은이는 노력으로 인정받고, 성실함으로 불안을 견디며,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어른들의 격려를 받아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바꾸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들의 희망을 꺾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겠는가? 드높은 유리천장으로 가로막힌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운명에 맞서 싸우는 자의 용기’가 짓밟힌다는 점이다.

고전이나 역사 속 인물들에게서 끝없이 용기를 얻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이 시대보다도 더 척박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아닌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바라보았다. 제우스의 독재에 저항한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외삼촌이자 국왕이자 시아버지가 될 사람이었던 크레온에게 저항한 안티고네에 이르기까지, 신화 속 인물들은 어떤 시대의 변화에도 끄떡 없이 ‘가망 없는 싸움에 도전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첫머리에는 항상 프로메테우스와 오디세우스가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생이 보장된 신(神)으로 태어났지만 나약하고 철없는 인류를 위해 ‘불’이라는 문명의 도구를 제우스로부터 훔쳐다 주었다. 오디세우스 역시 고향 이타카에 눌러 앉았다면 별 문제없이 살 수 있었지만, 모험을 택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그리스의 운명을 뒤바꾼다. 나는 이런 인물들이 여전히 이 갑갑한 사회에 희망의 빛과 영감의 원천을 제공 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매일 그들로부터 ‘그럼에도, 오늘 또 살아갈 용기’를 얻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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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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