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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쟁점 분석 | ‘이완구 총리 카드’의 득실(得失) - 작심한 대통령 ‘ 녹슨 칼 ’ 빼들었나 

안정적 국정운영 및 지지층 결속 구상 첫 단추부터 잘못 꿰… 권력 무게 중심 청와대에서 내각으로 이동 가능성 옅어져 


▎박근혜 정부에서 정치인 출신으론 처음으로 국무총리 후보에 내정된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
한국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에게 올겨울은 급경사를 내달리는 롤러코스터 계절로 기억될 듯하다. 1월 23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위기 돌파용으로 ‘이완구 총리 카드’를 빼들었을 때만 해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당의 원내대표를 총리로 발탁해 국민·여당·야당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 통틀어 첫 ‘정치인 총리’가 탄생하는 것도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그로서는 고무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야당과의 협조적 관계를 통해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에 힘써온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정부와 국회를 연결하는 책임총리의 역할을 하리라 예상했다. 임 교수는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실행되지 않은 ‘책임총리’로 가는 전기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인사 혁신에 대한 그의 기대는 얼마 못 가 와르르 무너졌다. 부동산 등 재산 형성 과정과 병역 면제 과정의 의혹이 제기되더니 급기야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언론인을 대학 총장과 교수로 만들어줬다”, “내가 ‘김영란법’ 통과를 막고 있는데 (도와주지 않으면) 통과시켜 기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는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고 했다. 임 교수는 “정치는 사회의 희소가치를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행위”라며 “언론인을 교수로 만들어줬다는 이 후보자에게서 사회적 가치의 합리적 배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인사 개편안 발표 당시만 해도 이런 상황을 그 누구도 예견치 못했다. ‘이완구 총리 카드’는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설명대로 ‘경제혁신 과제의 추진’, ‘공직사회의 기강확립’, ‘대국민 봉사와 소통’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졌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이 후보자가 국정 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리라 기대했다. 신년기자회견의 역풍, 청와대 수석의 항명 사건, 연말정산 파동 등으로 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20%선으로 주저앉은 국정지지율을 반등시켜야 하는 절박한 처지였기에 더욱 그랬다.

정권의 ‘신(新)실세’? 차기 주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인사청문회 첫날인 2월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사 외압’ 논란이 불거졌던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이완구 카드’는 박 대통령에게 나름 비장의 승부수다. 이전까지 박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자 4명(김용준·정홍원·안대희·문창극)은 모두 비정치인 출신이다. 자연 ‘관리형 총리’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국회의원·충남지사·경찰서장 등 화려한 경력의 가진 정치인을 내세웠다. 당장 ‘실세형 총리’라는 관측이 뒤따랐다. 이완구 후보자는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노리는 충청권 유력인사이기도 하다. 대번에 차기 주자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이 후보자는 누가 봐도 정권의 ‘신(新)실세’였다. 인사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모를 리 없는 박 대통령이다. 정치컨설팅 민의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친박계 결속의 구심점이자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새로운 차기 주자로 박 대통령이 점찍은 인물이 이완구 후보자”라고 평가했다.

이 후보자의 행보는 ‘반대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민첩했다. 총리 후보자 지명 직후 여당을 제치고 야당 지도부를 먼저 찾아가 인사를 하는 등 인사청문회 사전 정지작업에 돌입했다. 그래서인지 여러 명의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킨 새정치민주연합에서조차 “이번만큼은 청문회 통과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언론에서도 청문회와 국회 인준에 큰 걸림돌이 없으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청와대·여당·야당 모두가 무난하게 받아들이는 ‘이완구 카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의 약점으로 지목돼온 ‘소통’의 면모와 의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언론에서 제기하는 각종 의혹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차남의 병역 의혹에는 공개 검증을 받겠다고 먼저 나섰고, 경기도 분당 대장동 땅 투기 및 탈세 의혹이 일때도 토지매매계약서 등을 제시하면서 해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대장동 땅 매입 과정에 적극 관여한 정황과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투기 의혹까지 겹치면서 서서히 수세로 몰리기 시작했다. 새로이 제기되는 의혹들도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1970년대 강남 아파트 투기 의혹, 경기대 조교수 특채 의혹, 본인 병역 기피 의혹, 차남 건보료·소득세 탈루 의혹 등이 줄을 이었다. 방송사에 메모를 넣어 특정 인사의 출연을 막았다거나, 언론사 고위 간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장기자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으로까지 사태가 번지면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인사청문회가 열린 2월 10일 터져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음성 파일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언론인들 내가 대학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줬다”고 말하는가 하면, “지금 ‘김영란 법’ 때문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되겠어 통과시켜야지. 여러분들도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 가서 당해봐”라고도 언급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매일 편하게 만나는 젊은 기자분들과 점심 자리에서 제가 생각할 때 사실과 다른 기사가 나 좀 흥분했던 것 같다”면서 “의도를 갖고 한 얘기는 아니다. 죄송하며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진화에 나섰다. 현장에 동석한 관계자도 “협박성이 아니라 기자들이 웃음으로 되받았을 정도의 농담조 얘기였다”며 엄호하고 나섰지만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도를 넘어선 언론 관련 발언은 이 후보자에게 회복하기 힘든 치명타를 안겼다고 임동욱 교수는 말했다.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책임총리의 정신도 구현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처음 기대됐던 소통·정치의 활성화가 다 물 건너간 거 같아 실망스럽다.”

표현의사와 내면의사 충돌하는 의원들


▎박근혜 대통령은 ‘이완구 총리 카드’를 통해 지지율 반등과 국면 전환을 꾀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자는 궁지로 몰렸다. 한국갤럽이 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국무총리 후보자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41%로 ‘적합하다’ 29%를 10%포인트 이상 상회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자체 조사에서는 부적합 응답이 50%를 넘어섰다. 이에 야당은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이 후보자는 총리로서 부적격자라는 판정이 이미 국민으로부터 내려진 것”이라며 “집권 3년차 박 대통령의 성공적 국정운영을 바란다면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나아가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여권을 압박해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이완구 카드’ 관철에 당력을 집중했다.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되면 후속 개각에 차질을 빚고 개혁 법안 등 경제 살리기 작업에도 차질을 빚는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김무성 대표는 총리 후보자 청문 보고서 채택 및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가 열릴 예정이던 2월 12일 “이완구 후보자는 원내대표로서 국회를 원만하게 잘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화합하고 거중조정하는 탁월한 능력을 감안할 때 총리라는 막중한 임무도 잘 수행하리라고 본다”며 임명동의안 표결 강행방침을 밝혔다. 이날 새누리당은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인사청문특위 전체회의를 열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단독으로 채택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임명동의안의 본회의 표결에 야당이 불참하더라도 새누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수순을 밟겠다고 못박았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임명동의안을 쉽게 통과시켜주진 않겠지만 끝까지 기를 쓰고 낙마시키려 들지도 않으리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황영철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기에 이 후보자에게는 병가상사(兵家常事)가 될 것”이라고 두둔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를 공언하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어 고민스럽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는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드러내놓고 말을 안 할 뿐이지 새누리당 의원들도 ‘이완구 카드’를 부담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관측이 나왔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은 “평소 이완구 후보자에게 호의적인 새누리당 의원들도 각종 의혹을 접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의원들의 표현의사(공식발언)와 내면의사(솔직한 속내)는 늘 간극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완구 카드’에 대해서는 정도가 훨씬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수진영에서조차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의 시선이나 정치발전, 정부의 품격 등을 고려하면 ‘이완구 카드’는 재고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보수 성향의 [문화일보]는 “새누리당은 청와대 요청에 따라 무조건 일사불란하게 찬성표를 던지는 것과 다소 번거롭더라도 국민과 공직사회의 신망을 받을 새 총리 후보를 물색하는 일 사이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박근혜 정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행처리 재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여론에 반하는 선택 강요당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 유승민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 표결을 강행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민감한 사안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중진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총체적 난국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했다.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지만 경제는 더 나빠진다. 세월호 이후 소통 문제는 늘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지난 2년 동안 국민들이 대통령에게서 위로를 받거나 감동을 받지 못했다”며 좌절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진짜 잘한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나마 아버지가 잘했기에 박 대통령도 시켜주면 잘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지난 2년 동안 인사, 정책, 소통 할 것 없이 기대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사정이 어떻든 간에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찬성표를 던지는 상황에 내몰렸다. 김무성-유승민 투톱으로 굴러가는 새누리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당 중심의 정국운영’을 강조했다. 하지만 총리 인준안에 관한 한 민심보다 청와대를 먼저 고려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에는 유무구언이다. 야당은 당장 “새누리당은 청와대 2중대”라고 포문을 열었다. 특히 원내대표 경선과정에서 당청관계의 정상화를 외친 유승민 신임 대표는 취임 후 첫 작품이 ‘총리 임명동의안 강행 처리’라는 고약한 상황에 직면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은 “여론에 반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유승민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인준안 가결의 불가피성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며 진퇴양난에 빠진 당지도부의 처지를 이렇게 풀이했다.

물론 새누리당으로선 ‘이완구 카드’가 무산되면서 박근혜 정부가 급격한 레임덕에 빠져드는 사태만은 방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바닥으로 향하는 박 대통령의 총리 인사가 또 좌절된다면 국정 전반이 뒤죽박죽 엉망으로 치닫게 되고 그 후유증으로부터 새누리당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 소장은 박 대통령이 ‘이완구 카드’를 접는다면 “권력의 누수 정도가 아니라 국정 추락을 야기할 것”이라며 ‘이완구 카드’에 집착하는 당정의 속내를 읽었다. 청와대도 더 이상의 퇴로가 없다는 생각에 ‘이완구 카드’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2인3각’ 관계에 있다. 한쪽이 비틀거리면 다른 쪽도 휘청대고, 넘어져도 같이 넘어지는 사이다. 그가 김무성 대표든 누구든 새누리당에서 현직 대통령을 거부하거나 밟고 넘어가는 일은 피하고 본다.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정면 충돌했을 때 보수 진영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당청이 싸우면 청와대도 불편하지만 당도 피해를 입는다.” 박근혜 정부의 당청관계도 이런 과거사 교훈에 입각해 있기에 새누리당이 청와대에 가급적 협조적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는 게 박 소장의 분석이다.

청와대는 ‘이완구 카드’ 사수에 필사적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주는 친박계 ‘차기 주자’는 레임덕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대통령을 따르는 여권 내 친박계의 결속을 유지하면서 국정운영에 안정감을 주는 인물로 선택된 게 이 후보자였다. 앞서 언급한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이 후보자가 검증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어 당초 의도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그의 정치적 고향인 충청권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재결집할 가능성을 배제하진 못한다”고 ‘이완구 카드’의 남아 있는 생명력을 분석했다. 그는 특히 박 대통령이 국정의 상당부분을 총리가 관장토록 하는 등 책임총리제에 준하는 권한을 위임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고 했다.

‘이완구 카드’가 반드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득이 되느냐는 물음도 나온다. 김용준·안대희·문창극 후보자에 이어 네 번째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는 막아야 하는 정부·여당의 처지를 감안하더라도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에 반하는 카드를 관철했을 경우 두고두고 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임동욱 교수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이완구 카드’는 국정운영에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국민들이 했을 것이고, 야당은 공세를 펴기 좋은 패를 쥐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다른 각도에서 ‘이완구 카드’의 맹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완구 카드’가 등장함으로써 정부 내 3명의 총리· 부총리가 모두 국회의원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북 경산·청도를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이고, 황우여 사회부총리 역시 인천 연수 출신의 5선 의원이다. 여기에 충남 청양의 이완구 의원(3선)이 가세하는 모양새다. 이들이 내년 4월 치러지는 20대 총선 출마를 결심한다면 연말쯤에는 사임하는 게 순리다. 여권 수뇌부 차원에서 교통정리가 필요한 사안이긴 하지만 3인의 총리·부총리가 동시에 교체되는 그림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야당이 이완구 후보자를 부적격자로 간주하는 바람에 내년 총선 출마 여부는 이렇다 할 쟁점으로 다뤄지지 않았고 이 후보자도 딱 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최경환 부총리 측은 “현 시점에서 총선 불출마와 같은 특단의 조치는 전혀 검토 사안이 아니다”며 내년 총선 출마를 당연시했다.

실세 총리냐, ‘시한부 총리’냐


▎지난 1월 서울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에 출근하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와 취재진. 이 후보자는 언론인과의 교분도 두터운 정치인으로 통했다.
여기서 문제의식이 싹튼다. 공무원들의 눈에는 이들이 ‘한시적 총리’, ‘시한부 부총리’로 비친다고 과거 정부 청와대의 장관과 수석을 지낸 인사가 말했다. 이 인사는 “만약 총선 출마를 전제로 한다면 10개월 임기의 총리가 100만 공직사회의 전폭적인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이 신임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한다고 해도 연말이면 떠날 총리를 위해 충성을 다할 공무원은 그리 많지 않다는 추론이다. “임기 3년차에 접어든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떨어지고 있고, 공무원연금 개혁 등으로 공직사회가 술렁이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검증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이완구 후보자를 공직사회가 얼마나 따를지도 의문이다.”

청와대가 보기에 상황이 아주 복잡하게 꼬인 셈이다. 총리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도 않고 여당 원내대표를 임명동의 편의만 고려해 지명한 결과를 낳았다. 총리, 장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가 번번이 파행으로 치닫다 보니 운신의 폭이 극히 좁아졌다. 이는 우리 사회 유력인사들이 고위공직 진출을 꺼리는 풍조와도 연결된다. 이완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인사검증 장벽이 날로 높아지면서 공직 후보자와 가족의 개인사까지 난도질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집권 3년차 지지율을 끌어올려 국정운영의 동력으로 삼자면 남은 인사 카드인 대통령비서실장 선임에서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폐쇄적 소통과 업무 스타일도 역량 있는 인사들의 공직 참여를 꺼리게 하는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역대 정부의 청와대 운용시스템을 관찰해온 한 교수는 “지금의 청와대는 누가 참모로 들어가더라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건의나 비판을 하기 어렵다”고 판정을 내렸다. “박 대통령의 생애를 살펴보면 현장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다. 본인이 직접 체험한 현실이 아닌 미디어를 통해서 중계되는 현실을 토대로 판단한다. 현장에 강한 누군가가 가까이 있어 박 대통령의 미흡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재래시장을 열심히 방문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알뜰하게 챙기려 노력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행보는 일방통행일 뿐, 소통의 본래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손욱 한국형리더십개발원 이사장의 시각이다. 손 이사장은 “소통은 어떤 구체적인 목적이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진지하게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라며 “시장을 찾아가서 연설하고 나서 덕담하는 자리를 소통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손 이사장에 따르면 리더는 본인보다 아랫사람들이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탁월해도 4~5명의 지혜의 총화를 뛰어넘기는 어렵다. 다음 비서실장은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토론하고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 적임자다.”

후임 비서실장 인선에 관심 쏠리는 이유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은 지금의 박 대통령에게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을 따르던 ‘천하장안(천희연·하정일·장순규·안필주)’ 같은 인물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묻는다. 이들은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기 전에 격의 없이 어울렸던 이들로, 시정의 무뢰한이라는 평과 함께 집권세력의 감시와 암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호원이라는 평가도 받았던 이들이다. 이 말은 지금의 대통령 주변에는 엄숙하고 진지하며 부동자세를 취하는 참모들 위주로 진영이 짜여있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이 총장은 “박 대통령 주변에는 본인과 너무 결이 맞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시키는 대로 일을 한다”면서 “이제는 일하다 접시도 깨고 손도 다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알다시피 엄숙하고 딱딱한 분이다. 그럴수록 곁에 다가가서 밉지 않게 농담도 거침없이 하고 대외적으로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소중하다. 지식인 사회, 언론, 야당을 만나서 대통령의 진의랄까 DNA를 설명하는 이들 말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진의와 충정을 제한된 언어로 전달해봐야 소통이 안 된다. 누군가가 박 대통령의 의중과 방식을 소화해서 충분히 전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인적 쇄신’을 위한 ‘인적 개편’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사람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라는 굳이 바꾸지 않는다. 이번에 총리와 비서실장을 동시에 교체한다. 이는 국정 난맥상과 지지율 하락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방증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어떤 변화가 올지 관심이 모아지는 배경이다. 그 향배를 점쳐 볼 수 있는 첫 단추가 ‘이완구 카드’였다면 둘째 단추가 대통령비서실장 인사다.

일단 ‘이완구 카드’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컨설팅 민의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후임 비서실장 인선 결과에 따라 그럼에도 내각에 힘을 싣는 책임총리제로 갈지, 아니면 국정의 무게중심을 여전히 청와대에 둘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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