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조용헌의 인물탐구 | 정치인의 기질과 운명론 - 원희룡 제주도지사 | 제주 환골탈태 에너지로 자신의 정치운명도 바꿀까 

‘목화통명격(木火通明格)’ 박사 사주의 전형… 장작으로 불 지펴 그 불로 세상을 비추는 명조(明照)의 운명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eonmk@joongang.co.kr]
원희룡은 갑(甲) 목에 태어나 고집이 세다. 갑목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다. 조선시대 같으면 대사간(大司諫)으로 아주 적당한 팔자다. 왕에게 직언하는 언론 오야붕이 대사간이다. 21세기의 정치인으로 들어왔으니 이런 팔자는 ‘콘텐트 팔자’다. 제주도의 콘텐트를 바꾸고 대한민국의 콘텐트까지 바꿀 힘의 축적이 그에겐 필요하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도를 IT, 풍력에너지, 전기차 등 미래가치 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조선시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는 [정감록(鄭鑑錄)]과 [토정비결(土亭秘訣)]이었다. 남자들은 사랑채에서 [정감록]을 화제에 올렸고, 여자들은 안방에서 [토정비결]로 자기들의 운세를 점쳤다. 남자는 누가 정권 잡느냐에 관심이 많고, 여자들은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했던 것이다. 남자는 정권, 여자는 운세가 키워드라는 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정감록]에 보면 정도령이 조선왕조 이씨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씨가 고려의 왕씨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는다는 이야기가 고려시대 내내 떠돌았다. ‘목자득국(木子得國)’이라는 고려시대 풍수도참이 그것이다. 이씨(李氏)가 나라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믿고 고려 중기에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그 다음에는 이성계가 시도해서 마침내 성공했다. 반란보다는 ‘쿠데타’라는 말이 듣기에 좋다. 고려 왕실은 이씨의 득세를 견제하기 위한 비보(泌保) 조치로 한양의 남산에 오얏나무를 심어놓고 1년에 한 번씩 낫과 톱으로 오얏나무를 잘라내는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오얏나무를 잘라내는 직책까지 따로 두었는데, 이를 ‘벌리사(伐李使)’라고 불렀다. 오얏나무가 바로 이(李)씨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가 정권을 교체했다. 정권이 아니라 왕조교체를 해버렸다.

조선시대에는 정씨(鄭氏) 차례였다. 수많은 정씨가 이 말을 믿고 도전했다가 삼족(三族)이 거덜났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면 역적 모의와 관련된 주모자 명단에 유독 정씨(鄭氏) 성을 가진 인물이 많다. [정감록] 신봉파였다는 이야기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대권에 도전해 김영삼과 맞붙었는데, 왜 기업하던 사람이 갑자기 정치에 뛰어드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많았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역시 정씨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본인을 [정감록]의 ‘정도령’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정감록]을 연구했다.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바꿔보려는 민초의 열망이 [정감록]으로 표출되지 않았나 싶다. 변혁의 상징적인 인물을 정도령으로 상정했을 뿐이다. 어찌 꼭 정씨 성만 변혁의 지도자가 되겠는가. 정도령은 변혁의 지도자를 상징할 뿐이다.

텅 빈 느낌의 지사 집무실


▎원희룡 지사가 연말 부친 소유의 감귤밭(서귀포시 소재)에서 감귤을 따고 있다. 원 지사는 “아버지는 장사를 하셨고 어머니가 땅을 빌려 손수 감귤나무를 심고 키웠다”고 말했다
[정감록]에서 또 하나 제시하는 조건이 있다. 정도령과 같은 진인(眞人)은 바닷가의 섬에서 나온다는 설이다. ‘진인해도출현설(眞人海島出現說)’이 바로 그것이다. 육지가 아닌 섬에서 체제를 바꿀 인물이 출현한다고 조선시대 민초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섬은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이자 변방이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육지 체제에 때묻지 않은 신비한 인물이 ‘서식’할 수 있는 이상향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왠지 신비한 인물이 섬에서 숨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교에서도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한다.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산이다. 그런데 이 삼신산은 원래 바닷가의 섬이라고 했다.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섬들이 삼신산이라고 생각했다. 삼신산 밑에는 커다란 거북이(자라)가 떠받치고 있다고 상상했다. 중국 사람들은 동해, 즉 한국의 서해에 있는 섬에 신선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2천 년 전에 산둥반도에 살았던 서복(徐福)이 배를 타고 불로초를 구하려고 떠돌았던 지역도 서해의 섬이었다.

제주지사 원희룡을 인터뷰하기 위해 가는 비행기 안에서 떠올렸던 생각이 대강 이런 것이었다. [정감록]과 ‘해도출현설’이 골자였다. 원희룡이 정씨는 아니지만 성씨가 무슨 상관이랴. 출신 지역이 문제 아닌가. 바로 제주도라는 섬이다. 섬에서 인물이 나온다고 했다. 김영삼도 섬이고, 김대중도 섬아닌가. YS는 거제도이고, DJ는 하의도다. 오늘날 한국이 아시아에서 일본보다 민주주의가 앞서게 된 배경에는 YS와 DJ의 공이 있다. 이걸 부정하기는 어렵다. 두 사람 다 묘하게도 섬 출신이다. 이런 맥락에서 원희룡 지사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더군다나 제주도는 1천 년간 탐라국(耽羅國)이라는 별도의 왕국이었고, 삼신산 가운데 하나인 영주산이 있는 곳 아닌가!

제주도청의 지사 집무실에 들어가보니 분위기가 색다르다. 도지사 사무실이라기보다는 건축가나 디자이너 사무실 같은 분위기. 심플하다. 도지사 명패, 무슨무슨 상패, 책으로 가득 채워진 커다란 책장, 바닥의 카펫, 벽면을 가득 채운 여러가지 장식물 같은 것이 없다. 컴퓨터와 Y자 형태의 나무 탁자와 의자만 덩그러니 놓였다. 7∼8명이 앉아서 편히 이야기하기에 좋은 구조다. 권위의 냄새가 전혀 안 난다. 벽에도 아주 간단한 제주 기념품만 놓여 있는 나무 책장이 다다. 사무실 전체 분위기가 ‘비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득 차 있는’ 분위기보다 한 수 위의 분위기가 ‘비어 있는’ 분위기다. 비어 있어야 새것이 들어갈 것 아닌가.

천자문(千字文)에도 ‘공곡전성(空谷傳聲)이요, 허당습청(虛堂習聽)’이라 하지 않았던가. 골짜기가 비어 있어야 소리가 전달되고, 집도 비어 있어야 하는 말을 잘 들을 수 있다. 공곡(空谷)과 허당(虛堂)이 그래서 중요하다. 가득차 있으면 들어갈 말이 없다. 자기 이야기만 30분 넘게 계속하는 사람하고는 소통이 어렵다. 소통은 비어 있어야 가능하다. 비어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물증(物證) 말이다. 사무실이다. 공직자일 경우에는 그 사람 집무실에 가보면 비어 있는지, 차 있는지 대강 짐작이 된다. 사무실이 심플하면 생각이 정돈되어 있다는 증거이고, 비어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이 점괘(占卦)이기도 하다. 점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원희룡 지사를 인터뷰 하기 전에 [월간중앙] 측에서 필자에게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서론을 너무 길게 쓰지 말고, 지금 이슈가 되는 현안 몇 가지는 꼭 물어달라는 것이었다. 왜냐고 하니까, 처음부터 너무 동양학만 서술해버리면 독자들이 볼 때 현장에서 인터뷰한다는 느낌이 안 난다는 것이다. “반드시 물어봐야 될 질문, 즉 지금 이슈가 되는 질문이 뭐냐?” “세 가지다. 제주도에 중국 사람들이 짓겠다고 한 고층 빌딩 취소시킨 건, 야당과의 협치(協治) 문제, 강정마을 해군 아파트 문제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중국인들이 투자한 고층빌딩 취소 건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중국인은 왜 제주도를 좋아하나?


▎자신의 집무실에서 조용헌 씨와 대담하는 원희룡 지사(왼쪽). 원 지사는 ‘수석 인생’의 비결이 “관련 있는 모든 것을 연결시키고 정리하는 습관에 있다”고 말했다.
이건 상당한 결정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 생명을 건 결정인데 어떻게 하게 되었나?

“56층 드림타워는 이미 전 지사 재임 중에 결정된 일이었다. 내가 신임 지사가 되면서 취소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결정 내리기 전에 한 달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자다가 깨곤 했다. 이미 허가 난 건을 뒤집는 일이니까. 자꾸 뒤집으면 중국인들이 믿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제주에 투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층수를 낮춰서 38층으로 심의 중이다. 이것도 높다는 의견이 있지만, 너무 낮춰도 투자 감소라는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도민들의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56층은 제주의 경관을 해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취소시켰다. 모든 개발은 제주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제주는 자연경관 보존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제주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땅값은 중국 사람들이 다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중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제주도를 좋아하는가?

“상하이에서 제주까지 비행기로 50분 걸린다. 중국 국내 여행 거리보다 가깝다. 상하이에서 난징, 수저우, 항저우까지가 50분 거리다.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는 2시간20분 걸린다. 그런데 제주는 50분이다. 중국은 여행지에서 하나를 보고 다른 것을 보려면 이동 시간이 버스로 3∼5시간 걸린다. 그렇지만 제주는 5∼10분 거리다. 이동시간이 엄청 짧아서 효율적이고 편하다. 거기다 제주는 스모그가 없다. 공기가 청정하다. 바다도 있다. 중국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보기가 어렵다. 상하이 앞바다만 하더라도 바다 색깔이 누렇다. 제주는 바다 색깔이 파랗다. 중국 관광객들을 제주의 바닷가 어디에다 데려다 줘도 3∼4시간을 그냥 보낸다. 아주 좋아한다. 바다만 보려고도 제주를 방문할 정도다. 제주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서복을 파견했을 때 그가 거쳐갔던 곳이다. 서귀포(西歸浦)라는 이름도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다’, ‘서복(西)이 돌아간 포구다’라는 의미가 있다. 고대부터 중국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중국인들이 친근하게 여긴다. 원나라 때도 제주는 점령지였다. 원나라가 대략 100년 넘게 제주를 점령했다. 탐라총관부를 설치한 적이 있다. 중국인이 볼 때는 이것도 친근한 요소다. 한류 드라마를 보면 한국에는 아직 경로효친 사상이 남아 있다. 중국은 공산화하면서 경로효친이 많이 사라졌다. 제주에 와서 경로효친 사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갖는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 인터넷에서 여행지 선호도 1위를 제주가 자주 차지한다. 1년에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300만 명에 달하는 이유다.”

언제부터 이렇게 제주도가 중국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나?

“2002년부터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인들이 주로 왔다. 제주의 간판글자에 일본어가 많은 이유이다. 2002년부터 중국인들은 제주에 무비자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2010년부터 투자영주권 제도가 생겼다. 제주에 5억원 이상을 투자하면 중국인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제도였다. 이때부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하였다. 이미 중국인들이 1조원가량 투자한 상태고, 앞으로 5조원가량 투자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제주의 미래에 대한 원 지사의 입장은 무엇인가?”

“첫째가 환경보호다. 환경이 잘 보존돼야 제주가 먹고 산다. 중산간(中山間)부터는 개발 금지다. 수백 개의 오름, 그리고 천연습지 숲인 곶자왈도 개발금지다. 모든 개발은 제주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된다. 경관을 해치는 개발은 안 된다. 둘째는 균형투자다. 근래에 콘도 열풍이 있었다. 500세대, 1천 세대 콘도가 동이 났다.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부동산 투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관광객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숙박이 필요하다. 셋째는 카지노, 면세점의 감독을 강화한다. 현지민 고용 80%를 조건으로 허가를 내준다. 용역도급 50%도 지역에서 발주해야 하는 조건이다. 카지노, 면세점 인력양성 프로그램도 제주도 내에서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제주도를 이용만 하고 돈을 밖으로 빼돌리는 상황을 막겠다. 넷째는 제주도를 미래가치 산업의 중심지가 되게 하겠다. 미래가치란 IT, 풍력에너지, 전기차, 바이오헬스, MICE(회의, 인센티브 투어, 전시)다.”

변방 천년이 끝내고 새 천년 맞은 제주도


▎원희룡 지사는 “중국을 활용하는 용중론(用中論)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는 제주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주도는 원래 탐라왕국이었다. 육지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된 왕국이었던 것이다. 제주의 가파도에도 고인돌이 있다. 대정마을에도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 문명을 상징한다. 제주의 토착성씨인 고·양·부씨의 등장을 기원 전후로 본다면, 탐라왕국은 적어도 1천 년간 왕국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기 1100년대에 고려에 병합됐다. 육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원나라의 탐라총관부 설치가 대표적이다. 이때부터 제주도는 변방으로 밀려났다. 이전까지는 해상왕국으로 중국, 일본, 동남아 등으로 해상교역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장보고의 해상무역에서도 제주도는 중요한 해상 거점이었다. 제주의 법화사는 장보고 무역의 제주 거점지역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규슈, 사쓰마 지역도 가깝다. 고대부터 제주와 사쓰마는 해상교역을 해왔다고 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해상 왕래가 뜸해진다. 우선 명나라가 해상 교역에 소극적이었다. 해금정책의 배경에는 유교의 영향도 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밖에 안 나가도 먹고 살기에 지장 없는데 왜 바다로 나가야 하는가. 바다로 안 나가도 된다고 명나라 정권은 판단했던 것이다.

명나라가 해상교역에서 한 발 물러나니까 그 공백을 왜구가 채웠다. 왜구가 해적질을 하면서 동아시아 해상권을 교란 시키게 되니까 조선조에서는 섬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이 그것이다. 아예 왜구들이 노략질을 할 대상인 식량과 주민들을 철수시키는 정책을 조선조는 시행했다. 그러면서 제주도는 더 고립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정치범을 수용하는 유배지로서나 기능했던 것이다. 제주도민은 허가를 받아야만 육지로 갈 수 있었다.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이다. 제주도민 입장에서 보면 출륙금지령은 봉쇄정책이기도 했다. 출륙금지령이 풀린 시기가 대한제국 때다. 제주는 고려에 병합되면서부터 근래에까지 변방으로 남았다. 탐라가 천년왕국이었다면 그 다음에는 변방 천년이었다. 그 변방 천년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이다. 제주는 이제부터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고 있다.

티베트에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티베트에 아이언 버드(Iron Bird)가 날아오는 때 티베트의 불법이 세계에 퍼지리라”는 예언이 그것이다. 아이언 버드, 즉 ‘쇠로 된 새’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모두들 이 예언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티베트가 중국에 병합되면서 수도인 라싸에 공항이 생겼다. 공항에 비행기가 날아오면서 이 고대의 예언이 납득되었던 것이다. 아이언 버드는 비행기를 의미하는 것이었구나. 비행기가 날아오면서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가 된 것이다. 중국의 탄압을 피해서 티베트 승려들은 외국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다. 가장 많은 수가 피신한 곳이 미국 아닌가. 그러면서 티베트 불교는 세계에 퍼지게 됐다. 달라이 라마가 세계적인 종교지도자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힘이 컸다. 필자는 제주의 새천년이 도래하였다는 근거도 ‘아이언 버드’라고 생각한다. 제주에 비행기가 날아오면서 제주는 ‘변방 천년’을 끝내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 됐다고 본다. 바다의 장벽을 극복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계기는 비행기였던 것이다.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게 되고, 섬이라는 장애가 오히려 장점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맞았다고 본다.

중국 활용하려면 콘텐트가 필요하다


▎1. 1982년 3월 서울대에 수석 합격한 원희룡이 학생 대표로 입학선서를 하고 있다. / 2. 고교 시절 감귤밭에서 어머니 김춘년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당시 원희룡은 틈 날 때마다 어머니의 감귤 농사를 도운 모범 학생이었다. / 3. 중학교 1학년 시절 담임교사와 동급생 몇몇이 운동장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뒷줄 팔짱 낀 학생이 원희룡이다.
우리나라 지명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제(濟)’ 자가 그렇다. 건널 제이다. 제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세 군데 있다. 제물포(濟物浦), 거제도(巨濟島), 제주(濟州)다. 제물포는 인천이다. 근처에 영종도 공항이 들어섰다. 한국의 입이 되었다. 모든 비행기는 제물포로 들어온다. 거제도는 왜 ‘크게 건넌다’는 의미를 지녔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거가대교가 완공되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부산과 거제도가 다리를 통해서 육지로 전환된 셈이다. 제물포가 입이라면 거제도는 똥구멍이다. 먹었으면 배출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반대로 뒤집어보면 거제도가 입이 되면 제물포는 똥구멍이 될 것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역할을 제물포와 거제도가 교대로 담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무엇인가? 거제도와 제물포는 알겠는데, 제주도는 쉽게 답이 안 나왔다. 원희룡 지사를 만나 제주의 비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3천 년의 시대 구분이 있었다. 탐라국이라는 천년왕국, 그리고 변방 천년, 이어서 새 천년이라는 역사인식이었다. 제주도 입장에서 ‘3 제(濟)’를 보면 제주가 입이 되고, 제물포와 거제도는 양 날개로 생각해볼 수 있다. 보기 나름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리 그려지는 것 아닌가. 만약 거제도 근방에 국제공항이 들어서고, 제주의 공항규모도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3군데의 비행기 공항이 삼각편대를 형성할 수 있다. 제주, 제물포(영종도), 거제도(가덕도)는 한국이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원희룡 지사가 운이 좋은 것 같다. 매사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제주가 변방 천년을 끝내고 새로운 천년으로 진입하는 바로 그 시기에 도지사를 맡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쇠퇴기에 임무를 맡으면 빛이 안 난다. 그러나 융성기에 맡으면 빛이 난다. 제주는 천시(天時)가 도래한 것 아닌가 싶다. 이 시점에서 어떻게 틀을 만드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붕어빵 틀을 제작하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어떤 그림을 생각하고 있나?

“제주도는 동아시아 지중해의 목젖과 같은 위치라고 본다. 한반도 지도를 거꾸로 돌려놓고 보면 제주가 제일 앞에 나와 있다. 중국과 일본이 바로 지척에 있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동남아시아가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문명권을 동아시아 문명권이라고 본다면 제주는 목젖에 해당한다. 음식이 목구멍에 넘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부위가 목젖 아닌가. 문화적, 전략적, 상업적 요충지라는 의미다. 목젖으로서는 제주만큼 좋은 위치가 없다고 본다.”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50분 거리라면 중국 내륙보다 가까운 위치다. 자칫 중국에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인다. 자칫 종속으로 갈 가능성은 없는가?

“한때 미국을 활용해야 한다는 ‘용미론(用美論)’이 있었다. 같은 맥락의 용중론(用中論)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국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제주가 콘텐트가 있어야 한다. 그 콘텐트는 제주가 지닌 천혜의 자연이다.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면 경쟁력이 있다.”

환경만 보존한다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가? 먹고 살아야할 것 아닌가?”

“제주는 스마트, 그린, 그리고 휴식과 재충전의 개념으로 갈 것이다. 제주는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 흔히 제주의 모델로 홍콩과 싱가폴을 예로 든다. 그러나 제주의 모델은 홍콩과 싱가폴이 아니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설계된 도시다. 영국 식민지 정책의 필요에 의하여 개발되고 디자인된 도시다. 제주는 이와 다르다. 홍콩처럼 물류, 금융, 군사적 의미보다는 천혜의 자연을 이용한 생태산업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돈이 되는 개념이 생태산업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말하기는 좋지만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듯한데?

“예를 한가지 들면 전기자동차 분야다. 제주를 전 세계 전기자동차 시범운영 지역으로 만드는 일도 해당된다. 과거에 제주의 세 가지 특징을 바람, 돌, 여자라고 했다. 삼다(三多)의 섬이었다.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분다. 풍력발전기를 돌리면 이 바람이 모두 전기로 전환된다. 악조건이었던 바람이 전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풍속 7∼8㎞로 불어줄 때 풍력 발전에 최적이라고 한다. 제주가 이 속도다. 풍력 발전의 최적지가 제주인 셈이다. 풍력 발전기로 돌려서 얻은 전기를 전기자동차에 주입시키면 궁합이 딱 맞는다. 현재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용량이 130㎞다. 한 번 충전시키면 130㎞ 거리를 간다는 이야기다. 이 거리는 육지에서는 너무 짧다. 제주는 섬이므로 130㎞면 어지간한 장소는 다 갈 수 있다. 전기자동차 사정 거리권이다. 물론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배터리 용량은 점점 커질 것이다. 전기자동차는 매연이 없다. 환경오염 요인이 없는 셈이다. 생태의 개념에 딱 맞다. 전기자동차는 보닛도 없고, 엔진도 휘발유 차와 다르다. 배터리는 시트 밑으로 들어간다. 자동차라기보다는 전자제품으로 보는 게 맞다. 기계 부분보다는 전자 부분이 많다. 가격도 대폭 낮출 수 있다. 현재는 5천만원 정도 하는데 3천만원을 보조금으로 준다. 2천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기차 가격을 휴대폰 가격으로까지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중고차 가격도 좋다. 전기차는 한 달에 전기충전 요금을 5만∼10만원으로 낮출 수 있다. 연료비가 기름차에 비해 아주 저렴한 것이다. 제주를 전기차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 전기차를 사용해본 경험을 세계로 수출하겠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교체 직원도 필요하고, 충전 휴게실도 필요하다. 새로운 부가가치 산업이다. 신에너지의 메카로 제주를 만들겠다.”

정치인 원희룡의 종자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수석(首席)’이었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입학 전체 수석, 사법고시 수석합격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공부 잘하는 사람을 후하게 평가한다. 가장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학력고사와 사법고시에서 수석을 했다는 것은 원희룡의 정치인생을 시작하는 데에 큰 자본이 됐다. 머리 좋다는 공증(公證)이 인재로 평가받는 첩경이다. 어떻게 시험공부를 했기에 수석을 이처럼 여러 번 한단 말인가.

수석 퍼레이드가 중요한 정치 자산


▎2014년 6월 4일 선거개표 방송에서 ‘당선 확실’이 뜨자 원희룡 후보(가운데)가 부모님(왼쪽), 아내(오른쪽)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공부 잘하는 비결은 뭔가? 시험 잘 보는 비결이라고 해야 할까?”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출제자의 입장에서 공부하는 법을 익혔다. 내용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중간 수준을 겨냥해 만든 문제이군’, ‘이런 수준과 중요도라면 중상급과 상급 수준의 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문제가 될 수 있겠다’를 미리 판단하는 것이다. 사법고시에서 특히 출제자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중요했다. 사법시험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자기 생각을 기술해야 한다. 일단 기본 교과서를 서너 번 읽어 보면 내용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특히 기존 문제에 대한 채점관의 평을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채점하는 사람은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보다는 채점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대목에 초점을 맞추어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쪽에 몰두하면 오류가 된다. 나의 관점과 채점관의 관점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문제를 내가 출제해본다. 그 다음에는 하이퍼링크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문제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관련 있는 모든 것을 연결시키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상호 연결된 상태로 습득된 지식은 오래 기억될 뿐 아니라 다양한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검투사의 길이자, 이종격투기의 길이다. 복싱·레슬링·유도·태권도·주짓수·무에타이 등의 여러 문파가 만나서 승부를 겨루는 장이다. 정치에 입문하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YS나 DJ 문하에 들어가 잔심부름을 하면서 내공을 닦아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는 노선이 정통 노선이라고 해야 할까. 정치는 ‘세(勢)’와 ‘생물(生物)’이라는 이치를 학습받고 진출하는 이 문파가 정통아카데미 출신이다. 김무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치에 입문하는 또 다른 방법이 언론사 기자를 하다가 뛰어드는 케이스다.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위까지, 무식에서 유식까지, 깡패에서 문화인까지 각계각층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직업이 기자다. 시야가 넓다는 장점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교수가 있다. 교수는 전문직이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다는 점이 정치권에 먹힌다. 교수라는 직업이 크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은 잘 하지 않으므로 사회적 신뢰도가 있는 직업이다. 그 다음에 많이 진출하는 통로가 고시에 합격하는 길이다. 법조계 출신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은 인재로 대접받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고시에 합격했다고 하면 일단 그 사람은 ‘머리 좋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라고 여겨진다. 이회창이 이 문파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필자가 몇 년 전에 국회 사무총장을 만나서 “교수, 법조계, 기자 중에서 어느 직업군이 국회에 들어오면 가장 적응을 잘하느냐?’고 질문을 던져본 적이있다. 제일 잘하는 직업은 기자였다. 기자는 현 시점에서 뭐가 이슈인가를 파악하는 데 동작이 빠르다고 한다. 정치인은 무엇이 이슈인가를 빨리 알아채고 여기에 대응하는 직업이다. 말이 그렇지 현재의 한국사회 전체 상황에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훈련 받아야 안다. 기자가 여기에 적응을 잘한다고 한다. 법조계는 법률안이나 여러 가지 안건을 놓고 여야가 토론을 벌일 때 장기를 발휘한다. 갑론을박을 서로 즐기는 경향도 있다. A와 B로 나뉘어서 토론을 벌일 때 유리하다. 법조계라는 것이 주 업무가 이러한 토론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나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옹호하는 일을 평소 해왔기 때문이다. 교수가 가장 ‘어리버리’하다는 것이다. 순발력도 없고, 학생들 다루듯이 순진하게 사태를 인식하다가 한 박자 늦거나 아니면 책상물림 수준의 발상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집안의 가난을 사회가 보상한 수재

같은 법조계라 하더라도 판사 출신과 검사 출신이 약간 다르다. 판사 출신은 신중하고 튀지 않는다. 황우여 교육부총리가 판사 출신이다. 판사 출신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8단)이라는 별명이 있다. 양쪽 주장을 모두 듣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판사는 어느 한 가지 주장에 일방적으로 경도되기 쉽지 않다. 검사는 다르다. 범인을 ‘잡아 조져야’ 한다. 범죄자를 직접 취조하고 그가 숨기는 사실을 캐내야 한다. 뒤집기도 해야 하고, 압박도 해야 한다. 여기에서 전투력이 생긴다. 야성이 길러진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모범생 스타일에서 주먹의 맛을 아는 야생으로 변신한다. 범죄자와 샅바를 잡아야 하는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인생이 거듭나는 셈이다. 경남지사 홍준표가 그 전형이 아닌가 싶다. 깡패들과 한판 승부를 겨뤄야 하는 검객 이미지가 있다.

원희룡도 검사 출신이다. 변론 요지를 검토하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게 주 임무인 판사보다는 다이내믹한 검사가 더 본인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사를 지원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에너지를 생성하는 타입이다. 원 지사는 홍준표 지사와는 같은 검사 출신이라도 색깔이 달랐다. 홍준표가 한 칼 깊게 쑤셔 박는 검객이라면, 원희룡은 검객은 아니었다. 피를 보기에 원희룡은 수석을 너무 많이 했다. 어릴 적부터 계속 전체 수석만 해온 귀공자 같은 면모가 있다. 물론 본인은 제주도 중산간의 과수원에서 어렵게 컸다. 아버지가 하던 장사가 망해서 청소년기를 어렵게 보냈지만, 공부를 워낙 잘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인재로 대접했다. 집안의 가난을 사회가 충분히 보상해주었다고나 할까. 촉망받는 엘리트로 사회에서 인정을 많이 받은 사람은 피를 보는 칼잡이는 못한다.

그렇다면 어떤 스타일인가? 사주팔자를 보니까 甲辰년, 丙寅월, 甲午일, 丁卯시다. 목(木)과 화(火)가 대부분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목화통명격(木火通明格)’이다. 박사 사주라고 한다. 장작으로 불을 지피니까, 활활 타는 불로 세상을 비춰주는 명조다. 장작으로 불을 때니까 그 불이 얼마나 밝겠는가. 이런 팔자는 세(勢) 규합은 잘 못한다. 직선적으로 말해야만 하는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잘 숨기지도 못한다. 갑(甲) 목에 태어나서 고집도 엄청 세다. 갑목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다. 고집이 강해서 자기 소신을 굽히지 못한다. 조선시대 같으면 대사간(大司諫)으로 아주 적당한 팔자다. 왕에게 직언하는 언론 오야붕이 대사간이다. 21세기의 정치인으로 들어왔으니 이런 팔자는 ‘콘텐트 팔자’다. 콘텐트 개발과 활용에 아주 적합한 팔자인 것이다. 이 콘텐트 팔자가 제주지사가 되었으니 제주도는 원희룡 지사 시절에 환골탈태할 것이다.

조용헌 - 원광대 불교학 박사. 지난 20여 년간 한·중·일 3국의 1천여 사찰과 고택, 영지(靈地)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재야의 수많은 기인, 달사를 만나 교유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문·지리·인사 등 강호동양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트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용헌의 사찰 기행]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등이 있다.

-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eonmk@joongang.co.kr]

201503호 (2015.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