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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새정연, 野性 부활하나 - 새정치민주연합 집권의 걸림돌 | 분열이냐, 통합이냐 

친노·비노 해묵은 계파 간 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문재인 대표, 선명성만 강조하면 반쪽짜리 정당으로 전락할 수도 

염영남 데일리한국 편집국장, 정치전문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국민들의 무관심에 시달렸다. 흥행면에서 비슷한 시기에 치러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도 못 미친다는 냉소가 나왔을 정도다. 집권 3년차인 박근혜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지만 야당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표체제로 당을 재정비한 새정연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문재인 의원이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2012년 대선 패배 후 2년여 만에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문 대표 앞에 놓인 현실은 기쁨보다 우려가 더 큰 게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의 수장이 된 문재인 대표가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뒤 대여(對與) 강경투쟁에 임하고 있다. 문 대표는 2월 8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가진 대표 수락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저는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의 대여 선전포고다. 문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지켜낼 것이며 문재인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겠다”면서 “동지 여러분은 변화를 선택했고, 저는 그 무거운 명령을 수행하겠다. 반드시 총선 승리로 보답하겠다”고도 했다. 현 정권과 대립각을 높여가며 지지층 결집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야당을 ‘문재인의 색깔’로 완전히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로 비쳤다.

문재인 당대표=강한 야당?


▎박원순 서울시장이 2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해 후보들의 연설을 듣고 있다. 앞쪽은 문재인 후보
여당은 문 대표의 대여 강공(强攻) 목소리에 긴장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문 대표의 당선 연설을 들은 뒤 기자들과 만나 “당대표 취임 일성으로 한 말로 듣기에는 좀 유감스러운 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 대표의 이 발언에는 여러 가지 우려가 담겼다. 문 대표를 아우르는 세력은 여당과는 이념적으로나 노선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친노무현(친노) 강경파들이다. 특히 이들은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주축이면서도 여권의 이명박·박근혜 대선후보와의 대선전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현 정부와 새누리당과는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도저히 협조 체제를 구축하기 어려운 관계인 것이다. 향후 여야 관계가 극한의 대결 구도로 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설명이 된다.

실제 이 같은 ‘선명 야당’ 노선은 문 대표가 2012년 대선에 패배한 이후에도 있었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여야 대립이 격화하자 그는 “대선이 불공정하게 치러진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선 불복’이란 여당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는 대선 당사자인 문 대표가 당연히 제기할 수도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과거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쟁이 한창일 때도 문 대표는 “대화록과 녹취록 원본을 공개하자”고 강수를 던졌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을 지겠다는 승부수였다.

지난 18대 대통령선거에서 3.6%포인트 차이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했지만 문 대표는 이렇듯 박근혜 정부에 날을 세우며 ‘박근혜 대(對) 문재인’ 구도를 만드는 데 치중했다. 여당이 문재인 대표체제의 출범에 잔뜩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에 야권 지지층은 문 대표의 ‘강한 야당’ 선언에 자못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간 새정연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 등 주요 선거에서 번번이 여당에 패배했다. 이후 지도부가 자진 사퇴했고 원내대표마저 중도에 옷을 벗는 등 지리멸렬한 상황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발(發) 악재가 잇달아 터져나오는 상황인데도 야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친 이후 좀체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지지층의 이탈이 뚜렷해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정동영 전 의원이 참여한 진보정당 창당모임인 ‘국민모임’의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졌을 정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정연의 야성(野性) 회복을 위한 대여권 강공 선언은 지지층에는 한 줄기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만은 강한 야당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해보란 주문이다. 그래야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희망이 있다고 본다. 문 대표에게 야권 지지층의 힘이 집중되는 이유다. 문 대표에게도 이번 대표 당선이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수가 될지도 모른다. 이른바 ‘문재인의 정치인생 시즌 2’의 개막인 것이다.

강경 투쟁 노선을 천명하면서 문 대표는 개인적으로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입지를 굳힌다는 평가다. 문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에도 “대통령에 당선돼 새로운 정치를 펴서 국민이 잘사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게 소원”이라며 대권 재도전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앞으로 보다 강경한 투쟁 노선을 앞세워 야당의 면모를 일신하는 한편, 다소 유약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자신의 이미지도 투사 이미지로 바꾸겠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인 문재인은 화려하게 재부상했지만, 그가 이끌어야 할 새정연의 앞날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일단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심화된 당내 친노-비노 간 갈등을 해소하고,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4월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이끌어내야 할 숙제가 가로놓여 있다. 거기다 추락한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고 진보정당 창당을 추진 중인 국민모임과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모두 만만찮은 과제다.

그중에서도 경선 기간 중에 불거진 해묵은 계파 갈등의 해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물론 최고위원 등 당내 지도부에 비노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일면 균형을 맞춘 듯 보이지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문 대표가 버티고 있는 당내에서 이들이 제목소리를 내기가 조금 버거워 보인다.

당 내분(內分) 재발하면 희망 없어


▎2월 8일 열린 제1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들의 연설을 듣고 있는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
그렇다고 친노가 전면에 나설 수도 없다. 과거처럼 당의 주류로서 방향을 이리 틀고 저리 틀고 할 입장이 아니다. 이미 문 대표는 “당 인사와 운영을 통해 공정하고 사심 없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면서 “단언컨대 계파의 ‘계’자도 ‘ㄱ’자도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일단 친노는 수면 아래에서 때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더구나 경선 레이스 막판 룰 변경 논란으로 친노와 비노간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전당대회 당시 권리당원과 대의원등 이른바 당심(黨心)으로 비유되는 투표에서 문재인·박지원 두 후보는 거의 비슷하게 표를 나눠가졌다. 친노와 비노로 양분되고, 친문재인 표와 반(反)문재인 표가 갈렸다.

특히 반문재인 표에는 친안철수, 친손학규 등의 표가 대거 들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영남 대 호남 구도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경쟁 구도로도 나뉘어졌다. 단순한 친노 대 비노의 싸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생결단식 극한 대결 양상으로 치러진 이번 전당 대회는 당에 깊은 내상(內傷)을 남겼다. 비전과 정책 대결은 실종됐고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비방전만 난무했다. 문 대표가 내부 갈등 수습을 통한 당내 통합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비노진영이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의 골을 드러낸 지는 오래다. 일부에선 “당이 쪼개질 수 있다”며 분당론까지 거론하고 있고, ‘문재인호’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당 밖에서 신당 창당 움직임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조기에 당내 갈등 치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친노-비노 간 내분 격화로 야권 전체가 새판 짜기에 들어가는 상황을 맞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호의 첫 시험대는 4월 보궐선거가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광주 서구을에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천정배 전 의원발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진보진영이 천 전 의원 등 특정 후보를 단일화해 광주에 내세울 경우 가뜩이나 친노에 우호적이지 않은 호남 정서가 새정연을 외면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문 대표는 최대 위기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특히 4월 보선에서는 진보진영은 물론, 옛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까지도 ‘독자 후보’를 내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야권 내 후보 난립이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다.

4월에 치러지는 서울 관악을과 성남 중원, 광주 서구을은 지난 총선에서 모두 야권이 이겼던 곳이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3승을 거둬야 그나마 안정적인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 한 곳이라도 빼앗기면 치명적이다. 특히 광주에서 다른 야권 후보에게 지면 야권의 심장부에서 새정연이 패퇴하는 것이고, 서울 관악에서 새누리당에게 지면 문 대표의 리더십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비노 진영이 흔쾌히 문 대표를 돕고 나설지도 의문이다.

물론 비노진영도 대여 강경 투쟁에 나서며 야권 지지층을 결집해가는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는 부담스럽다. 문 대표의 국민적 지지도를 염두에 둬야 하는 데다 내년 총선 공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튀는’ 행동을 하다가 눈밖에 났다가는 자신만 손해를 봐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원한 한 비노 의원은 “마음대로 전당 대회 룰까지 변경하는 세력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대놓고 이의 제기는 하지 못하고 눈치다.

따라서 비노진영도 눈치보기와 견제를 적절히 해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하지만 적어도 문 대표의 승승장구를 보고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차기 대선을 생각하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전 대표, 전남 강진에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복잡해진 잠룡(龍)들과의 관계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낙선 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가 기자회견 직후 국회를 떠나고 있다
문 대표는 “박원순의 생활정치, 안철수의 새정치, 안희정의 분권정치, 김부겸의 전국정당 헌신 등 모두가 함께 하는 ‘용광로 정당’을 만들겠다”며 “박지원 후보의 관록과 경륜, 이인영 후보의 젊음과 패기도 다 업고 가겠다”며 당내 모든 세력에 손을 내밀었다. 모든 계파를 아우르며 잠재적 대선 경쟁자들과도 함께 손잡고 나설 뜻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의 이 같은 공언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먼저 문 대표를 바라보는 다른 잠룡들의 시선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문 대표가 힘이 세지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손학규 전 대표 등 다른 주자들의 영향력은 그만큼 약해진다. 반대로 문 대표가 리더십을 잃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잠룡들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 양측의 세력관계가 정확히 반비례하는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여타 잠재적 후보들이 문 대표의 기원대로 용광로 정당에 힘을 쏟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문 대표 체제가 뜨면서 친노세력은 더욱 견고해졌다. 문 대표가 탈(脫)계파를 선언했다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계파 갈등 구도는 더 심화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출발부터 문 대표의 험로는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 지난 대선 당시 라이벌이었던 안 전 대표의 입지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좁아졌다. 반전의 모멘텀을 찾기도 난망한 처지다. 안 전 대표는 자신의 대표 시절 비서실장 출신인 문병호 의원의 최고위원 당선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지도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통로가 아예 차단된 것이다. 당분간 암중모색하며 문 대표의 패착을 기대하는 길밖에는 없게 된 셈이다.

박원순 시장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문 대표가 뜨면 뜰수록 대선주자 선두 자리에서도 멀어지는 게 자명하다는 점에서다. 실제 2월 9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박 시장은 문 대표에게 지지율이 5.2%포인트 뒤지며 2위에 머물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1위인 문 대표와 격차가 벌어지고 3위권 주자들에게까지 쫓기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이날 조사에서 문 대표는 18.5%, 박 시장은 13.3%, 안 전 대표는 7.4%를 기록했다. 박 시장 입장에서 더 이상 문 대표와 격차가 커지면 차기 대선의 꿈은 아예 접어야 할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박 시장도 시청에 앉아 여의도에서 문 대표가 모종의 심각한 실수를 해주기를 기원해야 할 입장이란 설명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전 대표가 결속해 반문재인 노선을 만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문 대표와 함께 친노진영의 차기 주자로 거론돼온 안희정 충남지사도 당장 나서기가 힘들어졌다. 또 호남에서 칩거중인 손학규 전 대표의 정치 복귀 가능성은 문 대표가 뜨면 뜰수록 그만큼 더 희박해진다. 아무래도 야권의 수장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문 대표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으면, 다른 주자들은 야권의 격변이 없을 경우 그저 정치적 들러리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야권 잠룡은 일단 문 대표의 순항 여부를 당분간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문 대표가 대표직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독주 체제가 굳어져 자신들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나머지 주자에게 기회가 열리며 부침이 다시 교차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같은 정치공학을 염두에 둔 잠룡들이 문재인호에 순순히 승선해 진심으로 선장을 도울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 대표가 당 대표직을 ‘독배’라고 표현했듯 야권의 수장 자리는 ‘양날의 칼’이다. 문 대표가 선명성을 내세우며 독주하면 할수록 자신의 이미지는 부각되겠지만 그만큼 다른 잠룡과는 멀어진다. 새정연 전체로 보면 반쪽짜리 야당의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 문 대표의 첫 공식일정 행사에서도 이 같은 당내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타났다. 2월 9일 오전 현충원 방문에는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해 현역 의원 50여 명이 동행했다. 최고위원 5명 중에서는 주승용·정청래·오영식 의원이 참석했지만, 전병헌·유승희 의원은 불참했다. 특히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는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 김성곤·윤후덕·송호창 의원만 함께 했다. 문 대표의 첫 행보부터 다른 최고위원의 동참을 끌어 내지 못한 것이다. 빛이 바랜 ‘반쪽 참배’였다.

독주(獨走)가 독배 부를 수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1997년 12월 19일 오전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열린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 양당 대통령 당선행사에 참석해 대국민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승만·박정희 참배에 앞서 첫 일정으로 백범 김구선생의 묘소, 인혁당 열사들의 묘소 참배가 더 우선이라 생각했다”고 이·박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거부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정 최고위원은 “똘레랑스(관용)는 피해자의 마음을 더 먼저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신임 지도부의 상징성이 담긴 첫 행보에서부터 지도부 안에서 인식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보여주는 첫걸음부터 스텝이 꼬인 것이기에 예사로 지나칠 일은 아니다.

문 대표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지지율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는 새정연의 입장을 생각하면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하다. 당대표를 중심으로 전체 당원들이 일치 단결해 여당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경고하고, 청와대를 향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내밀어야 한다. 또 중도층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표심도 끌어와야 한다. 그래야 큰 차이로 뒤져 있는 여당과의 지지율 간격도 좁힐 수 있고, 분열로 치닫는 야권도 새정연을 중심으로 다시 힘을 모아볼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이 같은 야권 지지층의 숙원이자 과업을 완수하려 지휘봉을 높게 들면 들수록 내부의 다른 대주주들은 고개를 돌릴 가능성이 크다. 문 대표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박 시장이나 안 전 대표, 손 전 대표 측에서는 다른 논리를 들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문 대표가 선명성을 앞세워 강경 기조를 고수할 때는 중도 성향의 합리적 주문을 할 수 있고, 반대로 문 대표가 여권과 협조적 자세를 취하며 유화적으로 나갈 때는 오히려 야권 본류의 색채를 강조하고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문 대표의 독주가 오히려 당 전체로는 독배를 부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의 독주가 자신의 대권 가도에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표가 독주할 경우 차기 대선후보 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오르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역대 대선후보 간의 경쟁을 보더라도 예선이 쉬울수록 본선에서 어려움을 겪은 후보가 적지 않았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두 차례 대선 도전에 앞서 열린 당내 예선에서 사실상 단독 질주했다. 대선후보 경선 바로 직전까지 대표를 역임했기에 감히 이 후보를 넘볼 후보군(群)이 만들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반면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치열하게 경쟁 했다. 예선에서 양측이 감정 대립까지 갔으나 오히려 예선전에서 부각된 많은 단점이 정작 본선에서는 야당 공격에 대한 ‘예방주사 효과’로 이어졌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이인제 후보와의 치열한 대결 끝에 극적으로 후보 자리를 따낸 뒤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예선전에서의 후보간 치열한 경합은 네거티브를 양산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그보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컨벤션 효과와 함께 부정적인 면을 미리 부각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절치부심 끝에 당권을 쥔 친노세력이 과연 이 같은 모험을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친노세력들이 그간 보여온 특성상 오히려 선명성 위주의 강성 야당으로 방향타를 잡으면서 그 정점에 문재인 대표를 내세워 단독 질주하게 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표는 대권을 염두에 두고 진보세력들을 규합하려 할 것”이라며 “당은 보다 왼편으로 움직이고, 대청·대여 관계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희웅 민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도 “문 대표 개인을 봐도 박지원 후보와 비교해 대여 협상이 익숙지 않다”며 “스스로 ‘총선 승리’를 지상과제로 내세운 만큼 여당과 뚜렷한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연한 야당보다는 강경 야당 일변도로 나서면서 이를 문 대표가 앞장서 지휘할 것이란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당 전체로서는 또 한 번의 ‘위험한 좌측의 도박’에 나서게 되는 셈이다.

DJ의 ‘덧셈 정치’에서 답 찾아야


▎2002년 12월 20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실타래처럼 어렵게 꼬여 있는 새정연이 가야 할 길은 한 가지다. 문 대표가 스스로 이야기한 ‘용광로 정당’이 답이다. 문 대표가 독주하다간 다른 주자들의 집단적인 외면을 받을 수 있고, 그 경우 분당이나 집단 탈당 등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이미 떨어져나간 정동영 전 의원 등 진보진영 창당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세력이 당의 주류 세력이 됐는데, 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주문하다간 당 전체의 방향성이 모호해진다. 또다시 당내 여러 목소리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난파선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모든 주자와 모든 계파의 목소리를 한곳에 집결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과거 이를 현실화해 성공시킨 사례도 있다. 바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덧셈의 정치’를 강조했다. 자신과 정치적 역정이 전혀 다른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대선에서 손을 잡았다. DJP연합은 그렇게 역사적으로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정권을 잡은 이후에도 김 전 대통령은 자민련을 정권의 파트너로 최대한 예우했다. 물론 양당 간 신경전이 물밑에서 이어지긴 했지만 큰 틀에서 ‘대통령 김대중-총리 김종필’의 이분화된 권력 구도는 유지했다. 김대중 정부가 큰 무리 없이 임기를 끝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꼴찌도 살맛 나는 세상’을 강조했다. 크게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려 애쓴 측면만은 평가할 만하다. 권위주의를 타파하려 했고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나름대로 노력했다.

문 대표가 당내 다른 여러 세력들을 아우를 수 있는 길은 이 같은 김대중-노무현 정신의 구현에 있다. 비노진영은 크게 호남을 위시한 구 민주당 세력과 안철수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새정연 창당 주역들, 김근태 전 의원 중심 세력과 손학규 전 대표를 따르는 중도 인사들로 구분된다.

출신 성분이나 고향, 정치 환경이 제각각인 이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메시지도 김대중·노무현 정신에 있다. 문 대표가 권력을 양분하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당내 정치를 가속화하면 비노진영도 대의명분에서 이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김대중·노무현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당내에 보내는 데도 이를 거부하는 주자나 세력이 있다면 그들은 야권 지지층에 의해 자연스레 배제될 개연성이 크다. 오히려 해당(害黨) 분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야권 전체를 살리고 문 대표 본인도 사는 길이 여기에 있다. 안철수 전 대표를 당내 핵심적 위치로 끌어들여 그에 걸맞은 권한을 주고, 호남에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도 삼고초려해 당내로 데려와야 한다.

또 여의도 밖에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도 적극적으로 당내 중요한 의견을 모을 때는 의견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새정연 전체를 하나로 묶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통해 총선과 대선 후보 예선, 본선을 치러야만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 손학규가 손을 잡는 이른바 ‘문철규’의 탄생만이 10년 야당의 길을 끝내는 길이다.

- 염영남 데일리한국 편집국장, 정치전문기자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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