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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새정연, 野性 부활하나 -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의 ‘야당 개혁론’ - “진보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제3의 길로 가야”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10년에 국민의 피로감 커져… 외연확대 등 통해 중도계층 흡수하면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 오를 것 

최경호 월간중앙 차장 사진 오상민 기자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음 대선에서 집권하려면 진보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제3의 길을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2년 총선과 대선 패배에 이어 지난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도 1무 1패에 그쳤다. 야권 지지자들로서는 네 차례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패배(1무 포함)라 충격이 더했다. 2011년 말 새누리당이 위기를 맞았을 때 비상대책위원으로 참여해 ‘정치적 영감’을 불어넣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만나 ‘야당 개혁론’에 대해 들어봤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책사’로 불렸던 이상돈(64) 중앙대 명예교수는 아직도 합리적 보수를 대표하는 인사로 분류된다. 그는 과거 새누리당(전신 한나라당 포함)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비상대책위원을 맡아 ‘정치적 영감’을 불어넣으며 당이 다시 일어서는 데 적잖은 힘을 보탰다.

그는 지난 대선 때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캠프에 참여해 박 후보의 대선공약을 가다듬고 대변하는 ‘이데올로그’로 활약,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 명예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후 박 대통령, 새누리당과 거리를 둔 비판자 입장으로 돌아섰다. 대(對)국민 공약이 변질·왜곡되는 과정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는 게 이 명예교수가 밝힌 비판자로 변한 이유다.

지난해 8월 이후 수장이 공석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2월 8일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했다. 2012년 대선에서 새정연(전신 민주통합당)의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문재인 의원의 컴백무대였다.

새정연이 새 선장을 맞고 체제정비를 서두르는 와중에 [월간중앙]은 이 명예교수를 만나 문재인 체제 새정연의 중장기적인 개혁방안을 들어봤다. 이 명예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지난해 9월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의 추천으로 새정연의 비상대책위원회(국민공감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 중의 한 사람으로 추대됐다가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었다.

그는 문재인 당대표와도 전혀 낯선 사이가 아닌 듯하다. 인터뷰에서 이 명예교수는 2013년 문 대표를 직접 만난 사실을 언급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문재인 의원도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의 영입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가을에는 문 의원의 초대로 식사를 함께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그때 문 의원도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외연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문재인 신임 당대표에게 강도 높은 야당 개혁을 주문했다. 그 핵심은 “진보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제3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외부인사의 과감한 영입을 통해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야당은 친노 강경 또는 정동영식 ‘오직 진보’만 고집했는데 그걸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과의 인터뷰는 2월 10일 오후 서울 가회동 전통한옥숙소 ‘고이(GOI)’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새누리당에 놀아난 지난 3년”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012년 4월 11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4·11 총선 투표 생방송을 지켜보던 중 박선숙 사무총장의 보고를 받고 있다.
2012년 총선부터 야당의 지리멸렬이 계속되고 있다. 그 원인이 뭐라고 보나?

“야당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이긴다고 자신했는데 두 번 모두 지지 않았나? 친노 중심으로 독식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다. 패배의 원인은 친노든 비노든 다 알고 있는데 문제는 대책이 안 선다는 데 있다. 김한길 전 대표의 투쟁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그 말에는 동의하기는 어렵다. 당 밖에는 거대 여당, 당내에는 친노세력이 있는데 김 전 대표라고 ‘용 빼는 재주’가 있었겠나? 하지만 새누리당에 끌려다닌 것만은 사실이다. 황우여 전 대표 체제 때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 수석부대표가 당을 주도했는데 그들에게 김 전 대표가 말려든 것이다.”

야당 지지율이 답보상태인 원인으로 야당의 무능함을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정국이 요동쳤을 때 야당 대표라면 ‘(부정선거 의혹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겠다’고 나왔어야 맞다. 그런데 새누리당에서 ‘야당은 대선에 불복한다는 것이냐’고 역공을 펴자 김 전 대표는 ‘그건 아니다’고 자세를 낮췄다. 또 지난해 6·4 지방선거 직전까지 안철수 공동대표가 기초단체장 공천을 안 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적전(敵前) 자진 무장해제와 다를 바 없다. 새누리당이 ‘기초단체장 불공천’ 대선공약을 안 지킨 것에 대해서 야당은 아무 말도 못하다가 새누리당이 적반하장식으로 ‘불공천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니까 ‘지키겠다’며 움츠러 들었다. 그것도 끝까지 지키지도 못하고 뒤늦게 공천하는 쪽으로 번복한 것 아닌가? 최근 몇 년 동안 새정연은 새누리당에 놀아났다. 당이 이처럼 표류했던 근본적인 원인은 대표 주변에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표가 올바른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참모가 필요한데 새정연에는 그런 인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과 야당은 ‘시소’와도 같다. 통상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하면 야당의 지지도는 올라간다. 대통령의 인기 하락은 야당에는 반전 모멘텀이 되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작금의 여야 지지율의 추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갤럽이 2월 3~5일 전국의 성인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前週)와 같은 29%에 머물렀다. 리얼미터가 2월 6~9일 전국의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 새정연의 지지율은 30.5%로 전주에 비해 2.8%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컨벤션 효과(전당대회 같은 이벤트 후 지지율 상승효과)’를 감안한다면 오름세가 지나치게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로 치른 6·4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의 패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코미디 같은 공천 때문이다. 지방선거 때 무리해서 윤장현 씨를 광주시장 후보로 내다보니 지지층조차도 돌아섰고, 이에 다급해진 새정연이 막판에 당력을 수도권에 집중시키지 못하고 광주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인천과 경기를 잃었다. 7·30 재·보선 때는 상황이 더 나빴다. 난데없이 권은희 씨를 광주 광산을에 등장시켰다. 허동준 씨와 기동민 씨의 다툼에 이어 노회찬 전 의원이 야권단일후보로 등장한 서울 동작을은 또 어땠나? 거기에서 당이 완전히 망가졌다.”

“합리적 의사결정구조와 공정한 룰이 개혁의 출발점”


▎2012년 4월 11일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여의도 당사에서 4·11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상돈·이양희 비대위원, 박근혜 비대위원장, 이준석·조동성 비대위원.
문재인 의원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다. 내부 문제로 국한했을 때 문 대표가 해결해야 할 새정연의 가장 큰 문제점을 뭐라고 보나?

“야당의 문제는 ‘호남은 언제든, 무조건 우리 것’이라는 패권주의, 그리고 진보지상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 것들에서 탈피하는 것이 과제다. 그래야만 수도권과 중도층의 표심을 잡을 수 있다. 새정연 내에는 여러 민주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분명히 당의 자산이다. 하지만 민주화 경력이 유일한 정치적 자산인 사람들도 있다. 그건 심각한 문제다. 문재인 대표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들이다.”

이 명예교수는 새누리당이 어려웠던 때 비상대책위원으로 참여해 개혁의 틀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새누리당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박 대통령은 내게 세 차례 부탁했다. 비대위원장 시절, 총선 때, 그리고 대선경선캠프 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2012년 총선 때는 당시 박 비대위원장에게 ‘2004년 17대 총선 때 수준으로 비례대표 공천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7대 총선 때도 당대표는 박 위원장이었다. 그때 박 대표는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해서 비례대표와 새누리당 강세지역에 배치했다. 나는 19대 총선 공천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대선 승리는 물론이고 집권 후 5년도 순탄하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공천은 그렇게 이뤄지지 못했지만 변화의 노력과 메시지만은 국민에게 어필됐던 것 같다.”

새누리당은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에게 패한 뒤 추락일로를 걸었다. 쇄신파들의 퇴진 요구에 직면한 홍준표 전 대표는 취임 5개월 만에 낙마하는 운명을 맞았다. 홍 전 대표의 사퇴는 결과적으로 박근혜 의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공간’을 제공해줬다.

다시 지휘봉을 잡은 박 위원장은 전면적인 쇄신작업에 나섰다. 그때 한나라당 간판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총선 두 달여 전까지만 해도 의석 수가 110석 남짓으로 예상됐던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과반의석(152석)을 차지하며 박근혜 위원장에게 또다시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줬다.

지난해 이 명예교수는 새정연의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에 앉을 뻔했다. 그때 새정연에 들어갔다면 어떤 개혁안을 내놓으려 했나?

“비유하자면 문희상 전 새정연 비대위원장 스타일이 아닌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 같은 위치에서 일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랬다면 새정연에 외부인사가 많이 영입됐을 것이다.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가 ‘교수님이 와주셔야 외부인사들을 모실 수 있다’고 요청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외연확대가 곧 정치개혁이다. 야당이 여당에 비해 부족한 것 중 하나가 당내 의사결정구조라고 본다. 이번 당대표 선거 때도 룰 문제로 시끄럽지 않았나?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아가 총선 공천 룰도 합리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와 공정한 룰은 개혁의 출발점이다.”

이 명예교수가 새정연에 들어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보나?

“당에 나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와 별개로 내 입장에서도 오직 진보만을 외치는 정당에 들어가서 일할 수는 없었다. ‘야당이 집권하려면, 또 보수정권 10년의 병폐를 극복하려면 진보지상주의에서 탈피해서 제3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걸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흔쾌히 동의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도 나를 만났을 때 외연확대가 절실하다고 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소위 ‘강경파’들이 나를 반대한 것이다. 자신들의 입지가 불리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니까 박 전 원내대표 등도 더 이상 주장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일부에 알려진 것처럼 문 대표가 나를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문 대표가 나를 천거한 것은 아니었지만 박 전 원내대표의 제안에는 동의했다. 문 대표의 아랫사람들 중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깨끗한 실용”


▎2012년 1월 회의 도중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는 이상돈 비대위원.
DJ(김대중 전 대통령)·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과 요즘 새정연을 비교한다면?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를 계승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는 같을지 몰라도 리더십 면에서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의 새정연이 지리멸렬하긴 하지만 그래도 참여정부 때 열린우리당보다는 낫다. DJ의 리더십은 정말 특별했다. 앞으로도 그런 리더십은 기대하기 어렵다. 노무현의 리더십은 역동적이고 승부사적이긴 했지만 독선적이고 적을 만드는 단점도 컸다. 집권기간 5년 중 마지막 2년은 거의 자포자기 아니었나? 당시 여당은 2007년 대선을 치를 준비조차 안 됐었다. 노무현 정권을 김대중 정권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DJ는 자력으로 대선에 도전해서 안 되니까 JP(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TJ(박태준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까지 끌어들여서 결국 대권을 잡지 않았나? 새정연은 그런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내림에 따라 야권은 어느 때보다 고비를 맞고 있다.

“현실적으로 통진당의 재기가 어려운 만큼 새정연, 정의당 등 야권이 국민에게 어떻게 다가서느냐가 중요하다. 1980년대 영국 노동당은 노동자 중심의 진보 이념과 정책을 내걸었지만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번번이 패했다. 당시 노동당은 ‘우리는 패배하고 또 패배해도 우리의 길을 간다’며 마이 웨이(My way)를 선언했다. 노동당의 연패는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제3의 길’이란 우(右)클릭 정책을 내걸 때까지 이어졌다. 새정연은 영국 노동당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3년차를 맞으면서 다음 대선에서는 야당이 유리하다는 성급한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2017년 대선은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1997년 이후 20년 만의 대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때와 비교해 국민이 더 보수화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민은 노무현 정권, MB 정권,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점점 실용적 관점에서 정치를 보고 있다. 다음 대선의 화두는 다시 실용이 될 것이다. MB식 실용이 아니라 깨끗하고 정의로운 실용을 말한다. 국민 대다수는 정치가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길 원하는 반면 극단적인 이념대립이나 갈등에는 식상할 것이다.”

다음 대선은 어떻게 예상하는가?

“앞으로 청와대가 개선될 것 같은가? 대통령이 변하겠는가? 민생이 좋아지겠는가? 모두 아닐 것이다. 여당이 변화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대통령이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영남 전체적으로 새정연 후보가 많이 당선되긴 어렵겠지만 대구와 부산에서는 모른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순천·곡성에서 당선됐던 것처럼 대구와 부산에서는 새정연 후보가 이길 수도 있다. 3년 전 총선 때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다는 점에서도 영남에서 이변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MB 정권과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10년 동안 국민의 피로감이 커진 데다 박근혜 정권이 MB 정권보다 딱히 잘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야당이 거저 권력을 잡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3년 전에도 그러다 다 망가진 것 아니냐?”

“표 얻기 전에 믿음부터 얻어야”

새정연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영국 노동당처럼 제3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는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른 뒤 경제민주화와 복지담론을 선점함으로써 기존의 보수표에 중도층까지 흡수했다. 그게 총선과 대선의 승리로 이어졌다. 아울러 새정연은 정책을 조절하고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 (당내 차기 대선후보 경쟁에서) 일단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 문 대표가 ‘진보철학’에 매몰된다면 당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진보철학의 대표적인 것이 ‘세금을 많이 걷어서 정부가 일을 많이 하자’는 것인데 그건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침묵하는 중도층이 ‘새정연에 정권을 줘도 되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기업인들은 대통령을 만들 수는 없지만 당선을 비토(반대)할 수는 있다. 문 대표가 당의 수장으로서 경제·재정·금융 등의 분야에서 참모를 쓸 때도 판에 박힌 듯한 진보학자들을 기용하면 곤란하다. 진보·보수를 떠나 파격적으로 인재를 등용해야 기업인들이나 중도층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답은 제3의 길에 있다.”

이 명예교수의 주장은 새정연이 새누리당의 선례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난센스 같지만 일리 있는 얘기다. 탄탄한 보수표를 갖고 있는 새누리당은 3년 전 총선 때 경제민주화로 중도표까지 가져왔다. 당색(黨色)을 빨강으로 바꾼 새누리당이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경제민주화와 복지담론을 선점하자 야당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선거를 이슈와 프레임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야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미 지고 들어간 것이나 다름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 명예교수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좋은 공약은 죄다 들고 나왔다가 줄줄이 ‘부도’를 내버린 새누리당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며 새정연의 새로운 선장이 된 문재인 대표에게 고언(苦言)을 덧붙였다.

“정치 지형상 1997년 DJ가 집권했을 때와 2015년의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제3당의 유무다. 당시엔 자민련이라는 3당이 있었고,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한계를 느꼈던 DJ는 JP에 이어 TJ까지도 껴안았다. 문 대표로서는 일단 한 번의 기회는 잡은 것이다. 대권을 품으려 한다면 문 대표는 안철수·손학규 전 대표와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한다. 당내에서 결이 다른 세력부터 아울러야 외연도 확대할 수 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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