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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의 쟁점 - 연구 자율성은 확대, 핵비확산 약속은 준수해야 

농축·재처리·원자력 수출 등이 쟁점… 국가 전체의 장기적 원자력 이익 관철이 중요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월성 원자력발전소 저장 시설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 한 다발.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된 후 폭탄 제조에도 쓰일 수 있으므로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영화 [차이나 신드롬](China Syndrome)은 1979년 3월 개봉된 영화다. 줄거리의 배경은 미국 LA 근처에 위치한 가상적인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그 시절 거물급 스타인 마이클 더글라스, 제인 폰다, 잭 레먼이 출연했다. 감독은 제임스 브릿지(James Bridges)였다. TV 방송국 여기자(제인 폰다)가 카메라 기자(마이클 더글라스)와 함께 취재하는 플롯이다.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남우·여우주연상, 각본상 등의 후보로 올랐고, 1979년 칸영화제에서 잭 레몬(원자력 연구소 자문역)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는 등 문제작이 됐다.

영화 속의 원전사고 양상은 심각했다. 냉각장치 고장으로 노심용융(core melt-down)에 가까운 상태로 번진다. 그 결과 핵연료 일부가 외부로 유출되고, 지하수가 오염되고, 과열로 인해 마그마 덩어리가 지각(地殼)으로 침투한다. 영화 제목 ‘차이나 신드롬’에 대한 해설은 없었으나, 지구 반대쪽 중국에까지 파고들어 방사능 오염이 번지는 것을 시사했다. 물론 지구상에서 중국은 미국의 정반대쪽 나라는 아니다.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SF(Science Fiction)라 여겼다. 노심용융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 지 2주일 뒤, 상황은 급 반전된다. 1979년 3월 28일 새벽, 펜실베니아주 도핀 카운티(Dauphin County)에 위치한 TMI(Three Mile Island) 원전에서 진짜 사고가 터진 것이다. 원인은 TMI 원전 2호기에서 증기 발생기로 들어가는 급수계통에서의 이상이었다. 그로 인해 소량의 방사능이 유출됐다. 다행히도 원전의 격납 용기가 제구실을 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대규모 방사능 오염사태로 번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론은 공포에 휩싸였다. 당국은 갈팡질팡했다. 과학기술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차이나 신드롬]에서의 플롯과 비슷해서 더 충격이었다. 사고가 나자 사람들은 이 영화 얘기를 하게 됐고, 노심용융이 어떻게 될지 뒤숭숭해졌다. 특히 지역주민들은 심리적인 패닉 상태에 빠졌다.

센세이셔널리즘에 취약한 원자력 이슈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에너지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원자력 에너지의 연구개발 노력은 게을리할 수 없다.
1979년 TMI 사고 이후, 원전의 종주국인 미국은 2012년까지 원전의 신규 건설 인허가를 한 건도 내주지 않았다. 원전 침체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79년 상황은 영화 [차이나 신드롬]과 TMI 사고라는 픽션과 논픽션이 공교롭게 겹치면서, 가상적 상황을 현실화시켜 버렸다. 지구 ‘가이아 이론(Gaia Hypothsis)’을 제창했던 러브록(James Lovelock)은 “할리우드 때문에 원자력의 피해가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1940년대 실용화 단계로부터 원자력은 찬반이 첨예하게 부딪친 분야다. 기술적, 역사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외교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전체 그림을 다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찬반세력이 각각 원자력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한쪽만 보는 경향이 있다. 원자력에 대해서는 방사능 오염의 특수성 때문에 잠재적 공포가 크다. 때문에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에 더 취약하다. 일반대중은 휩쓸리기 쉽다. 딱딱하고 난해한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의 말을 그리 신뢰하지도 않는다. 이미 대형사고가 났고 관행적 비리가 표출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계는 일반대중에게 어떻게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할지 잘 모른다. 서로가 잘 모르면서 민감한 이슈를 다루다 보니, 더욱 꼬인다.

원자력은 안팎으로 난제를 안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공론화 지연, 노후 원전 설계수명 연장 여부, 신규 원전 부지 선정, 원전 안전성 등이 현안이다. 대외적으로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타결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협정 만료 시한은 2014년 3월이었으나 2016년 3월까지 연장된 상태다. 의회 비준 등 법적 절차에 걸리는 시간 등을 역산하면 금년 초반에는 타결돼야 하는 일정이다.

협정 발효 4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원자력의 역사적, 기술적, 외교안보적 특수성을 두루 이해하지 못하는 한 결과에 대해 불만족이 표출될 공산이 크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어느 한쪽이 만족스러워 할수록 다른 쪽은 그렇지 않게 될 우려도있다. 과거나 현재나 원자력은 그만큼 복합적이고 공평하지도 않고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 협정은 1956년에 체결된 후, 연구용 원자로 도입 등으로 1958년과 1965년 두 차례 개정됐다. 그리고 1967년 발전용 원자로 3기 건설 계획을 계기로 1974년에 다시 개정 발효됐다. 원자력의 민간 이용(Civil Use)에 관한 협력을 기조로 하고, 원자로의 설계, 건설, 가동과 그 밖의 평화적 이용과 연구개발 등이 주요 내용이다. 1978년에 가동된 고리 1호기 사업은 그 협정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상황을 보자. 설계·구매·제작·시공 등의 주계약자는 웨스팅하우스사였다. 우리는 단순노동을 맡았다. 그런데 원전 가동 31개국 중 22번째로 등재된 나라가 원전 도입 30년 만에 설비용량 기준 세계 5위, 발전량 기준 세계 4위 국가가 됐다. 2009년에는 UAE로 진출, 미·불·일·러·캐나다 다음으로 여섯 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다. 국가 위상도 그때와는 다르다.

그런데 그 옛날 협정으로 구속을 받다니, 이게 웬 불평등인가 할 수 있다. 이제 확 바꿔서, 우리도 핵연료 저농축을 해서 핵연료 선행주기도 돌아가게 하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해서 후행주기도 뚫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 자립도를 높인다면 수출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도있다. 그러니 우리 쪽 입장만 본다면, 이들 내용이 이번 협정 개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협상 당초 언론에 보도된 협정 개정의 목표도 농축, 재처리, 수출 경쟁력 등 세 가지였다.

그렇다면 그런 요구가 미국과 국제사회에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다. 원자력 이슈에서는 어느 국가의 주권이나 산업경제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질서가 그렇다. 한마디로 원자력 기술은 원천적으로 군수와 민수의 이중용도(dual use)라는 굴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한네스 알벤(Hannes Alfven)은 ‘평화를 위한 원자와 핵무기를 위한 원자는 샴쌍둥이’라고 표현했다. 원전과 핵폭탄이 기술적으로 한 몸이란 뜻이다. 이중용도에 저촉되는 핵심 기술이 바로 농축과 재처리다.

원전산업의 모태는 핵무기 기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8년, 독일의 작은 실험실에서 성공한 우라늄-235의 핵분열 연쇄반응은 1945년의 원자폭탄 개발로 이어진다. ‘히틀러가 선취하느니 서방 측이 먼저 만드는 편이 낫다’는 망명 과학자들의 권유에서 비롯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을 계기로 본격화된다. 그리고 원폭 투하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다. 당시 NBC 라디오는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했다”고 논평했다. 원폭 투하로 인해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라 전쟁 피해를 입은 나라가 돼, 미국의 집중적인 원조를 받게 된다.

원자력 산업의 태동과 규제 정책은 미국의 작품이다. 1946년 출범한 원자력위원회(AEC)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관련 시설을 인수받는다. 당시 원자력법 제정의 주역들은 “원자력 에너지 분야는 자유기업이라는 경제 체제의 한가운데 위치한 사회주의 섬이 됐다”고 평했다. 1954년 원자력에너지법(Atomic Energy Act) 개정에서는 민간부문의 원자로 소유가 허용되고, 정부 지원까지 받게 된다. 제123조는 대통령이 타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도록 한다.

그것을 계기로 “원자력 관리에 대한 감시를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어느 나라든 간에 원자로를 제공한다”는 기치 아래 세계로 진출한다. 그 결과 미국은 1957년 말까지 23기의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하고, 49개국과의 원자력 협력 상호조약을 체결한다. 한국은 종전 후의 국제 정세, 에너지 위기 등의 이유로 적극 동참한 국가였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을 제안한다. 이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1947년 미·소 냉전 돌입, 1949년 구소련의 핵실험 성공,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등의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 미국의 원전산업 추진이 빈곤과 공산주의 극복에 의해 냉전에서의 승부수가 될 것으로 보았던 전략이 깔려 있다. 요컨대 원전 산업의 확대는 미·소 양진영의 냉전시대의 유산이자 1970년대 에너지 위기의 산물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원자력의 특성은 비밀주의다. 그 뿌리는 핵무기 개발의 정보 보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자력의 이중용도 위험성 때문에 종전 후 평화적 이용에서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린다. 원자력 통제는 정보의 비밀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다. 미국 의회는 입법을 통해 순수 연구라 하더라도 결과를 누설하는 경우 처벌을 받도록 했다.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미국인들이 원자력 때문에 이러한 비민주적 상황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왜 재처리를 하지 않는가?


▎경북 경주시 양북면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경주는 우리나라 사용후핵연료 전체 다발의 약 97%를 저장하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첫 작 품은 1 954년 노틸러스(Nautilus) 핵잠수함이었다. 이때 웨스팅하우스사가 참여한 마크I 프로젝트의 원자로가 변형된 것이 상업발전용 가압경수로형(Pressurized Light-Water Reactor)이다. 이처럼 군수용 원자로를 변형해서 민수용 원자로로 개량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여론이 있다. 만일 처음부터 발전용 원자로로 개발했더라면 형태가 달라졌을 것이란 지적이다.

1970년에는 국제핵확산금지조약(Non Proliferation Treaty)이 발효된다. 핵무기 보유국과 비 보유국의 의무가 규정된 계기다. 미·러·영·불·중국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돼 장기적 핵군축에 들어가고, 비 보유국은 원자력 활동에 철저한 제한을 받게 된다. 1995년에는 조약 시한이 무기한으로 연장됐다. 가입국은 190개국. 북한은 1985년에 가입했으나 1993년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을 빌미로 협상을 거부하고, 2003년 탈퇴를 선언한다. 유엔 가입국 중 미가입국은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남수단 등이다.

1990년대는 한반도를 둘러싼 핵안보가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됐던 시기다. 91년 미국은 한국에 배치했던 전술 핵무기 철수를 발표하고, 한국은 단독으로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발표한다. 이어서 92년에는 남과 북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표된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핵무기를 개발 또는 보유하지 않고, 농축이나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국제사회에 천명한 것이다.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거듭되고, 6자회담은 표류한다. 북한의 태도 변화로 인해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퇴색했다. 그러나 한국의 단독 선언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04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물질 안전조치 추가 의정서가 발효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 새롭게 미량의 핵물질 실험 사실을 신고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농축과 재처리를 시도했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원칙을 재천명하고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설립 등의 조치를 강화한다.

여기서 미국의 재처리 정책을 살필 필요가 있다. 재처리 이슈는 미국에서도 정치적 논쟁거리였다. 1976년 공화당 출신 포드(G. Ford) 대통령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프로그램을 중단하라는 자문의견을 받아들인다. 그해 대선에서 승리한 카터(J. Carter) 대통령은 이 결정을 수용, 1977년에 재처리 중단의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재처리 중단 동참을 권고하는 등 핵 비확산의 기수로 나선다. 레이건 대통령 때 재처리를 허용한다는 변화가 있긴 했으나, 재처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 비확산 방식의 재처리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는 있으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재처리 시설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재처리 금지 조치의 근거는 두 가지였다. 첫째, 재처리 비용이 핵연료를 한 번만 태우는 비순환 우라늄 핵연료주기 운영비보다 높다는 것. 둘째, 재처리 기술이 퍼져나갈 경우 핵확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 현재 유일한 상업적 재처리 기술인 습식처리(PUREX)에서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분리된다. 재처리 관련 위험 국가는 특히 북한과 이란이다.

원폭이 투하된 것은 1945년 일본에 한 차례였다. 미국은 그동안 핵전력 강화에 5조5천억 달러를 투입했다(Brookings연구소). 복지 예산 다음으로 많은 액수다. 구 소련을 포함시키면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것이다. 지구상 어딘가에 널려 있는 핵무기와 핵물질이 에러(error) 또는 테러(terror)에 의해 재앙을 일으킬 확률은 제로가 아니다. 실제로 알카에다는 9·11 테러 때 원전을 그 타깃의 하나로 고려했다는 보고가 있었다(FBI, 2005).

우리 쪽은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파이로공정(Pyr o-pr ocessing)’을 강조해왔다. 전기화학 반응을 이용한 이 건식 공정은 재활용(recycling)이고, 핵확산에 걸리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국제기준은 그렇지 않다. IAEA와 WNA(세계원자력협회) 등은 파이로공정에서 플루토늄이 혼합물 상태로 얻어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분리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에 재처리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본다. 즉 둘 사이의 차별성은 인정하나 비핵 확산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용화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파이로 공정에서 얻은 것을 다시 핵연료로 쓰려면 액체소듐고속로(SFR)의 상용화가 돼야 하는데, 그 또한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매몰비용 때문에 재처리 계속하는 프랑스


▎2011년 한국형 원전의 첫 번째 수출로 기록된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의 최근 공사 현장.
미국은 이미 40여 년 전부터 파이로 공정 기술 개발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일본도 로카쇼무라에 습식 재처리 공장을 가동하면서 파이로 공정 연구를 해왔다. EU도 2008년부터 핵연료주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연구하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두 실용화까지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요소기술 개발과 검증, 핵심 공정의 용량과 효율, 통합 공정 기술 등 난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쟁점을 보자. 이 시설에서는 발전용 핵연료와 폭탄 제조용 원료를 둘 다 만들 수 있다. 발전용은 우라늄-235가 3∼5%, 폭탄용은 90% 이상이라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에서도 핵무기 제조의 플루토늄이 얻어진다. 핵무기 원료 등급보다는 농도가 낮지만, 폭탄 제조에 쓰일 수는 있다. 따라서 재처리 시설은 철저한 보안과 경비로 플루토늄이 무기 개발에 쓰이거나 핵 테러 국가로 유출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된다. 그러나 계속 보안상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최대한 억제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재처리를 계속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플루토늄 핵연료 제조는 우라늄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버드 대학 벨퍼센터(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의 2003년 연구결과는 우라늄 가격이 3배 오르면 재처리된 플루토늄이 경제성을 가지리라 보았다. 그러나 핵연료 비용은 원전의 총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재처리 이유로는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국민은 재처리 때문에 전기값을 6% 더 내고 있다. 그럼에도 재처리를 계속하는 이유는 시설 투자로 인한 막대한 매몰비용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재처리에 대한 쟁점은 또 있다. 수십만 년 보존해야 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부피 감축을 둘러싼 논쟁이다. 재처리에서는 추가로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다량 발생한다. 고준위 폐기물을 줄이려면 플루토늄 연료로부터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도 재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그대로 저장하고 있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물량의 차이일 뿐 고준위 폐기물은 나온다. 때문에 역시 영구처분은 해야 한다. 영국은 2017년부터 재처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서 외교적 협상 능력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핵무기 비보유국이면서도 재처리가 허용된 일본의 외교력을 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외교안보적으로 1980년대의 일본과 현재의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일본은 정작 재처리 허용의 실익을 거두고 있지도 못하다. 2008년 FRCT(Fast Reactor Cycle Technology, 고속로 주기 기술) 개발에 착수해 2025년까지 액체 소듐 고속증식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었으나 큰 차질이 빚어졌다.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시설을 건설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시절(2004∼2008년)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단편적 사례지만, 2008년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자가 요약한 ‘한미 관계의 미래에 대한 의회의 태도’(2007년)의 요지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미 의회가 한국에 관심을 두는 것은 주로 북핵과 미사일에 관련될 때라는 것, 일본에 대한 관심은 10배 이상이라는 것…. 미 의회의 태도가 지금쯤은 많이 바뀌었기를 기대한다.

전략적 접근으로 명분과 실리 얻어야


▎2013년 12월 박노벽 당시 한미원자력협정개정협상 전담대사(오른쪽)와 토마스 컨트리맨 미 국무부 국제안보 비확산차관보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제7차 협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3년 10월 서울을 방문한 아인혼(R. EInhorn) 전 미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 특보를 원탁회의에서 만났다. 2010년 10월 협정 개정 협상을 시작할 때 미국 수석대표였던 그는 한·미 10개년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우라늄 농축연료 시장은 가격이나 시장 접근이 안정적이며, 우라늄 농축회사의 지분 매입이 더 경제적일 것이라 보았다. 앞으로 정부 간 협상이 마무리돼도 의회 시각이 변수가 될 수 있다. 201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그리고 상원 외교위원장이 되는 공화당 밥 코커(Bob Corker) 의원은 핵확산에 대해 더 단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 협정 개정에 대한 국내 협상도 쉽지 않다. 원자력계, 언론, 시민단체, 국민의 정서와 국회의 시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급속히 확대되는 중국의 원전산업을 비롯하여 동북아 원전 클러스터의 앞날을 전망할 때, 격동적 에너지 환경에서 우리 에너지 안보의 절실함을 고려할 때, 우리로서는 기술 자립도를 갖춘 원자력 에너지의 연구개발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전략적 접근에 의해 명분과 실리를 얻는 것이 갈 길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것 같아도 이를 위해서는 국제기준을 지키고 국제신뢰를 쌓고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협정 개정은 원자력 연구개발 관련 자율성을 확대하고 핵비확산 준수를 확실히 약속하는 선에서 매듭짓는 것이 양국의 목표를 아우르는 해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미묘하고 복합적인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평화 공존의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 추구에 동참할 수 있는 세계시민 의식이 절실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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