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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포트 | 자국민 참수사건 직면한 일본의 오판 - ‘헤이와보케’ 종언(終焉)의 뇌관 될라!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전후(戰後) 70년간 누적돼온 일본 내부의 갈등이 IS의 테러 맞아 한순간에 해결되는 ‘전환점’으로 작용… 9·11 이후 미국이 강성국가로 변모했듯이 인질 참수 이후 일본도 같은 길 내달릴 가능성 높아

▎일본 TV에 등장한 고토 겐지 참수 뉴스. 고토 참수 사건은 일본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아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진화된다
“‘테러범과 협상 않는다’는 국제적 ‘공식 원칙’ 무너뜨린 아베… IS 인질 구출해도, 희생돼도 아베 총리에 정치적 타격 줄 듯”

지난 1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본인 참수사건을 보는 한국 언론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흥미진진한 사건 내용과 더불어,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아베 신조의 대의명분으로 작용하리라 풀이한다. 인간의 잔인성이 어디까지 가는가를 보여준 비극적 사건이지만,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공분(公憤)보다는 ‘우익 아베’의 향방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참수 사건은 요르단 비행기 조종사의 화형으로 발전됐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의 복수 다짐과 함께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대대적 공습이 이어졌다. 격화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사건이지만, 한국 신문을 보면 고토 겐지(後藤健二) 참수 이후의 중동 뉴스는 해외토픽 수준으로 급락한다.

참수 사건을 둘러싼 한국 신문·방송의 논조를 보면 두 가지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란 점과 중동의 일이 한국인과는 무관한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인 인질 사건을 외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참수 사건의 후폭풍과 국제정치적 의미는 무엇인지, 만약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경우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에 관한 논의가 전무하다. ‘우익 아베’에 대한 비난이 뉴스의 중심이다.

사실, 비난의 근거를 보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선, 아베가 ‘테러범과 협상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정보 취득을 위해 전방위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 테러범과 협상하겠다는 의사를 비치지 않았다. 참수 사건 이후 아베 총리에 정치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수 사건 이후 아베내각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58%에 달했다. 직전의 조사에 비해 5%포인트나 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실패를 경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전구에서 불빛이 생기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발견을 지금까지 2만 번 재확인했다.”

일본인 경영자 모임에서 자주 언급되는, 발명왕 에디슨의 말이다. ‘실패의 성공학’이란 이름의 비즈니스 모델을 얘기할 때, 경영에 관한 모범답안으로 꼽는 명언이다. 전구에서 비치는 불빛을 ‘발명’해내기까지, 무려 2만 번의 ‘발견’을 반복했다는 얘기다.

참수 사건은 20세기판 일본인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꾼, 빅뉴스에 해당된다. 2만 번의 발견 끝에 탄생한 빛나는 전구처럼, 전후(戰後) 70년간 누적돼온 수많은 일본 내부의 갈등을 한순간에 해결할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일본의 전후 세계관은 ‘헤이와보케(平和ボケ)’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다. 일본의 안보와 안전을 미국에 맡기고, 무력 사용 자체를 100% 배제하면서 평화적 수단에 올인하는 자세다. 참수 사건은 그 같은 종래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사실 헤이와보케의 종언(終焉)은 아베 등장과 함께 이미 시작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집단적 자위권, 적극적 평사실 헤이와보케의 종언(終焉)은 아베 등장과 함께 이미 시작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집단적 자위권,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은 헤이와보케 나라가 아닌, 전쟁에 돌입할 수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베의 그 같은 생각을 피부로 실감하기 어려웠다. 섬 하나를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미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이 이뤄지고 오바마와 미 의회 관계자들이 미일동맹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안심하는 상태다.

100m를 20초에 달린 67세 장관


▎67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보여주는 100m 20초 스피드의 달리기. 아베 내각의 결연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참수 사건은 다르다. 정한 시간 안에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인질의 목을 베는 극단적 상황이 일본과 일본인에게 밀어닥친다. 외부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일본 독자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떨어진 것이다. 이 같은 극한상황을 맞아 일본은 과연 어떤 식으로 대응했을까? 그에 대한 최적의 답은 100m 달리기 속도로 대응한, 한 인물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2015년 2월 1일 아침 5시10분. 인질로 잡힌 저널리스트 고토를 참수했다는 이슬람국가(IS)의 영상물이 인터넷에 뜬다. 이후 30분 뒤인 5시40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수상관저로 들어간다. 이어 20분 뒤인 아침 6시, 긴급 기자회견을 갖는다. 관방장관은 정부 대변인이라 보면 된다. 내각의 중진이 맡는 자리다. “(고토 참수와 같은) 부도덕하고 비열한 테러 행위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격한 분노를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아니 감동한 것은 스가 장관이 수상관저로 들어가던 아침 5시40분 때의 모습이다. 스가 장관은 관저로 그냥 걸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뛰어 들어간다. 어림잡아보면, 대략 100m를 20초 정도의 속도로 달린다. 관저 앞을 지키고 있던 신문·방송 카메라가 못 따라갈 정도의 스피드다. 수행 비서도 못 따라가면서 뒤에 처진다. 뛰는 과정에서 건물 바닥을 때리는 신발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스가 장관은 1948년 생으로, 올해 67세다. 결코 젊지 않은 나이로, 아베에 이어 내각의 2인자로 군림하는 인물이 아침 5시40분에 모든 힘을 다해 뛰어간다. 필자는 텔레비전을 지켜보면서 전 세계 그 어떤 장관이 저런 모습으로 긴급사태에 대응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 오더라도, 상기된 얼굴과 굳게 닫힌 입술 정도로 대응하는 장관이 대부분일 것이다. 제3차 대전이 터졌다 해도 100m 20초 속도로 달리는 장관은 드물 듯하다. 빠른 스피드가 옳은 대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을 대하는 자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참수 소식이 전해진지 불과 30분 만에 관저로 향하는 신속한 대응방안도 놀랍다. 사건 발생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을 알리기까지 50분이 걸렸다.

“고토가 살해됐다는 영상물이 인터넷에 올랐다. 이 같은 비도덕적이고 비열한 테러행위가 또다시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격한 분노를 금할 수 없으며, 한번 더 강하게 비난한다.”

조용하지만, 결의에 찬 발언이 새벽의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진다.

스가 장관의 발표직후 국정의 총책임자인 아베가 나타난다. 아침 6시10분, 수상관저 담당기자들 앞이다. 피곤한 모습의 아베는 살해된 인물이 고토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정부로서는 전력을 다해 응했지만, 통한의 심정이 극에 달합니다. 비도덕적이고도 비열하기 짝이 없는 테러행위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낍니다. 테러리스트 들을 결코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최초 발표된 ‘그들이 죗값을 치르도록’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수상에 대한 절대적 충성자인 동시에, 내각을 하나로 묶는 군기반장에 해당한다. 중대한 정치적 결단은 스가 장관의 머리를 통해 나온다고 알려졌다
곧이어 50분 뒤 아침 7시 내각회의가 열린다. 각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이뤄진 회의의 모습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굳은 표정의 아베는 자신과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하나로 묶어 발표한다.

“가족들이 직면한 고통을 생각하면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듯 합니다…. 테러리스트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값을 치르도록, 국제사회와 연대해 대처해나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테러에 굴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중동에 대한 식량·의료 등의 인도적 지원을 한층 더 충실히 할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국제사회에 동참해, 일본이 갖는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 테러행위에 대해 강한 연대감을 표시해주시고, 석방을 위해 협력해주신 세계의 지도자와 일본의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정을 표합니다.”

2분 정도의 발표는 국민적 분노를 잘 표현한, 모범답안으로 와 닿는다. 테러 이후 발표되는 통상적인 성명처럼 느껴진다. 일본인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발표 문안의 표현인 ‘그들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도록(その罪を償わせるために)’이라는 말 때문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to make the terrorists pay the price’라는 말이다. 테러에 접한 오바마 대통령의 상투적인 표현처럼 느껴지는 말이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그 같은 표현을 정부 공식입장으로 세계에 알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수상이 앞장서서 그 같은 ‘분노의 발언’을 공식화한 적은 없다.

보기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일본인들은 ‘복수’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인 참수에 관련된 이슬람국가에 대해 복수하겠다’라는 것이 발표 문안에 들어가 있다. 아베 발표 직후 일본의 신문·방송은 ‘복수를 다짐하는 아베’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긴급뉴스로 보도한다.

〈뉴욕타임스〉는 2월 1일자 도쿄발 뉴스에서 참수 사건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의식상황을 자세히 알려준다. 간단히 말해, 두 인질 참수 사건을 미국의 2001년 9·11테러 사건, 나아가 최근의 프랑스 풍자만화가 테러사건의 일본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일본은 테러리즘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온 나라다. 평화대국은 일본의 이미지이자, 일본의 자랑이다. 그러나 2015년이 들어서기 무섭게,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함과 공포가 일본을 덮쳤다.

두 일본인 납치소식이 알려진 뒤 무려 12일간 일본 전역이 ‘참수의 공포’에 휩싸인다. 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석방비는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불가능한 액수다. 협상 당시 이미 화형된 것으로 판명된 요르단 조종사 문제에서 보듯, 일방적이고도 거짓으로 가득 찬 ‘악의 무리와의 협상’이 12일간 계속된다.

고토 참수가 확인되는 순간, 일본인은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모두 표출하게 된다. 복수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지만, ‘자국민이 저렇게 희생됐는데 일본도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라는 울분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비슷한 사건이 터질 경우 일본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원망도 들린다. 필자는 9·11테러 당시 워싱턴에 머물고 있었다. 펜타곤 근처에 집이 있었기에 비행기 테러로 엉망이 된 펜타곤 건물의 연기에 휩싸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필자가 거의 매일 접했던 미국인들의 분노는 단 한마디다. “그들이 우리에게 한 것의 열 배, 백 배, 천 배로 갚아줘야 한다.”

‘자위대 출동 시뮬레이션’의 충격


▎고토 참수에 대한 아베의 성명은 복수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에서 복수를 전제로 한 외교담화가 발표된 것은 전후(戰後) 처음이다.
고토 참수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죄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분이 터져 나온다. 9·11테러가 터진 지 14년이 흐른 2015년 2월, 일본판 9·11이 나타난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특별 호외를 발간한다.

일본정부의 발빠른 대응을 보면서 필자가 떠올린 것은 17년 전 일본 전역을 깜짝 놀라게 인상 깊은 기사다. 1998년 12월 23일 〈아사히〉에 실린, ‘자위대 출동 시뮬레이션: 만약 무장집단이 일본에 상륙한다면?(自衛隊出動シミュレーション·武装集団が上陸したら)’이란 제목의 기사다. 〈아사히〉 사회부 기자들이 쓴 기사로, 당시 일본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무장집단이란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북한 게릴라가 주인공이다. 14쪽을 할애한 기사로, 타이틀에서 보듯 ‘만약’을 전제로 한 시뮬레이션이다. 수상, 관방장관, 군 관계자, 저널리스트 등 전부 6명의 역할을 맡는 인물이 등장해 6시간에 걸쳐 시행한, 현장 시뮬레이션이다. 6명의 배역을 맡은 인물은 실제로 정부와 자위대 내 고위급 인사들이었다.

시뮬레이션은 모년 모월 1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다. 일본 바다에 수상한 배 즉, 불심선(不審船, 괴선박)이 등장한다. 해상보안청이 정지를 명령하지만 빠른 속도를 내면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후 3일 새벽 4시 7~8명의 무장집단이 일본에 상륙해 검문 중이던 경찰관을 쏘고 도망간다. 일본 곳곳에서 무장집단에 의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태 진압에 나서는 것은 경찰관이다. 평화헌법에 묶여 자위대 출동이 어렵다. 악화되면서, 자위대 출동 여부를 둘러싼 정부 내 갑론을박이 이뤄진다.

자위대 출동과 무력사용이 법적으로 제한된 상태에서 수상은 선뜻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자위대 간부들도 출동에 따른 법적 근거를 요구하면서 망설인다. 그동안 무장집단에 의한 총격전이 가속화된다. 경찰을 통해 막아내려 하지만, 상대가 안 된다. 이리저리 망설이고 헤매던 중, 4일 새벽 경찰의 공격과 자살에 의해 무장집단의 만행이 끝이 난다. 사건 발생 60여 시간 만의 종결이었다.

〈아사히〉 시뮬레이션 기사는 사시(社是)에 어긋나는, ‘자위대 출동 찬성’으로 해석된 심층보도다. 위기가 닥쳐도 법적인 제약으로 인해 자위대 출동이 어렵고, 설령 현장에 간다 해도 무력 사용에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시뮬레이션의 결론이다. 위기를 맞아 노출된 일본 수뇌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흥미롭게도 기사가 나간 지 3개월 뒤인 1999년 3월 23일, 일본 북쪽 노도(能登)반도 바다에 불심선이 ‘진짜’ 나타난다. 당시 불심선의 모습은 일본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 수준으로 중계됐다. 불심선은 북한의 간첩선으로 99.99% 추정된다. 당시 일본은 전후(戰後) 두 번째로 실탄과 폭탄을 사용하면서 불심선을 추적했다. 결국 북한 쪽으로 도망치면서 상황은 종료되지만, 시뮬레이션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는, 자위대의 활동 영역과 능력을 한 단계 높인 사건으로 진화된다.

1998년 일본과 2015년 일본의 격차


▎2015년 2월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신전쟁론]은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일본을 지키기 위해 전쟁도 각오해야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참수 사건을 〈아사히〉 시뮬레이션 당시 상황과 비교할 경우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장세력이 일본 내에 나타난다 해도 자위대 출동과 무력 사용의 범주가 제한적이었던 시기가 1998년이다. 정부 수뇌부의 우유부단한 자세와 애매한 법적 근거로 인해 결정 하나 내리는 데도 온갖 이유와 명분이 필요하던 때가 17년 전이다. 2015년 인질 참수 사건에 대응하는 일본 수뇌부의 움직임은 〈아사히〉시뮬레이션에 등장한 의사결정자들과 180도 다르게 나타난다. 더 이상 빠를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인 것이 아베 내각이다.

참수 사건 이후 논의되고 있지만, 자위대 출동과 무력사용 영역의 경우, 일본을 넘어선 외국까지 확대되고 있다. 아베는 2월 6일 국회 답변에서 납치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자위대가 외국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납치된 일본인이 거주하는 나라의 요청이 있고, 자위대의 군사적 능력이 향상될 경우라는 두 가지 전제를 단 출동이다. 아베와 스가가 보여준 대응 방안은 〈아사히〉 시뮬레이션을 무성영화 당시의 빛 바랜 필름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린 듯하지만, 한국의 세월호 사건은 일본인 참수 사건을 보면서 떠올린 슬픈 기억이다. 정확히 말해, 정부의 위기관리능력과 자세에 관한 부분이 두 사건을 통해 비교된다. 사건이 터지는 즉시 어떤 식의 자세와 방침을 굳히면서 대응해 나가는가라는 부분이다. 중앙정부 주도 하의 위기관리능력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것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48분. 최종 침몰 시간은 4월 18일 오후 12시35분이다.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현장을 방문한 것은 4월 17일 오후 1시. 사건 발생 29시간 뒤다. 사건 당일 세월호 관련 보고와 관련해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얘기는 이후 언론·국회 심지어 일본 신문까지 끌어들이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관련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이후 5월 19일 이뤄진다. 최종 침몰 후 31일이 흐른 뒤다. 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국가개조를 역설한다.

충격의 정도로 본다면, 세월호 사건은 9·11테러와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참수 사건처럼, 한순간에 닥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진행됐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사건 발생과 종결에 이르는 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약 28시간, 일본은 12일간에 걸쳐 이뤄졌다. 한일 정상이 보여준 위기 대응 시점을 보면, 박 대통령이 31일, 아베는 2시간이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충격이 국가적 차원으로 확산될 경우, 국민의 기대나 반응은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다.

새삼스럽게 박 대통령의 위기대응능력에 관해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비해, 일본판 9·11에 대한 대응능력이 너무도 빠르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단언컨대,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류의 사건을 세계 어딘가에서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슬람국가, 남미의 마약 카르텔, 아프리카 반군 등 주범이 누가 될지 차이가 있을 뿐, ‘글로벌 한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테러리스트의 만행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약이 현실로 나타날 때, 과연 한국은 일본에 준하는 속도의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100m를 20초에 달려가는, 67세 장관의 결연한 자세가 국민들 앞에도 펼쳐질 수 있을까?

〈월간중앙〉 기고문을 통해 여러 번 밝혔지만, 일본사회를 특징지우는 현상 중 하나로 ‘공기(空氣)’만큼 유효한 잣대도 없다. 한국어로 ‘분위기’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 가족·조직·사회·국가에 흐르는 ‘공통적인 정서’로 풀이될 수 있다.

어떤 나라나 조직에도 공기는 있다. 그러나 공기를 기준으로 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곳으로 일본에 필적할 만한 나라는 드물다. 일본인의 경우 공기에 대한 옳고 그르고의 판단을 유예한다.

가족 전원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라하치분


▎새해에 사찰을 찾은 일본인들. 일본인의 90% 정도는 사찰과 조상 무덤 순례를 정례화한다고 한다. 사찰에 들르는 것은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공기를 읽기 위한 현장 방문 절차로도 풀이된다.
한국의 경우,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한다’라는 이른바 딸깍발이 문화가 있다. 비슷한 문화가 일본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기에 반대하면서까지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세인 공기를 따르지 않을 경우, 주변 모두로부터의 차가운 ‘왕따’만이 기다리고 있다. 이지메(イジメ)라는 말은 영어사전(ijime)에도 오른, 왕따의 원조에 해당된다. 일본에서의 이지메는 소수의 불량학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학생들이 행하는 정당한 행위로서의 이지메다. 공기를 못 읽는 급우에 대한 벌이 이지메다. 이지메를 당하지 않으려면 공기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에도(江戸)시대 때부터 일반화된 이른바 ‘무라하치분(村八分)’에 대한 얘기는 공기가 갖는 어두운 이면의 구체적인 증거다. 무라하치분이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협동체를 의미한다. 성인식·결혼·출산·질병·여행·수해·건축 등에 관한 공동협의체가 무라하치분의 대상이다. 일본의 농촌은 무라하치분을 통한 공동체로 유지·발전돼왔다. 그러나 구성원이 무라하치분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경우, 그 결과는 참혹하다. 한순간 공·사적인 관계가 끊어지면서 결국 가족 전원이 굶어죽게 된다.

결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곳이 농촌이다. 무라하치분에서 제외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마을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에 나설 경우 등이다. 다시 말해 마을의 공기에 어긋나는 인물이 있을 경우다. 본인만이 아닌 가족 전원이 무라하치분에서 제외된다.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거나, 딴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에도 시대는 1㎞ 마을 밖으로 나갈 때도 허가를 얻어야만 했다. 사실상 허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마을의 촌장이다. 허락 없이 나갈 경우 곧바로 감옥행이다. 다른 곳에 간다고 해도 받아주지도 않는다.

참수 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세월호와 크게 비교되는 부분은 일본의 공기다. 가족들의 반응을 보면 한국에서 보던 모습과 너무도 다르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은 인간인 이상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일 양국 중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고토 가족의 반응을 보면 현재 흐르는 일본 내 공기를 짐작할 수 있다.

참수 사건 직후 발표된, 고토 어머니의 소감은 이랬다. “고토는 이제 멀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정신이 혼미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자식은 같은 일본인을 도우려고 시리아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배려심과 용기를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도쿄대 출신으로 세계 각국을 돌며 지원활동을 계속해온 고토 부인의 소견도 2월 2일 영어로 발표된다. “남편의 죽음을 접하면서 가족과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고토는 저의 남편인 동시에, 두 딸의 아버지로 부모와 형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친구를 가진 분입니다. 상실감으로 주체하기가 어렵지만, 이라크·소말리아·시리아와 같은 분쟁지역의 얘기를 전해온 남편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모범답안 같은 소감이 언론에 공표된다. 고토는 시리아에 들어가기 직전 일본정부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경고를 받았다. 위험지역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시리아로 들어간 저널리스트를 좋게 보는 일본인은 아무도 없다. ‘제 멋대로 간 저널리스트 문제에 대해 왜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것이 공기다.

공기는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과, 안으로 휘감는 형태로 이분(二分)된다. 모두가 알고 있고 공감하는 얘기라도 입밖으로 낼 경우 스스로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아무리 공기라 해도, 정부의 경고를 무시한 저널리스트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는 어렵다. 어린이를 돕고, 난민의 실상을 보도해온 성스러운 인물을 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근본은 ‘자기 책임론=나와 무관한 일’이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고토의 가족들은 그 같은 상황을 너무도 잘 안다.

21세기판 무라하치분 왕따가 가족들에게 닥칠 리는 만무하지만, 일본인으로서의 DNA속에는 무라하치분이 숨쉬고 있다. 고토 가족들이 보여준 겸손한 반응은 바로 그 같은 공기 속에서 흘러나온 결과물이다. 왜 자식을 못 살려냈느냐고 정부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말한다고 해도 들어줄 사람도 없다. 만약 그 같은 생각으로 소감을 발표 한다면 해외이민을 앞둔, 영원히 일본과 무관하게 살아갈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국가적, 국민적 차원의 사건이 터질수록 일본인은 공기의, 공기에 의한, 공기를 위한 구성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일본사회=일본정치=일본정부’로 일원화되기 쉽다. 나쁘게 말하면 파시즘으로 치닫기 십상이고, 좋게 말하면 국론일치로 나가게 된다. 고토 가족의 반응을 보면, 한방울의 이물질도 스며들 수 없는 일본 특유의 획일화된 공기가 와 닿는다.

참수 이면의 아베 4대 개혁안


▎새해맞이 중학생 붓글씨 전시회. ‘마음을 하나로’, ‘서로의 유대’, ‘협력’, ‘모두를 위한 하나와 하나를 위한 모두’와 같은 집단의식을 표현한다.
참수 사건 이후의 일본은 한층 더 강경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전망이다. 아베는 사건 이후 나타난 공기를 이용해 이미 4개의 ‘엄청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헌법개정을 묻는 국민투표의 2016년 여름 시행, 일본판 CIA(중앙정보국) 창설, 선거권을 20세에서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법안 개정안,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영위되는 ‘돈 먹는 하마’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全国農業協同組合中央会) 내 개혁 강행이 그것이다. 4개 모두 참수사건이 종결된 지 10일 만에 이뤄진, 전광석화와 같은 계획이다.

3·11대지진에 이어, 일본판 9·11을 겪은 상태에서 일본인은 강력한 리더 아베에게 모든 것을 위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수 보도가 넘칠 당시 일본 텔레비전 방송사는 자숙분위기, 즉 ‘긴신(謹慎)’으로 일관했다. 웃음이나 성적인 표현, 나아가 여성들의 화려한 옷은 공기에 어긋나는 ‘후킨신(不謹慎)’으로 해석됐다. ‘참수’를 대신해 ‘살해됐다’라는 표현이 뉴스 용어로 정착된다.

인질과 가족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아베 리더십에 맞춰 ‘알아서 기는’ 공기라 해석될 수도 있다.

9·11테러 이후의 미국은 무력에 호소하는 강성국가로 진화된다. 일본 역시 일본판 9·11을 통해 한층 더 일사분란하고 강하게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구도를 보면, 아베는 2020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이 아무리 아베를 무시하고 멀리하려 해도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듯하다. 아베와 달리, 세월호 사건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는 하락세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가 닥칠수록 강해지는 나라가 현재의 일본이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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