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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포커스 | 대기업 사내유보금의 정치경제학 - 절묘한 재계의 절충안? 법인세 인상은 ‘No’ 사내유보금 과세는 ‘OK’ 

기업소득 환류세제 논란 끝에 올해 시행… 법인세 인상 맞물리면 재계에 핵폭탄급 충격 줄 것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1월 5일 경제계 신년인사회. 재계 인사들은 사내유보금 과세에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까지 인상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그 돈을 활용해 (이익을) 가계에 돌려주는 게 시장경제의 정상적 구조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가 돈을 빌려 쓰고, 기업이 저축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배당이나 투자 성향 등을 고려하면 사내유보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과세나 인센티브 등을 통해 기업이 창출한 소득이 가계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구상하겠다.”

언뜻 좌파 경제학자의 주장처럼 보이는 이 말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기업이 쌓아둔 비상금에 손을 대겠다는 것인데 친기업, 친시장주의자인 최 부총리의 일격에 재계는 적잖이 당황했다. 시계를 그로부터 8개월 전으로 돌려보자. 2013년 11월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을 때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대대표는 “(과세를 한다고 기업이) 투자를 할 거라고 생각하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재계 입장에서는 넋 놓고 있다 제대로 한 방 맞은 셈이다.

최 부총리의 구상은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투자나 배당, 성과급 등으로 쓰면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않고 과도하게 쌓아둘 경우 과세하겠다는 것이었다. 화두는 섹시했으나 당시 시장에서는 “이게 되겠어?”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인센티브야 기준을 정하기 나름이지만 과세는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단 어느 정도를 ‘적절한’ 유보금으로 볼 것인지부터 애매한 데다 이미 쌓여있는 유보금에 과세하는 것은 계산식부터 매우 복잡하다. 최 부총리 역시 다음날 한 단계 수위를 낮춰 “과도한 사내유보금이 배당과 임금 등의 방식으로 가계로 흘러가게 할 경우 전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도록 (과세 체계를) 디자인할 것”이라며 “기업의 의사를 강제 한다든지 사업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표현은 과세 또는 인센티브라고 했지만 사실상 과세보다는 인센티브에 무게가 실렸던 이유다.

그러나 그의 구상은 한 달 뒤에 현실이 됐다. 기재부는 8월 6일 세법개정안에 기업의 투자, 임금 증가, 배당 등이 당기 소득의 일정액에 미달할 경우 추가 과세한다는 내용의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12월 26일, 법인세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자기자본 500억원을 초과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이 대상이다. 과세 방식은 기업의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를 포함하는 방식은 기업이 거둔 소득의 80%에서 투자와 임금 증가, 배당에 쓴 돈을 제외하고 남은 돈에 과세한다. 투자를 제외하는 방식은 소득의 30%에서 임금 증가와 배당에 쓴 돈을 제외하고 남은 돈에 과세한다. 세율은 10%로 고정했다.

예를 들어 A기업이 연간 1천억원을 벌어 200억원을 투자하고, 직원들에게 전년대비 200억원의 임금을 더 주고, 200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했다면 납부해야 할 세금은 20억원([(1천억원x0.8)-(200억원+200억원+200억원)]x0.1)이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올해부터 2017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사실 사내유보금 과세는 배경만 놓고 보면 나올 법한 얘기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당기 이익금 중에서 세금과 배당 등을 제외한 이익잉여금에 자본잉여금을 합한 돈이다. 쉽게 말해 장기간 누적된 기업의 여윳돈이라 보면 된다. 기업들은 주로 이 돈을 투자나 인수합병(M&A) 등에 쓴다. 사실 우리나라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과도하게 축적하고 있다는 지적은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러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이 유보금을 빠르게 늘리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실제로 2009년 270조원가량이던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말 약 527조원으로 거의 갑절로 늘었다. 이익을 내도 투자·배당을 하기보다 돈을 쌓아뒀다는 의미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9년부터 법인세 감세를 했고, 이로 인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5%로 높아졌는데 근로자 소득공제 축소까지 감내하며 국민이 기대한 것은 기업의 투자 확대와 고용 활성화였다. 그런데 기업이 주어진 혜택만 누리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이를 다시 되돌리는 차원에서라도 유보금 과세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법인세 인하 낙수효과 거의 없었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업은 빠른 실적 회복을 보였다. 그러나 임금 상승률과 고용확대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2008∼2013년 사이 우리나라 상용근로자(5인 이상 사업체)의 월 임금은 280만2천원에서 329만9천원으로 증가했다. 연 평균 증가율이 약 3.5%에 머문다.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 임금 상승률은 1% 안팎에 불과하다. 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도 2003~2008년의 10.9%에 비하면 2008~2013년에는 10.4%로 줄었다.

고용이 딱히 늘어난 것도 아니다. 추미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0대 그룹의 매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3을 넘어섰는데 대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서민 경제에 전달되지 않고 ‘고용 없는 성장’을 맴돌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는 “대기업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이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경제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기업은 투자에 인색했다. 2004~2013년 사이 우리나라의 투자 증가율은 연 평균 2.8%에 그쳤다. 건설투자는 0.01%, 설비투자는 4.4%였다. 최근 3년으로 좁혀보면 더욱 선명하다. 2011~2013년 증가율은 건설투자가 -0.2%, 설비투자가 1.1%였다. 사실상 정체 상태와도 같다. 국내 10대 그룹의 실물투자액은 2009년 26조원에서 2013년 7조원으로 75%나 감소했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불확실한 데다 소비 여력이 감소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탓이다.

해외 투자도 부실했다. 세계 M&A 시장에서 주요 글로벌 기업은 동종업계 경쟁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하거나 선두권 기업끼리 합병하는 등 공격적으로 덩치 키우기에 나섰지만 한국 기업은 변방에 머물렀다. 2013년 한국 기업의 해외 M&A 총액은 414억 달러에 그쳤다. 일본은 765억 달러, 중국은 1641억 달러였다. 제대로 된 성장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채 움츠러들었다고 봐야 한다. 홍성일 전경련 금융 조세팀장은 “세계적인 불황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어려운데다 막상 투자를 결정해도 노동 규제나 인허가 규제 등 걸리는 부분이 많아 전체적인 투자여건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배당에도 여전히 인색했다. 2014년 국내 기업의 배당성향은 약 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꼴찌다. 배당성향은 기업의 배당금 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영국(58%)·미국(40%)·일본(26%) 등 선진국은 물론 브라질(46%)·중국(31%) 같은 신흥국에도 한참 못 미친다. 주변에서 배당으로 재미를 좀 봤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나라 상장사의 배당수익률(1주당 지급되는 배당금을 현재 주가로 나눈 비율)은 1.1%(2013년)에 머문다. 1만원어치 주식을 가지고 있을 경우 연말에 받을 수 있는 배당금이 110원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정기예금 금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로 영국(3.6%)·프랑스(3.1%)·중국(3.0%) 등 전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3분의 1 수준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의 낮은 배당성향은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투자를 꺼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인이기도 하다.

재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일단 재계는 유보금 전체가 현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은 이익 중 배당되지 않고 회사에 남은 돈인데 이는 공장·설비·토지 등에 투자하는데 이미 사용한 돈”이라고 말했다. 이 설명처럼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 527조원 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7조4천억원으로 비중은 14.7%다. 4대 그룹 중에선 SK그룹만 현금 비중이 26%로 가장 크고,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등은 11~15% 수준이다. 사내유보금이 많아도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계는 ‘명백한 이중과세’라고 반발


▎1.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과도하게 축적한 기업의 유보금에 과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2. 전경련 회장으로 재추대된 허창수 회장. 허 회장은 총회가 열린 2월 10일 취임사를 통해 “법인세 인상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법인세를 냈는데 사내유보금에 또 과세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라는 주장도 한다. 사내유보금은 이익잉여금이 축적된 돈이다. 이익잉여금은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인데 또 세금을 내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사내유보금 과세는 비상장사를 대상으로 1991년에 도입된 적이 있다. 기업이 이익금을 사주에 배당하면 대주주가 배당소득세를 내야 하니, 절세를 위해 회사 안에 돈을 모아두는 걸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이중과세 논란과 기업 재무구조를 악화시킨다는 비판에 밀려 2001년 폐지됐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내유보금 과세는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는 시장경제를 택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정면 배치된다”고 말했다.

국부 유출도 우려된다. 기업이 유보율을 줄이려 배당을 늘리게 되면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회사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만 득을 본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외국인은 우리나라 상장사 지분의 32.9%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율은 절반이 넘고, 현대차와 SK하이닉스도 50%에 육박한다. 일반법인(24.1%), 개인(23.6%)이 뒤를 잇는데 여기서 말한 개인에는 오너 등 대주주가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배당을 늘려도 소위 개미(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가는 돈은 많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일리가 있다. 내수 활성화가 시급하니 기업이 돈을 좀 풀어서 어떻게든 가계나 중소기업 등에 돈을 돌도록 하자는 게 제도의 도입 취지인데 사내유보금 과세를 피하자고 기업이 ‘배당 확대’를 선택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찬반 논란이 있지만 어떻든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올해부터 시행된다. 한동안 반발하던 재계도 시행령이 발표되자 어느 정도 수용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7월 최 부총리의 발언 당시 예고 없이 보도자료와 참고자료 등을 배포하며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던 전경련은 12월 시행령 발표 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도입 취지에 걸맞은 의미 있는 변화도 관측됐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연이어 배당 확대를 발표한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4년 현금배당 공시 기업은 253개사로 2013년(140개사)에 비해 무려 80.7%나 늘어났다. 배당총액도 2013년 6조3726억 원에서 2014년에 10조2751억 원으로 61.2% 증가했다. 대기업이 배당확대를 주도했는데 유가증권 시장에서 2013년보다 배당을 늘린 대기업은 31개로 이들의 배당액은 전체 배당총액의 77.5%(7조2492억원)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보통주 1주당 배당금을 1만3800원에서 1만9500원으로 41.3% 확대했고, 현대차도 1950원에서 3천원으로 53.8% 늘렸다. 두 회사 모두 2013년에 비해 영업이익이 줄었음에도 배당은 크게 늘어난 결과를 낳았다.

전경련은 1월 13일 법인세법 시행령 중 기업소득 환류세제에 대한 기업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 투자 대상에 기업의 해외투자와 지분투자를 포함시켜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전경련 관계자는 “2012년 기준으로 10대 기업은 총 매출의 66%를 해외에서 올렸고, 법인세의 82%를 국내에 납부 했다”며 “해외투자를 제외하고 국내 투자만으로 기준을 잡으면 기업의 행동 반경이 크게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지분투자 역시 해외투자와 마찬가지로 기술력·성장성이 있는 피인수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고, 인수기업에는 신성장동력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장려해달라는 설명이다.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하고, SK그룹은 ‘반도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세기준율을 투자포함 방식은 80%에서 60%으로 투자제외 방식은 30%에서 20%로 하향 조정해달라는 내용도 담겼다.

유보금 과세 받고, 법인세 인상 막는 전략?


▎국내외 주요 기업·그룹 현금자산 현황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 보조를 맞추면서 과세기준율을 낮추거나, 투자의 범위를 확대해 세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듯하다. 재계의 입장이 미묘하게 변화한 이면에는 어떻게든 법인세 인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최근 연말정산 논란이 불거진 이후 ‘떳떳하게 증세하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증세 논의가 본격화할 분위기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키워드를 놓고 청와대와 여당이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확실히 선을 그으면서 잠잠해졌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정부가 기업의 법인세는 그대로 두고 봉급생활자의 ‘유리지갑’만 털고 있다는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아서다.

재계는 ‘세계 경제의 동반 불황에 기업 실적이 나빠져 법인세가 덜 걷힌 것’이라 주장하지만 봉급생활자의 박탈감을 달래줄 만한 설득력은 없다. 법인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는 이유다. 여러모로 상황이 곤란해졌다. 익명을 원한 한 교수는 “기재부는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설계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부담을 줄여줬다”며 “그런데도 기업이 자꾸 선을 긋고 부딪치면 더 큰 폭탄(법인세 인상)을 맞을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작은 걸 잃더라도 큰 걸 지키자는 전략이란 분석이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해 실적을 기준으로 세 부담을 추정해본 결과 과세 대상 기업 3300곳 중 700개 기업이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업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기업소득 환류세제 시행으로 10대 그룹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세금은 1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10대 그룹 중 환류세액이 가장 많은 곳은 현대차그룹으로 5550억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2위는 삼성그룹으로 추가 세 부담은 약 3580억원이다. 현대차와 삼성의 합계가 9350억원으로 10대 그룹 전체의 86.4%를 차지한다. 그러나 실제로 걷히는 세액은 이보다 훨씬 적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10조5500억원에 사들인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가 투자로 인정되면 환류세액이 대폭 줄어든다. 2월에 발표할 시행규칙에서 기재부가 재계의 투자의 범위 확대 건의를 받아들이면 나머지 기업의 추가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업계에선 부담해야 할 세금이 “많아도 5천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정도면 사실 큰 부담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법인세를 인상할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야당(이낙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내놓은 대로 법인세 최고 세율을 2009년 이전과 같은 25%로 인상하면 연 평균 세수가 4조6천억원가량 늘어난다는 게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이다. 이 의원이 내놓은 안은 과세표준 2억~500억원 구간 세율을 22%로 하고, 500억원 이상 구간을 25%로 조정하는 내용이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의 안은 이보다 공격적이다. 200억~1천억원 구간은 현행(22%)대로 두되 1천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30%의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다. 2013년 기준으로 과세표준이 1천억원을 초과하는 법인 수는 총 234개로 이들이 내는 법인세 총액은 27조100억원이다. 전체 법인세(45조9900억원)의 58.7%에 달한다. 이들에게 세율을 8%포인트 올리면 세수가 7조2천억원가량 늘어난다는 게 박 의원 측의 설명이다.

물론 법인세를 올리더라도 야당의 안대로 되진 않겠지만 기업소득 환류세제보다 부담이 훨씬 커지리란 건 확실하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소득 환류세는 법인세목에 포함돼 있어 이는 사실상 법인세 증세”라며 “이뿐 아니라 각종 공제· 감면 축소와 최저한세율 인상 등으로 법인세 명목세율만 오르지 않았을 뿐 기업의 세 부담은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엄살인지 사실인지는 개별 기업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구도로 가야 재계로서는 법인세 인상이란 태풍을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최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발언에서도 이런 위기감이 느껴진다. 2월 10일 열린 정기총회를 마친 뒤 허 회장은 “법인세와 관련한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하겠지만 법인세를 낮추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한국만 올린다면 (기업들의) 경영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법인세율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우리의 법인세 인상 논의와 달리 전 세계 각국에서 법인세 인하 추세가 뚜렷하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기업소득 환류세제’, 해외 언론도 관심


▎현대차가 중국에 투자해 가동하고 있는 베이징 제2공장. 전경련은 최근 정부에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투자대상에 해외투자를 포함시켜달라고 건의했다.
사내유보금 과세든 법인세 인상이든 기업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막고 싶을 터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를 볼 때 기업이 여론을 뚫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월 10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공부채 확대로 위기를 돌파하려던 세계 각국이 본격적인 저성장기를 맞아 기업이 쌓아둔 현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본국에 세금을 내지 않고 해외에 수익을 묻어둔 다국적기업에 14%의 일회성 세금(이행세)을 부과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딜로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2014년 3분기 전 세계 비금융 대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3조5천억 달러로 2005년 1조8천억 달러에 비해 94%나 늘었다. 이 중 절반은 미국 기업이 갖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시중에 돈을 많이 풀었지만 민간부분의 현금 흐름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고, 기업에 흘러들어간 돈은 묶여 있었다는 설명이다. FT는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도입한 한국의 사례도 소개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이 배당과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사실 사내유보금 과세는 거시경제 패러다임에 관한 정부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기업이 성장하면 자연스레 고용과 가계소득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해왔다면 앞으로는 가계소득 중심 성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다. 저성장기에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에만 기대어서는 더 이상 경제를 꾸려가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소득이 늘어야 소비가 늘고, 내수가 살아난다. 그래야 기업의 일거리가 늘고, 일자리도 더 많이 생긴다. 여러 규제를 풀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야 이것이 또 소득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어쩌면 이제는 기업이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할 시점에 왔는지도 모른다.

기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사실 정부가 “서민 지갑을 먼저 턴다”는 불만은 없는 얘기도 아니고, 단순한 불평도 아니다. 2월 5일 국세청 업무보고에서 통계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소득세 수입은 2013년에 비해 6조8698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2014년은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첫 해였다.

과도한 압박은 합리적 투자 가로막아

당초 기획재정부는 세액공제 전환에 따른 세수 증가분도 1조원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액공제 영향이 훨씬 컸다는 얘기다. 소득세 수입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8%로 조정한 2012년에도 큰 폭으로 늘었다. 소득세수 총액은 내년 59조원을 넘어서 39년 동안 국세 1위 자리를 지켰던 부가가치세(단일세율 10%)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반면 법인세수는 최근 5년간 44조~46조원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소득세는 2014년과 올해 11조1477억원이 더 걷힐 전망이지만 같은 기간 법인세 수는 2조1918억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소득세의 세수 증가 규모가 법인세의 다섯 배를 넘어선다는 얘기다.

물론 과도하게 기업을 압박하면 건전한 경영 활동을 위축 시키고, 도리어 투자나 고용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뜩이나 기업의 먹거리가 줄어 걱정이 큰 마당에 너무 다그치면 합리적인 투자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전경련이 자산 상위 30대 그룹(2014년 4월 공정위 기준)을 대상으로 올해 투자·경영 환경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한 29개 그룹 중 82.8%(24곳)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장기불황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나머지 17.2%(5곳)는 ‘일시적 경기부진’이라고 답했으며 경기침체가 아니라고 응답한 그룹은 한 곳도 없었다. 예상 경제회복 시기에 대해서는 44.8%(13곳)가 ‘2017년 이후’라고 답했다. 최근 경영환경 및 시장여건과 관해서는 72.4%(21곳)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더 나쁘다고 응답했다. ▷해외시장 경쟁 심화(34.5%) ▷내수 부진(20.7%) ▷채산성 악화(17.2%) 등이 경영상 최대 난관으로 꼽혔다.

유례없이 어두운 전망이다. 기업들로서는 갈 길은 먼데 사내유보금 과세에 법인세 인상까지 곳곳에 암초가 버티고 있다. 여러모로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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