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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화제 | 창립 50년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의 파워 - 무역역군 32만 양성 기업이 우대하는 전문가 요람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일환으로 출범… 최신 무역 트렌드 익히고 기업 니즈 충족하는 실무교육이 강점

▎무역아카데미 글로벌무역 인턴십 과정은 1개월의 무역실무교육과 6개월의 해외 인턴십을 통해 글로벌 무역전문가를 양성한다.
무역 인재를 양성하는 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가 창립 50년을 맞는다. 1965년 3월 22일 제1기 수강생이 입교했을 당시의 소속과 이름은 KOTRA(대한무역투자공사) 수출학교. 현재 무역아카데미의 전신이다. 수출학교는 1983년까지 총 5205명의 무역전문 인력을 양성한 후, 그 운영권을 한국무역협회로 넘겼다. 이후 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는 연인원 32만 명의 무역 인재를 양성한 거대 경제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한국 무역사에서 1964, 1965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로 1964년 최초로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이에 고무된 정부는 더욱 강력한 수출 진흥정책을 시도했고, 그 일환으로 수출학교 출범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수출학교 개교는 청와대 수출 진흥회의 ‘대통령 지시각서 제6호’에 의거해 이뤄졌다. 3월 5일 대통령 지시로 3월 22일 개교했으니, 준비에 17일밖에 걸리지 않은 ‘속전속결’ 개교였다. 당시 박 대통령의 수출 드라이브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삽화다.

1964년 수출 1억 달러 달성이 이뤄지자 정부와 수출업계는 큰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 이면의 전 국민적 노력도 치열했다. 근로자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기꺼이 감내했고, 정부는 무역정책을 비롯해 재정·금융·관세 정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수출 지원에 나섰다. 자립경제 달성의 척도를 국제수지의 균형으로 봤던 박 대통령은 수출 보조금 교부, 수출입 링크제, 조세 감면, 수출 금융 지원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범정부 수출 지원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예를 들어 1963년 공표한 ‘수출입 링크제’는 일체의 수입권을 수출 실적에 연계하여 상사별 수입 한도액을 설정토록 한 것이다. 심지어 수입권의 양도까지 허용됐다. 한마디로 수출을 하는 기업에만 수입권을 주는 가장 확실한 인센티브 제도였다.

코트라에서 운영하다 1984년 무역협회가 맡아


▎청와대에서 월례 수출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사진 정면). 무역아카데미의 전신인 수출학교도 박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됐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월례 수출 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1965년부터다. 회의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효율적 추진에 초점이 맞춰졌다. 각종 지원정책에 대해 경제 부처 간 공동 인식을 갖게 하면서 정책 집행상황을 점검하고 독려했다. 회의에는 총리와 경제부총리와 함께 외무·재무·상공 등 정부 각료와 한은총재, 무역협회장 등 경제단체 대표가 참석했다. 이인호 무역아카데미 사무총장은 “당시 수출 확대의 가장 큰 애로점은 국제거래를 담당할 전문 인력의 부족이었다”면서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고자 전격적으로 문을 열게 된 것이 바로 수출학교였다”고 설명했다. 수출학교 출범은 1억 달러 수출 달성에 고무된 정부가 더욱 강력한 수출 진흥정책의 하나로 추진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수출학교는 1984년 무역협회가 인수하면서 종합무역연수원, 이후 1994년 국제무역연수원, 1999년 무역아카데미로 각각 명칭을 바꾸고 기능을 혁신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역대 무역협회 회장 중 무역 아카데미에 가장 큰 열정을 쏟은 이는 남덕우(1985∼88), 김재철(1999∼2000), 사공일(2009∼12), 한덕수(2012∼현재) 등 4인의 회장을 꼽을 만하다. 1984년 3월 무역연수원 초대 연수부장을 맡았던 구충회 씨(1969년 입사)는 “남덕우 회장은 정규 강좌가 끝날 때는 꼭 연수생을 위한 본인의 특강을 했고, 저명인사 특강의 강사 섭외도 본인이 발벗고 도와주었던 열성파였다”고 말했다.

김재철 회장은 IT 인재를 육성해 실리콘밸리로 진출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그는 무역 아카데미 안에 IT마스터 과정을 신설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수자 파견, 원격교육을 위한 사이버트레이드 캠퍼스 구축 등 IT 교육을 위한 무역인재 양성을 본격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공일 회장은 온라인 연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사무국장을 지낸 이기성 씨(현 산학재단 사무국장)는 “사공일 회장은 실질적인 콘텐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고, 이를 계기로 무역아카데미가 중국 관련 콘텐트를 대거 제작해 보급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현 한덕수 회장은 산학협력, 일과 학습의 병행 프로그램 개발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한 회장은 “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력수급의 미스매칭에 관한 연구를 치밀하게 수행해 반드시 업계의 니즈(필요)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트레이드마크처럼 강조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도 무역아카데미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무역아카데미를 방문해 수강생과 환담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을 앞두고 당선인 자격으로 무역아카데미를 방문해 IT 마스터(스마트 클라우드 마스터) 과정 등의 수강 시설을 둘러보았다.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이기성 씨는 “이 당선자가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던 학생들과 환담을 나누고 즉석 스피치를 하는 등 ‘일정 외의 시간’을 보내며 관심을 보였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했다.

1980년대 무역협회 연수원과 무역아카데미는 늘 당대 최고의 시설로 기업 실무교육계를 이끌었다. 무역실무를 가르치는 교실은 분필을 쓰는 칠판을 사용했지만 영어, 일어 등 외국어 교육을 위해 당시로는 최첨단의 LAB실을 갖췄다. VTR을 이용한 시청각 교실이 활성화되어 ‘온 비즈니스 어브로드(On Business Abroad)’ 영어교육 비디오는 최고 인기였다. 연수생 가운에 복사본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무역마스터 과정은 1995년 개설됐다. 국제비즈니스 전문인력 양성과정으로 무역아카데미의 간판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무역업계의 인사담당자들은 무역마스터 과정을 ‘무역사관학교’라고 부른다. 거의 100%에 가까운 취업률 때문이다. 무역마스터의 높은 취업률은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의 강도 높은 교육과정에서 비롯된다. 9개월 동안 하루 9시간씩 무역실무·외국어·정보화 교육 등으로 짜인 1800시간의 빡빡한 학습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평가시험과 과제물 제출, 견학 및 현장실습 등 숨 돌릴 틈이 없다. 무역마스터 과정의 젊은 연수생들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함께 공부하다 보니 남녀 연수생 중 결혼에 이르는 경우가 기수 당 평균 두 커플 정도 생겼다고 한다.

무역사관학교에서 커플 탄생하기도


▎1995년 개설된 무역마스터 과정은 국제비즈니스 전문인력 양성과정으로 무역아카데미의 간판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무역마스터 과정 이수자에 대한 기업의 선호도는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이 긴급 채용이 필요한 경우 무역아카데미를 찾는 경우가 많다. 신입직원을 채용할 때 무역아카데미를 대놓고 활용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프린터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견 회사의 경우 무역부의 상위관리자를 제외한 전 직원이 무역아카데미 출신이다.

무역마스터 과정 출신 중엔 해외 사업을 성공시킨 사례도 많다. 2000년 국내에서 주얼리 사업을 시작한 신형기 ‘마노’ 대표는 2002년 중국 칭다오로 거점을 옮겨 사업을 확장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H&M, 자라 등이 마노의 주요 거래처다. 신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한국무역협회 산하 무역아카데미의 ‘무역마스터 과정’에서 공부한 지식이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같은 수업을 들은 선후배 다수가 칭다오에 진출해 자주 교류한다”고 말했다. 칭다오에서 또 다른 주얼리 업체 ‘스타일’을 경영하는 노태홍 대표도 무역마스터 6기 수료생이다. 신 대표(4기)보다 두 기수 후배다. 그는 수료 직후인 2002년 칭다오의 한국 회사에 취업해 경력을 쌓은 뒤 2010년 스타일을 창업했다. 이후 자라, 망고, 막스&스펜서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하며 연 매출 2천만 달러 규모로 회사를 키웠다.

이래경(26) 씨는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졸업을 유예하고 2012년 9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무역마스터 과정을 이수했다. 이씨는 무역회사에 몸담은 강사진으로부터 책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현장 지식을 배웠다. 이씨는 “비즈니스 매너, 실제 업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팁까지 세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며 “다 흡수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할 정도로 교육의 질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씨는 무역마스터 과정과 함께 무역아카데미의 ‘FTA과정’을 수강해 수료증을 받았다. 무역마스터과정 내 ‘해외시장 진출전략’ 과목의 팀별 영어 프레젠테이션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고, 국제무역사 자격도 취득했다. 이 같은 경험과 자격을 토대로 세계적인 다국적 식품회사 ‘돌코리아(Dole Korea)’ 취업에 성공했다. 단 한 명만을 뽑았던 공채에서 합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씨가 “채용 즉시 실무 수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돌코리아의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무역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최근 청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글로벌무역인턴십 과정이다. 이 과정은 끼와 열정을 가진 청년을 선발하여 1개월의 무역실무교육과 6개월의 해외 인턴십을 통해 글로벌 무역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부터는 정부 ‘K-move 사업(청년해외취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티센크루프의 한국지사에서 근무하는 정혜승 씨의 경우가 성공 사례다. 티센크루프는 독일이 자랑하는 다국적기업 중의 하나다.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 자동차부품 및 소재 분야의 생산, 수출입, 판매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정씨는 글로벌무역전문가 과정에 참여해 독일에서 인턴십을 한 것이 입사 성공의 결정적 계기로 생각한다.

중국 내수시장 공략의 노하우를 개발하라


▎무역아카데미 교육의 가장 큰 강점은 채용 즉시 실무수행이 가능한 무역 인재를 양성한다는 데에 있다.
정씨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인턴생활을 한 회사는 ‘아이리버’였다. MP3, e북 등 독일 시장개척을 위한 시장조사를 주로 맡았다. 학생시절 리포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비즈니스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이때 배울 수 있었다. 정씨는 “티센크루프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며 제조업이 강한 독일 경제를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수료생에 대한 기업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스마트 클라우드(SC) 마스터 과정’이다. 1~26기까지 총 1589명을 배출해 수료생 중 1555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률 98%다. 특히 해외취업 비중이 63%(1005명)로 국내취업 35%(550명)보다 월등히 높다. 기업들이 앞다퉈 수료생을 데려가기 위한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SC마스터 과정은 매년 상·하반기 인력 수요자인 ICT 기업들과 커리큘럼 구성은 물론 인력수급 동향, 기술 트렌드 변화 등 업계의 생생한 정보를 토대로 직접 협의하고 있다. 과정이 개설되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기업의 요구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평이한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과 일본어 교육으로도 취업이 가능했다. IT기술이 범용화된 최근 트렌드로는 기업의 요구 사항도 날로 까다로워진다. 기업의 요구에 따라 모바일 관련 소프트웨어 교육을 크게 강화했다. 철저한 근태관리와 특강을 통한 자신감 고취 등 인성교육도 강화했다. 채용 후 현업에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형 실무중점 교육(Practice)을 실시한 것도 수료자의 높은 취업률의 비결이다.

한덕수 무역협회장이 최근 가장 강조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일학습병행제 지원사업’이다. ‘일학습병행제’는 정부 역점사업 중 하나로 기업이 신입 근로자를 채용·육성할 때 실무교육과 현장훈련을 동시에 실시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체엔 우수인력 양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 훈련을 마친 근로자에게는 평가 후 그 자격을 인정하는 제도다. 신입 근로자는 일과 학습을 병행으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무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올해부터 ‘무역분야 일학습병행제 공동훈련센터’ 운영이 시작됐다. 신입 근로자에게 무역실무교육(Off-JT, 집합교육)과 기업별 현장훈련(OJT, 직장 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전체 교육기간은 1년으로 교육 이후 평가를 거쳐 정규직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프로그램 참여 기업은 인건비 지원, 교육 수당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저비용으로 우수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인호 무역 아카데미 사무총장은 “그동안 중소무역업체는 신입직원의 능력을 제대로 키울 기회가 늘 부족했다”면서 “무역분야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면 현장에서 필요한 우수인력을 아주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률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무역이 돌파구를 열어줘야 한다는 기대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무역업계의 고민은 현재의 주력산업으로는 무역량을 2조 달러 수준으로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중소, 중견 기업이 무역에 기여하는 비중을 40% 정도(현재는 30% 수준)로 늘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강소기업이 대거 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협회가 올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TPP를 비롯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이다.

안현호 무역아카데미 원장은 “올해 무역협회와 무역아카데미는 중국 내수시장 진출의 노하우와 전략 개발에 승부를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휴대폰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극소수 중견기업을 제외하고는 중국 내수 시장 공략에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의 성패가 무역사의 중대한 모멘텀이며, 무역아카데미 교육도 만리장성을 넘는 목표를 주목할 것”이라 전망했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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