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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공자가 다시 쓴 자본주의 강의> 펴낸 이덕희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교수 - “경세제민의 경제학 위해 공자의 ‘인’이 필요” 

공자와 애덤스미스의 닮은꼴 찾기… 인간적 자본주의 실현 위해선 ‘생태학적 인식’이 중요하다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이덕희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자본주의는 모순덩어리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을 치유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며 공자의 ‘인’이 결합된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주장했다. /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2500년 전의 공자가 현세로 와서 현대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마치 목탁 두드리던 스님이 어느 날 십자가를 들고 있는 꼴이 아닐까. 둘의 만남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N극과 S극처럼 낯설게 보일 것이다. ‘인간적 자본주의? 냉철한 자본주의를 바꾸는 따뜻한 가슴?’ 다소 캐치프레이즈와도 같은 주장에 의아함이 앞서지만 이 책은 상당한 논리와 설득력을 편다. 공자의 사상인 ‘인’, ‘의’, ‘기’를 우리 경제에 어떻게 스며들게 할 것인지 접점을 모색한 역작이다. 칼바람 사이로 함박눈이 흩뿌리던 2월 9일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이덕희(53) 교수를 만났다. 인자한 웃음을 지닌 그의 첫인상이 책의 주제와도 퍽 어울려 보였다.

“해가 갈수록 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작은 불황에도 실물 경제는 요동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약속했던 자본주의는 책에서 제가 표현한 것처럼 ‘구원으로 향하는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성장우선은 사농공상에 실학이 더해진 산물

이 책은 반평생을 경제학의 틀에 갇혀 살던 경제학자의 ‘반성’이다. 이 교수는 고려대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를, 뉴욕 주립대(버펄로)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산업연구원(KIET)과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를 거쳐 현재 카이스트에서 ‘미시경제학’과 ‘산업자본론’ 등을 가르친다. <정보통신경제학> <네트워크 이코노미: 부분과 전체의 복잡성에 대하여> <디지털화와 산업의 양극화> <정보통신산업의 표준화 경쟁전략> 등 그동안 써왔던 그의 저서들에서는 ‘따뜻한 감성’을 느끼기 어렵다. 우리 경제를 깊이 있게 연구해온 경제학자는 어느 날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경제의 유약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과도한 이익을 챙겨야만 하는가?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윤리의식이 피폐해지는데 경제성장을 계속 고집해야 하는가? 전체 소득은 늘어나는데 왜 격차는 더 심해지는가? 이런 질문 끝에 몇 해전 논어를 비롯한 동양서적을 읽다가 현대 자본주의와 흡사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천착해왔던 자본주의가 새로운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차근차근 동양철학 서적을 섭렵하면서 경제학 이론과의 연결고리를 찾아왔다. 그러다가 커다란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애덤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이기심의 정당화 이전에 ‘인간의 천성은 연민과 동정’임을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인(仁)·의(義)·기(氣)의 삶을 제시했더군요.” 이 교수의 비교학적인 관점은 공자의 ‘인’을 도덕감정론(인간의 따뜻한 본성)으로, ‘의’를 국부론(분업에 의한 자유로운 거래로 부를 만드는 것)으로 연결했다.

경제학 원리로는 각각 ‘형평성’과 ‘효율성’과의 관계였다. 이 교수의 이런 깨달음은 “한국인이 지켜왔던 유교적인 가치를 이어왔다면 더 좋은 모습의 경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동양철학가 사이에서 왜 하필 공자였을까? 이 교수는 그가 ‘어진 경제’를 대변할 수 있는 원조(Originality)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사회는 진통을 겪고 있다고 봐요.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라면 지금은 부재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정신사적 목표가 없는 겁니다. 그 동기가 저는 공자라고 보았어요. 비유하자면 정제되지 않은 ‘원유’와도 같습니다. 무엇보다 공자의 ‘인’은 차별성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를 동양적 관점에서 실사구시 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것이 공자의 사상이었어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자 두 대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인 그에게 ‘인’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는 영화 <국제시장>을 비유해 이렇게 설명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더군요. 역사를 이끌어온 인물들 저변의 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바로 아버지의 어진 마음, 즉 ‘인’이지요. 40~50대 연령층에서는 더 많이 공감할 겁니다.”

하지만 실행 면에서는 의문이 앞섰다. 특히 성장우선, 성과중심인 한국사회에서 가능한 논리인가 하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한 논리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구한말 혼란이 싹트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정부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부의 축적 과정에는 정신사적 측면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 부분이 많죠. 학벌위주, 성과위주의 질서 또한 사농공상의 가치서열에 수평적 실학이 섞이고 왜곡되면서 ‘이’ 중심의 사회가 형성됐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공자의 가치가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인’을 품고 ‘의’를 세우고 ‘기’를 살리라”고 말한다. “인은 개인의 심성, 도덕성이죠. 의는 주관적이지만 공정성을 갖고 정의로운 역할을 하는 법, 제도, 규율과 같은 공정경쟁 시스템입니다. 심성에서 실행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지요. ‘인’을 바탕으로 하는 ‘기’는 지속적인 교감과 소통을 의미합니다. 개인과 기업, 정부 등의 상호작용을 비유한 것입니다.”

경제학에 ‘한의학적’ 처방 필요하다

이 교수가 인간적 자본주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건 자본주의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기대감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는 모순덩어리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을 치유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녔다”고 말한다. “순수한 사기업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본의 다양한 얼굴 중 인간의 자유와 접목된 자본주의는 나쁜 것에 비해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인간적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태계적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네트워크를 거대한 생태계로 이해하자는 설명이다. 이 교수의 가장 궁극적인 바람은 “경제학이 경세제민의 학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학문적 융합’이 필요하다. “경제학 과목에서는 경제사, 경제사상, 경제사회학 같은 인문학에 기초한 학문이 새롭게 복원돼야 합니다. 경제학도들은 철학, 문학, 사학, 수학, 물리, 생물 등 기초학문을 폭넓게 공부해야 하고요. 인문학적 성찰만이 공공의식을 갖게 하니까요.”

이 같은 맥락에서 경제학에 ‘한의학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체질개선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수가 돌지 않아 돈을 풀고 기업에 투자해서 일자리를 활성화하는 등의 경제정책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양의학적인 대증요법이 더 이상 먹혀 들지 않습니다. 주먹구구식 경제정책보다는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하겠지만 개인과 기업, 정부의 역할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의 주장이 따뜻한 얼굴을 한 인간적 자본주의의 문을 열어줄 것인가? 이에 이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고 대답했다. 후속작을 묻자, 그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중용>을 연구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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