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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함정임의 ‘바닷가 서재’ | 문학의 성역에서 찾은 인간 - 작가라는 새로운 종(種), 작가 본능의 발견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작가란 무엇인가>(전3권) 파리리뷰 지음│김진아 외 옮김 다른│6만6천원(세트)
쿠바의 수도 아바나 동쪽 코히마르라는 작은 어촌에 가면 헤밍웨이가 20여 년 동안 살았던 핑카비히아라는 집이 있다. 아바나 시와 카리브해의 전망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도록 탑처럼 지어진 건물 꼭대기에 집필실이 있다. 사방이 유리창인 그곳에는 수동 타자기가 놓여 있는 책상 하나와 삼각대 망원경이 놓여 있다. 집필실은 이곳 말고 더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아바나 구시가지 골목에 있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 5층 511호실이다.

여기까지는 2012년 2월 내가 직접 현지에 가서 확인한 사실이다. 헤밍웨이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을 썼다. 코히마르의 핑카비히아에서는 <노인과 바다>(1952)를 집필했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번에 완간된 <작가란 무엇인가>(<파리 리뷰>)의 헤밍웨이와의 인터뷰 서두에 소개하고 있는 곳은 미국 기자 출신 조지 플럼턴이 다른 지명으로 부르고 있을 뿐, 코히마르의 핑카비히아 바로 그곳인 듯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하바나 시의 변두리인 샌프란시스코 드 폴라에 있는 자신의 집 침실에서 글을 쓴다. 집 남서쪽 끝에 있는 네모난 탑에 특별히 마련한 작업실이 있으나, 그는 침실에서 작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가 탑에 있는 작업실로 올라가는 건 ‘등장인물’이 그렇게 시킬 때뿐이다. (…) 헤밍웨이는 서서 글을 쓰는데, 이건 그가 처음부터 갖고 있던 글쓰는 습관이다. 그는 크고 편한 신발을 신고 닳아 빠진 얼룩영양의 가죽 위에 서서 글을 쓴다. 타자기와 독서대는 그의 가슴께에 있다. 헤밍웨이는 항상 연필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얇은 반투명한 타자지 위에 글을 쓰기 위해 독서대를 이용한다. (…) 글쓰기에 완벽한 책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심신이 강건해야만 하는 직업

우연인지 필연인지,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헤밍웨이의 족적을 뒤쫓는 전기 작가처럼 그가 태어난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의 빅토리아 시대 풍의 저택부터 ‘하루에 진실한 한 문장 쓰기’의 원칙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스무 살에 둥지를 틀었던 파리,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록,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 터키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그리고 아바나의 코히마르까지 수많은 공간을 돌아보았다. 내가 그(소설과 소설미학)를 얼마나 열렬하게 추종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렇게 보자면, 헤밍웨이뿐만 아니라 그의 동시대 문우 피츠제럴드를 비롯 발자크, 빅토르 위고, 스탕달, 플로베르, 카프카, 쿤데라, 버지니어 울프, 폴 오스터, 오르한 파묵, 니코스 카잔차키스, 움베르토 에코, 수전 손택,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왜 나는 20년이 넘도록 이들 작가가 태어나거나 머물렀거나 죽어 묻혀 있는 곳을 쉼 없이 찾아다녔던가. 도대체 그들의 무엇이 나를 그토록 열렬하게 달려가도록 만들었던가. 작가란 무엇일까. 평생을 소설 읽기에 바쳐온 문학평론가 김윤식에 따르면, 우선 ‘작가란 해병대이자 정육점 주인’만큼 육체적으로 강건해야 한다. 작가를 살펴야 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작가는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뉘 집 자식이고, 어디에서 나고 배웠고, 어떻게 살았으며 또 죽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 이러한 물음 앞에서는 누구나 아득해지고, 친근함에 빠진다는 것.(<작가론의 새영역>, 강)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엿본 헤밍웨이의 글쓰기 원칙이 이를 뒷받침한다.

“글쓰기란 권투와 같다는 헤밍웨이의 글이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았지요. (…) 작가는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하며 건강해야 합니다.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와의 인터뷰 중)

<작가란 무엇인가>(전3권)는 1953년 창간된 <파리 리뷰>지가 60년 동안 E. M. 포스터와 윌리엄 포크너 등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작가에서부터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 중 한국의 문학 전문 독자들이 만나기를 희망한 36명을 선별, 3권으로 편집한 책이다. 이들 중 E .M. 포스터, 줄리언 반스, 수전 손택, 보르헤스, 가르시아 마르께스 등은 소설뿐만이 아니라 기자, 칼럼니스트, 에세이스트, 문화비평가로서 다양한 글쓰기를 펼쳤다. 현대 미국 문학에서 소설을 중심으로 전방위 장르를 섭렵하면서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한 수전 손택의 경우를 보면 작가의 초월적인 영역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수전 손택은 맨해튼 서부 첼시의 어느 건물 꼭대기 층, 가구가 간소한 방 다섯개 짜리 아파트에 산다. 책(무려 1만5천권)과 종이가 집 안 곳곳에서 눈에 띤다. 미술과 건축, 극장과 춤, 철학과 정신의학, 의학의 역사, 종교의 역사, 사진, 오페라 등을 다룬 책들을 대강 훑어보는 데만 평생이 걸릴지 모른다. (중략) 손택은 스크랩하는 고질적인 습관이 있어서 책에는 신문스크랩이 가득 끼워져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책마다 표시를 하며 뼈를 발라낸다’고 한다.”(수전 손택과의 인터뷰 중에서)

같은 인간으로서의 친근함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응답은, 작품과 작가의 생애(삶), 그리고 문학사를 순환시키면서 살펴볼 때 가능하다. 이들 셋의 긴밀하고도 균형 잡힌 점검에 우선하는 것이 있다. 같은 인간으로서 품게 되는 ‘아득함’과 ‘친근함’이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을 쓴 작가라도 나와 거리가 너무 멀거나 높은 곳에 존재한다면 별다른 감흥이나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작가란 무엇인가>에 수록된 작가들 면면은 범접할 수 없는 성역처럼 숭고하고 막강하지만, 한 명 한 명 인간적으로, 그러니까 ‘이 사람은 뉘 집 부모 밑에 태어나 어디에서 자라면서 어떤 계기로 작가가 되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대하면, 명성의 아득함은 잦아든다. 한 가지에 매진하여 일가를 이룬 내 아버지나 이모, 또는 내 문학 선생이나 선배와 같이 따뜻하면서도 엄격하고, 순수하면서도 괴팍한, ‘작가라는 친근하면서도 새로운 종(種)’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글을 쓰고 싶거나,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화여대 불문과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소설집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 , 장편소설 <춘하 추동> <내 남자의 책>, 예술기행서 <인생의 사용>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소설가의 여행법>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번역서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행복을 주는 그림> 등을 썼다.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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